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여름이 지나가면〉: 다름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여름

by indiespace_가람 2025. 7. 20.

〈여름이 지나가면〉리뷰: 다름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여름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보민 님의 글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경계들이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용돈을 얼마 받는지 이야기했을 때, 나보다 다섯 배는 더 많은 용돈을 받는 친구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졌던 경험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 같은 줄 알았는데, 미묘한 위계가 있음을 최초로 깨달았던 순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옅어지더라도 그 씁쓸하고도 위축되는 감각은 피부가 기억한다.

〈여름이 지나가면〉은 13살, 15살 소년들에게 남성 사회의 위계질서를 투영해 그러한 미묘한 경계를 가시화한다.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영화의 중심은 다름 아닌 신발이다. 주인공 '기준'이 가진 아디다스 슈퍼스타. 왜 하필 신발이어야 했을까?

어릴 적 초등학교 복도의 신발장을 떠올려본다. 누구는 가지런히 두었고, 누구는 대충 두어 한 짝이 누워 있다. 떨어진 신발 한 짝이 복도에 덩그러니 있기도 한다. 누군가의 신발은 다 해어지고 꼬질꼬질 때가 타 있다. 누군가의 신발은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그려져 있고 잘 관리된 듯 깨끗하다.

신발만 봐도 알 수 있다. 신발을 둔 아이들이 어떤 성격인지, 그리고 가정 형편은 어떠한지. 안 그래도 발육이 빨라 신발을 자주 바꿔야 하는 나이에, 매번 그런 신발을 신겨주려면 가정에 상당한 경제력이 필요하다.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는 경계가 허물어진다. 아니, 허물어진다기보다는 애초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영문 형제의 집을 바라보는 세 명의 남성 사이에서 선명하게 대조되는 점이다.

기준은 자신의 집과 영문의 집이 어떤 점에서 다른가에 별 관심이 없다. 차이를 언뜻 느끼기는 하겠지만,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가 관심 있는 건 단지 게임 실력이다.

하지만 영문을 보복하기 위해 찾아온 옆 동네의 불량 소년이나 기준의 아빠는 어떠한가? 아마 고등학생일 것으로 추정되는 불량 소년들은, 영문의 집에 무단 침입해 처음 뱉는 대사가 이것이다. '거지 새끼가?‘
기준의 아빠 또한 영문의 집을 눈으로 쓱 훑어보며, 무시하는 뉘앙스가 은근하게 깔린 태도로 영문에게 말을 건다.

그래서 관객은 모든 사건을 겪은 후에도 '네가 쟤들이랑 같은 줄 알아?'라고 혼내는 경찰에게 여전히 '뭐가 다른데요?'라며 스스럼없이 맞받아치는 기준에게 놀랄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된 우리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 대답이기 때문에. 다름이 문제가 되지 않는 시절은 이때가 마지막인지도 모른다.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기준의 대답을 단지 철없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경제적 우위에 있는 기준은 왜 영문을 흉내내고 싶었을까? 영문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위축되고 씁쓸함을 느껴야 할까.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잃은 것이 없는 기준과 삶이 송두리째 뒤틀린 영문이 남아 있다. 가장 명확한 차이는 기준은 떠나지만 영문은 시골에 남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는 점이다. 떠날 수 있는 자와 남아야만 하는 자 사이의 경계. 기준이 언젠가 그 경계를 깨닫게 될 때, 과연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뭐가 다른데요?"라고 묻는, 기준의 아직은 순수한 목소리가 맴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