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독립영화 55호 비평] 노동은 어디에서 완성되는가: 〈3학년 2학기〉와 〈일과 날〉

by indiespace_가람 2026. 4. 16.

노동은 어디에서 완성되는가

: 〈3학년 2학기〉와 〈일과 날〉

 

박은아 /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 그리고 박민수, 안건형 감독의 〈일과 날〉은 ‘노동’이라 명명하는 움직임을 영화로 구성해낸다. 두 영화는 손과 기계를 중심으로 노동자의 이미지를 재현하며, 관객을 영화 속 노동 환경에 개입할 수 없는 존재로 두되, 이를 목격하고 감각할 수 있는 위치에 이들을 놓는다. 관객은 인물의 서사를 통과함과 동시에, 신체를 움직이는 반복적인 장면들을 따라가며 자신의 신체에 익혀져 있는 노동의 감각을 호출 받는다. 영화를 바라보는 외부의 존재 이전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며 개인
의 노동 경험이 극장이라는 공간을 꼼꼼히 채워낸다.

사회로 진입하기 직전의 고등학교 실습생과 이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홉 명의 사람들. 〈3학년 2학기〉 속 미숙함과 〈일과 날〉 속 능숙함은 각기 다른 지점에서 노동을 감내하는 노동자의 초상(肖像)을 내보인다. 나이, 지역, 현장 등의 서로 다른 조건을 지닌 두 노동 영화의 간극 속에서 관객이 어떤 위치로 놓이게 되는지를 살피며, 노동을 수행하는 현실 속 인물로서 ‘나’의 주체성이 어떻게 감각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미숙한 자리 잡기

〈3학년 2학기〉에서는 창우의 손을 빌려 노동을 말한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성인 직전의 창우는 다뤄 본 일은 많지만 그것을 노동으로서 발휘해 보지는 못한 상태다. 노동으로 진입하는 경계선상에 위치하여 갈고닦아야 할 것들이 아직은 넘쳐난다. 이것을 영화는 세 번의 기타 연주로 은유하여, 노동자로서 거듭나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노동이라는 정서가 갖는 무게감을 적절히 덜어내며 환기시킨다. 그리고 관객은 기타를 품에 안고 어떻게든 연주해 보려는 인물을 목격함과 동시에, 점차 치고자 하는 선율이 선명해져 가는 손의 사용에서 상처만큼 성장하는 노동의 시간을 이해하게 된다. 기타를 연주하는 손은 현장의 손과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두 손을 포개며 아물어가는 일상의 전반을 담아낸다.
실습을 시작한 직후, 정교한 기계를 다루는 창우의 손은 아직 제 몫의 일을 전달받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인다. 부품을 나누고, 날카로운 단면을 갈아내며 조절하는 동작은 숙련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미 노동의 범주 안으로 진입해 있다. 어긋나고 어설픈 손의 움직임이 노동의 시작을 알리고, 보수도 절반가량에 그친 채 몸은 이런저런 기계의 속도에 맞춰 조정된다. 전체적인 측면에서 창우가 수행하는 노동은 부품 하나씩 빠져있는,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미완(未完)의 노동이다. 아침 일찍 작업장으로 향하는 출근길, 곧이어 나눠지는 각자의 작업. 군집이 해체되고 개개인으로 존재하는 노동의 시간 속 창우와 우재는 어딘가 어색한 존재감을 띄며 현장의 직원과 동떨어져 있다.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현장에서 둘의 손은 아직 능숙하지 않았고, 그 미숙함은 화면 안에 그대로 담긴다. 이렇듯 이 영화가 조율하는 것은 노동 그 자체로서 의미가 아닌 노동에 적응해가는 신체의 속도와 감각의 농도다.

 

영화 〈3학년 2학기〉 스틸컷

 

 

노동자로 거듭나기

창우는 실습을 뒤로하고, 여러 노동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는 청춘의 행보 대신 본인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껴야만 하는 마주하기를 선택한다. 이때 창우의 선택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까? 그 질문에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라고 영화는 말한다. 이미 어머니와 함께 돌봄 노동을 수행하고 있었고, 자신을 넉넉히 지원해 줄 수 없는 가정 속 스스로 갖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돈을 버는 행위를 한다는 자체로 짊어지게 된 돈의 무게란 해내야 하는 무언의 압박으로 창우를 실습장으로 이끄는 장치이다. 동생과 나눠 갖는 무선 이어폰, 비싼 치킨 두 마리. 숫자로 안정되는 삶을 경험해 본 소년이 본격적인 노동의 길로 진입하게 되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그렇게 자리한 노동의 현장에서 창우는 잇고, 메꾸고, 연결하는 일을 반복한다. 질문하고, 시도하고, 실수하는 과정은 여전히 반복되지만 사이사이 발생하는 실수는 더 이상 완전히 낯선 데서 발생하지 않는다. 손은 미세한 차이를 기억하고, 놓여야 할 지점으로 정확히 움직인다. 더딘 속도로나마 손이 현장의 흐름에 맞춰 스며들어 가는 과정을 차분히 따라가며 노동의 감각을 수차례에 걸쳐 익혀들어간다.
그러나 이 익숙함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의 민감도를 낮추며, 감각을 무디게 하는 과정으로 진화한다. 카메라는 연쇄적으로 실습장의 날선 면과 공간들을 조명한다. 설치되지 않은 안전 펜스를 경계 삼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구도가 작업장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곧이어 주먹을 연신 쥐었다 푸는 불안정한 손의 움직임과 끊임없이 회전하는 톱이 같은 프레임 안에 놓이며, 끝내 위험을 상시적인 상태로 드러낸다. 창우가 원했던 길을 걷고 있던 타 업체 직원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과 함께 〈3학년 2학기〉는 누구나 위험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을 숨김없이 제시하되, 디테일한 표현을 삭제함으로써 노동의 위기를 체감 가능한 영역에서 배려 있게 일으킨다.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안전 장비는 미비한 상태였고, 이는 비용의 문제로 암묵적으로 합리화되어 왔다. 영화는 이러한 현장을 직접적으로 고발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충분히 예견된 위험이 현장에 누적되어 있음을 영화 밖 관객에게 조용히 소개할 뿐이다. 노동이라는 레시피에 등장하는 재료들을 일제히 나열하며 사건을 차례대로 선보이고, 경험한 현실이 영화로 재현되는 순간과 마주하게 한다.

영화가 이끌어내는 위험의 감각은 바라보는 인물의 불행에 대한 염려를 넘어, 현장 속에서 나 자신이 겪어온 노동의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실습생의 손까지 동원된 철야 작업 속에서 익숙함은 안전장치의 부재와 충돌하였고, 미끄러진 날이 곧장 ‘나’에게로 향하는 감정 이입을 발생시킨다. 사고 이후에도 영화는 흐름을 멈추거나 다른 국면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사고를 드라마적 장치로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로 현장에 복귀하는 창우와 중단되지 않은 실습의 시간이 〈3학년 2학기〉가 본질적으로 내포하는 노동의 모양임을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도 그의 선택은 자발적이기보다 사회적 용인에 가깝다. 일을 하려는 개인의 의지보다 사수의 전화, 다시 말해 사회의 압력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더 나은 노동 환경을 모색하기 위해 찾아온 노무사를 외면하게 만들고, 노동이 주는 안정성을 택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영화는 첫 사회로 진입한 개인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어떠한 선택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삶을 형성해 나가는지를 조용히 가시화한다.

 

영화 〈일과 날〉 스틸컷

 

무심함 그리고 공명

이러한 노동의 감각은 〈일과 날〉에 이르러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어진다. 〈3학년 2학기〉가 노동으로 진입하는 지점의 불안과 긴장을 기록한다면, 〈일과 날〉은 그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이미 노동의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있는 이들의 삶을 무심히 바라보는 응시를 택한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택하며 등장하는 노동자의 삶을 거시적으로 담아낸다. 이러한 범위 안에서 AI 대체, 경쟁 사회, 기후 위기 등의 현실적 요소들이 위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언급하지만, 이를 하나의 사건으로 구성하지 않는다. 대신 각 개인이 갖는 노동 환경을 존중하고, 온전한 자기만의 공간 속 그들이 사유하는 바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모든 인물들은 “나는”이라는 주어로 시작하는 서술을 통해 노동의 당사자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어떠한 노동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바삐 움직이는 손 위에 자신의 언어로 명확히 덧입히며 숙련된 노동자임을 빠르게 이해시킨다. 이때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노동의 불안정성은 위기로서 강조되기보다 반복되는 일과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얼마나 일상화된 상태인지를 보여준다. 카메라의 어떠한 미동이나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게 담아지는 〈일과 날〉의 노동 풍경은 미숙한 신체가 현장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3학년 2학기〉와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영화를 바라보는 주체에게 한층 더 정제된 감각으로 전달된다.
〈일과 날〉이 인물과 카메라 사이의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노동을 말하는 방식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사건과 메시지가 부재한 노동 영화라는 것이다. 〈3학년 2학기〉와 다르게 어떻게 노동의 감각을 이끌어낼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일과 날〉은 반복되는 시퀀스를 균일하게 배열하고, 인물의 내레이션을 제외한 모든 발화를 삭제하는 연출 방식으로 대답한다. 각 장면 전환의 장치인 소등을 통해 스크린 속 인물을 등장, 퇴장시키며 동시에 n명의 ‘나’를 그 자리로 불러들인다. 암전 된 스크린의 공백은 다음 장면이 이어지길 멍하니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이 아닌 영화 밖의 노동자를 스크린으로 담아내는 거울로 작동하며 잠시 멈춘 사이 그 공간에 놓인 자신을 인식하게 만든다. 그 결과 관객은 영화를 ‘본다’라는 행위를 넘어, 현실 속 노동자인 ‘나’로서 영화가 말하는 노동에 공감하고, 유지되는 리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여기서 관객은 더 이상 감상의 주체로 머물지 않는다. 영화가 관객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경험을 호출하고 있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미지에서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노동의 피로, 익숙한 긴장,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나 분명히 신체에 축적되어 있는 감각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영화 속 특정 인물의 서사에서 비롯된 감정이 아닌 노동을 통과해 온몸이 기억하고 있는 경험 즉, 고증에 가깝다.

 


〈3학년 2학기〉와 〈일과 날〉은 노동을 완료된 사건이나 결말의 형태로 제시하지 않는다. 두 영화는 삶과 평행한 층위에 노동을 배치하고, 각 인물이 그 의미를 찾고 이어나가야 할 과정으로 표현한다. 창우와 아홉 명의 노동자가 가진 고유한 환경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신체로 조율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는데, 이때 두 영화 사이의 선명한 차이점은 바로 시점 곧, 시간차에 있다. 〈3학년 2학기〉가 다루는 미숙함과 〈일과 날〉이 보여주는 능숙함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동일한 노동 감각이 시간 속에서 축적되는 시점과 속도의 차이로 나타난다. 이 차이는 노동의 성격을 바꾸기보다, 신체가 노동을 감각하는 형식을 변화시킨다. 바로 창우와 아홉 명의 노동자 사이에 놓인 간극이다. 요령 없이 힘으로 부딪히는 신체와 대비되는 나이만큼 노련해진 안정된 노동의 리듬을 따라 관객 또한 미숙한 노동자 시절을 회상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노동을 지속해온 동안 누적된 신체 감각을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감각의 변화는 관객이 이미 축적해 온 노동의 경험이 영화와 맞닿으며 공명하는 지점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손의 빌림을 통해 노동의 단계를 가시화한 〈3학년 2학기〉, 정제된 프레임 속 반복되는 시퀀스로 노동의 세계를 구상한 〈일과 날〉의 연출 장치들은 서사를 전달하기보다 관객 각자가 내포한 신체의 감각을 극장으로 호출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관객은 이미 지나온 과정이거나 지금도 겪고 있는 시간 혹은 곧 경험하게 될 현실을 영화로 마주하는 순간, 더 이상 노동을 ‘보는’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스스로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꺼낸 관객은 형성된 공명점에서 위험을 감지하고, 고통의 감각에 반응하며 영화와 소통하게 된다. 스크린 안에서 시작한 노동의 감각은 단숨에 관객에게 도달하고, 관객이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순간에 영화와 현실 사이의 경계가 뒤섞이며 희미해진다. 결국 〈3학년 2학기〉와 〈일과 날〉은 현실을 설명하거나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규정된 감각의 장을 펼쳐낸다. 노동은 영화 속에서 종결되지 않고, 각 개인의 현재형 감각으로 이어진다. 바로 그 공간에서 관객과 조우하는 두 영화는 노동 영화로서 의미를 견고히 하며 비로소 완성된다.

 

 

*

위 글은 비평전문지 『독립영화』55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소개글

『독립영화』는 사단법인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비평지입니다.
이번 55호의 기획 ‘독립 영화의 현장에서’는 ‘현장’이라는 단어에 다시 주목하며, 우리의 카메라가 있어야 할 곳과 그곳에서 관계를 맺고 작업하는 의미, 그리고 그런 카메라의 작업이 이어지고 영화로 소통하는 일을 지키기 위한 행위를 함께 살펴봅니다. 이 기획에는 현장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과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는 문창현의 글, 성소수자 혐오 문화의 역사와 사회적 공간의 승인 문제를 연결해 살피는 문아영의 글, 정윤석 기소 사건을 통해 저널리즘과 시민의 알 권리를 돌아보게 하는 서채완 변호사 인터뷰, 그리고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는 현장의 의미와 위기, 앞으로의 과제를 나누는 여섯 명의 영화인 대담이 실려 있습니다.
비평에서는 박인호가 박송열·원향라 감독이 자신들의 터전과 현실을 기반으로 최소한의 인력과 공간을 이용해 세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며 구현해온 태도를 주목하고, 김예솔비가 이소정 감독의 카메라를 사랑의 몸짓이자 편지의 형식, 그리고 ‘로맨틱 머신’으로 읽어냅니다. 또한 백종관은 「시련과 입문」 작업을 중심으로 자신의 작업에 담긴 사유와 실천을 밝히는 자전적 작가론을 보내주었습니다. 이어 인디즈와의 협업으로 남홍석, 박은아, 안소정의 비평을 함께 실었으며, 제8회 독립영화비평상 당선작인 장지애의 비평을 수록하였습니다.

*

한국독립영화협회 홈페이지: https://kifv.or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