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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노 어더 랜드〉: 한 겹 너머의 투쟁

by indiespace_가람 2026. 3. 11.

〈노 어더 랜드〉리뷰: 한 겹 너머의 투쟁 

*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 어느 마을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그런 영화지만 그런 영화로만 읽어선 안 될 것 같다. 푹신한 상영관 소파에 앉아 관람했으니 더욱 그렇다. 폭력으로부터 안전거리를 가진 목격자의 임무는, 목격담이 납작해지지 않도록 애쓰는 일이니까. 내가 본 그 불행을 다시 최대한 자세히 들여다 보는 일이니까.

 

팔레스타인 거주민 바젤함단’, 이스라엘 활동가 유발레이첼네 명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카메라는 바젤을 주로 따라다니니, 그 뒤를 이어 바젤의 투쟁을 해체해 보려 한다.

 

영화 〈노 어더 랜드〉 스틸컷

 

투쟁의 첫 겹은 팔레스타인의 마사페레 야타지역 거주민으로서 겪는 아픔이다. 하루아침에 집이 무너지고 학교가 사라진다. 노란 번호판의 이스라엘 차량은 자유롭게 달리지만, 녹색 번호판의 팔레스타인 차량은 서안 지구 너머로 갈 수 없다. 일상을 조금씩 갉아먹는 폭력에 지쳐 철거 명령에 응한다고 해도 마을 주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모아둔 격리 구역에 가깝다. 그들에게 다른 땅은 있지만 없다.

 

여기서 멈추기엔 바젤의 투쟁은 아직 깊다. 한 겹 더 들어가 보자.

 

영화 〈노 어더 랜드〉 스틸컷

 

바젤 옆엔 유발이 있다. 유발은 이스라엘인이지만 팔레스타인을 위한 기사를 쓴다. 그의 투쟁은 철저히 그의 선택이다. 자신의 조국이 저지르는 짓을 부끄러워하며 바젤을 돕지만, 이스라엘 군의 총은 바젤의 사촌을 쏘듯 쉽게 그를 향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발에게 이제 집에 가냐고 묻는 바젤의 아주 일상적인 물음을 여러 번이나 영화에 담은 건 이 대목에서 이해가 된다. “네가 간다 해도 내가 붙잡을 수는 없지라는 바젤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그냥 농담뿐이 아니니까. 결혼은 안 하냐고 묻는 바젤과 결혼이 하고 싶냐고 묻는 유발의 차이.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의 차이. 그 틈새만큼의 씁쓸함이 있을 테니까. 그러므로 바젤에겐 여기서 며칠 지낸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며 유발에게 골을 내야만 견딜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동지를 적대시하게 되는 고달픔에서 바젤의 두 번째 투쟁은 쌓여간다.

 

영화 〈노 어더 랜드〉 스틸컷

 

세 번째 겹엔 바젤의 가족이 있다. 그들은 대대로 투쟁가 집안이다. 바젤은 어릴 적부터 투쟁하는 가족들을 지켜봤고, 커서는 어른들의 카메라를 이어받았다. 직접 등록금을 갚으며 법학을 공부했지만 바젤이 할 일은 언제나 카메라를 드는 일이다. 가업처럼 내려온 책임을 쉽사리 벗어 던질 순 없다.

 

바젤의 나이에 마을 사람들을 이끌어 온 아버지의 모습이 낡은 화질로 재생된다. 바젤은 자연스럽게 비디오 속 아버지에 지금의 자신을 비춰본다. 한쪽에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이스라엘인 유발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마을을 지켜온 아버지와 가족들이 있다. 그 사이에서 바젤의 세 번째 투쟁이 이루어진다. 편해지고 싶다는 부러움과 잘 해내고 싶다는 용기 사이에서. 자갈길에 드러누운 바젤과 힘차게 시위대를 이끄는 바젤이 번갈아 지나간다.

 

영화 〈노 어더 랜드〉 스틸컷

 

그러니 바젤의 아버지가 집 밑에 주유소를 지은 건 단순히 생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떠나지 않는 게 가장 힘든 투쟁임을 그는 아니까. 마을에 머무르고 맨 앞에서 싸우고 카메라를 들어 기록하는 일의 고됨을 그는 아니까. 그럼에도 계속하는 바젤의 마음이 어떤 건지도. 서안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팔레스타인 차에 기름을 넣어주는 일은 그래서 필요하다.

 

바젤의 투쟁과 유발의 투쟁이 같을 수 없듯, 하나의 폭력엔 사람 수만큼 다양한 투쟁이 있다. 그러나 투쟁은 길어질수록 뭉툭해지고 만다. 또 그 얘기냐며 넘어가기 쉬운 주제로 분류되고 만다. 이 여러 겹의 투쟁이 그런 식으로 하나의 덩어리로 굳어지지 않길 바란다. 바젤의 투쟁기를 한겹 한겹 굳이 헤집어 본 것은 그래서다.

 

영화 〈노 어더 랜드〉 스틸컷

 

영화를 본 날, 우연히도 광화문에선 여성의 날을 맞아 팔레스타인 여성 연대 시위가 한창이었다. 이곳까지 이스라엘 불도저는 오지 못하지만 바젤과 동료들이 지켜낸 영화는 왔다. 마사페레 야타 공동체의 미래는 캄캄하대도 그들의 목소리는 이곳 어느 스피커에서 이어진다. 그들의 투쟁 위로 또 한 겹의 투쟁이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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