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현실에 균열을 내려면
: 〈부모 바보〉와 〈인서트〉, 그리고 보리수나무영화사
남홍석 /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
한국 독립영화는 이제 ‘영화를 보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이 많은 생태계’에 돌입했다. 원고를 작성하는 2025년 12월 기준으로 곧 개봉 1주년을 맞이하는 〈부모 바보〉의 누적 관객 수는 1,201명이다. 정식 개봉 대신 비(非)-개봉 상영회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인서트〉의 경우 그 1/3도 되지 않는다. 영화의 성패를 정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면, 관객 수가 적은 이 작품들은 실패한 영화가 되는 것일까? 그러한 평가는 해서는 안 될뿐더러 온당하지 못할 것이다. ‘보는 사람’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이종수 감독의 두 작품은 독립영화가 현장과 호흡하는 나름의 길을 제시한다.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 같은 세계가 제시되고, 마침내 영화가 현실에 균열을 내는 과정. 그 과정을 통해 관객과의 만남을 모색하는 작품들을 들여다본다.
〈부모 바보〉: 취약한 세계를 기록하기
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진현’은 자신이 관리하는 사회복무요원 ‘영진’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그는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며 지각도 잦은 데다가 복지관에 와서는 계속 졸기만 하는 영진의 사연이 궁금하다. 어느 날, 진현은 영진이 다리 밑에서 노숙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당분간 자신의 집에서 함께 지낼 것을 제안한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둘은 점차 가까워지지만,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거리감 역시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상한 영화다. 영화란 건 관객이 보는 순간 진짜라고 믿게 해야 한다는 감독의 인터뷰처럼, 거의 모든 대사와 설정은 사실적이다 못해 기시감이 들 정도다. 이러한 성과는 영진처럼 복지관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던 감독의 경험에 크게 빚지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나오면 남는 인상은 기이함이다. 영화는 사실적 설정과 기이한 이미지의 변증법을 통해 관객들에게 기묘한 순간을 제공하려 한다. 이를테면 전반부 영진이 사라진 뒤 진현이 복지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장면이 그렇다. 이때 쓰이는 색다른 분위기의 스코어가 관객에게 장르 전환의 쾌감과 함께 영화에 본격적으로 몰입하도록 돕는다. 뿐만 아니다. 영화 가운데 기이함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많다. 사람이 아닌 존재처럼 갑자기 굴다리 밑에서 등장하던 영진의 모습과 그 걸음걸이, 비현실적 공간처럼 그려진 영진의 임시거처에서까지 계속해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그리고 감독이 직접 작곡한 오리지널 스코어가 모두 그렇다.
하지만 영화의 세계는 언뜻 보기에도 취약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금방이라도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과 불편함이 흐르는 공간. 잦은 롱숏과 롱테이크는 인물이 정지된 카메라에 포착된 듯한 느낌을 준다. 단일 앵글에 잡히는 인물의 수가 많지 않아서인지 공간의 넓은 여백은 언제든 균열이 파고들 수 있는 취약점으로 읽힌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를 기록하려 드는 인물이 있다. 영진은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깨어지기 직전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남기려 한다. 영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푸티지들은 영화의 중간과 끝에 직접적인 맥락 없이 삽입된다. 그의 작업물이 영화의 세계보다 훨씬 견고하고 현실에 가까운 이미지로 비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영진은 자신이 기록한 세계를 뜻대로 조정할 수 있다. 프레임의 분할에서 다중 채널 작업을 연상시키는 엔딩의 푸티지는 영화 속 공간을 다른 맥락으로 재조립한다. 고정된 숏에서 숱하게 보였던 균열의 틈은 줌인과 줌아웃의 반복으로 사라지고, 이제 스크린에 남아있는 공간은 관객이 아는 우리의 세계에 더 가깝다. 다만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가장 높은 건물을 바라보며 시작했던 〈부모 바보〉는 의자의 균형을 잡아주던 얼음이 점차 녹고 있는 이미지로 끝난다. 영화 속 세계의 균열은 이제 우리의 현실로 넘어오려 든다. 저 높은 곳을 향하던 렌즈가 아래로 시선을 돌릴 때, 가장 견고해 보였던 현실에도 작은 불균형이 생긴다.

〈인서트〉: 스토리텔링의 감각
한편, 감독의 다음 작품 〈인서트〉는 관객을 향하고 있는 카메라 렌즈 의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상업 영화 현장에서 인서트 감독 역할을 맡고 있는 ‘주석’은 영화에 들어갈 인서트를 촬영하던 도중 우연히 ‘추현’의 자살 시도를 막게 된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추현은 촬영 현장에 합류하고, 이윽고 주석과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가까워진다. 두 사람이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추현은 모종의 이유로 크게 화를 내고 주석을 떠난다. 주석은 그녀의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인서트〉의 주인공 주석은 영진과 마찬가지로 공간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주석이 정말 찍고 싶은 영상은 인서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서트 감독’이라는 칭호는 모든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형식상의 직함에 불과하다. 모두가 일찍 퇴근하는 날에도 잔업을 배정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주석에게 자신의 인서트 영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등장한 추현은 구원자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추현 역시 주석이 자기를 ‘구해줬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서로를 ‘구원’한 두 사람은 금세 상대에게 호감을 느낀다. 지지부진하던 주석의 창작활동 역시 추현을 만나고 활기를 되찾는다. 주석이 그의 영화에 배우로 함께하기로 한 추현에게 자신이 닮고 싶은 감독의 스타일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인물의 발에만 초점을 맞추고, 얼굴은 모두 무표정. 감독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징들을 열심히 열거하는 주석의 목소리는 머지않아 소거된다. 영화는 감정을 제거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인서트〉는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에 관심이 있다. 등장인물에 이입하게 하는 방식이 아닌, 관조하게 만드는 형태로 말이다.
이 영화가 줄거리를 전달하는 방식은 재미있는 이야기, 속된 말로 ‘잼얘’ 풀기에 가깝다. 두 사람의 첫 술자리에서 주석이 꺼내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두 시간 넘게 들려주는 것도 그래서다. 상영 시간 내내 관객은 주석과 추현, 둘 중 어떤 인물에도 온전히 이입하기 어렵다. 영화는 두 인물의 행동을 때로는 비웃음의 대상으로, 때로는 조금은 안쓰러워 보이게끔 설정하면서 관객을 팔짱 끼고 영화를 보는 관조자로 만든다. 이는 어쩌면 영화의 몇몇 모티프가 감독이 자신의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후반부, 추현과 어렵게 재회한 주석은 함께하는 자리에서 또다시 자신만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 장면에서 주석은 고독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가 생각하는 고독은 고립의 다음 단계로, 현재의 ‘나’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나’가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주석의 이야기는 〈인서트〉가 피사체의 시점 숏에서 출발하고, 그 자리에 관객을 놓고 있다는 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대상을 지켜보던 주석은 추현의 등장으로 렌즈 앞으로 향하게 된다. 이때 영화는 주석이 찍고 있던 인서트 영상의 앵글로 전환하고, 관객은 카메라 뒤에 자리한다. 한 번 뒤바뀐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관계는 영화 내내 돌아오지 않는다. 오프닝의 숏 순서만 조금 바꿔도 주석은 쉽게 고독한 상태에 빠진다. 그는 영화 전체에서 카메라의 앞과 뒤에 모두 등장하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관객이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에 마냥 평온하게 있을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전해 들은 이야기를 다시 옮기다 보면 흐름이 툭툭 끊기고 연결이 매끄럽지 않기 마련이다. 〈인서트〉는 어떤 순간들은 과감하게 생략하는 반면 전체 흐름과는 큰 연관이 없는 장면들을 길게 남기는 선택으로 스토리텔링의 감각을 전한다. 이러한 불균질은 머지않아 균열로 이어진다. 영화의 제목처럼 작중에는 풍경 인서트가 꽤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인서트의 대부분은 갑자기 등장한 추현이나 프레임 너머에서 들려오는 공사장 소리 등의 방해로 허무하게 종료된다. 영화 속 균열은 현실의 동요로 이어진다. 주로 추현이 등장할 때 흘러나오는 독특한 분위기의 스코어는 〈부모 바보〉의 기묘함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추현의 인상적인 등장이 관객과 영화를 연결한다면, 주석은 영화 끝에 이르러 인서트 사이에 갇혀버린다. 메아리처럼 울리는 주석의 공허한 외침은 균열 없는 세계에 갇혀 계속 맴돌 뿐이다.

보리수나무 영화사: 우연을 넘어 공명으로
두 작품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하나 더 있다. 〈부모 바보〉는 2025년 1월 자체 배급사인 보리수나무영화사를 통해 개봉했다. 〈인서트〉는 개봉 대신 정기적인 ‘비(非)개봉-상영회’를 이어가며 총 5번의 상영회를 진행했다. 보리수나무영화사의 정보라 프로듀서는 매거진 삼삼오오에 〈RE : 극장 상영 문의 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부모 바보〉의 자체 개봉기를 작성하기도 했다. 개봉 지원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개봉이 어려운 현행 시스템과 서두에 언급한 독립영화의 일반적인 관객 수를 고려하면 이렇게 여러 방법을 통해 관객과 마주하려는 시도는 분명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러한 실천을 영화와 겹쳐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부모 바보〉의 자체 개봉은 제도권 내부에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이에 대한 기록은 자체 개봉을 꿈꾸는 또 다른 창작자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한편 〈인서트〉의 ‘비(非)개봉-상영회’는 제도권 외부에서 관객과의 호흡을 도모한다. 지난 10월, 이종수 감독이직접 상영기기를 운용하며 영화에 대해 말하는 코멘터리 상영에 참석한 적이 있다. 마이크로시네마 ‘소
리그림’에서 진행된 이 상영에서는 영화를 넘기면서 보기도, 일시 정지한 후 코멘터리를 이어가기도 했다. 보리수나무영화사는 〈인서트〉의 다른 상영회 역시 ‘끼어들기 토크’, ‘다섯 가지 장면’ 등 각각의 특색을 살려 기획하고 있다. 물론 두 작품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상영 방식을 택하려 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움직임이 영화의 태도와 닮아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부모 바보〉의 엔딩이 현실로 내디뎠던 과감한 발걸음은 영화의 당돌한 개봉 방식을 연상시킨다. 둘은 견고해 보이는 세계에 균열을 내려 시도한다는 점에서 공명한다. 〈인서트〉의 파편적 스토리텔링은 비정기적인 영화의 상영 방식과 나란히 놓인다. 관객과 마주하는 방식이 영화의 서사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은 현실과 스크린 사이에 또 다른 틈을 만든다. 코멘터리 상영에서 어떤 장면은 감독의 목소리와 함께 멈추기도, 5초씩 생략되기도 했다. 프레임 밖의 침범에 다급히 종료된 영화의 인서트가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영화가 만드는 현실의 균열은 흥미로운 공명에 의한 작은 웃음 같은 것들에서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그 얼음이 녹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리수나무영화사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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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비평전문지 『독립영화』55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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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립영화』는 사단법인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비평지입니다.
이번 55호의 기획 ‘독립 영화의 현장에서’는 ‘현장’이라는 단어에 다시 주목하며, 우리의 카메라가 있어야 할 곳과 그곳에서 관계를 맺고 작업하는 의미, 그리고 그런 카메라의 작업이 이어지고 영화로 소통하는 일을 지키기 위한 행위를 함께 살펴봅니다. 이 기획에는 현장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과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는 문창현의 글, 성소수자 혐오 문화의 역사와 사회적 공간의 승인 문제를 연결해 살피는 문아영의 글, 정윤석 기소 사건을 통해 저널리즘과 시민의 알 권리를 돌아보게 하는 서채완 변호사 인터뷰, 그리고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는 현장의 의미와 위기, 앞으로의 과제를 나누는 여섯 명의 영화인 대담이 실려 있습니다.
비평에서는 박인호가 박송열·원향라 감독이 자신들의 터전과 현실을 기반으로 최소한의 인력과 공간을 이용해 세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며 구현해온 태도를 주목하고, 김예솔비가 이소정 감독의 카메라를 사랑의 몸짓이자 편지의 형식, 그리고 ‘로맨틱 머신’으로 읽어냅니다. 또한 백종관은 「시련과 입문」 작업을 중심으로 자신의 작업에 담긴 사유와 실천을 밝히는 자전적 작가론을 보내주었습니다. 이어 인디즈와의 협업으로 남홍석, 박은아, 안소정의 비평을 함께 실었으며, 제8회 독립영화비평상 당선작인 장지애의 비평을 수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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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영화협회 홈페이지: https://kifv.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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