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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양양〉 : 오래된 이름 위에 새로운 이름을

by indiespace_가람 2025. 11. 4.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이름 위에 새로운 이름을

〈양양〉 그리고 〈리본 윗 유〉 

 

*관객기자단 [인디즈] 안소정 님의 글입니다.

 

 

영화 〈양양〉 스틸컷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딘가 쓸쓸한 구석이 있다. 가족 안에서 숨겨졌던 상처가 지워졌던 존재를 만날 때 오래된 이름은 새로운 자리를 만난다.
〈양양〉은 가족의 상처와 치부가 되어 숨겨졌던 고모의 생전 자취를 쫓아가며 가족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딸이자 누나였던 인물은 하고 싶던 일이 많고 수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고모로 점차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말할 수 없고 과거는 바꿀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았지만, 외면했던 흔적을 다시 살펴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다. 딸이어서 양보해야 했고 딸이어서 화목한 가족을 위해 감내했던 순간들이 세상을 떠난 고모의 흔적과 만나면서 시간을 넘어서 만난 두 사람은 가족 안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생전의 흔적들을 이어 붙이는 과정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의 가능성을 이끌지만, 영화는 고모가 어떻게 죽었는가가 아닌 어떻게 살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리본 윗 유〉 스틸컷



〈리본 윗 유〉는 환호나 야유의 대상이던 ‘언니’를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며 함께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기존의 질서에서는 미처 드러내거나 이해될 수 없는 면들은 새로운 신화와 역사의 자리에서 아픔을 풀어낸다. 다른 여성의 역사와 흔적에서 자신의 고통을 비춰보는 과정은 연대가 동시대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평행선처럼 만나지 못하더라도 나란히 놓여 끊임없이 새로운 맥락과 모습을 찾아내는 것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화 〈양양〉 스틸컷


두 영화는 과거의 상처가 만들어낸 자리를 다시 바라본다. 잊힌 이름을 다시 불러내는 일은 고통의 재현이 아니라, 관계의 재구성이다. 〈양양〉과 〈리본 윗 유〉는 사라진 이들의 흔적을 통해 남겨진 자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기억은 완결되지 않은 채 계속 쓰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다시 이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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