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바얌섬〉: 사는 동안은 우습게, 느릿하게.

by indiespace_가람 2025. 11. 11.

〈바얌섬〉리뷰: 사는 동안은 우습게, 느릿하게.

*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아 님의 글입니다.

 

 

 “내가 사라난겨?” 


낯선 모래사장에서 물을 토해낸 꺽쇠는 옆에 앉아 있던 두 남자에게 묻는다. “죽은겨.” 한 남자가 대답한다. “아니, 살아있는겨.” 다른 남자가 대답한다. 영화는 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헷갈리게 만든다. 저 남자들이 산지 죽은 지, 이 섬에 다른 생명이 있기는 한 건지, 애초에 섬 자체가 산 존재들이 있는 공간이 만든 지. 그 혼란스러운 섬에서 뱀띠 동갑인 청년과 중년, 노년의 남자들은 실없는 농담을 치듯 날을 보낸다.

 

영화 〈바얌섬〉 스틸컷

 

몽휘, 창룡, 꺽쇠는 수수께끼 같은 섬에서 생존을 위해 고투하지 않는다. 바얌('뱀'의 방언)섬에서 긴장감 따위는 아주 사소한 감정이다. 그들의 하루는 열심히 먹을거리를 찾거나, 나갈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사소한 일로 다투고 말장난을 하는 것이 전부이다. 세상이 미숙하고 본능적인 꺽쇠는 섬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혼자 남아 자위를 한다. 나름 셋 중 가장 적극적인 창룡은 가짓배를 만들다가도, 모래사장으로 돌아가 조심스레 소원 돌을 올린다. 몽휘는 삶에 대한 애정이 없다. 측은지심에 해골을 묻은 자리에서 발견한 거울로 자신을 비춰볼 뿐이다. 

 

영화 〈바얌섬〉 스틸컷


섬에서 하루는 지루하다. 신기한 사실은 불가사의한 일들이 발생해도 그다지 소란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꺽쇠의 분신이 나타났을 때도, 두 형들은 그저 담담히 받아들인다. ‘붕신’이라는 단어를 ‘분신’이라고 다시 알려주기만 할 뿐이다. 꺽쇠의 분신이 알려준 보물, 청주를 가져왔을 때도 한 치의 의심 없이 즐겁게 마시고는 한다. 얼굴이 같은 여자들이 술자리에 찾아와 그들 곁에 있어도, 기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어쩌면 험난한 고생길을 벗어나 웃음거리에 홀리길 바라는 듯 보이기도 한다. 아기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그들은 바얌의 유혹에 잠식된다.

이런 혼란함 사이에도 섬은 고요하다. 영화는 작은 사건들 사이사이로 차분한 섬의 풍경을 보여준다. 잔잔한 파도, 가득 찬 나무와 돌의 장면은 연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제시되며 관객 또한 섬 안으로 끌어들인다.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영화의 음악이다. 〈바얌섬〉은 우리 소리, 판소리를 자주 내세운다. 평온하고 느릿한 영화에 확실한 역동성을 주는 부분이다. 가만히 세 남자의 행동, 억센 사투리와 판소리를 겹쳐 보며 한국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된다. 엔딩 부분의 자개 예술 작품 쇼트는 이 정취에 방점을 찍는다. 우리의 전통을 온몸으로 경험 시킨다.

 

영화 〈바얌섬〉 스틸컷


〈바얌섬〉은 모호하고 은유적이다. 우스꽝스럽기도,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 또한 섬의 바얌에게 홀린 듯 영화의 해류에 밀려 떠내려간다. 혼란과 나직한 씬의 나열 안에 관객을 배치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묻게 한다. 살았는가 죽었는가. 여기가 현실인가 환영인가. 바다는 죄다 아래까지 바다일까. 땅속은 깊고 차가울까. 다음 생애에도 여전히 고생길에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날 것 인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