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겨울의 빛〉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6년 2월 7일(토)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조현서 감독, 성유빈, 임재혁, 강민주 배우
진행 문석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기록입니다.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계절은 차례대로 오지 않는다. 남들 다 봄일 때 홀로 계절을 거슬러 겨울을 사는 기분일 때가 있다. 그 시차를 줄이는 건 도무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지구의 계절만큼이나 거대한 섭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의 체온은 겨울보다 따뜻하다. 춥다는 이유만으로도 함께할 핑계가 될 수 있다. 그 핑계에 기꺼이 넘어가 주기로 한 사람들이 인디스페이스에 모였다. 누군가의 겨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곁에 서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극장 밖은 몰라도, 이곳만큼은 어느새 봄이다.

문석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이하 문석): 안녕하세요. 오늘 진행을 맡은 문석입니다. 한 분씩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조현서 감독(이하 조현서): 안녕하세요. 〈겨울의 빛〉 연출한 조현서입니다. 추운 날에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하고, 재미있는 GV 시간 됐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재혁 배우(이하 임재혁): 안녕하세요. 정원 역을 연기한 임재혁이라고 합니다. 추운데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강민주 배우(이하 강민주): 안녕하세요. 재은 역을 연기한 강민주입니다. 오늘 재미있는 얘기 많이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유빈 배우(이하 성유빈): 안녕하세요. 다빈 역 맡았던 성유빈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문석: GV라면 항상 첫 번째로 드리는 질문인데요. 감독님께 〈겨울의 빛〉을 만드신 계기를 여쭙습니다.
조현서: 제가 처음으로 쓰고 싶은 얘기가 뭘까 고민을 했습니다. 이 영화에 담겨있는 기억이나 감정들이 제게 분명히 있었는데요. 제가 어른 혹은 더 보수적인 인간이 되어서 이 감정들과 멀어지기 전에 더 생생한 감정들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 정직하게 글을 써 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썼던 시나리오가 이렇게 영화로 관객분들께 닿게 되었습니다. 자전적인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굉장히 극화된 이야기이지만 영화 안에서 주인공 다빈이가 느끼는 수치감 같은 감정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석: 이 영화는 그렇게 다빈이의 감정 중심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아마 관객분들도 많은 감정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조현서 감독님 첫 장편인데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받았어요. 그때 심사평이 있는데, 여러분들이 이 영화를 보신 소감과도 겹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자 속에서 시작하여 창백한 겨울 빛 속에서 끝나는 이 영화는 고요한 우울함과 삶의 가혹한 진실에 맞서는 부드러운 절제를 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영화이며, 아직 오지 않은 영화에 대한 조용한 약속이다. 조현서 감독의 〈겨울의 빛〉에게 대상을 수여한다.” –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겨울의 빛〉 심사평
조현서: 사실 지금도 되게 겁이 나요. 너무 과분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처음에 제가 찍으려고 결심했던 감정과 찍고 난 다음에 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뀐 것도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많이 솔직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다음에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관객분들 만나는 게 사실 저는 계속 겁이 나거든요. 앞으로도 웃는 낯으로 많이 다가갈 수 있게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석: 감독님께 캐스팅 관련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조현서: 성유빈 배우님은 고등학생 역할을 많이 하셨다 보니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처음 카페에서 배우님과 작은 농담을 서로 주고받았는데, 그때 ‘아, 내가 믿고 의지하면 되겠구나’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둘이 따로 만나서 더 깊은 얘기들을 하면서 더욱 확신이 생겼고요. 강민주 배우님의 경우에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KAFA 액터스’라는 신설 과정에서 만났습니다. 그 곳에서 〈겨울의 빛〉을 다빈이가 여자인 버전으로 리딩을 하셨는데, 그때 재은 역할로서가 아니라 강민주 배우님이라는 사람 자체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궁금증이 생겨서 그날 바로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임재혁 배우님은 오디션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시나리오에서는 정원 역할이 지금의 재혁 배우님이 가진 분위기나 외형과 많이 달랐어요. 더 왜소하고 비열해 보이는 인상의 캐릭터였는데, 재혁 배우님이랑 오디션을 보면서 배우님의 웃음이 잊히지가 않더라고요. ‘왜 저 사람의 분위기에 계속 마음이 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따로 둘이 이야기도 길게 하면서 캐릭터를 바꾸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문석: 성유빈 배우님은 감독님 첫인상이 어떠셨어요?
성유빈: 소심한 두 명이 있기에는 너무나도 큰 카페의 공간에서 만났었는데요. 그때 했던 대화들은 기억이 잘 나지는 않고요. 감독님이 시네마토그래피에 관한 책을 선물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책에 직접 찍은 사진을 끼워서 편지와 함께 주셨던 기억이 나요. 다 번져서 (웃음) 조심스럽게 들고 왔던 기억이 나는데 그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첫인상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문석: 감독님은 유빈 배우님을 만나서 의지할 수 있겠구나, 깨달았다고 하셨는데 배우님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성유빈: 네. 새벽까지 같이 먹고 얘기하고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작품 얘기도 했어요. 평소 삶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얘기할 수 있었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서로 의지하는 걸 충분히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문석: 영화 초반에 선생님의 질문을 통해서, 다빈이가 ‘꿈이 뭐야?’라는 질문에 굉장히 머뭇거리고, ‘대학 가고 싶어요’ 정도의 답변을 보여주는데요. 배우로서 다빈이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요. 이 아이의 욕망은 무엇이라고 판단하면서 연기를 하셨나요?
성유빈: 학생이라도 욕망이 클 수 있겠지만 다빈이는 그런 아이는 아닌 것 같고요. ‘마음이 편해지고 싶다’ 이런 것보다는, 일단 지금 당장 본인이 계획한 대로 혹은 마음이 안정될 수 있는 방식으로 일련의 사건들이 착착 진행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욕망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문석: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극 중에서 싱가폴에 가고 싶어 하는 건, 다빈이가 짊어지기를 강요 받는 복잡한 짐들을 떨쳐버리고 잠시나마 자유를 얻는 그런 의미였겠네요.
성유빈: 사실 다빈이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는, 재은이와의 상황 때문에 더 가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여행을 같이 가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거고, 여자친구랑 해외여행도 갔다 와 본 사이가 되는 거잖아요. 학원 앞에서 재은이를 기다릴 정도로 내심 신경 쓰이는 부분도 있었고, 재은이에게 구겨지는 모습을 안 보여주고 싶어 하는 뉘앙스의 행동도 있었고, 그런 부분에서 재은이와의 관계에서 좀 더 안정성이 생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문석: 강민주 배우님께는 감독님이 재은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셨고, 또 본인은 어떻게 소화를 했나요? 재은이는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 중에 유일하게 톤이 다르잖아요.
강민주: 맞아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 시나리오를 보고 재은이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되게 고민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다른 역할들에 비해서 상황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게 답답하고 어떤 걸 욕망하고 있는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없고, 다빈과의 대화에서만 조금씩 비치는 모습들이 있던 친구여서 부담이 되면서도 상상할 여지가 많은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빈이 옆에 서 있는 조연이지만, 재은이가 입체적이면 입체적일수록 주인공도 훨씬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어떤 아이디어들이 생각날 때 감독님과 대화했던 것 같아요. 그때 제 아이디어를 반영해 주시기도 했고요.
문석: 다빈이에 대한 재은이의 생각은 영화의 끄트머리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걸로 미루어 보았을 때, 다빈이와 재은이가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요?
강민주: 그러니까요. 그 생각을 해보긴 했었거든요. 사실 저는 헤어졌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헤어진 상황이지만 재은이가 좋은 이별을 하기 위해서 갔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고요. 그 이후에 재은이는 대학에 갔겠죠, 공부를 잘했으니까. 대학에 가서 새로운 세상을 깨달으면서 더 재밌는 사람을 만나거나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석: 임재혁 배우님에게 여쭤보면, 정원 역은 완전히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인물인데 감독님이 어떻게 설명을 하셨나요? 정원이는 되게 복잡한 인물일 것 같아요.
임재혁: 감독님하고 처음 따로 만나서 오래 걸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사실 감독님께서 딱 짚어서 ‘이런 애야’라고 말씀해 주시기보다는 그냥 감독님 얘기들을 엄청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제 생각도 얘기하고 그러면서, 감독님이 확실하게 짚어주시지는 않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얼추 맞춰 갔던 것 같아요.
문석: 감독님이 원래는 정원 캐릭터를 다르게 생각했다가 배우를 보고 설정을 바꾼 거니까, 배우의 생각이 되게 중요했을 것 같아요.
조현서: 정원이의 기저에 깔린 건 분명히 외로움 같은 것들이 있지만, 외로움이 왜 왔는지는 조금 달랐을 것 같고요. 그리고 오히려 제가 배우분한테 그런 것들을 많이 물어봤습니다. ‘이런 행동을 한다면 너는 왜 했을까’, ‘이런저런 설정인데 너에게 그런 경험이 없다면 또 어떤 경우에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같은 식으로 서로 조율해 나가는 부분이 되게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석: 임재혁 배우님은 당시 연기 경험이 아주 많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트레이닝도 되고 또 어려운 때였을 것 같아요.
임재혁: 어려웠어요. 약간 상상을 하면서 했어요. 근데 정원이가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장면이나 정원이의 행동들이 사실 다 상대가 부러워서 그러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 상상을 할 때 감독님께서 되게 정말 경험담인 것처럼, 제가 잘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어요.

관객: 의미와 울림이 있는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장에서 연출하시면서 혹은 편집 작업에서 원래 시나리오에 있던 걸 삭제하신 장면이 있는지 궁금하고, 음악과 음향 등 영화 후반 작업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조현서: 엔딩 신(scene) 정도 말고는 변한 게 없고, 편집자님이 오히려 있는 컷 안에서 없는 컷들을 만들어내려고 되게 많이 노력하셨어요.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처음에 재은과 다빈이 옥상에서 교복으로 갈아입는 장면이 원래 클로즈업도 몇 컷 정도 있고 타이트한 투샷 같은 것들도 찍어놓은 게 있지만, 그런 부분들을 덜어내고 풀 샷 하나로 갔어요. 음악 작업과 음향 작업은, 사실 음향에 대해서는, 너무 톤이 정적이니까 없는 소리들을 앰비언스(ambience)로 많이 채울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런 톤으로 받아들이고 계속 갈 것인지를 초반에 논의했는데, 억지로 채우지는 말자는 얘기만 나눴었고 음악 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요. 곡은 15곡 정도 작곡했어요. 근데 곡이라는 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너무 많고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고, 그전까지는 제가 단편 작업들을 했을 때는 (곡을) 많이 사용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어떤 고집 때문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것이 돈이 들어가고 제가 직접 할 능력은 없으니 이런 경험을 처음 해봤던 거죠. 근데 음악 감독님이 제가 하는 고민 하나하나에 반응을 많이 해 주시는 분이어서 오히려 작업의 진도가 좀 더디게 나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배려해 주다 보니까 얘기할 것도 많았고요. 음악 감독님이 작곡해 오신 것 중에서 줄여보고, 또 그 안에서 변주도 해보는 식으로 작업했습니다.
관객: 임재혁 배우님께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정원이 다빈이랑 있을 때 가장 그 나이처럼 보이지만 또 그만큼 다빈이에게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것처럼 보였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다빈이의 반응이 좀 달랐다면 정원이의 결과도 달랐을지 고민도 좀 들었고요. 마지막 장면에서 다빈이한테 ‘모든 걸 다 짊어질 필요는 없다’고 얘기를 하는데 저는 정원이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 장면에서 배우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임재혁: 마지막 전화에서 다빈이가 저를 잡을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정원이는 계속 다빈이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갈수록 쳐낸다는 느낌이 들다가 교실에서 그 사건을 보면서 이제 나는 기댈 곳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고 보는데요. 마지막 통화에서 다빈이가 정원을 잡는 말이나 행동을 했다면 결말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짊어지지 말라는 말은, 말씀하신 것처럼 정원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 수도 있는데요. 동시에 다빈이한테만 해줄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 대사를 쓸 때도 감독님한테 전화해서 같이 대사를 수정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엄청 고심해서 대사를 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관객: 다빈이와 재은이가 서로 사귀는 사이로 나왔는데, 캐릭터상에서 서로 어떤 매력을 느꼈을까 궁금합니다. 재은이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반대를 하고, 다빈이의 경우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도 그걸 극복하고 서로 계속해서 만나는 이유가 뭐였을까 궁금합니다.
강민주: 저는 엄마한테 뺨을 맞으면서까지도 재은이가 그렇게 사랑을 하는 게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빈이의 어떤 부분이 좋았을까 저도 제일 많이 고민했었는데요. 〈겨울의 빛〉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 각자의 겨울을 지나고 있잖아요. 각자의 추위 속에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었는데, 재은이는 군중 속의 외로움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아무도 본인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바보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 친구 같았거든요. 근데 그런 확신 속에서 다빈이가 보였을 것 같아요. 자신의 상황과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반응하는 태도가 되게 덤덤하기도 하고, 감정 표현을 많이 안 하는 그런 지점들이 재은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태도들이 본인과 비슷하다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쩌면 저 친구라면 내 외로움을 이해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좋아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했어요.
성유빈: 저는 인물들 대부분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고등학생 시절에 확실한 이유 없는 맹목적인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서로 빠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었는데요. 상대의 어머니가 반대하는 걸 알고 있고 내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재은이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하는 그런 이유는, 다빈이한테 없는 걸 재은이가 채워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같은 사람이고, 그런 지점에서 다빈이는 재은이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저는 이 둘의 관계가 되게 조용조용한, 오래된 커플 같은 느낌이라 그 부분에서 되게 매력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관객: 다빈이 동생 수술비 명목으로 형에게 돈봉투를 받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됐을 것 같은데, 처음 그 봉투를 열었을 때 돈이 5만 원권으로 꽉 채워진 게 아니라 만 원, 5천 원, 천 원, 이렇게 최대한 끌어서 모았다는 인상을 주잖아요. 그리고 그 돈이 친구 정원이와 엮이게 되면서 좋지 않은 끝도 맞이했는데, 그런 돈을 비로소 교회 헌금함에 털어 넣었을 때 어떤 생각이나 감정으로 연기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성유빈: 연기하면서도 어려웠던 것 같은데, 저는 다빈이가 자기 마음이 좀 편해지고 싶어 했을 것이고,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 게 맞았을 텐데’ 생각했을 수도 있고, 본인을 위해서 그 돈을 쓰고 싶었던 지점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은데, 결국에는 자연으로 돌려주듯이 돈을 넣으면서 뭔가 마음을 비워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 현장에서도 그렇게 마음이 좋지는 않았어요. 단순히 느껴지는 ‘우울하다’, ‘슬프다’, 아니면 ‘후련하다’ 이런 것보다는 ‘착잡하다’에 가깝지 않았나 싶고, 그러면서도 따뜻해질 수 있는 불씨를 집어넣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관객: 영화의 제목을 왜 〈겨울의 빛〉으로 하셨는지, 시나리오에서 계절적 배경을 겨울로 잡았던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다빈이와 아이들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조현서: 처음 초고를 썼을 때는 〈탈출〉이라는 제목을 쓰다가, 완성하고 나서는 〈겨울의 빛〉이라는 제목을 썼는데요. 그 당시에는 학교가 등장하는 성장 영화는 보고 싶지 않고 제가 찍고 싶지도 않고 교복이 등장하지 않으면 좋겠는 여러 생각이 있었어요.
근데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빈 교실 공간이 먼저 떠오르는데, 학기를 마치고 나서 다들 뿔뿔이 흩어질 때 이상하게 그 빈 교실이 따뜻하면서도 서늘하기도 하고 여러 심상이 저한테 있더라고요. 그 공간이 되게 저한테 매력적이었나 봐요. 당시에는 학교 다니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까 어떤 애증이 있더라고요. 제목을 지을 때도, 다빈이가 나중에 커서 그런 공간과 경험들을 멀리서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영화에서 선생님이나 목사님 같은 다른 인물들의 입을 빌려서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다빈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점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다빈이는 잘 안 들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문석: 오늘 긴 시간 함께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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