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리뷰: 이름 부름
* 관객기자단 [인디즈] 문충원 님의 글입니다.
그렇다고 믿어왔던 세상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느낄 때 우리는 움직인다. 보이는 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무형의 장벽이 깨지고 섬뜩해지는 순간들은 불현듯 찾아온다. 양주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양양〉 역시 한밤중 술에 취한 아버지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된다. "너는 고모처럼 되면 안된다"는 한 마디에서 시작한 이 추적기는 한국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가부장제의 면면을 해부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감독의 기억 속에 화목하고 안정적이던 가족의 풍경은, 존재조차 몰랐던 고모 '양지영'의 비극적인 삶을 마주하면서 산산이 부서질 만큼 연약할 따름이다. 40년 전 사망한 한 여성의 흔적을 좇는 과정에서 조카이자 감독 스스로가 그 굴레에서 얼마나 순응하며 살아왔는지 직면하며 단단하다 믿어왔던 가족의 시간이 다시 써지기 시작한다.

〈양양〉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해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끈질기게 파고든다. 실마리를 하나씩 찾아 나갈수록 답을 구해야 할 지점은 단순히 죽음의 원인을 넘어 그 죽음에 대해 가족들이 침묵하는 이유에 가까워진다.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이유, 그리고 당시 사회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비극적 정황 때문에 가족사에서 송두리째 지워진 한 개인의 이름. 영화는 가족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이 어떻게 개인의 존재를 규정하고 은폐하는지 드러내고 다시 수면 밖으로 명명하는 일을 시도한다.
그리고 화면 밖에는 아버지의 증언을 끈기 있게 응시하는 카메라가 있다. 단편적인 사실만을 말하던 아버지의 불편한 얼굴에서 출발해, 7년에 걸쳐 고모에 대한 내밀한 속마음을 듣기까지 그 침묵의 행간을 오래도록 살핀다. 아버지 역시 대답을 피하면서도 카메라를 끝내 외면하지 않는다. 40년 전 누나를 잃은 남동생의 비통한 시간을 치유하는 카메라의 힘을 짐작한 듯이. 반면 감독인 딸은 자신의 어린 시절 생일 비디오에서 남동생에게만 집중되던 아버지의 시선을 발견한다. 감독에게 카메라는 가부장제의 공기 속에 순응하며 살아왔음을 직면하게 만드는 객체다. 고모가 총명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진학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것처럼, '누나니까 양보해야 한다', '믿음직하니까 네가 하는 게 맞다' 따위의 미묘한 언어들과 마주하며 영화는 두 양씨 여성의 조용한 연대로 서사를 확장하는 동력을 얻는다.

그렇게 고모의 비극은 우리 가족만 유별난 이야기가 아니라, 집집마다 존재하는 비운의 이야기라는 친구들의 반응에서 서사의 외연이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된다. 이 지점에서 〈양양〉은 한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존재만큼 대우받지 못하고 비극으로 흘러갔던 수많은 익명의 여성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다만 가해와 피해 구도에서 진실을 파악하는 일에 몰두하기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존재 자체를 복원하는 일부터 집중하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침묵을 깨고 고모의 이름을 호명한 것을 시작으로, 가족의 묘비에 사라진 이름 석 자를 새로 새기고, 영화 크레딧의 출연자 명단 맨 첫줄에 내보이는 일까지 모두 어찌 보면 가장 강렬한 정치적 선언으로 읽히는 게 아닐까. 한 가정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용기 하나가 결국 우리 사회의 폐쇄적인 구조에 균열을 일으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양양〉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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