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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세계
〈남태령〉 그리고 〈모어〉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다원 님의 글입니다.

투쟁은 끊이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당연하지 않은, 하지만 당연해야 할 권리를 바라며 우리는 분투하고 있다. 그렇기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어떤 투쟁들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하기에, 다양한 투쟁의 기록은 계속해서 세상에 나온다. 영화 〈남태령〉 또한 마찬가지다.
내란 이후 쏟아졌던 많은 다큐멘터리들과 궤를 함께하는 〈남태령〉은 전봉준투쟁단의 상경 투쟁 당시 남태령을 지켰던 이들의 기록을 담아낸다. 하지만 다른 사회의 기록물들과는 분명히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 당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보다는, 그날 남태령을 가득 채웠던 '목소리'들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전농의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 트위터에 올라오던 실시간 글들, 누군가의 브이로그, 화질이 깨지는 핸드폰 카메라 영상 등을 촘촘히 꿰어 그날 남태령의 자유발언대를 스크린 위로 다시 소환한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우리가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그 밤을 재현하며, 영화는 남태령이라는 공간을 넘어 더 많은 연대의 현장으로 나아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비로소 '연대'라는 단어의 무게가 다정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홀로 두지 않는 것. 옆을 지키는 것. 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알아두겠다며 인정하는 것. 딱 그만큼의 실천. 영화 〈남태령〉이 말하는 연대는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작은 인정과 실천으로 실현되는 연대는 비단 남태령에서만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다. 세상이 지정한 경계선에서 저마다의 깃발을 들고 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모어〉의 스크린 위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모어〉는 이태원의 어두운 지하 바라는 변방에서 분투해온 드랙 아티스트 모어(모지민)의 치열한 몸짓을 담아낸다. 〈남태령〉의 아스팔트 위 논바이너리라는 말조차도 어색해하던 농민들의 목소리와 성소수자들의 무지개 깃발이 어우러진 그 밤처럼, 〈모어〉는 자신을 부정하던 세상의 한복판에서 춤을 추며 세상과 어우러진다.
두 영화는 투쟁을 엄숙하거나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남태령〉이 흔들리는 휴대폰 카메라와 SNS의 날 것의 말들을 꿰어 붙였다면, 〈모어〉는 감각적인 음악과 함께 하는 화려한 연출로 슬픔을 축제로 승화시킨다. 결국 〈남태령〉을 가득 채우던 목소리와 〈모어〉의 몸짓은 같은 곳으로 향한다. 모든 현장이 당연한 권리를 당연하게 누리겠다는 다짐에서 시작해, 어제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남태령을 넘어 더 많은 현장으로 나아가는 이 영화들의 경쾌한 발걸음이 반가운 이유는, 여전히 곳곳에서 외롭게 분투 중인 우리에게 결코 혼자가 아니며,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장 다정한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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