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즐거움을 향하여
〈이인〉 김경래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글입니다.
영화제에 가면 매년 보이는 이름이 있다. 변화와 꾸준함을 동시에 지닌 창작자는 늘 반갑다. 지난 몇 년간 왕성하게 새로운 시도를 이어온 김경래 감독의 신작 〈이인〉이 인디스페이스에서 관객을 찾는다. 극장 뒤편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에게 작품의 방법론과 창작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찰나의 생각과 느낌을 적확하게 표현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언어의 솔직함 사이로 고민의 깊이가 엿보였다.

전작 〈레슨〉(2023)에 이어 감독님의 작품 중에서는 두 번째로 극장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자체 개봉을 통해 관객을 찾게 되었는데, 〈이인〉의 인디스페이스 개봉에 대한 소회를 여쭙고 싶습니다.
개봉을 직접 해본 건 처음인데 이게 영화 찍는 것만큼 어렵더라고요. 영화를 처음 연출해 본 느낌이에요. 떨리고 어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재미있기도 해서 이 과정을 즐겨보려고 합니다. 요즘 자체 배급은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분야기도 해서 어떻게 하면 차별점을 둘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자체 배급을 먼저 하셨던 백재호 감독님께 많이 도움받고 있습니다.
장편 데뷔작 〈레슨중〉(2018) 이후 벌써 5편의 장편 영화를 완성하셨고, 다수의 단편을 포함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은 한 해에 장편을 하나씩 공개할 정도로 빠른 작업 속도가 인상적인데요. 꾸준한 작업의 의미와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작업의 의미와 원동력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제 환경과 주변 동료들에 따른 변화도 있고요. 처음에는 막연하게 영화제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처음 장편 영화를 찍을 때는 개봉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오히려 동료들과의 시간을 기록하는 데에 초점을 두는 것 같아요. 나중에 영화를 봤을 때 그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료들 덕분에 영화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작업의 의미는 작품마다 정말 다르지만 〈이인〉은 〈레슨〉을 찍기 바로 직전에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찍은 영화였어요. 그래서 챕터 1의 일부는 〈레슨〉보다 먼저 촬영된 것이죠. 당시에는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막연하게만 있었고, 〈레슨〉을 다 찍고 나서 본격적으로 뒷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이인〉의 제작 과정에서 1년의 기한을 미리 정해두고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시나리오를 써서 바로 촬영하셨다는 언급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러한 제작 방법론을 택한 배경이나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드립니다.
이전부터 회사 생활을 하면서 중간에 시간이 될 때마다 영화를 찍는 게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환경이었어요. 보통은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영화를 찍기 시작하는데 저는 이게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조금은 엉뚱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걸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발상,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은 환경에서 즐겁게 찍어보자는 취지에서 15~20분 분량의 단편을 찍듯이 조금씩 완성해 나가는 방법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감독님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시나리오의 전체적인 구조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성민’의 인터뷰 장면에서도 이런 생각이 얼핏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요. 조금 전 〈이인〉에 대해 말씀해 주신 내용은 또 조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의 구조에 대한 고민이 감독님의 영화 제작 방법론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장편을 찍은 게 〈이인〉이 처음이라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아요. 막연한 그림만 있었는데 챕터 2까지 찍으니까 윤곽이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대략적인 테마에 맞춰 이거 했으니까 다음은 이렇게 찍어야겠다는 식으로 전체적인 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고 너무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에 관한 질문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어 제목인 “이인”과 영제 “A Water[s]” 모두 알쏭달쏭한,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제목은 어떻게 정하게 되었는지, 감독님께서 제목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감각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원래 제목은 〈Lake Valley River Beach〉로 지었는데 전주국제영화제의 워크인프로그레스에서 너무 단순하다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그래서 바꾸려고 고민 중일 때, 정승민 작가가 챕터마다 물이 나오니까 ‘Water’ 뒤에 대괄호를 열고 ‘s’를 붙여보자는 제안을 했어요. 사실 문법에 맞지 않지만 조금은 모순적이고 이상한 지점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택하게 되었어요.
한국어 제목 같은 경우에는 카뮈의 『이인(이방인)』에서 가져왔는데요. 너무 뻔한 제목은 아닌가 고민했지만, 영화에 전체적으로 남자 두 명과 여자 두 명이 나온다는 의미, 그리고 조금은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의미 모두를 포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수하게 되었습니다.
〈이인〉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라면 영화가 허구와 현실을 오가는 방식, 그리고 두 세계가 서로를 침범하는 순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레슨〉에서 주인공 ‘경민’의 꿈을 주요 소재로 활용하셨던 것도 떠오르는데요. 허구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무엇이 진짜인지에 대한 고민을 예전부터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영화로 찍어도 관객분들은 그것을 허구로 받아들이잖아요. 〈김치〉(2011)라는 단편을 찍으면서 특히 그 간극에 혼란을 느꼈습니다. 제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관객분들이 받아들이는 내용도 다 다르고, 그 작품을 찍고 나서 책임감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 제가 진실과 거짓, 허구라는 화두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아한 시체〉(2025)부터 이런 주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에요. 조금 더 이야기 자체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 안에 있습니다.

한편, 침범과 반대되는 가장 내밀한 공간으로는 자동차가 떠오릅니다. 인물들은 자동차에서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잠을 자거나 중요한 기록을 남깁니다.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그려지는 자동차를 빌려달라는 요청은 다소 의미심장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카메라가 자동차 안에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흥미로웠는데요. 관련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자동차라는 공간이 주는 매력이 있거든요. 개인적이면서도 누군가 타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그러면서 움직이기도 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님이 자동차를 정말 잘 쓰셔서 아마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체리향기〉(1997), 〈클로즈 업〉(1990) 등의 자동차 신이 많이 기억나네요.
영화에서 ‘정웅’은 ‘성철’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써도 되냐고 묻고, 성철은 이에 언제까지 “남의 이야기를 훔쳐 쓸” 생각이냐며 면박을 줍니다. 창작자로서 이야기를 떠올리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은데, 감독님께서는 주로 어디에서 시나리오의 영감을 얻으시는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주로 소설에서 많이 얻는 것 같아요. 한 90% 정도? 〈이인〉 같은 경우에는 작법의 차원에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로부터 많은 힌트를 얻었어요. 지문과 대사가 굉장히 간략한데 이야기의 힘은 되게 강력한 작품이거든요. 이런 부분을 영화화하는 방식에 대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고민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영감은 주로 경험이나 제가 보았던 것, 들었던 것의 총합이에요. 다만 있는 그대로 쓰는 건 아니고 이곳저곳에서 조금씩 때 와서 결합하는 식으로요. 제일 중요한 건 정승민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시너지가 나는 부분입니다. 마치 핑퐁처럼 오가는 서로의 아이디어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그럼 특별히 좋아하는 소설 작가가 있으신가요?
매번 바뀌긴 하는데 요즘은 미시마 유키오를 읽고 있습니다. 『금각사』로 시작해서 처음에는 탐미주의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다른 작품들을 보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안 바뀌는 단 한 권의 책으로는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을 계속해서 바이블처럼 지니고 있고요.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도 매년 한 번씩 다시 읽어요. 재독을 많이 하는 편이라 집에 있는 소설책들을 반복해서 읽고 있습니다. 지금 가방에는 『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이 있는데요. 다섯 남녀가 사랑 때문에 서로 질투하고 의심하는 내용인데 하나도 안 어렵고 끝까지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추천합니다.
계속해서 문학이나 영화 등 다양한 레퍼런스에 대한 언급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문학 작품과 관련한 내용을 꾸준히 말씀해 주신 것이 흥미로웠는데요. 문학에서 어떤 식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영화보다는 텍스트가 주는 힘이 저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는 소설의 좋은 지점을 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요. 이 장면을 어떻게 이미지화하면 내가 느꼈던 소설의 감각을 영화로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식의 고민이죠. 〈우아한 시체〉는 제가 『설국』에서 읽었던 장면을 가지고 왔어요. 그 책에 시골 게이샤가 남자 주인공에게 밤송이를 던지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사소하면서도 인물의 감정이 전부 느껴지는 게 좋았거든요. 그래서 제 작품으로 옮겨와 나름대로 인물의 감정에 맞게 스타일을 바꿔보기도 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계속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려고 해요.
나중에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으신가요?
너무 있죠. 미카엘 하네케 감독님의 영화 〈피아니스트〉(2001)를 보고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도 읽으면서 느낀 건 이 영역을 위해서는 공부가 훨씬 많이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단순히 텍스트를 이미지로 옮기는 게 아니라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가지려면 제 능력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한 10년 뒤에 제가 찍어보고 싶은 한국 단편 소설이 있거든요. 일단은 그 작품을 영화화하고 싶은 막연한 계획만 가지고 있습니다.

전작인 〈레슨〉, 그리고 최신작인 〈우아한 시체〉와 마찬가지로 〈이인〉 역시 정승민 작가와 함께 각본을 쓰셨습니다. 정승민 작가는 감독님의 작품에서 꾸준히 배우로도 출연 중이신데 이런 겸업의 효과나 이유는 무엇인지도 듣고 싶습니다.
우선 가장 좋은 건 제가 정승민 배우에게 터치할 게 없다는 겁니다. 직접 촬영을 하다보니 현장에서 연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거든요. 제가 세팅할 때 정승민 배우가 알아서 다른 배우분들과 리허설도 해줘서 편리하기도 했고, 많은 시너지를 느꼈습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면 캐릭터의 모델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이죠. 그리고 정승민 배우는 제가 선호하는 담백한 연기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이인〉의 서울독립영화제 소개 글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라고 적어주신 것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어쩌면 감독님께서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해오실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지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게 무척이나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즐거움의 지속을 위해 감독님께서 현재 계획 중이신 프로젝트가 있다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영화는 너무 재밌고요. 다들 아시다시피 너무 힘들지만, 저한테는 이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어서 계속하는 것 같아요. 손준영 배우와 정승민 작가, 그리고 저까지 셋이서 10년 동안 같이 하고 있는데 앞으로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게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지금은 또 다른 시도로 상업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어요. 안개 낀 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영화화 여부는 아직 미지수지만 계속 시도하는 게 제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과정이 길고 힘들지라도 버티고 끝까지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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