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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나는보리〉: 다양한 언어의 모양을 포착하는 영화

by indiespace_한솔 2020. 6. 3.




 


 〈나는보리〉  한줄평


서지원 사랑하는 이의 숨소리에 다가서려하는 손끝





 〈나는보리〉  리뷰: 다양한 언어의 모양을 포착하는 영화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김진유 감독의 <나는보리>의 주인공 보리는 가족 중 유일한 청인이다. 농인인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CODA(Children of Deaf Adult)’인 보리의 일상은 평온해 보이고, 보리의 가족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화목해 보인다. 하지만 보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문득문득 시무룩한 표정이 엿보인다. 예를 들면 다 같이 밥을 먹을 때 보리의 표정은 사뭇 복잡하다. 보리를 제외한 엄마, 아빠, 동생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표정을 살피며 대화한다. 고요하지만 그 어느 가족보다 수다스러운 식사. 하지만 보리는 그런 모습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서로 눈을 보며 수어로 대화하는 이들 사이에서 보리는 그들의 언어로 쉽게 스며들지 못한다. 따뜻한 가족 그 사이에서 느끼는 왠지 모를 소외감을 보리는 명확히 소리 내어 표현하지 못하고 다만 무언의 감정 표현을 한다. 밥 먹기를 포기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행동으로.





영화 초반부의 일련의 장면으로 알 수 있듯이, 농인 가족 중 유일한 청인인 11살 보리의 가장 큰 고민은 외로움이다. 화목한 가족 사이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가도, 그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왜 나는 엄마, 아빠, 동생과 다를까라고 고민한다. 이따금 거울을 보며 자신의 귀를 살피고 보리는 매일 같이 소원을 빈다. ‘소리를 잃게 해주세요


보리가 남몰래 비는 소원이 소리를 잃게 해달라는 것임이 밝혀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다소 충격을 받았다. 보리가 느꼈을 외로움에는 공감했지만, 소리를 잃고 싶다는 그의 소원에 처음에는 온전히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느낀 충격이 새삼 청인인 나의 시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듣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리의 소원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보리에게 소리를 듣는다는 건 단지 가족과 자신을 구분 짓는 것일 뿐이고, 오히려 가족들과 소통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그런 그에게 소리를 잃고 싶다는 소원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생각의 결과다. 보리가 차마 말로 꺼낼 수 없어서 속으로 끙끙 앓았던 고민, 농인 가족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나도 소리를 잃으면 자연스럽게 대화에 낄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그의 시선을 단순하거나 순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장애 여부로 정상, 비정상을 가르고 또 무엇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편협한 사회의 시각을 향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시선이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에서 보리가 자의적으로 소리를 잃게 되자 이전에는 보리에게 보이지 않았던, 그들 가족과 농인을 바라보는 무례한 시선이 보리에게도 다가오기 시작한다. 함부로 연민하거나 대놓고 멸시하는 시선들. 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겪는 상황을 마주하지만 보리에게 그런 시선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보리에게 중요한 건 엄마, 아빠가 농인으로 살아갈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자신이 농인이 되자 왜 엄마는 슬퍼했는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다. 보리는 이전보다 솔직하게 질문한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정우의 언어인 수어로 가족들과 좀 더 깊이 소통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보리>는 보리가 또 하나의 언어인 수어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담고 있는 영화인 것 같다.





<나는보리>의 풍경은 참 동화처럼 맑다. 바다와 가까운 마을의 풍경과 온 가족이 함께 마루에서 낮잠을 자는 그 풍경이 너무나 맑고 투명하여 한편으론 한국 독립영화에서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있었나 되묻게 하는 정도의 맑음이 존재하는 영화다. 이 맑고 투명한 풍경만큼이나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도 곧다. 진정한 소통은 소리의 유무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 사실 간단한 이야기다. 소리 내어 말하든, 손으로 말하든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에 닿을 수 없다는 것. 영화 초반부에서 보리의 마음을 몰라주고 즐겁게 밥을 먹는 가족의 모습을 보며 보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등을 돌리는 것에서 시작한 영화는 보리의 환한 표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는 법을 말하는 이 영화가 여러 메시지로 많은 관객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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