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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고백하지마〉 : 마음을 전하는 일은 항상 실전

by indiespace_가람 2025. 12. 29.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전하는 일은 항상 실전

〈고백하지마〉 그리고 〈금사빠〉 

 

*관객기자단 [인디즈] 안소정 님의 글입니다.

 

 

용기를 끌어모으고 단어를 고민하는 과정에는 원하는 만큼 시간을 쓸 수 있지만,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하는 순간은 한 번뿐이다. 마음을 고백하는 일은 무를 수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다.

 

영화 〈고백하지마〉 스틸컷


고백하지마는 고백이 있고, 그 고백 이후에 찾아오는 어색함과 불편함, 애써 괜찮은 척하는 태도들, 그리고 3개월 뒤 현경과 충길 두 사람이 다시 마주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여겨지는 고백은 결말이 아니다. 고백 이후에도 이야기는 계속되고,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영화 하나, , , 러브의 촬영이 마무리되고 충길은 갑자기 현경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모두가 눈치채고 있었던 현경을 향한 충길의 마음, 그리고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공식이 되어버린 애매모호한 관계는 현경과 주변인들에게 불편함을 준다.

고백하지마는 대본 없이 촬영된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인물들은 연기한다기보다 예상치 못한 상대의 말에 반응하며 예측불허의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고백도 거절도 마음의 준비 따위 없이 불쑥 닥쳐온다.

 

영화 〈금사빠〉 스틸컷

 

고백하지마가 고백 직후의 일상을 다룬다면, 금사빠는 고백 이후 연애했던 캠퍼스 커플이 이별한 날을 다룬다. 여자는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폭탄 같은 말을 남기며 헤어지자고 말하고, 남자는 어쩌다 보니 여자가 새로운 사람에게 고백하는 과정을 돕는 연습 상대가 된다. 연습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상대의 답변은 언제나 예측불허다. 두 영화는 모두 연습이 통하지 않는 순간을 다룬다. 고백은 관계를 진전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전보다 더 모호하게 만든다.

 

고백하기 전까지는 온갖 상상을 할 수 있지만, 막상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상대의 반응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백하지마속 인물들이 고백 이후의 어색한 시간을 그대로 통과하듯 지나가고, 금사빠의 인물이 이미 끝난 관계 속에서 타인의 고백을 연습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음을 전하는 일은 항상 실전이고, 그 실전은 늘 계획보다 엉망이다. 두 영화는 고백의 성공 여부보다, 말해버린 마음을 안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상태를 끝까지 따라간다. 그리고 고백과 실패, 거절을 견디고도 회심의 말이 어디로도 데려가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영화가 끝난 뒤의 일상에서 우리는 영화와 우리의 삶이 아주 닮아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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