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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독립영화 55호 비평] 이쪽과 저쪽: 〈3670〉과 〈3학년 2학기〉의 자리 찾기와 증명하기

by indiespace_가람 2026. 4. 16.

이쪽과 저쪽

: 〈3670〉과 〈3학년 2학기〉의 자리 찾기와 증명하기

 

안소정 /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동과 자리 찾기는 인물의 성장을 다루는 서사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새로운 자리로 떠난 인물은 과거를 짊어진 상태로 자신이 새로운 곳에 어울리는 사람임을 증명하려 한다. 남한에서 게이 커뮤니티를 처음 접한 철준이 등장하는 〈3670〉(박준호, 2025)과 고등학교 마지막 학기에 공장에서 실습을 시작하는 창우가 등장하는 〈3학년 2학기〉(이란희, 2024)는 이러한 자리 잡기의 과정을 다룬다.

 

영화 〈3670〉 스틸컷

 

〈3670〉에서 철준은 탈북민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교회에서 자신이 남한으로 ‘건너온’ 상황의 스펙터클을 공유한다. 철준은 이쪽에 적응하는 동시에 저쪽에서의 과거와 그사이에 놓여 있던 시간을 설명받기를 요구받는다. 이동한 자리에서 자신을 설명하거나 보여주기 위해 철준이 제 과거 경험 중 어떤 부분을 선택했고 선택하지 않았는지를 관객은 거의 알 수 없다. 다만 물리적, 지리적 자리를 옮긴 이후에 새로운 장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며 계속 다듬고 수정해 온 ‘저쪽에서의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철준의 말과 행동을 통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철준은 교회에서의 간증이 끝난 뒤에 영준과 둘만 남았을 때 이를 보여주는 말을 꺼낸다. 간증 때 했던 말들이 전부 진짜냐는 영준의 질문에 뒤이어 철준은 여기 하나님이랑 거기 하나님이 같은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언뜻 같아 보이지만 물리적 이동을 통해 신앙심의 맥락은 변화하고 만다. 북에서 철준의 신앙심은 이곳을 떠나서 저쪽으로 갈 때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기대감과 더불어 기대거나 의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남에 도착한 이후에는 이전에 상상했던 범위를 넘어서는 사건들과 자리 찾기를 시작하며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철준은 자신의 믿음이 어떻게 이 자리에 오게 도왔는지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 이후에 믿음과 종교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음으로는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 놓인다.


영화의 시작 지점에서 철준은 물리적 자리만 이동한 채 자신과 교집합을 가진 다른 성소수자들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친구를 만들라는 원나잇 상대의 핀잔에 게이 커뮤니티의 번개 자리에 나간 철준은 증명하고 설득하고 쟁취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한다. 그 자리에 어울릴 만큼 유머러스하고 때로 받아치기 어려운 농담들에 짓궂게 대꾸하고, 다른 이들이 접근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면서도 만만하지 않은 인물이 되어야 하는 자리다. 처음 번개 자리에 나간 철준이 면접이나 공적인 자리에 어울리는 격식 있는 복장이라는 점은 철준이 예상했던 자리가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한(혹은 그렇다고 생각했던) 철준은 게이 커뮤니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처음 알게 되며, 커뮤니티에 속하기 위해 일종의 메이크오버를 거친다. 이곳에 속하고 싶다는 욕망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해 볼 수 있다는 해방감이 동시에 철준을 찾아온다.


철준은 커뮤니티에서 자리를 찾기 위해 처음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영준에게 애착을 느낀다. 반면에 영준은 자기보다 잘 생기고 ‘특수한 사연’으로 커뮤니티에 점점 자리 잡는 철준에게 자기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 감각을 느낀다. 영준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점차 소위 ‘캐릭터’를 형성하며 자리를 잡아가던 철준이 실은 가십의 대상이 되어 결코 친구 무리의 일부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사건은 ‘커뮤니티’에 대한 철준의 인식을 바꾼다. 변하지 않는 고정된 자리가 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움직이고 바뀌는 인물들로 구성된 커뮤니티라는 인식의 변화는 철준에게 아쉬움과 불안정, 동시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애증과 짝사랑, 우정이 복잡하게 얽힌 철준과 영준의 관계가 영준의 어학연수로 물리적인 거리가 생기며 이 변화의 정점을 찍는다. 철준이 그토록 오고자 했던 남한에서 영준이 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나자 자리 찾기의 과정은 물리적인 자리와 더불어 그곳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이 그 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새로운 자리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가장 깊게 관계를 쌓았던 영준이 떠나간 이후에도 철준은 이 자리를 원할까? 그 의문에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탈북 청년과의 만남이 답이 된다. 함께 어울려 놀던 무리에서 떠나게 된 철준은 게이 만남 앱에서 과거의 자신처럼 종로의 게이 커뮤니티를 경험하지 못한 탈북 청년을 만난다. 다른 지역에서 온 그와 함께 서울의 게이 커뮤니티 장소들을 방문하는 철준은 영준의 역할이나 자리를 이어받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 〈3학년 2학기〉 스틸컷


〈3학년 2학기〉는 전문학교 학생 신분을 벗어난 주인공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입하기 직전의 시간을 다룬다. 법적 성인이 되기 직전인 창우와 우재는 현장 실습생이 되어 마지막 학기를 학교가 아닌 중소 규모의 공장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교복이 아닌 공장 유니폼 차림으로 낯선 곳에서 자리 잡기를 시도하는 창우는 자신과 동갑인 성민과 다혜를 만난다. 창우보다 먼저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성민과 다혜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한다. 창우와 우재, 그리고 성민은 군 면제 자리를 두고 은연중에 경쟁하지만 드러나게 치열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는 증명하고 설득하고 쟁취해야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버텨내면 주어지는 자리에 가깝다.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게 당연한 실습의 기간은 빨리 일을 익히고 ‘쓸모 있는’ 직원이라는 걸 보여줘야 하는 기간이지만, 마련되었고 약속된 자리가 과연 정말로 이들이 원하는 자리인지 의문이 발생하는 사건들이 쌓이며 이동과 자리 찾기의 양상이 달라진다. 의자 놀이처럼 한정된 자리를 가지고 경쟁하던 구도는 ‘그게 정말 최선의 자리인가?’와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자리인가?’라는 인물들의 질문으로 바뀐다. 가장 처음으로 공장을 퇴사한 우재는 ‘폐급’이라는 별명으로 사수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우재는 처음부터 경쟁하거나 잘 보일 생각이 없었다. 별다른 미련 없이 공장을 떠나는 우재의 모습은 같은 학교 친구인 창우에게도 혼란과 고민을 안긴다.


한편, 공장에서 먼저 일하고 있던 성민은 누구보다도 정해진 자리에 갈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반복되고 누적되어 온 실망이 터져 공장에서 퇴사한다. 인물들이 일하는 공장은 노동자들의 보호장비보다 비용 절감에 집중하고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안전수칙조차 무시한다. 성민은 잘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자리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며 결국 그 자리에 가거나 현재 자리에 남아 있지 않기로 한다. 이제껏 인내하던 성민은 환경이 바뀌기를 바라며 행동하지만, 그 결과는 퇴사 선택이다. 사람이 일하다가 죽을 수 있는지 몰랐다는 질문은 성민이 행동하게 만든다.

 

우재, 성민과 달리 이야기의 끝에서 공장에 남은 창우는 새로운 자리에서 자신을 맘에 들어 할지 고민하고 느리다는 평가에 심란해하던 인물이다. 성민이 두고 간 물건을 캐비닛에서 발견한 창우는 공장 바깥에서 성민과 재회한다. 배달 일을 시작한 성민과 짧은 만남은 창우에게 자리에 대한 고민을 계속 남긴다. 공장을 떠나기로 한 결정과 남기로 한 결정 모두 두 인물에게는 자리 찾기의 과정이다. 자신과 가장 비슷한 입장인 또래의 우재와 성민이 떠난 곳에 남은 창우의 선택은 확신이 아닌 책임감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남는 선택을 한 창우의 결말은 불행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그보다 창우는 선택을 내린 이후에 계속해서 현재의 자리에서 일상을 다듬어간다.

 

〈3670〉과 〈3학년 2학기〉에서 자리 찾기는 어딘가에 남기로 선택하거나 떠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자리와 장소에 어울리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과정은 〈3670〉에서 홀가분한 해방감을 주고, 〈3학년 2학기〉에서는 손안에 주어진 선택지가 적어 현재의 자리에서 계속 최선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남는다. 두 영화 모두 성장 서사를 다루고 있지만 〈3670〉이 명백한 내적, 외적 변화를 통한 성장을 다루고 있다면 〈3학년 2학기〉는 인물의 내적 변화가 어떻게 인물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며 큰 변화를 일상적으로 담는다. 자기 자리를 찾는 과정이 주변의 인물들과 물리적 공간에 의해 자신을 깎아나가고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떠나온 곳과 떠날 곳 사이의 상태를 인물의 성장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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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비평전문지 『독립영화』55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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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립영화』는 사단법인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비평지입니다.
이번 55호의 기획 ‘독립 영화의 현장에서’는 ‘현장’이라는 단어에 다시 주목하며, 우리의 카메라가 있어야 할 곳과 그곳에서 관계를 맺고 작업하는 의미, 그리고 그런 카메라의 작업이 이어지고 영화로 소통하는 일을 지키기 위한 행위를 함께 살펴봅니다. 이 기획에는 현장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과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는 문창현의 글, 성소수자 혐오 문화의 역사와 사회적 공간의 승인 문제를 연결해 살피는 문아영의 글, 정윤석 기소 사건을 통해 저널리즘과 시민의 알 권리를 돌아보게 하는 서채완 변호사 인터뷰, 그리고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는 현장의 의미와 위기, 앞으로의 과제를 나누는 여섯 명의 영화인 대담이 실려 있습니다.
비평에서는 박인호가 박송열·원향라 감독이 자신들의 터전과 현실을 기반으로 최소한의 인력과 공간을 이용해 세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며 구현해온 태도를 주목하고, 김예솔비가 이소정 감독의 카메라를 사랑의 몸짓이자 편지의 형식, 그리고 ‘로맨틱 머신’으로 읽어냅니다. 또한 백종관은 「시련과 입문」 작업을 중심으로 자신의 작업에 담긴 사유와 실천을 밝히는 자전적 작가론을 보내주었습니다. 이어 인디즈와의 협업으로 남홍석, 박은아, 안소정의 비평을 함께 실었으며, 제8회 독립영화비평상 당선작인 장지애의 비평을 수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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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영화협회 홈페이지: https://kifv.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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