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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흐려지는 공간
〈이인〉 그리고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글입니다.
영화는 세계를 다시 감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일상과 너무 가까워 별다른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던 사물이나 공간도 영화를 통해 달리 보일 때가 있다. 자동차는 오늘날 도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하루에도 수십, 아니 수백 대의 자동차를 마주친다. 그러나 자동차 역시 하나의 공간이라는 사실은 떠올리기 어렵다. 내밀하면서도 공유되고, 이동할 수도 있는 공간. 자동차의 독특한 성격을 적절하게 포착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인〉은 허구와 현실을 오가며 진행된다. 영화가 시작되면 허구보다 기이한 ‘성철’의 경험이 먼저 제시되고, 현실처럼 느껴지는 ‘정웅’의 시나리오가 뒤이어 등장한다. 둘은 성철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만나는데, 정웅은 성철에게 그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써도 되는지 묻는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두 이야기는 묘하게 엇갈리고 마침내 서로를 침범하는 순간에 이른다. 전작 〈레슨〉(2023)에서 꿈의 이미지를 주요 소재로 활용했던 김경래 감독은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에 대한 탐구를 이어간다.
영화에서 흐릿한 경계의 공간으로 두드러지는 곳은 자동차 안이다. 성철은 처음 만난 ‘은별’의 차 트렁크에 실린 수상한 상자를 같이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는 그날 밤 침실 대신 차 안에서 잠을 청한다. 정웅의 시나리오 속 인물들은 차 안에서 이별을 통보하거나,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일기를 쓰기도 한다.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그려지는 자동차를 빌려달라는 요청은 다소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그러나 창문을 내리거나 문을 열면 타인과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성철의 수면은 출근 시간에 창문을 두드리는 아내에 의해 중단된다. 그는 차에서 내려 아내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이별의 순간은 차 안으로 들어오라는 신호가 선행되어야 가능하고, 일기를 쓸 때도 두 남녀는 열린 창문을 두고 대화를 나눈다.
이러한 순간이 모두 정지된 상태에서 벌어진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이인〉에서 이동하는 자동차의 이미지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정지 상태는 자동차의 공간적 성격을 부각함과 동시에, 언제든 움직일 수 있다는 긴장감을 부여한다. 아무도 없는 차 안에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고, 저 멀리서 차를 향해 걸어오는 성철을 찍는 장면이 있다. 성철이 가까워지는 동안, 곧 다가올 움직임에 대한 긴장감이 커진다. 정작 성철이 차를 운전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박송열 감독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2021)에서 감독 자신이 연기한 ‘영태’의 직업은 대리운전 기사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매일 밤 대리운전을 하다 술에 취한 손님의 폭언에 즉시 차에서 내린다. 영태는 타인의 내밀한 공간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주체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영태의 아내 ‘정희’가 사채업자를 만나는 은밀한 공간 역시 자동차 안이다. 부부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각자의 방식으로 타인의 공간, 자동차에 타고 내린다. 영화는 그 선택이 설령 위험으로 이어지더라도 삶의 지속을 위해 경계를 넘기로 결심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 영화 보러 가기: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감독 박송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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