결핍 위에서 시작된 구원 - 〈충충충〉언론배급시사회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주연 님의 글입니다.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대개 선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자신조차 구하지 못한 사람이 붙드는 구원은 때때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충충충〉의 인물들은 모두 그런 위태로운 경계 위에 서 있다.

욕망과 결핍을 감출 줄 모르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가족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용기(주민형), 가정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지숙(백지혜), 결핍을 해소하려 하지만 더 깊이 좀먹어가는 덤보(신준항).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내·외적으로 충돌하는 고등학생들이 영화의 중심에 선다.
영화는 액자식 구성과 빠른 장면 전환을 통해 이들의 흔들림을 따라간다. 인물들의 얼굴을 집요하게 응시하다가도 갑작스럽게 시선을 옮기며 감정을 정리할 틈을 주지 않는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불안정한 흐름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청소년기의 예민하고 급격한 감정 변화를 체감하게 된다. 특히 용기가 자신의 결핍을 직접 연기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제3자의 시선으로 상처를 바라보는 동시에 누구보다 깊숙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하지만 끝내 그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맴돈 건 한 가지였다. 이 아이들은 잡아줄 사람이 없다. 용기 내어 찾아간 엄마는 이미 다른 삶을 꾸리고 있었고, 사랑이라 믿었던 관계는 쉽게 무너졌으며, 감추고 싶던 진실은 결국 칼이 되어 돌아왔다. 기대려 하지만, 번번이 무너진다. 하나하나의 결핍과 외면당한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진다. 〈충충충〉이 무서운 이유는 거대한 비극이 갑자기 찾아오기 때문이 아니다. 아주 작은 균열들이 방치된 채 쌓이고 쌓여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런 결핍 위에서 시작된 구원은 처음부터 위태롭다.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고 믿었지만, 자신조차 구하지 못한 사람이 붙드는 믿음은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향한다.

기자간담회에서 한창록 감독은 2018년 미국에서 발생한 실제 범죄 사건 기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사건을 접한 뒤 이를 한국 사회의 현실로 옮겨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흔히 떠올리는 ‘벌레 충(蟲)’, 그리고 ‘찌를 충(衝)’이다. 영화는 ‘충동–충돌–충격’의 세 챕터로 구성되는데, 감독은 이를 두고 10대들이 품고 있는 ‘찌르고 싶은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 대상은 타인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영화는 벌레 유충이 깨어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벌레 충(蟲)’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받고, 또다시 누군가를 향해 돌진하는 인물들은 사회가 바라보는 문제적 청소년의 얼굴을 닮아 있다. 하지만 그들을 단순히 문제적인 존재로 소비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들을 그 자리까지 몰아넣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벌레처럼 취급받는 아이들이, 사실은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던 존재였음을 드러낸다. 비행 청소년의 일탈이라기보다, 결핍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잠식해 가는지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동시에 딥페이크, SNS, 온라인 관계, 거식증 등 오늘날 청소년들이 마주한 현실의 문제들을 끊임없이 건드리고, 스크린 속 이야기는 어느새 지금 우리 사회의 풍경과 맞닿는다.
청소년이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찌르고 싶은 욕망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현실을 부수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하지만 〈충충충〉의 아이들은 그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충동은 충돌이 되고, 충돌은 결국 충격으로 이어진다. 영화 속 사건들은 특별한 악인이나 괴물이 만들어낸 비극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무섭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외로움, 질투, 사랑받고 싶은 욕망 같은 감정들이 조금씩 뒤틀리며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도달한다. 그래서 그 폭력은, 낯설기보다 익숙하다.

기자간담회 마지막에는 자신이 연기한 인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주민형 배우는 용기에게 “책을 읽고, 공부를 해보라”고 말했다. 백지혜 배우는 지숙에게 “야, 사는 게 참 힘들지? 나도 그래”라고 말을 건넸다. 신준항 배우는 덤보에게 “네가 가진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살아갈 방법은 많다”고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조언을 건넸고, 누군가는 공감했으며, 누군가는 살아갈 방법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그런 평범한 말 한마디였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감각, 지금의 감정이 틀린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리고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존재 말이다. 만약 그 말들이 조금 더 일찍 도착했다면 어땠을까. 결국 비극은 칼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아무도 건네지 않은 말들 속에서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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