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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고당도〉: 세 번의 장례식

by indiespace_가람 2025. 12. 22.

〈고당도〉리뷰: 세 번의 장례식

*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글입니다.

 

 

영화 〈고당도〉 스틸컷

 

뿌리는 같아도

 

철 지난 과일은 먹는 게 아니라고들 한다. 일단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애써 찾아서 먹어봐야 지나치게 무르거나 단맛이 덜하다. 그런데 한 뿌리에서 자란 열매라 하더라도 제철에 먹는 과일은 확실히 맛이 다르다. 성장에 꼭 알맞은 온도와 습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지만 새로 난 콩과 팥도 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늘 똑같이 맛있는 제철 과일로 자랄 수는 없는 걸까. 가족을 닮았다는 말이 유난히 신경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영’은 뇌사 상태인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 ‘일회’의 가족을 부른다. 일회와 그의 아내 ‘효연’, 아들 ‘동호’는 몇 년째 사채업자들을 피해 떠도는 신세다. 부조금으로 빚도 갚고, 동호의 대학교 등록금도 마련해야 하는 이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조금 당겨’ 치르기로 한다. 〈고당도〉는 중반부까지의 서사 대부분을 가족의 가짜 장례식 준비에 할애한다. 계획을 짜고, 각자에게 역할을 배정하며, 여러 인물의 시점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영화의 형식은 흡사 케이퍼 무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온전히 배제되는 인물이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의대에 합격한 동호는 무능한 부모와 달리 가족을 다시 일으켜 세울 대목으로 평가받는다. 어차피 사람들 사는 건 다 비슷하다고 애써 외면해 보는 일회도 사실 알고 있다. 하나뿐인 아들은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영화 〈고당도〉 스틸컷

 

누구를 위한 장례식인가

 

장례의 첫 번째 손님으로 도착한 이는 선영과 일회의 고모 ‘금순’이다. 아니, 애초에 부유한 사업가인 금순에게 부고 문자를 잘못 보내 시작된 일이었다. 따라서 첫 번째 장례식은 오직 금순만을 위해 급조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금순만을 속이기 위해 준비된 가짜 장례식이다. 오래전 가족들과 연을 끊은 금순은 왜 중요한 일정도 미뤄가며 급하게 장례에 참석했을까. 단 한 명을 위해 만들어진 장례, 하필 그 대상이 가족의 틀을 벗어나 크게 성공한 혈육이라는 사실은 흥미로운 아이러니이다. 그러나 선영과 일회에게 허심탄회한 금순의 넋두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일이 들통나기 전에 그녀가 어서 돈을 주고 떠났으면 하는 바람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순에게 받은 돈은 빚을 갚는데 허무하게 쓰이고, 가족은 다른 조문객들도 모두 초대한 두 번째 장례식을 계획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아버지의 사진이 없어서 선영의 사진을 AI로 변형해 영전에 올리는 부분이다. 두 번째 장례식은 자연스럽게 선영의 장례처럼 보인다. 일회는 자신의 사진에 절을 하려는 선영을 뜯어말린다. 졸지에 상황이 꼬여 선영은 평소 탐탁지 않았던 친척들과 함께 손을 부여잡고 기도를 하게 되는데, 이때 그녀가 떠올리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과거 모습이다. 상징적 죽음을 인정하는 대신 선영은 과거의 자아를 마주하길 택한다. 벽장 문을 들어가 혼자가 되고 싶었던 순간을, 그럼에도 가족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순간을.

 

영화 〈고당도〉 스틸컷

 

끈을 부여잡기

 

그렇다면 이제 일회의 차례일 테다. 하지만 그전에 동호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결국 상황을 파악한 동호는 가족에서 벗어나는 대신 아버지를 닮겠다고 선언한 참이다. 사채업자들에게 일회가 죽었다고 연락한 것이다. 또 한 번 지독한 아이러니, 가족과 닮기 위해서는 가족이 없어져야 한다. 동호는 결국 일회가 사라져야 행복할 수 있는 걸까? 우여곡절 끝에 일회의 빈소 역시 급하게 마련되고, 그는 사채업자들이 도착하기 직전 방 안에 떠밀려 들어간다. 일회는 누나가 수년 전에 그랬듯 좁은 공간에 홀로 남는다.

 

그러나 세 번째 장례식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금세 낌새를 알아차린 사채업자들은 가족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며 일회의 행방을 추궁한다. 결국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일회는 사채업자들에게 끌려간다. 이제 동호가 닮기로 한 아버지는 변화했다. 문을 열고 다시금 가족의 얇디얇은 끈을 부여잡길 택한 것이다. 따라서 동호의 마음가짐도 변해야 한다. 서로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라도 끝내 손을 건네는 게 가족이라는, 제법 통속적이고 기시감이 느껴지는 명제를 위해 영화는 많은 길을 달려왔다. 하지만 우리는 도착점에 이르러 그 과실이 세 번의 장례식을 감내할 정도로 달고 충만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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