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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에 남겨진 허밍
〈허밍〉 그리고 〈숨〉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글입니다.
허밍은 노래가 되기 이전의 소리일까, 혹은 그 이후의 음일까.
어디서부터 와 또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낌새가 다분해서 그런지 변덕스럽고 유약한 듯싶다가도, 결국 허밍은 그 무엇도 규정되지 않는 순간에 내가 낼 수 있는 유일한 가늠이자 유동적인 확신의 소리 같다. 매번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는 ‘허밍’의 기질만큼이나 미정(박서윤)은 종잡을 수 없었고, 인지하지도 못한 새에 흘러나와 성현(김철윤)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음향 기사 성현은 극중극 〈국사봉과 신림, 그 사이〉에서 미정을 만났다. 항시 헤드폰을 끼고 수음이 가능한 상태에 머무는 만큼, 주인공 미정의 목소리와 그녀 주위의 대화는 남자의 곁에 잔여한다. 깊어지는 이야기에 예의 삼아 헤드셋을 내리려 해도 어느새 미정은 다가와 성현의 옆에 자리 잡는다. 미정은 자유로이 움직이며, 신림과 국사봉, 관악과 동작 사이의 후미진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대사를 읊지 않아 감독은 애를 먹는다.
결국 극의 결정적인 대사마저도 미정의 마음이 가는 대로 촬영했지만, 1년 후 녹음본의 유실로 인해 남은 것은 미정의 입 모양 뿐이다. 그 장면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는 그녀가 떠나간 이후인 지금, 알기란 쉽지 않다. 즉흥적으로 대사를 뱉는 그녀의 습관적인 태도 덕에 아무도 그녀의 대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현장음은 잘 들리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숨죽여 화면 안에 미정의 입 모양에 집중한다.
신비롭게도 미정이 향하는 곳에는 성현이 있다. 반대로 성현이 움직이는 곳에는 미정이 꼭 함께 따른다. 시야에 걸리지 않을 때면 그녀는 소리로 함께한다. 마치 뗄 수 없다는 듯, 언제나 함께 있다는 듯, 점차 물리적인 존재로서의 함께를 벗어나 시공간을 넘어서는 대면의 상황이 나타난다. 이전에 동행하던 자리, 어떠한 매개를 통한 기억, 닮은 사람과의 대화에서 그녀와 함께하는 상황이 반복-재탄생한다. 미정의 목소리 대역 민영과 녹음을 재개하기 위해 과거의 작업을 돌아볼 때면 어느새 두 사람 사이, 미정이 (비)존재로 서 있다.

성현과 미정의 만남은 끊임없다. 그녀의 존재를 잊고 있던 와중에는 감독이 직접 찾아와 녹음을 요청하고, 민영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미정이 걸었던 길을 소름끼치도록 똑같이 따라간다. 의도치 않음에도 미정은 유령처럼 성현의 곁을 맴돈다. 그녀와의 우연한 만남이 지속될수록, 기억과 상상의 감각은 뒤섞이고 모든 것이 마치 지금 느끼는 것처럼 명료해진다.
끝내 알 수 없는 미정의 대사를, 그녀와 여러 차례 충돌하면서 가늠할 수 있게 되어가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녀의 마지막 대사가 무엇이었을지를 추정하기 위해 미정의 행적을 쫓다 어느새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 하나가 될 쯤, 미정의 허밍은 민영에게서 흘러나오다 성현의 것이 되어버린다. 허밍은 영화 내내 떠돌고 있다. 과연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흘러왔는지 허밍의 유래를 가늠해 보려 해도 결국 깨닫는 건, 허밍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응축된 마음이 내 한구석에 맺혀있다는 사실이다. 들리지 않는 미정이 대사가 끝내 정확하게 보이기란 쉽지 않다. 무력하게도 남겨진 것에 소리는 없기에, 미정은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꾸준히 무엇인가 귀를 두드리는 감각이 성큼 찾아온다. 그 입 모양과 전혀 상반된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허밍으로 그 대사가 완수되는 순간 환상적인 힘이 영화 속에 번진다. 정확한 가사로 남지는 않았을 만큼 불투명할지라도, 쉬이 떼어지지 않는 습관처럼 음으로, 허밍으로, 미정은 완전히 떠나지 못한 채 우리의 곁에 남는다.

영화는 성현의 곁에서 미정의 존재를 돌발과 우연, 고의 사이를 기묘하게 오가며 마주하게 만든다. 마치 떠난 그녀의 존재를 잊지 말라는 듯. 마찬가지로 성현도 허밍을 직접 내뱉고 미정의 입 모양을 주시하며 그녀가 뱉고 싶었던 무언가를 지속해서 상기하고 떠올린다. 그것이 진실-상상 그사이 추정 불가한 곳에 위치할지라도 완성된 노래가 아닌 허밍일지라도, 성현이 녹음 기계가 고장난 상황에서도 후시 녹음을 하려는 자세에서, 그 대사가 무엇인지 헤아려보려는 자세에서, 그렇게 미정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녀를 생각함으로써 비로소 미정을 잘 떠나보낼 수 있다.

〈숨〉 - 윤재호
‘죽음’이라는 단어와 가까워지는 순간은 슬프게도 실제로 ‘애도’의 감정을 마주할 때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될 때 비로소 ‘죽음’은 내 살갗으로 인지된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명의 끝을 점지하기란 쉽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죽음은 아주 조금씩 더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떠나간 사람을 위해 남은 자는 애도를 한다. 영화 〈숨〉은 내 가족을 시작으로 죽음을 어떻게 바라 보고 수용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유품정리사, 장례지도사, 그들은 매일 새로운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고 그들의 평안한 안녕을 기리기 위해 정갈한 마지막을 준비한다.
애도의 방식은 종교마다 나라마다 다르며, 실현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대우받는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죽음도 삶의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이며 우리는 죽음을 진실되게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들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마지막 이승에서 남겨진 육신을 꼼꼼하게 닦고, 그들이 남긴 흔적을 보듬는다.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본인의 삶과 죽음을 더욱 경건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자세에서, 애도의 의미란 무엇인지 또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남긴 자’로서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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