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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굿 포 낫씽〉: 아무것도 되지 않은 사람들

by indiespace_가람 2026. 1. 24.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사람들

〈굿 포 낫씽〉 그리고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주연 님의 글입니다.

 


눈 내린 삿포로에서 상사의 차로 운전 배우기 
vs 
맨몸으로 유럽 가서 히치하이킹하며 1년 살기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어느 쪽이든 과정을 지나다 보면, ‘난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야’라는 생각이 한 번쯤은 들지 모른다. 두 영화는 그렇게 스스로를 의심하면서도, 타인의 차를 타고 나아가는 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영화 〈굿 포 낫씽〉스틸컷


〈굿 포 낫씽〉에는 어른이 되고 싶은 삿포로의 고등학생 삼인방이 등장한다. 교복을 입고 있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장면은 없다. 일하고 싶은 이와마, 늘 그렇듯 그를 따르는 타니, 그리고 같이 해야 한다는 말에 잡혀 얼결에 합류한 테츠오까지. 일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모인 세 사람은 이타미의 밑으로 들어간다. 

네 사람의 모습은 얼핏 비슷해 보인다. 그저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타미는 “우리는 지금 일하는 중”이라며 자신들의 상황을 해명하듯 말한다. 단 하나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이타미에게는 무릎까지 눈이 쌓인 삿포로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트럭이 있다는 점이다. 삼인방에게 트럭은 선망의 대상이다. 일을 제대로 하게 되면, 운전을 배워서 트럭을 몰 수 있게 되면, 이타미처럼 진짜 어른의 세계로 편입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트럭을 도난당하고, 지나간 자리에는 금세 눈이 쌓인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트럭이 사라지자, 이타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트럭을 찾기 위해 스크린의 왼쪽 끝까지 달려가는 테츠오와, 바닥에 주저앉은 이타미의 모습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영화 〈굿 포 낫씽〉스틸컷


사실 트럭은 삼인방이 뒤에서 밀어주어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타미가 쓸모를 되찾는 것 역시, 그들이 곁에 있는 순간뿐이었다.

트럭을 발견한 순간, 테츠오는 가장 먼저 달려가 운전석에 앉는다. 친구들이 얼른 나오라고 외쳐도 끝내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시동을 걸어봐도 ‘이타미의 트럭’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 순간, 테츠오는 이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았을지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와마는 이타미의 곁에 남고, 타니는 감사 인사를 건네며 새 직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테츠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곳에서 끝내 쓸모를 찾지 못했고, nothing이 되기를 선택한 채 사라졌다. 

이 작품에서 Good for nothing은 실패의 이름이 아니다. 지금 자리에서 아무것도 되지 않음으로써, 다른 곳에서 무엇이든 될 가능성을 남겨두는 상태에 가깝다.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스틸컷


그리고 한국에도, 비슷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다. 호재의 기획으로 시작된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학업과 취업을 뒤로 하고, 돈 없이 유럽에서 1년을 살아본 네 사람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들의 목적은 숙소 홍보 영상을 만들어 숙식을 해결하고, 나아가 영국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1년을 버티는 것이다. 반짝이는 목표를 품고 출발했지만, 유럽에서 이들은 그저 돈 없는 20대 청년에 불과하다. 차를 얻어 타야만 다음 목적지로 갈 수 있고, 손에는 오로지 나침반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 움직인다.

분명한 방향을 잡아도, 계획은 늘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모든 걸 포기한 순간에 영상이 예상치 못한 성과를 내고, 성과가 쌓일수록 동료들과의 의견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게 성취와 갈등이 반복해서 찾아온다.

귀국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 뮤직비디오 제작이 잘 풀리지 않자 호재는 세븐시스터즈로 홀로 향한다. 이번에는 히치하이킹을 하는 대신, 두 발로 걷는 선택을 한다. 후반부에 놓인 이 장면은, 히치하이킹조차 마음처럼 되지 않아 몇 시간이고 걸어야 했던 여정의 시작과 겹쳐 보인다. 처음의 걸음은 어쩔 수 없는 고립이지만, 여기서의 걸음은 스스로 선택한 자립이다.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스틸컷


마침내 도착한 그곳에서 호재는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한다. 바닷물이 들이치는 풍경 속으로 동료들이 걸어 들어온 것이다. 〈굿 포 낫씽〉의 테츠오가 친구들을 떠나면서 가능성을 남겼다면, 호재는 그 가능성이 어떻게 매듭 지어지는지를 보여준다. 테츠오가 비워둔 공백이 호재의 여정을 통해 새롭게 채워지는 셈이다.

결국 두 작품에서 남의 힘을 빌린 경험 −트럭을 타거나,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했던 순간−은 새로운 세상을 두 발로 걷기 위한 연습이었다. 트럭에서 내려 사라진 테츠오도, 히치하이킹을 끝내고 다시 한국 땅을 디딘 호재도, 더 이상 타인의 운전대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는다.

 

* 영화 보러 가기: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호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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