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이 배회하는 마음
〈광장〉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6년 1월 15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후
참석 김보솔 감독, 오유진 조연출/프로덕션 디자이너, 전운종 배우(명준 역), 이가영 배우(복주 역)
진행 김세윤 [FM영화음악 김세윤입니다] 작가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기록입니다.
‘보리’에 이어 ‘명준’이 자전거를 타고 원을 그린다. 시린 날씨에 손등이 까칠하게 터서 아려올 텐데도 그곳을 벗어나기보다 빙판에 금을 내는 게 더 쉬워 보인다. 자전거의 바퀴가 지나간 자리마다 흠집이 나고, 갈려진 살얼음으로 어지럽혀지는 길이 아무개의 어수선한 마음 같다.
얹힌 듯, 속이 답답한 날이 있다. 목구멍에 무언가 탁 걸려 도통 내려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무엇이 맺혀있을까. 알면서도 쉽사리 다가설 수도, 떠날 수도 없어 ‘보리’와 ‘명준’은 배회한다. 충분히 궤도를 돌다 보면 목에 걸린 구슬을 빼낼 수 있을까? 녹여 없애버리겠다는 느린 움직임만큼 미련스러운 것도 없겠지만 충분히 페달을 밟아야만, 어느 순간 찾아온 정지된 바퀴를 목격할 수 있다. 〈광장〉은 소중하고 진솔하게 그들의 궤도를 바라본다.

김세윤: 각자 소개 부탁드려요.
김보솔: 안녕하세요. 〈광장〉을 연출한 김보솔입니다.
오유진: 안녕하세요. 〈광장〉의 조연출이자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오유진이라고 합니다. 감독님과 저의 첫 장편 영화라 시행착오도 많았고 정말 오랜 시간 노력이 들어간 영화예요. 그만큼 애정이 깊은데, 〈광장〉을 보기 위해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운종: 안녕하세요. ‘명준’ 목소리를 연기한 전운종이라고 합니다. 개봉 날 발걸음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GV 보시면서 많은 걸 얻어 가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가영: 안녕하세요. 〈광장〉에서 ‘복주’ 목소리를 연기한 이가영이라고 합니다. 개봉 날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세윤: 영화의 시작점부터 들어보면 어떨까 싶어요. 〈광장〉이 스웨덴 외교관의 인터뷰 기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김보솔: 평양에서 3년간 근무했던 서기관께서 남한에서 한 인터뷰였습니다. 서기관분이 평양에서 너무 외로웠고, 그 외로움을 달래려 아무도 없는 고속도로에 혼자 나가서 자전거를 탔다고 해요. 사진과 함께 기사를 읽는데 이미지가 굉장히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았어요. 제가 평소 북한에 관심이 있었기도 하고, 인터뷰 기사의 이미지가 〈광장〉을 만들어야겠다는 트리거가 되었습니다.
김세윤: 〈광장〉 속 캐릭터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인물들의 이름은 어떻게 작명하게 되셨을까요?
김보솔: ‘보리’라는 캐릭터는 앞서 초단이 되었던 기사의 실제 외교관 성함이 아우그스트 보리였어요. 실제 이 이름을 사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는데, 이어 스웨덴 감독이 누가 있는지 찾아보다가 ‘잉마르 베리만’ 감독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의 〈산딸기〉라는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이삭 보리였어요. 스웨덴 언어로 이삭 보리 뜻이 ‘얼음처럼 차가운 숲’이라고 해요. 인물이랑 잘 어울리는 거 같았고, 동시에 한국 사람들이 불렀을 때도 발음하기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보리라는 이름이 탄생했어요. 그리고 다음 인물 ‘복주’의 경우 사실, 그냥 ‘복주’라는 이름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신기하게도 인물에게 바로 이름을 지어줬어요. (웃음) ‘명준’의 경우 〈광장〉을 제목으로 정했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따라왔어요. ‘광장’을 집필하셨던 최인호 선생님의 소설 속 리명준이라는 캐릭터가 영향을 줬습니다. 소설 속 명준은 진리를 찾아 떠났던 젊은 청년이었거든요. 그 인물이 만약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지에 대한 상상으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김세윤: 시나리오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셨는지 오유진 조연출님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오유진: 저도 처음 인터뷰 기사를 접하고 나서 북한에서 근무하셨던 분들의 삶과 생활, 고단함 등이 떠올랐어요. 이미지가 너무 자연스럽게 그려지더라고요. 시나리오랑 기사를 함께 살피는데 남한의 겨울보다 시리고 추운 그곳에서 뼈가 녹아내릴 거 같은 그런 계절에, 치열하게 벌어지는 상황과 분위기들이 자연스레 연상되었어요.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아서, 기획할 때 어려웠던 부분은 없었던 거 같아요. 사실 감독님이랑 저, 둘 다 바라보고자 하는 그 목표 지점이 되게 뚜렷했고 크게 헤매지는 않았습니다.
김세윤: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이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데 중점으로 두셨던 부분이 있었을까요?
오유진: 〈광장〉에서만 가질 수 있는 룩을 획득하고 싶었어요. 저랑 감독님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광장〉이 앞으로 저희가 가져가야 할 정체성이라고 생각했고요. 흔히 보는 일본과 미국의 애니메이션에서 목격되는 것들을 피해 가기 위해 너무 정교하고 미끈한 느낌은 지양하려고 했습니다. 동시에 〈광장〉이 매우 추운 계절에 벌어지는 일인 만큼 습기 차고 거친 텍스처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실험도 되게 많이 해봤습니다. 선도 여러 번 그어보고, 모든 캐릭터를 대상으로 이것저것 대입해보고, 많이 연구하고 고민했어요. 정해진 예산 내에서 효율적이면서도, 집중할 수 있던 부분들이 있어 저희만의 룩을 찾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김세윤: 배우님들께서는 영화 속 캐릭터에게 마지막 숨을 불어 넣어 주셨는데요. 처음 ‘명준’과 ‘복주’라는 캐릭터를, 시나리오를 통해서 만났을 때의 느낌이 궁금합니다. 두 분께서는 ‘명준’과 ‘복주’를 어떤 인물로 생각하셨고, 어떤 특징을 가져가고 어떤 목소리로 담아 내야겠다고 결심하셨나요?
이가영: 처음 감독님들께서 ‘복주’를 보여주셨을 때 너무 예뻤어요. 그래서 제 목소리로 ‘복주’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굉장히 컸습니다. 그리고 ‘복주’라는 캐릭터는 특별하기보다는 하루하루 아주 평범하게 살았던 인물인데, ‘보리’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솔직한 자기의 감정을 마주하게 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순간과 상황의 감정에 충실했던 인물이라고 느꼈고, 그 면모에서 더 인간적으로 보였습니다. 이 인물을 표현하면서 진짜 ‘복주’라는 친구가 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실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냥 북한 말을 따라 하기보다는 북한말 특유의 끝맺음이나 호흡을 익히면서 ‘복주’만의 톤을 만들어 갔던 것 같아요.
전운종: 저는 〈광장〉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굉장히 심플한 이야기로 느껴졌어요. 근데 그 거대한 에너지는 숨겨지지 않더라고요. ‘명준’이라는 캐릭터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항하는 인물이잖아요. 특별해 보였고 ‘명준’을 최대한 잘 다뤄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그리고 코디네이터 오진아 감독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명준’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실제 북한 보위부에 계셨었고, 탈북하신 후에 예술 감독으로 활동도 하고 계신데요. 그분께서 북한 말 검수를 세 번 정도 도와주셨어요. 확실히 목소리에 반영할 수 있는 게 더 풍성해지고 깊어질 수 있었고, 감독님의 그림이 얹어지고 나니 톱니가 맞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김세윤: 두 분은 목소리 연기 경험이 이전에도 있으셨나요? 가령 할리우드 같은 경우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 대본 상태에서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먼저 하고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의 표정이나 특성까지 살려서 그림을 완성하는 프로세스라고 들었었는데, 반대로 대부분의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서는 그림이 완성된 뒤에 더빙의 형태로 목소리를 연기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광장〉에서는 어떤 과정으로 목소리를 입히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김보솔: 사실 녹음을 먼저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림이 버려지는 경우의 수가 줄어들거든요. 제작비랑 완전히 직결되는 문제라 보통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광장〉의 경우 선녹음이 불가능한 지점들이 몇 개 있었어요. 첫 번째는 북한 말을 트레이닝 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선녹음을 해야 할 시기에 본래의 의도로는 ‘보리’의 대사를 스웨덴 말로 표현할 생각이었는데, 당시에 코로나가 너무 심해지면서 스웨덴 언어를 도와줄 수 있는 모든 분이 출국해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국내에 있는 스웨덴 관련 브랜드 기업에 종사 중인 분들도 찾아뵙고 샘플도 받았었는데, 사실 녹음의 이유가 목소리 연기를 듣기 위함이었는데, 그 부분을 만족하기는 어려워서 자연스레 천천히 녹음본을 구하는 쪽으로 기울여졌어요. 일단 후에 힘들겠지만, 제 목소리를 입혀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실 이 작업 방식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에게서 힌트를 얻었는데요. 감독님께서 본인의 목소리로 선녹음을 하고 후에 맞추시더라고요. 최근작에서는 조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너의 이름은.〉을 제작할 때의 프로세스가 그랬다는 정보를 듣고 해볼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김세윤: 〈광장〉의 배경이 북한인 만큼, 배우님들께서도 북한말을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감독님도 전체적인 이야기 틀을 만드는데 오진아 감독님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을 거 같아요.
김보솔: 시나리오를 완성하면서도 제가 북한을 잘 모르니까 질문이 엄청나게 쌓였어요. 탈북민 인터뷰가 필요해서 만나게 됐던 분이 오진아 감독님이셨습니다. 과거에 평양에 거주하셨고, 그래서 저희 영화의 자문을 되게 많이 해주셨어요. 이어서 배우님들 코디네이팅까지 해 주셨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어주셨습니다.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리’의 외로움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명준’의 외로움을 보여주는 것 역시 중요하겠다 싶었어요. ‘명준’은 북한에 있었기 때문에 외로움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몰랐을뿐더러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명준’에게는 어쩌면 잠깐의 일탈과 자유를 느끼는 순간이랑 일치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명준’의 “외로워서 그런가 봅니다.”라는 대사는, 사실 ‘저는 잠깐이지만 자유를 느꼈어요’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김세윤: 오진아 감독님께서 배우분들의 목소리 연기 코디네이팅도 도와주셨다고 했는데 어떠셨나요? 실제로 어떻게 도움받았는지 좀 궁금해요.
이가영: 감독님이랑 통화도 자주 하고 녹음도 보내드리면서 쌓아왔어요. 감독님을 만나 뵙고, ‘복주’가 계속 살아왔었던 그 환경의 말투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평양 말투를 좀 과하지 않다는 걸 알고, 기존에 생각해 왔던 틀을 많이 깨려고 노력했어요. 감독님께서 전달해 주신 말투를 듣다 보니까 특유의 끝맺음과 호흡, 속도가 들리더라고요. 그걸 익히는 데 시간을 많이 썼어요.
전운종: 저는 이전에 단편 영화에서 북한 사람 연기를 했어요. 당시에도 탈북한 친구에게 도움받아서 북한 말을 배웠는데 듣다 보니까 그냥 표준말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기존에 만연하게 알고 있던 북한 말과는 달라서, 대사의 어투가 잘 사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실제 평양 말의 경우 과거 서울 옛날 말의 뉘앙스가 있거든요. 당시에 촬영할 때는 그 경계가 불명확하기도 하고, 익숙한 북한 어투의 대사에서 해소되는 지점이 있어 타협을 했어요. 근데 이번 〈광장〉에서는 이런 부분을 잘 준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한테 일찍부터 그런 것을 요청 드렸어요. 다행히 감독님께서도 잘 봐주셨고 오묘한 억양이 담겨 있는 단어와,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부분을 잘 알려주셨어요.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안의 흐름을 만들기도 했고요.
김세윤: 평양의 말은 1950년대의 서울말과 비슷하다고 하죠. 우리 말이지만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뉘앙스를 살린다는 게 어려우셨을 텐데, 그 부분까지 교정하시려고 공을 많이 들이신 거 같아요. 마찬가지로 감독님께서도 오진아 감독님과 만나 뵌 후에 시나리오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 같은데, 특히 명준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많이 도드라진 거 같습니다. 영화의 중간 ‘명준’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알고 보니 ‘명준’의 거처가 ‘보리’의 건너편 집이라는 사실이 설명되는 시퀀스부터 극의 주인공이 ‘명준’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유진: ‘명준’이 ‘보리’의 관사 밖으로 나오고, 이어 그 관사를 한 바퀴 빙 둘러서 다시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그 장면을 저희도 굉장히 많이 신경 썼던 시퀀스였어요. 물론 신경을 많이 쓰려고 한 만큼 너무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사실 그 연출이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요. ‘명준’이 ‘보리’ 바로 맞은편에 살고 있지만, 그렇게 빙 둘러서 보여주는 동선 하나만으로 ‘명준’과 ‘보리’의 심리적인 거리가 표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영화 끝에는 ‘명준’이 ‘보리’한테 동화된 이후에 자전거를 타면서 위를 올려다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바로 뒤에 깨진 유리 창문으로 카메라가 쑥 들어가서 ‘명준’과 ‘보리’ 둘이 같이 맥주를 마시는 걸 상상하는 시퀀스가 이어져요. 여기서는 두 사람의 마음 거리를 짧아진 것을 의도했습니다.

김세윤: 말씀 주신 것처럼 영화 속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연출 장면이 많았어요. 특히 창문을 이용한 시퀀스들, 그리고 지하철역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오히려 반대로 추락하는 장면, 특히 계단에서 ‘명준’과 ‘보리’가 대비되는 부감 샷들 등이요. 장면 구상을 어떻게 하셨을까요?
김보솔: 처음에 ‘명준’이 짐을 내려놓으면서 대사관 안이 공개되는데, 뒤에 보면 조르주 데 키리코라는 이탈리아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어요. 근데 그 화가의 특징이 원근법이나 소실점이 없어요. 일부러 없애버리면서 부유하고 있는 어디 발붙이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거든요. 거기서 영향을 받았어요. 실제로 두 사람 ‘명준’과 ‘보리’의 심리 상태가 보여지는 장면에서는 일부러 소실점이나 원근법이 흐려지게 했어요. 대표적인 게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인데 일부러 떨어지게 만들었고 또 평면적으로 구성했어요. ‘명준’은 북한 사회에서 자기도 인지하지 못한 채 개조된 삶을 연기하고 있다는 걸, 마찬가지로 ‘보리’도 이방인으로서 부유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려고 했어요.
김세윤: 그렇다면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셨던 배우님들과 감독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한 번씩 듣고 넘어가겠습니다.
김보솔: 저는 사실 애니메이팅이 없는 장면인데, 사진만 나오는 장면을 좋아해요. 일단 첫 번째 이유는 진짜 애니메이팅이 없어서 저한테 보는 데에 불편함이 없거든요. 저의 실수가 안 보이니까요. 그리고 다음은 작품이 끝난 지 한 10개월 정도 되어서 그런지 더 객관적으로 보여서 그런 거 같은데요, 영화를 볼 때마다 이 장면에서 유독 제가 ‘명준’한테 동화되는 거 같아요. 누구든, 자기의 뒷모습을 볼 수 없잖아요. 자신의 뒷모습을 목격하고 외로움을 느껴가는 모멘텀이 여기서 가장 강력했다고 생각해요.
오유진: 저는 영화를 볼 때마다, 어설픈 부분이 보여서 많이 민망해요. 그런데 마지막 장면만 보면 마음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 있어요. 마지막 ‘명준’ 표정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여러 가지 감정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는데, 또 엄청나게 절제하고 있는 그 표정이 되게 마음에 들어요. 제가 〈광장〉을 작업하면서 인물들의 표정을 리얼하게 담는 데에 공을 많이 들였거든요. 그래서 그런 게 잘 나타난 부분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전운종: 저는 두 분께서 제가 좋아하는 장면을 다 얘기해 주셨어요. 마지막 ‘명준’의 얼굴이 타이트하게 들어가는 장면이 굉장히 묘하거든요. ‘명준’이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너무 좋고요.
이가영: 저는 아무래도 ‘복주’하고 ‘보리’가 데이트하는 장면이 애틋했어요. 이 친구들은 이렇게 데이트하는구나 싶기도 했고요. 서로 닿아 있지는 않지만 오가는 말없이 그 애정을 표현하셨다는 게 놀라웠고, 두 사람이 지하철에서 서로의 기운이라도 느끼려고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그 장면이 가장 좋았어요.
김세윤: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최근에 재개봉한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이 떠올랐어요. 영화 속에서 어린 아들이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잖아요. ‘보리’가 ‘명준’을 집요하리만큼 찍으려 했던 마음과 비슷할 거 같아요. 나중에 여유가 되시면 ‘보리’가 찍은 사진을 사진집으로 제작하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아마 ‘명준’이 ‘보리’가 자신을 찍어줬던 사진을 보는 순간 처음으로 자기 객관화가 되었지 않을까 싶어요. 조금 다른 느낌의 시선을 통해서 본 나의 모습이 ‘명준’의 마음을 움직이는 큰 전환점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관객: 작품 너무 잘 봤습니다.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이 작품에서 달걀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총 네 차례 달걀이 나왔고 세 번째에는 달걀이 깨지기도 하는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김보솔: 〈광장〉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불가능의 가능성’입니다. 이미지로 표현하자면 되게 두꺼운 콘크리트 장벽이 있는데 거기에 가느다란 실금이 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영화예요. 여기서 달걀은 이 불가능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장치거든요. 여러 차례 달걀이 등장하는데, 유독 비논리적으로 출연하는 장면이 두 번 있어요. 첫 번째는 ‘보리’가 ‘명준’에게 가서 먹으라고 달걀을 넣어주는데, ‘명준’이 뿌리치고 거절하고 돌아오잖아요. 근데 자기 방에 들어갔는데 사실 우리가 넣을 수 없는 안주머니에서 달걀이 발견되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들어가 있는 거죠. 두 번째는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장면인데, 사실 날달걀이면 현실적으로 그렇게 창문을 깨고 방바닥에 굴러갈 수 없죠. 저희 영화 안에서 균열의 이미지가 되게 중요했고 그러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장치로 달걀을 활용했어요. 그리고 이제 달걀이 삶아지면,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부화의 가능성이 없어진 거잖아요. 반대로 날달걀이면 부화의 가능성이 남은 거죠. ‘명준’에게 날아온 달걀은 깨지면서 생애의 가능성을 표출합니다. 그 이후부터 ‘명준’이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되어요. 마치 어떠한 가능성을 목격한 것처럼요.
김세윤: 말씀하신 것처럼 메타포의 의미도 있고, 고증의 의미도 있는 거 같아요. 영화의 시작이 되었던 실제 스웨덴 외교관의 인터뷰를 보면 북한 생활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 중의 하나가 마음 놓고 믿고 먹을 만한 음식이 많지 않아서 물리도록 달걀만 먹었다는 인터뷰가 실제로 나오기도 해요. 실제로 달걀을 많이 먹은 거는 현실 고증이기도 한 부분인 것이죠.
관객: 영화 속에서 광장이 나올 때 ‘2, 7, 1, 84’라고 지정된 위치가 여러 번 나오거든요.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다음은 광장에서 카운트 다운되면서 불꽃놀이가 시작될 때, 화면이 밝아지면서 광장에 있던 군중이 나오는데, 왠지 그 군중이 똑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느낌이 들어요. 그 부분을 어떻게 연출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김보솔: 일단 숫자 ‘2, 7, 1, 84’는 남북 정상들이 만났던 순간들입니다. 저희 영화는 남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어요. 그와 관련한 상징도 많이 집어넣으려 했고요. 예를 들어 ‘보리’를 남한을 상징하는 요소로 만들기 위해서 남한 할머니가 있었다는 설정을 일부러 집어넣었거든요. ‘명준’을 북한으로 대입시켜서 해석하시면 좀 쉽게 받아들여지시는 게 있을 거예요. ‘2, 7, 1, 84’는 남북이 휴전국이 아니라 종전국이라는 남북 평화 공동 성명을 발표한 날짜가 있어요. 그 날짜의 숫자를 조합했습니다. 그리고 군중장면의 경우는 이 ‘보리’가 느끼고 있는 타인의 낯선 감정을 검정 머리의 군중 속에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탄생하게 된 구성입니다. 사실 앞선 질문이랑 이어지는 부분인데, 그 광장의 숫자 표시가 북한에서 군사 대열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일정 간격으로 해놓은 그 숫자거든요. 그 숫자 자체가 개성과 개별성을 지우는 공산주의 사회를 되게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 두 명은 그 개별성을 지워버리는 상징적인 표시들 사이에 자기들만의 약속을 만들면서 본인들의 개성을 부여하는 거죠.
김세윤: 저는 사실 사운드 관해서도 여쭤보고 싶었어요. 겨울이자 평양의 소리를 영화 속에서 담아내야 했었잖아요. 선택의 순간들이 많이 있었을 거 같아요. 사운드만으로도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니까요.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사운드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감독님께서는 사운드로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으셨을까요.
김보솔: 사운드에 되게 집착을 많이 했어요. 사운드 감독님께서도 장편 애니메이션은 이렇게 소리를 다 만들어야 하는 거냐면서 많이 당황하시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ADR이 없다 보니까 감독님도 난감해하시고, 저희도 비어 있는 부분이 너무 잘 보였어요. 그래서 맨날 음악 다운 받아서, 주말마다 찾아가서 옆에 앉아서 엄청 세세하게 요청하고 작업했어요. 유독 신경 썼던 부분은 앞에 15분이었어요. 언급했던 거처럼 15분을 기점으로 ‘명준’으로 주인공이 바뀌어요. 그 바뀌는 기점 전까지 앞에 설정이 너무 많았고, 관객분들에게 생소한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보여드려야 하고, 극의 몰입도를 높여주기 위해서 사운드에 조금 더 많이 디테일을 챙기려고 했어요. 너무 중요했죠.

김세윤: 오늘 함께 해주신 소감과 마지막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가영: 영화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또 이렇게 이야기할 기회까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광장〉 재미있게 보셨길 바라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운종: 남은 한 해 따뜻하게 보내시고, 저희 〈광장〉 후기도 잘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유진: 저는 GV 할 때마다 엄청 떠는데 오늘은 좀 편하게 했었던 것 같아요. 배우님들과도 함께해서 좋았고, 오늘 개봉인데 이렇게 찾아와 주신 분들께서 너무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고 계셔서 편했던 거 같습니다. 추운 날 여기까지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김보솔: 정말 작은 영화 중에서도 작은 영화인데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광장〉이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김세윤: 〈광장〉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명준’이 자신의 뒷모습을 처음 본 순간이 영화 속에 담겼잖아요. 저희는 그 반대 입장이 된 게 아닌가 싶었어요. 저는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북한 사람의 얼굴이 없었어요. 언제나 북한은 늘 군중이었거든요. 〈광장〉이라는 작품이 우리에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개인의 얼굴을 보게 하는 순간을 선사해 준 거 같습니다. 구체적인 얼굴과 표정을 보는, 그 순간이 주는 진솔함이 있었던 작품이었어요. 약 6년의 시간동안 작업을 진행하셨는데, 고생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 만들어주신 여기 계신 모든 분과, 자리하신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 전하면서 오늘 GV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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