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고 홀리는 섬에서의 시간
〈바얌섬〉 인디토크 방문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아 님의 글입니다.
김유민 감독의 〈바얌섬〉이 개봉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데도 관객은 상영관을 가득 메웠다. 빈틈없이 찬 의자들 사이에서 사람들의 숨결을 체감하며 나도 몸을 의자에 맡겼다. 이미 관람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또다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하늘과 바다 사이에 있는 바얌섬으로 걸어갔다. 섬에 도달했을 때, 숨죽여가며 세 남자의 경로를 쫓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보였다. 그 시선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제는 창룡, 몽휘, 꺽쇠가 아닌 김기태, 이상훈, 이청빈 배우에게로 향해 있었다. 기존에 섬이 이끌었던 시선의 흐름은 이동진 평론가가 키를 쥐고 이끌었다. 그 곁엔 김유민 감독도 함께했다. 2025년 12월 19일의 밤, 인디스페이스의 모두는 바얌섬에 있었다.
훌륭한 질문과 웃음기 어린 대답, 재치 있는 넘김, 궁금했던 구석을 적당히 긁어주는 답, 영화 촬영 때의 에피소드, 배우가 아닌 나에 관한 이야기는 GV에 주어진 시간이 모자라다 애원했다. 명쾌하지 않은 대답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음은 후련해졌다.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을 남겨주는 것. 웃음으로 넘길 수 있도록 밀어주는 것. 수수께끼 같은 김유민 감독, 그리고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한 세 배우 자체가 나를 홀리는 듯했다. 마치 섬처럼, 뱀처럼. 아래 몇몇 대담들을 옮긴다.

1. 훌륭한 질문과 웃음기 어린 대답
이동진 평론가(이하 이동진):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끝’이라고 쓰신 게 저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보통 영화에서 영어로도 ‘The End’를 쓰기도 하고, 한국에서도 ‘끝’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지만 안 쓰는 영화도 많잖아요. 더군다나 이 영화는 굉장히 추상적인 느낌도 있는데요. 마지막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바닥에서 ‘끝’이라는 글자가 나오는 순간 굉장히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연출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여쭤보고 싶어요. 이러한 마지막 장면을 애초에 염두하셨는지도요.
김유민 감독(이하 김유민): 그렇게 섬이 사라지는 식으로 해서 시나리오도 썼었어요. ‘끝’이라는 건.. 되게 재미있다고 느껴서 했었거든요. 제가 고전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해요. 고전 영화에는 거의 ‘끝’ 같은 자막이 들어갔었는데 이제 왜 안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 재치 있는 넘김
이동진: 이청빈 배우님께 여쭤보기가 죄송한 게, 사실 영화에서 제일 고생하셨어요. 얻어맞기도 하고 나무에 떨어져서 부러지기도 하고요. 심지어 묘기 연기(자위 연기)도 두 번 하셨어요. 이 영화에서 정말 많은 고난을 겪으셨는데, 영화를 다 끝내고 나서 어떤 기분이 드셨는지요?
이청빈 배우(이하 이청빈): 저희끼리 약간 농담으로 (묘기 연기가) 뒤가 아니고 앞을 보였으면 칸이나 베니스를 가지 않았을까(웃음). 그런 농담을 했었는데 다 끝나고 났을 때는 마음이 후련했던 것 같아요. 촬영장에서도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요. 그냥 다 좋다고 해주시니까, 분위기 자체가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사실 이 생활을 하면서 떠날 때 오히려 좀 아쉬움이 컸달까요. 여행이 끝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3. 궁금했던 구석을 적당히 긁어주는 답
이동진: 감독님께서는 이 섬을 무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다 죽어서 가는 저승의 공간일 수도 있고요. 세 사람이 죽어가면서 쓴 꿈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식생활을 하는 하나의 물리적인 공간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김유민: 관객분들께는 그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게 열어놓으라고 하고 싶어요. 저한테는 그냥 한 사람의 정신세계라고 느껴졌어요. 한 사람의 정신이나 마음을 영화 전체가 한 겹씩 뜯어 보면서 그 안에 뭐가 있나, 좀 들여다보는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그 끝에 도달하면 그냥 어떤 일렁이는 빛깔 같은 것이 딱 있겠고요.

4. 배우가 아닌 나
이동진: 별거 아닌 질문 같지만, 꼭 물어보고 싶어요. 동물이 되고 싶다면 뭐가 되고 싶은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거든요. 이청빈 배우님께 먼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청빈: 몇 번 이런 질문을 들었는데요, 제가 그때는 그냥 ‘인간’이라고 했었거든요. 다시 대답하자면 저희 ‘엄마 아들’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이동진: 어머니는 좋으시겠어요. 그럼 두 번째 사람이 뭐가 돼요(웃음)?
김기태 배우(이하 김기태): 다시 태어난다면… 제가 사실 용띠거든요. 가장 세기도 하고, 또 뱀이 나중에 이무기가 되어서 용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용이 되고 싶습니다.
이상훈 배우(이하 이상훈): 저는 별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더라고요. 지금 삶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고 재미있게 살고 있기는 한데 굳이 다시 태어나는 일에 대해 욕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이번 사는 것에 ‘최대한 재미있게 잘 살고 가자!’라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수더분한 담화와 밀도 있는 질문과 답변이 꽤 많이 이루어진 후에도 관객들의 눈에는 여전히 섬에 대한 물음표가 가득했다. 영화처럼 섬은 탈출할 수 없는 미로와 같이 관객들을 미궁 속으로 계속해서 끌어들였다. 마이크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풀리지 않은 궁금증으로 가득 찬 손이 극장을 꽉 채웠다. 아래 관객과의 질문과 답변을 옮긴다.
관객과의 질의응답
관객: 완전히 완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허설을 여러 번 하면서 거치셨다고 하셨잖아요. 그 기간이 굉장히 길다고 할 수 있고 일반적이지 않은 시간인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좀 무섭지 않으셨을까 싶었어요.
영화 촬영에 들어가서 ‘이제 촬영한다. 편집을 한다.’ 이 프로세스가 있어야지 완성이 될 듯한 느낌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저는 무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거다. 지금 시나리오가 다 됐다. 이제 촬영에 들어가도 된다.’ 이런 결정이 느껴지시는 측면이 있는지 좀 궁금해요.
김유민: 리허설을 하면 배우들이 대사하는 것을 듣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제가 ‘이렇게 하니까 이게 좀 이상하구나.’ 하는 부분들이 들리더라고요. 아니면 ‘이렇게 바꾸면 더 좋아지겠다.’던가요. 근데 촬영할 때도 시나리오가 조금 바뀌었어요. 촬영하는 순간에서 결정 나는 것들이 더 많았죠. 계속 고민하기는 했어요. (중략) 그런 식으로 끝이 없어요. 그래서 마음이 내내 불안했어요. 같이 앉아 있는 샷들 같은 모습을 보면서 안심하게 될 때도 있었고요.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펼칠 때 점점 안심하게 되었어요.
관객: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고전 작품 중에서 김만중의 「구운몽」이 떠오르기도 하며 옛 문학작품들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고전문학이나 이야기들을 많이 사용하셨다고 종종 GV에서 이야기하셨는데요. 감독님께서는 왜 옛이야기를 사용하게 되셨고, 이번 영화에서도 많이 사용하시게 된 계기가 있는지 여쭙고 싶었습니다.
김유민: 전래동화의 형태를 좋아합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다 꿈 같죠. 일어나는 사건들이 다 말이 안 되는데요. 그런데 다 상징들이 있고요. 그것을 영화로 풀면 대비되는 맛, 일치된 맛도 있을 것 같고, 마술적 리얼리즘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생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구운몽」도 읽었었고요. 그리고 장길산, 임꺽정의 이야기들도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달궈진 공기가 끝 없는 하늘과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향해 치솟을 때쯤 인디 토크가 마무리되었다. 굳이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이 분위기에 홀려 그대로 집에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삶과 죽음, 생의 격동을 모두 경험 시켜준 김유민 감독의 〈바얌섬〉. 풀린 답과 미해결된 의문을 모두 안고 늘어난 상영 기간과 관에서 새로이, 또는 다시금 마주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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