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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안녕, 미누〉: 무엇이 한국을 만드는가

by indiespace_한솔 2020. 6. 10.





 〈안녕, 미누〉  리뷰: 무엇이 한국을 만드는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유진 님의 글입니다.





2002년은 우리에게 월드컵으로 기억된다. 모두가 하나 된 조국을 꿈꾸던 시기, 텔레비전에서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어느 나라를 응원하는지 묻는 방송이 지겹도록 전파를 탔다. 국경이 말랑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은 전지구화 과정에 동참하면서 외국의 노동력이 국내로 유입되었다. 미누 또한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1992년 한국 나이로 스물한 살이었던 미누는 창신동 가스밸브 공장을 거쳐 봉제공장의 재단사로 일하며 떠돌이 생활을 이어간다. 골목길의 생선구이 냄새는 역했고 한국 음식은 먹을 수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따스한 사람들이 있었던 정겹고 그리운 날들로 기억한다. 그 시절 미누는 한 아주머니로부터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를 배운다. 고향은 다르지만 만리타향으로 떠나온 처지는 같았기에 함께 공감하고 슬픔을 나눌 수 있었다.





 미누는 노래를 잘했다. 사랑 노래, 이별 노래만 부르던 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2003년의 일이다.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단속과 추방을 벌였다. 라디오 방송을 듣던 미누는 자신이 단속 대상임을 알게 된다. 10년을 넘게 한국에 노동력을 바친 대가는 추방이었다. 열흘 동안 1233명이 연행됐고, 606명이 강제 추방당했다. 이에 저항하던 11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떤 언론도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지만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추방 반대 시위는 계속되었다. 대한민국을 하나로 만들었던 대한민국구호는 추방철폐로 바뀌었다. 허울만 좋은 통일이니 글로벌이니 하는 말들은 금세 실체를 드러냈다. 한국은 여전히 배타적인 사회였다. 미누는 스탑크랙다운밴드의 보컬로서 강제 추방을 반대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무대에서 끼는 목장갑은 그의 상징이자 노동자들의 잘린 손에 대한 은유다. 숨어 살지 않아도 된다. 이주노동자를 차별하지 말라. 미누는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였다.





스탑크랙다운의 노래 ‘We make Korea’의 가사는 꽤나 상식에서 벗어난다. 스스로를 한국의 동력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이주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와 아들들의 비애로운 삶과 조국의 발전을 쉽게 연결시키는 한국현대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척이나 반항적이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력에 의해 한국사회가 지탱된다는 점은 유구한 사실이다. 이주민들은 노동력으로 사용될 뿐 사회 일원으로서 응당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법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네팔 말보다 한국어가 더 익숙하다던 그는 2009년 결국 강제추방 당한다. 오랜 기간 한국에 있다 보니 본인이 한국 사람인 줄 알았다는 그의 말은 가슴에 깊게 남는다. 네팔에서 살아온 시간만큼 한국에서 살았던 그는 한국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경계를 허무는 사람이었다. 고향에 돌아간 미누는 한국행을 선택하는 네팔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친다. 그가 만든 교재에는 이런 예문이 등장한다. “반장님, 손가락이 잘렸어요” “그래, 손가락 찾았어?”. 회화 교재에 실렸다기에 퍽 잔인하고 적나라한 대화는 결국 이러한 위험상황이 일상적이라는 방증이다. 한편으로 이는 이민자들이 내 일자리를 빼앗으리라는 한국인들의 막연한 두려움을 전복한다. 이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작업장 산재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행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의 한국행이 예외조항 적용으로 인해 좌절되었던 2017년 스탑크랙다운의 멤버들이 네팔로 와 천여 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미누와 함께 공연을 진행한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미누는 나 이제 죽어도 좋아. 한이 풀렸어라며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풀썩 주저앉는다. 우리는 미누의 다음을 상상한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왔을까. 지금이면 강제추방 이후 10년이 지났으니 한국에 들어올 수 있을 텐데.

<안녕, 미누>가 제 10DMZ국제다큐멘터리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23일간 한국에 머물 수 있었다. 그나마도 일산과 파주 일대로 이동이 제한되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미누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새카만 화면에 흰 글씨로 뜨는 자막은 무정하고 허무하다. 활활 타는 그의 시신이 이상하리만큼 비현실적이다. 포스터의 제목도, 카피도 다시 읽힌다. 그래도 행복했어요, 진짜. 안녕, 미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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