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전하는 말〉리뷰: 서로를 살아내기
*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보르헤스가 “우리는 단어를 읽지만 그 단어를 살아낸다”고 말했듯이 하나의 삶은 여러 개의 단어로 조합되는 문장일지 모른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서도 유독 변함없이 지켜내고 싶은 단어들이 있다. 양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바람이 전하는 말〉은 작곡가 ‘김희갑’이 살아낸 단어를 10년에 걸쳐 담아냈다.

그 단어는 음악이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혜은이의 ‘열정’, 양희은의 ‘하얀 목련’. 그 외의 많은 히트곡,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3,000여 개의 곡들. 60년의 세월 동안 김희갑은 줄곧 음악이라는 단어를 살아냈다.
누군가 삶 속에 끈질기게 지켜온 단어는 때로 접속사가 되어 다른 누군가의 삶과 이어지기 마련이다. 영화는 김희갑의 시간들이 단지 ‘명곡’이라는 명사에 갇히지 않도록 한다. 그의 음악만큼이나 그 곁에서 살아온 이들을 등장시키며, 그의 음악이 그만의 것이 아니라 여러 삶의 교차점이었음을 보여준다.

김희갑의 음악을 함께 살아낸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음악을 말하는 동안, 그들 각자의 삶 역시 또렷해진다. 음악이란 “한 노래를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 것”이라는 한 인터뷰이의 표현처럼, 서로 다른 삶들이 김희갑의 음악을 중심으로 커다란 페이지를 완성해 나간다. 이 페이지는 결국 김희갑만의 것이 아니라, 그 음악 곁에 있던 모두의 기록이 된다.
그 덕에 관객 역시 그 기록을 읽는 것을 넘어 같이 살아내게 된다. 각자의 에피소드를 덧붙여가며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내가 영화를 관람했던 상영관엔 김희갑의 활동기에 그 음악을 즐겼을 법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대다수였다. 맨 뒷자리에 앉은 덕에 그들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마다 잔뜩 들뜬 듯 자세를 고쳐 앉는 모습. 스크린을 가리키며 일행과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습. 인터뷰이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끄덕끄덕하는 모습. 몸짓만으로도 김희갑의 음악에 말을 얹는 것 같던 그들은 내게 분명 또 다른 인터뷰이였다.

오랜 시간 음악을 살아낸 김희갑도, 그의 음악을 곁에서 함께한 이들도, 그 영화를 온몸으로 받아내던 관객들도 모두 ‘김희갑의 음악’을 함께 살아내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바람이 전하는 말〉을 함께 살아내고 있었지.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서로를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디즈 Review] 〈너와 나의 5분〉: 그 시절의 우리 (1) | 2025.11.20 |
|---|---|
| [인디즈 단평] 〈너와 나의 5분〉 : 5분 사이,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관계 (0) | 2025.11.17 |
| [인디즈 단평] 〈에스퍼의 빛〉 : 보편성으로부터의 탈피 (0) | 2025.11.17 |
| [인디즈 Review] 〈에스퍼의 빛〉: 청소년의 서사 (0) | 2025.11.17 |
| [인디즈 소소대담] 2025. 10 영화의 끝과 시작 (1) | 2025.11.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