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걷는 소년〉 리뷰: 손을 마주 잡고 다시, 파도를 걷는 일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유진 님의 글입니다.
<파도를 걷는 소년>은 이주노동자 2세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하며 시작한다. 주인공 김수는 외국인 불법 취업 브로커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 2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비추는 영화일 것이라는 기대를 보기 좋게 빗겨나간다. 그저 사람에 대한, 청춘에 대한,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영화다. 그런 점에서 다소 어색한 몇몇 배우의 연기도, 잔잔한 영화의 진행 방식도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의 분위기에 일조했다.
“여기가 당신들 바다예요?”
수는 자기 멋대로 흘러가는 삶을 어찌할 수 없다. 어쩌면 이미 "노오력"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서핑을, 서핑하는 사람들을 동경했던 것일까. 서핑은 파도를 받아들이며 시작한다. 거대한 바다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뒤에야 파도를 잡을 수 있다. 파도를 멈추게 하는 게 아니라 파도의 힘을 사용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무식하게 하지말고 임마, 배에 힘주고, 시선 정면, 한 팔씩, 한 팔씩.”
우리는 늘 미숙한 태도로 삶을 마주한다. 그래서 무식하게 들이받고, 좌절하고, 포기하곤 한다. 서핑샵 사장인 준식은 항상 그렇게 살아온 수의 삶에 브레이크를 밟게 한다. 한숨 돌리고, 우리 천천히 가자. 다정하게 말을 걸어준다. 준식의 이러한 여유의 동력은 서핑 그 자체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대한 바다에서 작은 보드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고, 넘어지고, 다시 일으키는 과정은 어떤 일이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파도를 잡는 순간이 왔을 때 그럼에도 여기 이렇게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파도 잡겠다고 안간힘을 쓰면서 타는데 가만히 보니까 길이 보이더라. 옆에 보니까 나랑 같이 보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고. 잘 모르겠어. 서핑이 좋은 건지. 그게 좋은 건지.”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가끔은 그 사람들 덕분에 그 일이 더 좋아지기도 한다. 나에게는 복싱이 그렇다. 한 달 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순간은 지루했지만 함께 땀을 흘리고,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계속하고 싶었다.
각자의 세계는 좋아하는 일들, 그리고 교류하는 사람들을 통해 형성된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잘 가꾸어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 속 서퍼들은 서핑, 그리고 함께 좋아하는 사람들 덕분에 행복하고, 평화로워보였다. 수도 서핑을 만나 자신만의 세계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수의 여정이 궁금하다면 영화관을 찾아 이 영화를 만나보길.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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