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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여름이 지나가면〉: 모른 채 지나온 여름의 얼굴

by indiespace_가람 2025. 7. 20.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모른 채 지나온 여름의 얼굴

〈여름이 지나가면〉 그리고 〈우리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다원 님의 글입니다.



여름이었다,라는 말로 포장하기엔 낭만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더위 속에 우리가 한 시절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일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더위뿐만은 아니었던 어린 시절을 우린 어쩌자고 덜컥 불러내 그 기억에서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걸까? 시원하고 달큰하지만은 않은, 어쩌면 씁쓸하고 시큼했던 그 기억을 여름과 함께 되새기자면 사실 우리가 겪는 이 여름은 습하고 덥고 짜증스러운 얼굴과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여름이 지나가면〉은 건조하다 못해 버석한 여름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같은 여름의 순간을 지나며, 다른 삶으로 나아갈 소년 기준과 형제 영문, 영준에 대해 말한다. 서울에서 온 기준은 새로운 관계와 그들만의 생태계에 편입되며 영문과 영준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과 가까이 지내며 어른들이 쉽게 ‘다르다’고 말하는 세계에 편입되고자 한다. ‘넌 저 애들과 다르다’는 어른들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기준은 멋지고 재밌기 때문에 일상을 바꾸어 나간다. 영문과 영준에겐 익숙하고 무수한 하루들 중 하나였던 그 여름이 기준은 무언가 새로운 자극의 여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여름이 지나가면, 영문과 영준은 아직 미성숙한 얼굴로 가을을 맞아야 한다. 기준이 이 방황의 여름을 보내고 언제든 새로운 여름의 얼굴을 찾아 나설 때 말이다. 누군가에겐 지나갈 에피소드일 테지만, 누군가에겐 삶이었던 그 여름을 영화는 뜨겁다 못해 차가운 시선으로 보여준다. 

 

영화 〈우리들〉 스틸컷


〈우리들〉은 얼굴이 빨갛게 익다 못해 땀이 줄줄 나는 여름의 얼굴을 보여준다. 선과 지아의 여름을 보여주며 그들이 얼마나 재밌게 뛰어놀았는지를 조망한다. 우리가 기억을 애써 더듬어 달콤한 기억만 길어 올리며 공감하고 있을 때 영화는 사실 우리의 그 시절엔 씁쓸한 맛이 더 많았음을 말한다. 친구와 비밀을 나눌 때면 마치 포개진 것만 같았고, 멀어지면 영영 못 닿을 거리만큼 떨어진 기분이 들던 그 순간을 어른이 되어 되새기고 있자면 그 거리가 괜히 더 크게 느껴졌던 게 단지 몸집이 작아서였기 때문은 아니라는 걸 깊게 깨닫는다. 아직 손톱에 그날의 여름이 남아있는데 며칠 새 낯설어진 지금의 여름을 마주한 선의 얼굴을 보면, 그 시끄러운 피구의 현장에서 마주 보게 된 선과 지아의 시선을 바라보면 그 애들의 여름이 아닌 우리들의 시절이 여기 기록되어 있는 것만 같다.

갈증과 뜨거움으로 읽히는 그때의 여름을 돌아보며 우리는 지금 우리의 얼굴을 발견한다. 아픔을 사춘기란 말로 간단히 누르던 어른의 얼굴에서 과거의 내가 마냥 행복했으리라 믿었던 커버린 나의 무지를 깨닫는다. 더위에 목이 마른 것보다 놓쳐버린 뜨거운 손이 더 간절했던 영화 속 아이들의 말에서 지금 내 얼굴에도 서투름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우린 여름에서, 그리고 영화에서 과거의 흔적을 길어 올리는지도 모른다. 모른 채 지나온 마음을 잘 접어 두기 위해.

* 영화 보러 가기: 〈우리들〉 (윤가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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