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재현
〈한란〉 그리고 〈송암동〉
*관객기자단 [인디즈] 서민서 님의 글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영화는 주로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지만, 〈한란〉과 〈송암동〉은 각각 제주 4.3 사건과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극영화의 힘을 빌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재현해 낸다. 사실적이고 살아 움직이는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달리, 극영화는 체험을 통해 관객을 역사의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역사는 꾸준히 다큐멘터리로써 다시 기록되지만, 아직까지 극영화로 제작된 작품은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들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한란〉은 1948년 겨울, 토벌대를 피해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엄마 아진(김향기)과 6살 딸 해생(김민채)의 강인한 여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총소리와 비명만이 가득한 제주에서 해생의 손을 꼭 잡은 채 산을 오르고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아진은 그 누구보다 씩씩하다. 죽음이 두렵더라도, 아진은 항상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런 모녀가 마침내 바다에 무사히 도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우리에게 잠깐의 안도감을 주지만, 제주 4.3의 비극을 아는 우리는 곧 이들의 절망적인 결말을 짐작하게 된다. 다시 현재의 제주로 돌아온 영화는 4.3 평화공원의 수많은 이름을 하나씩 비춘다. 아진과 해생의 치열한 생존기가 실제 역사의 기록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송암동〉은 1980년 5월, 광주 송암동 일대에서 공수부대와 교도대 사이에서 벌어진 오인 교전 사건을 다룬다. 송암동은 항쟁의 중심지였던 광주 시내와 옛 전남도청에서부터 다소 떨어져 있는 동네인데 그래서인지 남아있는 기록물이 부족하다. 〈송암동〉이 극영화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몇 번의 공식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이 사건은 물음표로 남아 있다. 영화는 여전히 규명할 수 없는 광주의 그날을 스크린 속에 다시 불러옴으로써 물음표로 남아있던 역사를 마침표로 다시 쓰려한다.
역사, 특히 국가에 의한 폭력을 재현하는 일의 무게는 분명 감당하기 어렵다. 영화가 기록의 수단으로 역사를 재현한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영화를 보고 또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다. 기록하고 기억하는 우리가 있어야 역사는 망각되지 않고 계속 존재할 수 있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디즈 Review] 〈한란〉: 과거로의 전진 (0) | 2025.12.15 |
|---|---|
| [인디즈 소소대담] 2025. 11 우리가 있기에 (1) | 2025.12.11 |
| [인디즈] 〈세계의 주인〉 인디토크 기록: 비 온 뒤 맑음 (0) | 2025.12.08 |
| [인디즈 단평] 〈동에 번쩍 서에 번쩍〉 : 그렇게 살아가는 것 (0) | 2025.12.08 |
| [인디즈 Review]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가도 좋아 (0) | 2025.1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