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위적 파묘
〈양양〉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5년 10월 22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양주연 감독
진행 임선애 감독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보민 님의 기록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들춰보고 싶지 않은 불편한 기억이 있다. 가슴 아픈 사랑이든, 말 못 할 비밀이든 깊숙한 곳에 고이 묻어뒀던 것을 끌어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와 마주하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 무덤과 같은 것이 일평생 존재조차 몰랐던 망자(亡者)라면 어떨까? 심지어 가족이라면 말이다. 양주연 감독은 20대가 되어서야 알게 된 이름 없는 묘를 조심스레 마주한다. 아주 개인적인 가족사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가부장제에 억눌린 여성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발화했을 때, 가족 모두가 파지 말라 말렸던 무덤은 비로소 파내야 마땅했던 것이 됐다. 〈양양〉은 '어떻게 이름조차 지워진 망자를 위로할 수 있을까'라는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애도의 대답이기도 했다. 양주연 감독의 첫돌 된 아들이 깜짝 방문하며 새 생명의 활기로 시작했던, 슬픔과 희망이 교차하는 인디토크 현장을 공유해 본다.

임선애 감독(이하 임선애): 저는 이 영화를 여러 번 재차 봤는데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영화를 본다는 게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데, 창작자 입장에서도 어떤 영화들은 태생부터 사적인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 역시 앞선 두 연출작(〈69세〉, 〈세기말의 사랑〉) 같은 경우 극영화이긴 하지만 사적인 계기로부터 시작해 영화를 만들었어요. 타인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인데도 괜히 마음이 쓰이고 공감되고, 혹은 나랑 조금 먼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위로가 되는 그런 영화들이 있잖아요. 최근에 어떤 단편영화제 심사를 하면서 '나와는 먼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왜 나에게 화두처럼 던져질까?', '어떤 단편들은 만듦새도 조금 허술한데, 왜 단박에 주인공한테 마음이 빼앗겨버릴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유는 결국 그 인물에게서 나와 닮은 구석을 찾았기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내 안에 품고만 있던 것들이 주인공들로 인해서 표현이 됐을 때 무장해제당한 것처럼 마냥 좋아지는 그런 영화들이 있었어요.
저한테는 〈양양〉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보면서도 똑같은 구간에서 눈물이 나고 안타까웠고, 감독님이 이 장면들을 만들 때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이 꽤 있었어요. 그래서 오늘 질문도 그런 부분이 많습니다. 이 영화는 감독님의 사적인 가족 일화로부터 시작했지만, 결코 사적인 다큐만은 아니라는 점이 영화를 볼수록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느껴져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특히 여성 관객이라면 자신을 포함해 어머니 세대, 이모, 고모, 할머니까지 소환하게 되는 영화이지 않나 싶습니다. 감독님의 그동안의 작품들을 찾아봤는데, 아쉽게도 앞선 작품들은 볼 수가 없었어요. 볼 수 있는 경로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사적으로라도 꼭 보여달라고 하고 싶네요. (웃음)
이번 〈양양〉은 첫 장편이신 거죠? 오늘 이후에도 GV가 많이 있을 텐데 제가 오늘 드리는 질문들이 다른 GV와도 많이 겹치겠지만, 마치 처음 들어본 질문인 것처럼 감독님도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개봉날의 의미는 좀 다를 것 같아서 지금 기분이 어떠신지 궁금해요.

양주연 감독(이하 양주연): 여러 생각이 드네요.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도 너무 힘들지만, 그 이후에 개봉하고 관객들을 만나 극장에서 계속 만남을 이어가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습니다. 여러모로 어려움을 체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무 감사한 기회라고도 생각합니다. 개봉이라는 것이 어떤 영화나 다 주어지는 기회가 아닌데, 감사하게도 〈양양〉이 그 기회를 만날 수 있었고 이렇게 관객분들 한 분 한 분을 극장 안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벅차면서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임선애: 주변 여성 감독님들의 영화가 개봉하는 날이 되면, 제 작품이 개봉하는 것처럼 검색을 해보거든요. 평점은 어떻게 됐나, 댓글은 어떻게 달렸나 하면서요. 특히나 제가 지지하는 영화들이면 더욱 그래요.
양주연: 네, 맞아요. 저도 검색을 많이 해 보는데요. 〈양양〉이 이전에 영화제나 공동체 상영을 통해 관객분들을 만났다면, 개봉을 하니 오늘 아침 MBC 뉴스에 저희 아빠 얼굴이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가족 단톡방에서 외삼촌이 "매형 얼굴 나왔다" 하면서 사진을 공유해 주셨는데, 아빠의 대답이 "딸 덕분이지 뭐" 였어요.
아까 아빠와 전화해보니, 아빠가 매일 보시는 광주일보에 〈양양〉 개봉 소식이 실려 있어 신문을 한 부 챙겨 오셨다고 합니다. 물론 아빠도 이미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보셨지만, 개봉은 실감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신문에 실린 본인의 모습을 보고 저에게 "신기했다", "응원한다"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걸 보니 '이 영화가 정말 세상으로 가는구나' 하는 마음도 드는 것 같아요.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관객들을 잘 찾아갔으면 좋겠고요. 이 영화와 이야기가 필요한 관객분들이 분명 이 세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쉽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이 영화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줄 수 있는 존재였으면 좋겠습니다.
임선애: 감독님이 대단한 일을 하신 거예요. 고모님 성함도 호명해 주셨고, 아버지 얼굴까지 뉴스에 나오게 하셨네요. (웃음) 저도 〈양양〉에 대한 코멘트를 좀 봤어요. 그중에 제가 무릎을 탁 쳤던 단어가, 박평식 평론가님이 쓰신 "가매장(假埋葬)"이라는 표현이었어요. 정말 가매장 당한 고모님의 이름을 부활시켜 주셨어요. 아버님이 좋아하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조금 서두가 좀 긴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제가 얼마 전 한 시사회 뒤풀이 자리에서 은희경 작가님을 뵈었어요. 저한테는 대모님 같은 분이신데, 유명한 스테디셀러 『새의 선물』의 작가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뵙는구나 싶었거든요. 은희경 작가님의 출생 연도를 찾아보니 50년대생이더라고요. '만약 고모님께서 시를 계속 쓰시다가 문학가의 삶을 살고 계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펼치셨을까, 은희경 작가님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되셨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3년 전에 이 책의 100쇄 기념 개정판이 나왔어요. 100쇄라는 건 대단한 일이잖아요. 왜 이렇게 많이 읽혔을까 다시 궁금해지더라고요.
책에는 가부장제 안에서 성장한 '진희'라는 여자아이가 나와요.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방식의 이야기인데, 그 어린 시절에 이미 여성의 위치성을 깨달아버린 거예요. 공포감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나머지, 자신은 그런 운명과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굉장히 냉소적이고 위악을 일삼는 인물로 나와요. 그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그런 상황을 모면하냐면,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자기객관화를 하면서 화자로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저한테는 인상 깊었어요.
은희경 작가님도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가부장제를 겪었을 것이고, 그 안에서의 답답함을 진희라는 인물로 투영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은희경 작가님 이후에도 양귀자, 정이현 작가님 같은 분들이 많이 알려져 있잖아요. 여성들은 글쓰기로 참 많은 것들을 해소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도 어떻게 보면 안에 내재되어 있던 것들을 영화로 발화시키셨겠다고 생각했어요.
『새의 선물』이 30년 된 소설인데도 여전히 스테디셀러인 것이 약간 씁쓸하기도 한데, 앞으로는 우리가 그 소설을 읽을 때 "이게 말이 되냐", "완전 허구 아니야?"라고 할 정도의 세상이 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사실 이 영화도 한국 관객들이 보는 감상들이 있잖아요. 이미 해외 영화제에서도 선보이셨을 텐데, 해외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한국은 아직도 이런 사회야?"하는 질문을 받았을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양주연: 해외에서도 〈양양〉이 소개됐었는데요, 해외에서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저도 궁금했어요. 물론 그 문화권 안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영화가 끝난 후 소감을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이 영화에 굉장히 공감하면서, 본인들의 가족 안에서 이야기되지 못했던 또 다른 구성원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고 얘기해 주시더라고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우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사실은 고모의 이야기가 본인이 묻어뒀던, 가족 안에서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고 하신 관객도 계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물론 해외와 한국의 상황이 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결의 상황은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해외 관객들이 저희 아빠 캐릭터에 대해서 재미있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무뚝뚝해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않는 남성을 한국 남성의 특징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런 반응을 듣고 돌이켜 봤을 때, 제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이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사고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되묻게 되는 순간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양양〉을 찍을 때 저는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그게 돌이켜보면 가족의 시간과도 맞닿아 있었는데요. 저희 가족은 아빠도 그렇고, 할아버지나 엄마도 그렇고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 공유하는 분위기였다기보다는 그저 가부장제 안에서 주어지는 자신의 역할을 수긍하고 "원래 그런 거다"라는 서로 간의 암묵적인 신호 안에서 감정까지도 숨기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감정을 드러냈을 때는 유별난 사람이 돼버리는 거고,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러는데 너는 왜 그러니"하는 말들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그런 면에서 처음엔 "우리 아빠는 왜 이렇게 무뚝뚝할까"하며 서운해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동시에 제가 그런 아빠를 닮아있다는 것이 너무나 인정하기 싫은 지점이기도 했어요.
〈양양〉은 제작 과정에서도 해외 작업자들의 피드백을 주고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끼면서, 저 역시도 감정 표현에 대해서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거리를 두려고 했던 무의식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점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임선애: 이 영화가 많은 것을 바꿔놨네요. 아버지와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아버님께서 동생이 더 똑똑하다고 말씀하셨을 때 대체 어떤 근거를 드실까 궁금했는데, 사주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근데 감독님도 그거에 대해 더 쏘아붙이지 않고 그냥 "저게 말이 돼?"라는 표정만 지으시더라고요.
양주연: 왜냐하면 너무 많이 들어서요. (웃음) 아빠와의 평소 대화에서도 그런 사주풀이나 한자 풀이 같은 걸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들었다 보니까, 그 장면을 촬영하던 현장에서도 그다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거예요. 그래서 '아빠 또 저런다.'하는 표정이 나왔습니다.
임선애: 그 부분에서 감독님 리액션을 길게 편집하셨길래, '관객들한테 웃음 타임을 준 건가?' 했어요.
양주연: 맞습니다. 약간의 바람을 갖고 편집했던 장면인데요. 사실 촬영 당시에는 그 장면을 쓸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어요. 왜냐하면 별로 쓰고 싶지 않았고, 아빠의 말 자체를 무시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던 부분이었는데, 나중에 편집 감독들이 이야기를 많이 해 주더라고요. 아빠의 말이 되게 재미있는 말이라고 하면서요. 저한테는 짜증 나는 말이었는데, 편집 감독들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이건 아빠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고, 이 말을 들을 주변 사람의 반응이 또 주변의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라고 해서 저도 다시 생각하게 됐던 장면이었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넣자고 결정하기까지도 저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임선애: 제가 〈양양〉에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순간은 양지영 고모의 그림자를 찾아가던 감독님이 어느 순간 고모의 삶과 자신의 삶을 맞대어 보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부분부터 마음이 더 끌렸고, '이 얘기를 같이 하기 위해서 이 영화가 시작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가족의 안과 밖에서 다른 고모의 모습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 역시 집 바깥에선 여성의 권리를 당당하게 외쳤지만 착한 딸, 누나, 아내,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 간극이 괴로웠다"는 나레이션이 있었는데요. 사실 감독님뿐만 아니라 저도 같은 생각을 하기 마련이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이 고모의 발자취를 찾아가던 중에 그 지점에 도착하신 건지, 아니면 구상 단계에서 그 부분을 염두하고 촬영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양주연: 사실 다큐를 만들면서 초반에 계획했던 구성안이 수십 번 바뀌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상황과 관계, 또 그 인물 안에 저 자신도 포함돼 있다 보니까요. 그러면서 제 마음이 계속 달라지는 상황들이 있었고, 이야기 전체의 구성을 계속 다시 쓸 수밖에 없었어요.
방금 말씀해 주신 부분은 후반부에 구성되었어요. 이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어렴풋이 '이 이야기가 고모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내 이야기이기도 하겠구나'라는 마음은 있었어요. 고모는 이미 지나가 버린, 이미 끝나버린 시간을 상징하는 존재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면, 그 머물러 있는 존재를 현재에 다시 흐르게 만드는 인물은 내가 될 수밖에 없겠다는 걸 감지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막상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저는 카메라 뒤가 익숙한 사람인데 카메라 앞에서 등장인물이 되고 동시에 이야기를 고민하고 선택하는 그런 과정들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다른 무엇보다도 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나레이션을 하나하나 완성하는 과정들이 저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도전하면서 저의 어떤 틀을 뛰어넘는 경험이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그런 가족 안에서와 밖에서가 다르다는 내용의 나레이션을 완성하는 과정 자체도 굉장히 힘들었지만, 고모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나는 저 나이대에 어땠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라고 계속 되뇌면서 완성한 문장이었어요.

임선애: 영화 곳곳에 물의 이미지가 나오잖아요. 애니메이션 안에서는 검은 물이 있고, 인서트 중 비가 오는 장면에서도 조그만 볼에 빗물이 넘치는 이미지가 있었고요. 같은 맥락에서 쓰시고 싶었던 걸까요?
양주연: 네, 맞습니다. 저는 초기부터 애니메이션을 구상했었어요. 검은 물과 상자 두 가지 컨셉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먼저 검은 물은 고모의 고인 시간을 상징해요.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고모가 존재하고 있는 시간 자체가 검은 물 안에 있도록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리고 상자 역시도 고모가 있는 공간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다 나가고 마지막에 희망이 남는 것처럼, 고모라는 사람을 통해서 비극과 동시에 희망도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검은 물이라는 컨셉이 중요했다 보니, 영화 곳곳에 물의 이미지로 연결해서 작동시켰던 부분입니다.
임선애: 다큐멘터리도 연출이 필요하잖아요. 그것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골목 장면이었는데요. 애니메이션에서 고모는 계속 뒷모습으로 보여주고, 감독님은 정면에 이어 뒷모습으로 등장하면서 카메라가 그림자를 한번 비추더라고요. 마치 애니메이션 안에 있던 고모를 실사로 끄집어낸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감독님의 뒷모습이 곧 고모의 뒷모습인 것처럼요. 콘티 단계에서도 고민을 많이 한 영리한 연출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해석으로 봐도 될까요?
양주연: 네, 맞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에도 고모의 그림자가 이어져 있거든요. 실사 촬영 장면과 애니메이션 장면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면서 작업했어요.
임선애: 그리고 초반에 '사라진 고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면서 고모의 죽음에 대해 관객들이 모두 알고 시작하잖아요. 그러다 화자인 나와 고모를 맞대어 여성의 위치성에 대해 보여주면서, 극영화 시나리오로 보면 2막 - 그러니까 두 번째 변곡점이 오더라고요. 고모를 지우려고 시도하던 기록들이 발견되는데요. 그런데 고모의 사망 일자는 고모가 고등학생 나이일 때인데, 감독님이 봤던 고모의 사진은 세례받는 사진이고 대학생 때죠. 그러면 고모가 자살했기에 은폐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뭉뚱그려서 생각해 오다가, '왜 고모의 20대까지 다 지우려고 했을까?' 생각이 들면서 미스터리가 생기더라고요. 음악도 그렇고 굉장히 극적이어서 저한테는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조금 평이할 때쯤 단서를 하나씩 제시하는 구성인데, 우리가 영화를 보는 시간 순서대로 감독님이 정보를 얻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양주연: 다큐지만 트리트먼트를 기반으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양양〉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다큐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 아니고,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한다는 조건 때문이었는데요. 여기에 더불어 제가 등장인물로 나오다 보니 어떻게 촬영할지, 어떤 모습으로 등장시킬지, 어떤 이미지를 활용할지를 더욱 고려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모든 장면에 촬영 계획서와 레퍼런스가 있었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 촬영 감독과 이미지를 맞춰보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극영화처럼 모든 장면이 콘티와 똑같이 촬영될 수는 없었어요. 다만 그 느낌과 샷 사이즈, 각도 같은 것들을 좀 더 이야기하면서 풀어가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 감독과 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구성안이 반드시 필요했어요. 촬영이 100% 진행되지 않은 상태더라도, 이야기 전체의 흐름과 방향성이 있어야만 사전에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거든요.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7년이 걸렸는데, 애니메이션 감독의 스케줄상 7년 동안이나 붙잡아둘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촬영이 50% 정도 진행됐을 때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1년 정도 걸렸는데, 이런 상황 안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도 너무 긴장되고 힘들더라고요. 가장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예산과 직결되는 부분이었어요. 디렉팅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귀한 제작비가 어떻게 될지 훤히 보였으니까요. 영화에 꼭 쓸 장면들을 만들기 위해서 애니메이션 감독님과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임선애: 제가 영화를 볼 때 같은 지점에서 계속 눈물이 났어요. 고모의 상황을 모두 알게 된 채로 아버지와 재차 인터뷰를 하는 장면인데요. 고모가 돌아가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버지가 교제 살인에 가까운 짓을 한 그 남자에게 향하는 분노보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고 이야기하시는 장면에서 모든 게 다 용서가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다큐가 훨씬 더 좋게 느껴졌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은 누군가를 코너에 몰게 할 수도 있는데, 누구 하나 소외시키지 않고 감독님께서 사려 깊게 각자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는 게 좋았거든요. 감독님은 그날 현장에서 아버지께 그 얘기를 처음 들으신 거잖아요.
양주연: 네, 맞아요. 저도 아빠와의 그날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사실 한 번도 저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말을 하신 적이 없었어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만큼 아빠가 갖고 있었던 무게가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아빠로서, 또 장남으로서 갖고 있는 무게와 책임감으로 인해 저에게 쉽게 할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나, 본인의 힘듦을 토로하는 식의 말씀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었어요. 아빠 역시도 할아버지를 원망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빠를 그냥 한 사람으로서, 양철원이라는 한 인물로서 바라보게 됐던 순간이기도 했어요. 아빠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걸 이해하고, 아빠의 감정에 더 가닿게 되면서 아빠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관객: 7년의 제작 과정에서 처음부터 이장(移葬)이 예정되어 있었던 건지, 아니면 도중에 이장이 결정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양주연: 사실 그게 다큐멘터리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준비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준비를 하지만, 갑자기 닥치는 상황들에 대해서는 열려 있는 상태 안에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이장은 중반에 알게 된 상황이어서, 영화 초반만 해도 이장을 할 거라는 설정은 없었고요. 〈양양〉 제작 과정의 중반 즈음에 갑작스럽게 이장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 거예요. 그건 저희 가족의 의지가 아니라 광주시의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가족의 무덤이 옮겨져야만 하는 상황이 갑작스럽게 생기면서 진행됐었습니다.
관객: 영화 제목에 대해서 질문이 있습니다. '양양'이 양씨 성을 부르는 거잖아요. 영어로 하면 'Miss Yang'. 영어 제목을 〈My Missing Aunt〉라고 지으셨는데, 'Miss'의 의미에 잃어버린 것을 찾는다는 뜻도 있지만 그리워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잖아요. 영화 제목을 지으실 때 이러한 중의성을 띠기 위해 이렇게 지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양주연: 네, 맞습니다. 영어 제목 〈My Missing Aunt〉도 초반에 〈양양〉이라는 제목과 같이 생각했던 건데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Missing'이라는 표현이 '잃어버린'이란 뜻도 있지만, 동시에 '그리워하는'의 뜻도 있어서 제 마음에 확 와닿는 단어였습니다. 두 가지 의미를 염두하고 영어 제목을 지었습니다.
임선애: 감독님께서는 딸이자 화자이기도 한 독특한 위치에 계셨잖아요. 그렇기에 경계하자고 생각하셨던 것들도, 지향하자고 하셨던 것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감독님께선 어떤 것을 참고하셨는지 궁금하고, 앞서 말씀드린 나레이션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어떤 고충이 있었는지 듣고 싶어요.
양주연: 주요하게 참고했던 영화들은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 영화였어요. 〈Chris the Swiss〉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는데요. 그 영화에서도 감독이 직접 화자로 등장하면서 돌아가신 삼촌의 시간을 묻는 여정으로 채워져 있어요. 삽입된 애니메이션 분량이 영화의 50%였는데요. 부재한 삼촌의 시간을 감독이 직접 애니메이션으로 그리기도 하고, 삼촌이 있었던 장소들을 찾아가면서 이야기하는 방식의 영화라 감명 깊었습니다. 또 애니메이션을 실사와 함께 유기적으로 잘 사용한 작품이기도 했어요.
또다른 레퍼런스는 〈Love Is Potatoes〉라는 영화인데, 그 영화 같은 경우도 러시아 대기근 당시의 가족의 역사를 묻는, 감독이 직접 등장하는 영화예요. 치매에 걸린 엄마의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마주하면서 대기근 상태에서 몰래 묻을 수밖에 없었던 가족을 또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찾아 나가는 이야기예요.
이런 식으로 해외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를 주요하게 참고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양양〉에서도 애니메이션이 다큐멘터리에서 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언어의 장치로 활용되길 바랐고, 다큐멘터리의 세계가 확장되는 계기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비전을 갖고 작업했었습니다.
현실 속 인물의 삶은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프로덕션 안에서는 무조건 결말을 내야 한다는 점이 나레이션을 쓰면서 힘들게 느껴졌어요. 이건 모든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공통적인 딜레마인 것 같아요. 현실의 타임라인에서 어디까지를 끝으로 정할지 선택하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 어려웠어요. 또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제가 되다 보니 제 삶의 혼란과 어려움을 겪는 동시에 〈양양〉 속 양주연이라는 인물을 어디까지 보여주고, 제 삶의 어떤 부분을 포착해서 인물로 구성할지 선택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었습니다.
임선애: 아까 보니까 아이가 아들이더라고요.
양주연: 아기의 성별을 알기 전에 스태프들끼리는 '딸이면 좋겠다' 했지만, 동시에 저는 딸이라면 되게 이상할 것 같았어요. 아들보다 딸을 더 바란 건 아니었지만, 딸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재차 확인하며 성별이 바뀔 가능성은 없는지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명확하게 아들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이건 역시 운명이구나' 생각했어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현실이나 영화나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저에게 더 넓은 세상에 대해서 말해주기 위해 아들이라는 존재가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저 역시 〈양양〉 안에서 여성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지만, 이 이야기에 남성의 이야기 역시 겹쳐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할아버지를 향한 아버지의 원망을 느끼면서, 이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는 여성과 남성 할 것 없이 한 존재로서 주어진 무게감과 역할들 안에서의 고군분투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환기했습니다. 제 아들 연우 역시 그런 존재로서 커가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관객: 양주연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솔직하게 해 주셨는데, 이 영화를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인터뷰에 응해 주신 고모 친구분들이 혹시 보셨는지,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구성을 어느 정도 잡고 시작하셨지만, 촬영하거나 편집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맞닥뜨리거나, 생각이 바뀌신 부분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도 양 씨인데 혹시 어디 양 씨인지…. (웃음) 저는 남원 양씨거든요.
양주연: 제주 양씨입니다. (웃음) 가족들이 전주국제영화제 때 다같이 오셔서 극장에서 보셨는데요. 꽉 찬 객석에서 같이 울고 웃으니까 더 재미있게 보신 것 같아요. 만약 관객 없이 혼자 본인의 모습만 봤으면 스트레스를 받으셨을 수도 있는데, 객석의 반응들을 실시간으로 들으면서 보시니까 만족해하셨어요. 예컨대 아빠의 사주 멘트에서 객석이 빵빵 터졌거든요.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 하신 말씀은 '편집을 굉장히 잘했다'였어요. 아빠를 인터뷰하면 보통 3시간 동안 계속 대화를 나눴는데요. 본인이 하셨던 이야기 안에서 정말 필요한 부분들이 잘 편집되어 들어간 것 같다고 이야기 해주셔서 저도 안심이 됐습니다.
그리고 엄마 역시도 제 지난 작품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씀을 많이 안 해 주셨는데, 〈양양〉은 계속 보고 싶은 영화라고 이야기해 주셔서 힘이 되었어요. 저희 남동생 같은 경우는 사실 영화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남동생의 이사를 도와주는 장면을 찍기도 했는데 분량이 굉장히 적게 들어간 상황에 불만족이 있더라고요. 배우의 꿈도 있는 친구이기 때문에 자기가 컨디션이 안 좋았었냐며 분량이 적게 들어가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임선애: 그래도 부모님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네요. 저도 〈69세〉를 처음 보여드렸을 때, 아빠가 딱 이렇게 말했어요. "선애야, 다음에는 액션을 찍어봐." (웃음) 갑자기 생각이 났네요.
양주연: 구성이 바뀐 지점에 대해 질문해 주셨는데, 사실 계속해서 바뀐 것 같아요. 그래서 편집본도 많고요. 편집이 안 끝나는 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로 계속해서 달라졌는데요. 가장 크게 구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건 결국 제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고모를 찾는 여정에서 제 감정이 유동적으로 바뀌는 것을 저도 느꼈기 때문에, 이걸 어디까지 담아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바꿨던 이유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자, 현실과 너무 괴리되지 않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가장 크게 바뀐 점을 예로 들자면, 영화 초반에 주연이 결혼한 여성으로 등장하지만 초기 구성에서는 대학생으로 등장했었어요. 왜냐하면 고모 이야기를 들었던 시점 자체가 대학교 졸업을 앞둔 밤이었기 때문이에요. 아예 그 시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걸로 구성했던 버전도 있었어요. 그런데 현실의 저는 30대 후반을 향해 가고 있는데, 〈양양〉 속 주연은 여전히 20대 대학생이라는 부분에서 계속 차이가 발생하더라고요. 특히나 저의 가장 현재적인 고민은 임신이었어요. '아기를 가질 수 있을까, 없을까. 가져야 할까, 말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시점이다 보니, 그걸 영화에 반영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다른 누구도 아닌 저의 이야기, 제가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보니 제 현실적인 고민도 같이 넣는 방향으로 수정이 들어갔습니다.
임선애: 후반부에 첫째를 딸을 낳아 죄인처럼 지낸 할머니 이야기, 부모님이 맞벌이였음에도 퇴근 후 돌아오면 엄마만 저녁을 차려야 했던 상황, 남자친구 집에서 죽었다는 이유로 존재가 지워져야 했던 고모의 이야기…. 여기에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을 가지게 되면, 내 이름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감독님의 불안까지 나오는데요. 이 모든 서사를 본 저 역시 어머니 세대와 고모 등 여성 가족 구성원들이 전부 떠올랐어요. 감독님이 원하시던 대로 잘 정리된 좋은 엔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저는 영화에서 가장 위기처럼 느껴졌던 부분이 고모 친구분께서 '이런 걸 과연 지영이가 밝히고 싶어 할까? 묻어두고 싶어 할 것 같은데'라고 말씀하셨던 순간이었어요. 그때 감독님도 흔들리셨을 것 같아요. 그때의 심정이 어떠셨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진행하시면서 어떤 사고의 과정을 거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양주연: 그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전화는 친구분과 인터뷰 촬영을 하기로 이야기하고 촬영 스태프와 공간까지 모두 섭외가 완료된 상황에서, 촬영일로부터 이틀 전 갑자기 온 전화였어요. 본인이 너무 힘들어서 더이상 촬영을 못 하겠다며, 촬영 취소 이야기를 꺼내는 맥락이었어요. 그때 제가 어떻게든 설득을 해 보려고 여러 대화를 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미 촬영이 잡혀 있기도 하고, 이분이 사전에 카메라 없이 2시간 정도 음성 인터뷰를 해 주셨었거든요. 그때 당시 카메라 촬영은 힘들다고 하시기에 음성으로라도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을지 여쭈니 그분 집으로 저를 초대해 주셨어요. 2시간 정도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분이 저에게 고모가 남자친구 집에서 발견됐다는 정보를 처음으로 알려주신 분이어서 그 내용을 카메라 앞에서 다시 한번 듣고 싶은 상황이었어요. 그분의 표정과 저와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꼭 담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는데 취소되니 굉장히 좌절스러웠죠. 그리고 '내가 이분을 힘들게 하고 있구나'하는 마음이 들면서 조금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 전화를 받는 장면도 '이렇게 찍겠다'고 정하고 찍은 것이 아니라, 저와 같이 살고 있는 고두연 PD가 찍어준 장면입니다. 제 남편이면서 〈양양〉의 PD이기도 한데요. 제가 힘들게 그분을 설득하고 있던 상황에, 고두연 PD가 조용히 카메라를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상황과 목소리가 그대로 담긴 장면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전화를 끊고 촬영 취소 연락을 돌린 후, 정말 힘들어서 강원도 양양으로 바다를 보러 갔습니다. (웃음) 누군가가 그랬었거든요. '〈양양〉 찍다가 힘들면 양양 한번 갔다 오시라'고요. 그 말이 갑자기 생각나서 원래 인터뷰 촬영이 예정됐었던 날까지 양양에 머물면서 힘을 충전했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그분께 '지영이도 싫어할 것 같은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는 마음이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그분을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건 우리도 모르는 일 아닐까요?"라고 이야기하며 절박하게 붙잡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임선애: 결과적으로 불안한 듯 찍힌 영상과 목소리들이 대면 인터뷰 때 나왔다면, 마치 감독님이 모든 걸 알고 있는 상태로 편집해서 보여준 것 같잖아요. 완벽한 장면이었습니다. 감독님, 마지막으로 오늘 어떠셨는지 한 말씀 듣고 싶어요.
양주연: 저희 〈양양〉 인스타그램 계정 @mymissingaunt 검색하시면 관련 소식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양』 동명의 에세이 책도 한겨레출판을 통해 발간되었습니다. 오늘 영화를 보시고 이후에 생각나는 질문이나 고민들이 있으시다면, 책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로 가닿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선애: 〈양양〉은 한국 사회의 기록이면서 애도의 영화인 것 같아요. 〈양양〉 감독님께서 고모 양지영의 이름을 호명해 주셨듯이, 영화 〈양양〉도 더 많은 관객들의 입에 호명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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