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리뷰: 영화라는 인내심 테스트
*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우리는 왜 극장에 가는가. 왜 멈춤 버튼도 빨리 감기도 없는 좁은 좌석에 앉아 스크린의 모든 시간을 견디기로 선택하는가. 이 물음에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대답하는 영화가 있다. 느린 만큼 지루해 보이겠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끈질긴 용기가 이 영화에 있다. 218분의 러닝타임을 기다리고 나서 당신이 외치게 될 것은 영화의 이름답게 〈유레카〉다.

엔딩을 제외한 모든 장면은 흑백에 가까운 세피아 톤으로 그려진다. 버스 납치 사건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운전사 ‘사와이’와 그 버스에 타고 있던 남매 ‘나오키’와 ‘코즈에’는, 그만큼 트라우마로 어둡고 칙칙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모든 길이 막혀버린 것 같을 때, 우리가 종종 하는 일은 다른 이의 궤도에 슬쩍 올라타는 일이다. 서로 껴안아야만 견뎌지는 추위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남매의 집으로 찾아가 같이 지내기로 한 사와이의 마음은 그래서 이해가 된다. 사와이가 절망 속에서 다시 움직이기로 결심한 이유도 남매의 몫이 클 테다. 도망치지 않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 뒤에는 ‘함께해 줄 거지?’라는 말이 숨어있는 것 같다. 그렇게 직접 수리하고 가꾼 버스 안에서 이들의 여행이 시작된다. 처음 만났던 고통의 시작점에서 다시 만나 길 위를 달린다.

그러나 희망은 노선 위의 정류장처럼 정직하게 서있지 않다. 여행 동안 사와이의 기침은 멈추지 않고, 나오키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버린다. 〈유레카〉는 이 모든 괴로움의 시간을 기다린다. 마치 녹화 중지도 편집 기술도 모르는 사람이 만든 영화 같다. 사와이가 나오키에게 자전거가 세 바퀴 돌기 전까지 무언가 결정하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관객 역시 그 세 바퀴를 전부 기다려야 한다. 사와이와 남매가 말없이 똑똑 노크를 주고받는 새벽에는, 관객 역시 셋 중 한 명이 잠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선택은 감독의 용기다. 누군가의 고통을 다루는 예술이라면 회복을 서둘러선 안 된다는 믿음이다. 함부로 재촉하지 않는 영화 덕에, 영화의 시간은 고스란히 관객의 시간이 된다.

긴 러닝타임의 세피아 톤을 먹고 자란 엔딩컷은 그만큼 커다란 상쾌함으로 우리를 기다린다. 그 쾌감은 어디에서 올까. 분명 희망에서 오지는 않는다. 사와이의 기침은 피가 되고, 나오키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 동행했던 남매의 친척 ‘아키히코’는 사와이와 남매를 이해하지 못한 채 길 위에 남겨진다. 코즈에는 오빠와 떨어져 홀로 회복의 시간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돌아가자’고 말하는 사와이의 목소리나, 그런 사와이에게 웃으며 달려가는 코즈에의 얼굴은 빛이 난다. 나오키에게도 아키히코에게도 무작정 ‘기다릴게’라 말하는 사와이의 외침은 진심 같다. 〈유레카〉의 아름다움은 여기에서 온다. 아무런 희망도 약속되지 않은 기나긴 길을, 다시 걸어보기로 하는 근거 없는 용기에서 온다. 그 끝이 무엇이 되든, 다른 어딘가에 도착하길 기다리는 인내심에서 온다.

그 마음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극장에 가는 마음이라 부르고 싶다. 목적지 없는 사와이의 버스에 나도 올라타 보기로 하는 것. 이들의 고통이 지나가는 속도를 함께 견뎌보기로 하는 것. 결말은 모르겠지만 그 끝에 다다를 낯선 나를 기다려보기로 하는 것. 유레카! 극장의 시간을 달려 영화라는 여행 끝에 또 다른 내가 시작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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