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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종이 울리는 순간〉: 영광의 비명

by indiespace_가람 2025. 11. 25.

〈종이 울리는 순간〉리뷰: 영광의 비명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아 님의 글입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무엇이든 시간 앞에서 나약해지리라 믿었다. 〈종이 울리는 순간〉은 그런 믿음을 보란 듯이 배반한 세상을 보여준다. 대치와 대립, 폐허와 잔해가 만연한 가리왕산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환희의 순간이자 영광의 시작인 올림픽 경기의 카운트다운으로 펼쳐지고, 영화 바깥의 사람들을 단숨에 숲의 공간으로 인도한다.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 스틸컷

 

계절에 따른 자연의 움직임 그리고 각자의 방식대로 무수히 커온 동식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장대한 숲의 요소들은 시간을 머금은 채 원초의 형태로 존재해 왔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 느낄 수 없지만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곳. 평창 올림픽 개최 이전의 가리왕산을 설명하는 말들은 대개닿을 수 없는 신성한 산과 같았고, 그 산을 위해 힘쓰는 주민들- 산신제의 소리만이 산에 울려 퍼진 유일한 인간의 소리였다. 

 

그러나 이내 가리왕산에서 유일하게 울려 퍼졌던 산신제의 종소리 대신 올림픽의 화려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행사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말과 원상대로 복구하겠다는 약속은 인간을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들게 했지만, 그 속에서 자연은 언제나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자연에서 자연스러움이 빼앗기며 그곳에 경기 유치를 위한 인위적인 결정체들이 안착했다. 말소리가 빠진 아주 고요했던 자연은 텅 빈 터가 되거나 무참히 잘려 나갔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반복적인 훼손의 이미지, 길게 늘어지는 전기톱의 소리, 버퍼링과 화면의 절단으로 비유되며 영화관에 채워지는 것들은 더없이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 스틸컷

 

문제를 둘러싼 이들의 이해관계 또한 세계적이다. 국가와 국민, 단체와 주민, 국가와 세계 기구. IOC의 뜻에 따라 파괴된 결과물인 2018년도의 가리왕산은 현재의 가리왕산은 비슷하다, 사실 똑같을지도 모른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자연을 대하는 사람들 또한 각기 다른 생각으로 채워져 있다.

 

올림픽과 자연의 관계성을 집요하게 좇아가는 영화는 존재의 필요성이란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럴 명분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소유와 가치, 필요와 결정에 의해 사라져 버린 자연들을 되찾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존재함을 담아낸 이 스크린에 아로새긴 시간의 흐름은 현실에서 살로 부딪쳐오는 의식으로 이끌어 잡아당기는 질긴 생명력을 지닌 이야기가 되어, 앞으로 흐를 시간들에 묵직한 경고의 종을 올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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