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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성으로부터의 탈피
〈에스퍼의 빛〉 그리고 〈땅거미〉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보민 님의 글입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도통 무슨 의미인지 해석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사회의 보편적인 기호와 관념을 받아들이기 전,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그림은 순수하면서도 종종 파괴적이다.
〈에스퍼의 빛〉은 조금은 이런 시선을 가지고 보는 편이 좋은 영화다. 영화제 최초 공개 당시부터 익히 들려왔던 ‘괴작’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보는 듯 해독조차 어렵다. ‘자캐(자작 캐릭터) 커뮤니티’ 문화는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것이지만, 영화는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은 붙이지 않고 곧장 자캐 커뮤 세계관으로 진입한다. 설명되는 것은 자캐 플레이어 앞에 놓이는 A, B, C, D로 이루어진 선택지뿐이다.

주인공이 되는 10대 청소년들은 저마다의 자캐를 가졌다. 현실의 청소년과 픽션 속 플레이어는 전혀 다른 외양으로 등장한다. 인종도, 나이도, 때로는 성별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만큼 마음껏 상상하며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모르지만 주어진 세계관에 순식간에 몰입해 이야기를 펼친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청소년의 미숙함이 만나 다소 작위적인 대사와 과장된 감정이 난무하지만, 감독은 그것을 보편적인 문법으로 여과하지 않고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 놓았다.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비현실적인 이야기와 본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게 극단적으로 가한 색보정 때문에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숲, 산맥, 도시 같은 공간적 배경은 여느 영화에서나 보던 것이지만 〈에스퍼의 빛〉에는 그만의 기이한 에너지가 가득하다.

〈땅거미〉 또한 지극히 평범한 산과 아파트의 풍경을 극단적인 색으로 덮어 비현실을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시각적 유사성을 띤다. 두 영화 모두 ‘빛’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잠에서 깨 뒷산을 오르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따라갈 뿐이지만, 플래시가 터지듯 하얗게 뿜어나오는 햇빛은 네거티브 필름 같은 강한 색을 연출한다. 때문에 평범했던 공간과 인물은 미스터리한 에너지로 뒤덮인다. 〈에스퍼의 빛〉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편성으로부터 탈피한다면, 〈땅거미〉는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통해 보편성으로부터 탈피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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