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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겨울의 빛〉: 희망을 품게 하는 순간들

by indiespace_가람 2026. 2. 19.

〈겨울의 빛〉리뷰: 희망을 품게 하는 순간들

*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글입니다.

 

영화 〈겨울의 빛〉 스틸컷

 

겨울을 그리워하며

 여름과 겨울 중 한 계절만 고르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제법 답변이 고민된다. 춥고 건조한 겨울에 묻는다면 여름의 온기가, 덥고 습한 여름에 묻는다면 겨울의 서늘함이 먼저 그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겨우내 따뜻한 계절을 기다리다가도 막상 고대하던 여름이 되면 또다시 기억의 미화가 진행된다. 나의 경우 그 아름다움은 겨울의 빛에 있다. 추위에 떨다 양지로 접어들 때의 포근함, 골목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입김의 선명함, 물살을 만나 반짝거리는 햇빛이 주는 눈부심. 그런 감각들이 결국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러나 〈겨울의 빛〉은 희망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가 아니다. 고등학생 ‘다빈’은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버지는 오래전 가족 곁을 떠났고, 친형 역시 집을 나가 연락을 끊고 산다.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은 당연하고, 청각장애가 있는 동생 ‘은서’의 수술비도 마련해야 한다. 매일 일찍 일어나 동생을 등하교 시키는 일도 점점 힘에 부친다. 겨울은 점점 다가오고, 다빈은 여자친구 ‘재은’과 함께 싱가포르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 모텔 청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저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이 겨울의 끝에도 빛이 존재할까?

 

영화 〈겨울의 빛〉 스틸컷


구겨진 돈, 구겨진 사람들

 구겨진 돈을 모텔 키오스크에 밀어 넣던 다빈의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 기계는 자꾸만 돈을 뱉어내고, 조바심이 난 다빈의 손은 점점 다급해진다. 재은의 지갑에 고이 접혀있던 지폐와 다빈이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는 지폐는 같은 돈이지만 서로 다르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목사와 매일 같은 점퍼를 입는 친구 ‘정원’의 돈 역시 대비된다. 돈을 모으기로 결심한 이후, 다빈은 서랍 안 상자에 지폐를 가지런히 펴서 넣는다. 그러나 한번 구겨진 돈은 아무리 펴봐도 기계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사회는 구겨진 사람들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다빈이 어떻게든 200만 원을 구해와도, 우리는 이야기가 행복한 싱가포르행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결국 다빈은 그 돈도 돌려받게 될 것이다.

 결국 구겨진 돈은 구겨진 사람들 사이에서 돈다. 정원이 다빈에게 선뜻 건넨 아르바이트 일당, 집을 떠난 형 ’창식‘이 어느 날 꼬깃꼬깃한 봉투에 담아온 돈, 그리고 모금함에 들어간 봉투까지. 억압된 이들은 서로를 도우려다 곤경에 빠지고, 사라지고, 후회한다. 영화는 약자 간의 느슨한 연대를 분명히 드러내면서도, 희망이 이곳에만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구조는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영화 〈겨울의 빛〉 스틸컷


찰나에 희망을 걸기

 대신 영화가 기대고 있는 곳은 구겨진 이와 그렇지 않은 인물 간의 상호작용, 그중에서도 다빈과 재은 사이의 관계다. 잠들어서 미안하다는 말에 씩 웃는 미소, 말없이 건네는 붕어빵, 겨울 벤치에서의 고요한 토닥임 같은 순간들.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며 어깨를 주물러주는 선생님 역시 그렇다. 영화는 지나치기 쉬운 찰나에 희망을 건다. 잠시 나뭇가지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가도 금세 사라져 버리는 겨울의 빛처럼 말이다. 대상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차라리 우연에 더 가까울지라도 그런 순간들이 있기에 숨 쉴 수 있다. 그런 순간들이 있기에 겨울을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만남은 결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구조의 벽에 낸 작은 숨구멍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주님의 은총‘으로 치환되기까지 한다. 사건이 거의 마무리되고, 가족이 모두 모여 기도할 때 다빈은 홀로 눈을 뜬다. 이 치환에 동조할 수 없다는 듯이. 결국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고 빛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은 다빈이다. 겨울이 지나가면 미화되어 남을 기억. 그 기억이 있기에 다빈은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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