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사북〉리뷰: 미완의 역사 앞에서
*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다원 님의 글입니다.
영화 〈1980 사북〉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겨울의 사북을 비추며 시작한다. 마치 그곳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하다. 그러나 쉬지 않고 내리는 하얀 눈이 마을을 덮어 소리를 지워버린 것 같기도 하다. 카메라는 그 정적과 지워진 목소리 사이에 머문다. 그 순간, 영화의 타이틀이 고요를 밀어낸다. 1980 사북. 새겨지듯 떠오르는 타이틀을 눈으로 좇다 보면 방금 전의 침묵이 마치 묵념처럼 느껴진다.

홀로 그곳을 벗어났다는, 혼자 잘 먹고 잘 산다는 죄책감이란 동력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는 타인의 이야기로 쓰이는 역사를 가족과 당사자의 목소리로 다시 말하게 만든다. 그 목소리들은 서로 엇갈리고 충돌하며 하나의 사건에도 여럿의 진실이 있음을 드러낸다. ‘1980년 벌어진 광부들의 대규모 시위’라는 단정된 문장 속에는 오랫동안 지워져 온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스크린 앞에 선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기대를 비껴간다. 영화는 명확한 선악 구도를 거부하고 그저 불편할 만큼 복잡한 기억의 현장을 보여준다. 이 불편함은 단순한 연출의 선택이 아닌, 국가 폭력의 진실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한 시도이다. 과거의 상흔을 복기하며 그들은 살기 위해 타인의 이름을 댄 죄를 고백하거나, 반대로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살아남은 동료의 죄를 고발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고백과 고발 사이, 어느 입장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공백 속에서 ‘국가’라는 이름의 거대한 폭력을 발견한다.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복기하는 것이 아닌, 그 과거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오늘을 비춘다. 무죄 판결을 받고 눈물을 보이는 광부 강윤호 씨의 모습은 미완의 이야기의 아주 작은 실마리를 마주한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박봉남 감독은 〈1980 사북〉은 그저 첫 단추에 불과하다며, 사북 사건의 50주년인 2030년을 넘기지 않고 상황이 해결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감상 뒤의 짧은 연민이 실천을 대체하고 타인의 고통을 감상으로 소비하는 사회이다. 우리의 책임은 아마 영화관을 나온 그 순간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 미완의 역사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미결의 기록 뒤에 우리는 무엇을 써 내려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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