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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어떤 여성, 어떤 영화에 대한 소회

by indiespace_한솔 2020. 6. 9.




2020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상영작

 〈파견;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리뷰: 어떤 여성, 어떤 영화에 대한 소회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보라 님의 글입니다.


 


많은 영화제들이 잠정 연기되는 시국에 전주국제영화제 또한 운영방식을 온라인 상영으로 전환했다. 몇 편의 영화들을 봤지만, 그 중 많이 말해지지 않은 영화를 한 편 소개할까 한다. 이태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이하 <파견>). 본편에서 막내역할로 출연한 오정세는 배우상을 받았다(<빛과 철>의 염혜란과 함께 수상했다). 물론 그의 연기는 훌륭했고, 그래서 이 수상에 딴지를 걸 의향은 없지만, 사실 <파견>의 서사를 오롯이 끌고 가는 건 주연 정은이며 그 역할을 맡은 배우 유다인의 공 또한 크다. 더욱이 본편이 남성들의 세계에서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려는 여성의 이야기인 만큼 이 역할과 배우가 더 주목을 받았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지면은 더 발화되지 못한 경우에 관한 부연을 위해 기능하기도 한다.

 

정은은 남성중심의 회사에서 부당하게 하청업체 현장직으로 파견된다. 초반부를 보며 걱정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여성에게 적대적인 사내 분위기와 사회 환경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단순 나열하는 데 그칠까봐 초조했다. 중반부를 지나면서는 현장 일에 참여하기 위해 분투하는 정은이 마침내 철탑 위에 오르는 데 성공하고 주변 남성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문제가 봉합될까봐 미심쩍었다. 영화는 그 중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막내가 정은에게 일을 가르쳐줄 때조차 그것은 맨스플레인이 아니라 차라리 딱딱한 거래에 가깝다(부업이 필요한 막내에게 정은은 돈을 주고 노동을 배운다).

 



이 위험천만한 노동의 값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정은이다. 현장 일에 제일 무지한 정은이 거기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철탑에 오르려면 와이어 브래지어를 벗고 작업복을 입어야 한다. 그의 몸은 온갖 무거운 기구들을 드는 데도 수월하지 않다. 거기에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로 인해 고소공포증은 극심해졌다.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하는 대로 헛짓 한다며 욕을 먹고, 가만히 있으면 근무평가라는 제도가 그를 해고의 위기로 몬다. 그야말로 직접 나가떨어지라는 셈이다. 관객은 정은이 이 상황들을 과연 버텨낼 수 있는지 염려되면서, 차라리 포기해줬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본편의 부제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가 아니던가. 돌아갈 곳 없는 사람에게 포기해달라는 요구는 아무리 선의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잔인하다. 정은의 행위는 가족과 회사와 동료 모두가 자신을 포기하더라도 자신만큼은 스스로를 놓지 않겠다는 긍정을 담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러고 보니 나는 여성 고공노동자의 이미지를 본 기억이 희미하다. 이름도 어려운 장비들을 온몸에 두르고 철탑을 오르는 여성, 아찔한 외줄을 타고 전선작업을 진행하는 여성 말이다. <파견>은 남성들의 세계에 홀로 던져진 여성에게 온전히 주목한다. 그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오로지 스스로의 존엄을 위한 여정이다.





영화의 한 순간을 말하고 싶다. 막내는 별안간 자동차 열쇠를 저 먼 철탑의 한가운데에 놓고 내려온다. 정은은 그것을 반드시 가져 와야 한다. 공포와 맞선 정은은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고 결국 열쇠를 잡는다. 이제 내려오면 된다. 그런데 정은은 더 올라간다. 정지된 카메라는 정은의 두 발이 위쪽으로 벗어날 때까지 가만히 있다. 정은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오른다. 그리고 그 행위는 종국에 자신이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불빛이 된다. 숭고하다는 단어는 이런 데 필요할 것 같다. 코가 시큰해지는 이 광경을 보며 정은을 응원하지 않기란 힘들다. 그리고 이 여성을 연기한 유다인 또한 마땅한 이목을 얻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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