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일기를 쓴다면 인디피크닉 2020 〈남매의 여름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0년 5월 16일(토) 오후 4시
참석 윤단비 감독|배우 최정운, 박승준
진행 이숙경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보라 님의 글입니다.
지난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비전 부문에서 공개되어 넷팩상,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KTH상 등 4관왕을 기록한 <남매의 여름밤>이 ‘서울독립영화제 순회상영회 인디피크닉2020’을 통해 다시 극장을 찾았다. <남매의 여름밤>은 옥주네가 단출한 이삿짐을 옮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옥주네는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의 낡은 집에 여름방학동안 얹혀살게 된다. 제목의 ‘남매’는 옥주와 남동생 동주이면서, 아버지 병기와 고모 미정의 관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두 남매들이 할아버지의 집에 모여 보내는 어느 여름의 이야기를, 윤단비 감독은 ‘옥주가 가족에 대해 일기를 쓴다면 어떤 내용일까’라는 착상에서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일찍이 입소문이 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많은 관객들이 인디스페이스를 방문했다. <남매의 여름밤>을 향한 관객들의 기대를 실감할 수 있는 날이었다. 5월 16일에 진행된 <남매의 여름밤> 인디토크에는 윤단비 감독과 최정운 배우, 박승준 배우가 함께했으며, 이숙경 감독이 진행을 맡았다.
이숙경 감독(이하 이숙경): 안녕하세요(웃음). 반갑습니다. 보통 GV를 하게 되면 질문이 바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진행자가 먼저 질문을 하는데, 오픈채팅방에 바로 질문이 올라오네요. 그래도 제가 사심 어리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먼저 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분들도 이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저는 이 영화를 여름마다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볼 때마다 하고요. 개인적으로 왜 우리나라에는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비정성시> 같은 영화나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 같은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어요. 작년에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남매의 여름밤>을 보고 이제 그런 생각 안 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주신 감독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우선 감독님과 배우분들 목소리를 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윤단비 감독(이하 윤단비): 안녕하세요, <남매의 여름밤> 연출한 윤단비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시국이 어수선해서 많이들 보러 와주실까 걱정했는데, 자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최정운 배우(이하 최정운): 안녕하세요, <남매의 여름밤>에서 옥주를 연기했던 최정운입니다.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승준 배우(이하 박승준): 안녕하세요, <남매의 여름밤> 동주 역할을 맡은 박승준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숙경: 최정운 배우님. 영화 마지막에 우는 장면을 보시고 ‘배우님이 연기하실 때 어떤 생각하시면서 연기하셨는지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이 올라왔는데, 저도 몹시 궁금했어요. 이 긴 연기를 어떻게 하셨을까.
최정운: 그게 거의 마지막 신이었는데, 그렇게 감정이 북받쳐서 연기하는 게 처음이어서 걱정도 많이 되고 처음에는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당황하고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아빠로 나오신 양흥주 배우님과 고모 역할로 나오신 박현영 배우님께서 옆에서 엄청 도와주셨거든요. ‘이런 생각을 해봐라’ 아니면 ‘할아버지랑 여태까지 찍었던 시간들을 생각해보는 건 어때?’ 이런 식으로 제가 이 상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시고, 또 감독님과 촬영감독님이랑 다른 분들도 절대 재촉하지 않고 계속 기다려주셔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숙경: 그럼 그 순간에 결정적으로 눈물이 나오고 감정이 잡히기 시작한 장면은 뭐였어요?
최정운: 그게 앞의 소파를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노래를 들으시던 소파였어요. 거기에 아무도 없는 걸 생각하니까 감정이 북받치더라고요. 노래도 들으시고 웃으시기도 하고 얘기도 했던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확 올라왔던 것 같아요.
이숙경: 할아버지가 혼자 새벽에 장현의 ‘미련’을 들으면서 앉아 계셨던 장면 있잖아요. 그 날 촬영했을 때는 어땠을지 궁금해요. 제가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충격을 받을 정도로 그 장면에서 다가오는 힘이 컸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어떠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최정운: 할아버지가 노래를 들으시는 장면에서는 제가 어떤 노래가 흘러나와서 다가갔다가 말을 걸거나 제 존재를 알리지 않고 계단에 앉아서 조용히 듣잖아요. 저는 찍으면서 아무래도 아직까지 할아버지한테 뭔가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건 서툴지만, 그런 유대감이 쌓이면서 마음속으로 서서히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장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시끄러운 밤인데 ‘시끄럽네?’ 이런 느낌이 아니고 ‘할아버지는 이런 음악을 좋아하시는구나.’ 하면서 어떤 분위기와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듣는지 공감을 하려고 생각하며 노래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숙경: 감독님이 미리 동선을 다 계획하셨을 것 같은데, 옥주가 할아버지를 보다가 한참 멈춰 서있다 앉아서 음악을 같이 듣잖아요. 그 장면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윤단비: 사실 저희 영화가 스토리보드를 전체적으로 구상하고 만든 영화는 아닌데, 두 장면 정도는 스토리보드를 구상했었어요. 고모부가 와서 싸우는 장면이랑 음악을 듣는 장면인데, 이 장면은 촬영감독님이랑 얘기할 때 저희가 <화양연화>를 생각했었어요.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사실은 전혀 다른 멜로의 이야기지만. 함께하지 않는데 음악을 같이 듣는 행위가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음악을 함께 듣는 모습이 감정적으로 세게 와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편집할 때도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어떤 식으로 이 둘의 모습을 보여줄지. 촬영을 할 때에도 그런 정서를 생각하며 연출했습니다.
이숙경: <화양연화>를 연상하셨을 거라고 조금은 생각했지만, 보는 입장에서 저는 상대방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해주는 그런 장면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어떻게 이런 구상을 했을까 궁금했고요. 또 다른 질문입니다. 동주를 캐스팅한 과정이랄까요? 박승준 배우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는지 궁금하고 박승준 배우 역시 처음에 오디션 봤을 때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윤단비: 동주 역 같은 경우는 아역배우 매니지먼트 학원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배우를 찾는 데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중 승준이가 들어왔는데, 표정이 너무 안 좋고(웃음)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들어왔더라고요. 그래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주차장에서 조금 자고 왔는데 너무 피곤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순서를 미뤄줄 테니까 맨 뒤에 다시 보자 했는데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 등을 너무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어떤 아역배우의 공손한 태도 그런 게 아니라 배우로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친구구나, 그리고 영화에서 이 친구가 자기 끼를 다 보여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친구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박승준: 너무 졸려가지고 뭐라고 했는지 잘 모르고 빨리 나왔어요. 그래서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오디션 끝나고 딱 나왔을 때, 엄마가 ‘너 백퍼센트 안 된다’고. (좌중 웃음) 그래서 안 묻고 있었는데 갑자기 캐스팅 되었다고 해서 놀랐어요.
이숙경: 시나리오 속 원래 동주 캐릭터에 맞게 캐스팅을 하신 건지, 어느 정도 배우의 캐릭터에 맞게 시나리오를 많이 수정하셨는지요?
윤단비: 시나리오에 맞는 인물이었고, 동주가 승준과 잘 맞았어요. 그런데 영화를 찍으면서 더 살리게 된 장면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이숙경: 승준 배우가 춤추는 장면 있잖아요. 그건 원래 콘티를 쓰실 때부터 구상하신 거예요, 아니면 촬영하시면서 발견하신 거예요?
윤단비: 지문에 ‘생일파티에서 춤을 춘다’라는 내용은 있었는데, 촬영 전날까지도 승준이가 춤을 안 보여줬어요. 그래서 저도 긴장하고, 다들 긴장한 상태로 슛이 들어갔는데 너무 뻔뻔하게 춤을 추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현장에서도 웃음이 많이 터진 장면이었고, 춤에 대한 디테일한 장면들을 몇 개 보여주기는 했는데 승준이가 추고 싶은 춤으로 영화엔 남겼어요.
이숙경: 승준 배우님은 춤을 미리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박승준: 춤을 출 게 없어서 그 전날 잠깐 생각해봤는데, 촬영할 때 입은 바지가 잘 늘어나서, 그럼 이걸로 하면 어떨까 했어요.
이숙경: 올려주신 질문 중에 음악에 관련한 질문들이 있는데, 저도 이 영화는 공간과 음악, 시간, 빛, 여러 가지 영화의 톤과 무드가 하나의 구상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해요. 그 중에서 가장 힘 있게 다가오는 게 음악인 것 같아요. 신중현의 ‘미련’을 선택하신 과정과 전체적으로 영화 안에서 음악의 기능을 어떻게 계획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윤단비: 초반에는 신중현 선생님의 ‘미련’을 영화에 삽입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그냥 김추자 선생님의 곡을 넣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영화의 톤과 김추자 선생님의 ‘미련’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미련’을 전체 테마곡으로 사용하게 됐는데, 음악을 최대한 삽입하지 않는 것이 사실 저희 방향성이긴 했거든요. 그래서 외부에서 음악을 삽입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틀어둔다든지 라디오에서 들린다든지 거의 그런 식으로 음악을 넣었고, 그렇지 않은 예외적인 장면이 두 군데인데, 엔딩 장면이랑 옥주가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에요. 거기서도 음악을 삽입하는 것이 과연 좋을지 고민을 했지만 그 두 장면은 예외적으로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정서를 보여주고자 넣었어요. 나머지는 이 테마에 맞춰서 집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이 들려오면 좋겠다는 구상을 했습니다.
이숙경: 그리고 옥주라는 인물을 그려나갈 때, 배우를 캐스팅하는 과정이 중요했을 것 같은데요. 여러 후보가 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의 배우님을 선택한 이유, 과정이 좀 궁금합니다.
윤단비: 정운 배우를 처음 본 것은 <빛나는 물체 따라가기>라는 단편영화였는데, 그 당시 작품은 보지 못했고 스틸 이미지를 봤는데 화면을 응시하는 힘이 강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만났을 때는 생각보다 평범한 고등학생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게 이 영화와 잘 맞고 옥주를 잘 살려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기성 배우의 느낌보다 고등학생의 느낌을 더 잘 담아낼 수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한번 미팅을 하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어요.
이숙경: ‘각기 다른 두 남매를 한 마디나 한 단어로 어떻게 표현하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도 올라왔어요. GV 다니실 때 두 남매에 관한 질문도 많이 들어오고 하지 않았을까요?
윤단비: 한 마디로 설명하기가 굉장히 어렵네요. 관계성을 두고 두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에... 각 인물이 아니라 관계로 이야기하자면, 저는 병기와 미정이 어쩌면 동주와 옥주의 미래거나 혹은 옥주와 동주가 병기와 미정의 과거 모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썼어요. 그래서 이 둘이 병치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둘의 과거와 미래가 혼재된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숙경: 영화의 힘이 거기에 있는 것 같은데, 두 남매의 어떤 삶의 맥락들이 연결되는 것 같아요. 또 할아버지도 그렇고요. 그 이야기들을 집이라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감싸고 있고, 집 곳곳에 아른거리는 빛과 그림자, 빨래나 벽에 비치는 자연광과 그림자, 이런 식의 여백을 통해서 사람들이 따라갈 수 있도록 끌어가는 촘촘한 구조를 만드신 것 같아요. 사실 보기에는 쉽게 영화가 완성되어서 저희가 충분히 감흥이나 정서적 전달을 받았지만,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안팎의 저항이 있지 않았을까.(웃음) 뭔가 센 게 없잖아요. 조금 더 강력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얘기가 궁금합니다.
윤단비: 오히려 초고는 가족의 드라마틱한 사건을 담으려고 했었어요. 제 첫 장편작이기도 하다 보니까. 가족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면서 이 가족이 어떤 사건을 겪고 할아버지를 이용한다든지, 이런 목적성이 분명한 이야기를 생각했었는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니 이 이야기가 좀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는 피드백을 들었어요. 그 원인이 뭘까 생각해보다가 제가 너무 객관적인 구조나 사건으로만 이야기에 접근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이 이야기를 가족의 일기 같은 느낌으로 잡아봤어요. 아무래도 옥주를 가장 많이 생각했고, ‘옥주가 가족에 대한 일기를 쓴다면 어떤 내용을 쓰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큰 틀은 할아버지를 만나서 헤어진다는 것만 두고 나머지는 그 안에서 겪는 마음의 파동 같은 것들을 담아내려 했고, 제가 옥주의 마음에 동화가 됐을 때 촬영에 들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숙경: 시나리오가 확정됐을 때, 그리고 촬영을 하면서 ‘아, 이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가깝다’라는 확신이 들었던 거죠? 옥주 배우님은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어땠어요?
최정운: 사실 저는 오디션에 보러 갈 때 시나리오에 대한 생각은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연기를 해야 잘하고 올 수 있을까, 후회 없는 오디션을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만 했고, 다음에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을 때 다시 시나리오를 주셔서 읽어봤어요. 처음엔 옥주가 많이 안됐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 저희 할아버지도 생각나고. 그런 부분에서 공감하며 읽었던 것 같아요.
이숙경: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궁금해요. 촬영장이라는 것은 배우가 갖는 또다른 경험이잖아요. <남매의 여름밤>을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정운: 지금 딱 기억나는 건, 자전거 신 있잖아요. 그게 한 3일 정도 찍었어요. 3일 내내 찍은 건 아닌데 찍어야하는 시간대가 있다 보니까 엄청 여러 번 찍었는데, 내리막길이어서 자전거가 생각보다 빨리 내려갔어요. 브레이크를 안 잡으면 정말 빨리 가는 거예요.(웃음) 속도를 열심히 조절하면서 머리로는 옥주가 어떤 생각을 할까, 엄청 생각했어요. 그 장면이 되게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해서요.
이숙경: 그리고 두 남매가 싸우는 장면 있었잖아요. 그때 동주가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 흘리고 그러는데, 실제로 연기를 하니까 정말 억울하고 화가 나고 그런 감정이 들었나요?
박승준: 음, 싸움 장면에서는 딱 끝나고 나니까 기분도 좋고, 칭찬도 많이 받아서. (좌중 웃음)
이숙경: 칭찬 받을 만해요. 긴 테이크잖아요. 감독님은 그때 어떤 식으로 배우들과 소통하고 준비하셨는지.
윤단비: 사실 그 장면을 찍기 전에 동주와 옥주를 분리시키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승준 배우와 정운 배우는 계속 장난치며 놀고 있었고요. 그 신에 대한 설명을 미리 했고,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될 거라고 말했어요. 감정을 미리 주지 않고 친밀한 상태에서 싸웠을 때 더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촬영 전후 같이 둘이 장난을 치거나 같이 노는 시간을 막지 않으려고 했고, 촬영 때엔 승준 배우가 실제 누나가 있어서 “누나랑 싸울 때 어떻게 싸워?”라고 물었더니, ‘잘할 수 있겠다’고. (좌중 웃음)
이숙경: 진짜 누나가 있어서 연기가 그렇게 리얼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박승준: 어렸을 때 누나랑 치고받고 엄청 많이 싸워서요.
이숙경: 어렸을 때라면 몇 살 때...? (좌중 웃음)
박승준: 여섯 살이나...
이숙경: 지금은 그때보다 덜 싸우시는 거죠?
박승준: 얼마 전에도 싸웠어요. (좌중 웃음)
이숙경: ‘<남매의 여름밤> 사건의 주요 전개가 아빠와 고모가 밤에 술을 마시거나 대화하면서 발생하는 것 같은데, 제목의 ’남매‘는 어른인지요?’ 꼭 그건 아니지 않을까요? 저는 어른 남매에서 오빠 있잖아요.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 중에서 되게 새로운 캐릭터라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착하고 여리고 해서. 누군가에게 모질게 못하는 성격이고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실패하기 딱 좋은 타입, 돈도 못 벌고. 그리고 여동생이랑 가족들과 얘기할 때 가부장적이지 않은 일면들이 많은 것 같아요.
윤단비: 일단 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어떤 순간에도 관객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 같다거나, 그런 불안감 없이 안정적인 영화를 바랐고, 병기 역할 같은 경우에도 영화 속에서 폭력적으로 묘사되는 아버지의 모습, 강한 힘을 가지고 제압하려고 드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실제로 양흥주 배우님에게서도 그런 마초적인 이미지를 별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그 분을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이숙경: 그런 면에서의 최고봉은 할아버지가 아닐까 싶은데, 비밀의 화원처럼 초록이 우거진 정원에서 호스로 물을 주다가 두 남매랑 눈이 마주칠 때 환하게 웃고 서로 눈인사하는 장면 있잖아요. 저는 할아버지가 등장하실 때마다 충격을 받았어요. 혼자 다리를 꼬고 장현의 노래를 들을 때도 그렇고, 감독님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정교한 선택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남자 캐릭터를 영리하고 전략적으로 잘 그려내셨다는 생각을 했어요. 할아버지 세대는 그런 다감한 면도 있지만 사실 ‘태극기 부대’ 세대이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를 하실 수도 있지만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장면이 몇 장면이 안 되거든요. 극단적으로 할아버지의 보이스를 빼신 것도 하나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떠셨나요.
윤단비: 처음에 시나리오를 쓸 때는 할아버지의 대사가 더 없었는데, 할아버지를 도구적으로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아버지의 동선이나 대사를 좀 더 추가했어요. 그럼에도 많지 않지만. 할아버지가 식사할 때 동주의 의자를 끌어준다거나 하는 마음의 행동들을 하시거든요. 대사 보다는 마음이 가는 이런 순간들을 작게나마 더 포착하고 싶었어요.
이숙경: 공간도 이 영화에서는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로케이션도 캐스팅 못지않게 매우 공들여서 하셨을 것 같아요. 영화 속 집을 어떻게 만나셨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결정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윤단비: 집을 헌팅하는 데 두 달 가까운 시간을 보냈어요. 이 집에서 사시는 분들이 실제로 자식들도 출가시키고 50년 넘게 살고 계세요. 이 집의 생활상이 많이 묻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집을 보고 나서 시나리오를 수정했어요. 원래 텃밭이나 이런 건 자세히 묘사되진 않았는데 집을 캐스팅한 다음에 활용할 부분들을 보고 시나리오를 고쳤어요. 집 대문 위에 포도를 따먹는 장면이라든가.
이숙경: 재봉틀도 원래 집에 있었던 거죠? 그리고 동주가 누나한테 쫓겨나서 자게 되는 짐 많은 방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원래 있던 것들을 재활용하신 건가요, 세팅하신 건가요?
윤단비: 그것도 실제로 집 주인 분들이 짐을 모아놓은 공간이고, 거기 있는 담금주들도 실제로 담그신 것들이고. (웃음)
이숙경: 요새 레트로가 유행인데, 그런 취향으로 소재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이 이야기에 대한 근원이 감독님 마음속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예를 들면 어릴 때 그런 집에 살아봤다거나, 혹은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셨다거나 그런 짐작이 드는데, 실제로는 어떠세요?
윤단비: 실제로는 할아버지와 살아본 경험은 없고, 대신 제 방을 갖고 싶다는 기억은 많이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영화적 노스탤지어가 많이 느껴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과거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집이 풍기는 이미지가 강해서 자전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제가 실제로 경험한 정서들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큰 틀은 다 허구에 가까워요.
이숙경: 집에 1층과 2층 사이에 중문이 있잖아요? 실제 집에 있던 문을 활용하신 거예요? 저는 그런 구옥을 좋아하는데 중간에 그런 문이 있는 집은 처음 본 것 같아요. 그 문을 보셨을 때 어떤 장치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윤단비: 공간에 대한 확장성이 생긴 것 같아요. 그 중문 덕분에 옥주가 2층으로 영역을 넓히잖아요. 2층을 옥주가 자신의 영역으로 생각하게 되는 그런 장치로서 활용했던 것 같아요.
이숙경: 동주 배우는 영화 촬영의 주무대였던 그런 집에서 살아본 적 있어요?
박승준: 없어요.
이숙경: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마당에서 물장난 했던 것?
박승준: 저는 춤췄던 거. (좌중 웃음)
이숙경: 올라온 질문 중 ‘그 집이 나중에 팔렸을까요?’라는 물음이 있네요. 감독님은 집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윤단비: 아마도 집이 바로 팔리진 않았을 것 같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바로 그 공간을 정리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고. 다만 집이 언제나 남아있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할아버지와 집이 너무 동일시되기 때문에. 이 집을 지키기에는 이 집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 이 집이 사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이숙경: 또 질문 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길 바랐는데, 장례식 시퀀스가 이 분은 조금 진부하게 느껴지셨다고 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스토리를 넣기로 하셨을 때 어떤 의미로 비춰지길 바라셨던 건지 감독님의 의견이 궁금하다고 질문을 주셨습니다.
윤단비: 저는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굉장히 좋아해요. 삶의 어떤 순간들을 관통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들. 이게 필연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화에서 이 장면을 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못했던 것 같아요, 당연히 장례식장이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고, 대신에 장례식장에서 옥주가 너무 많은 슬픔을 겪진 않았으면 좋겠다, 상실감으로 끝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어요. 할아버지는 떠났지만, 엄마를 실제로 만나든 꿈에서 만나든 누군가를 다시 만나서 어떤 일상을 이어주고 싶다, 그 상처를 줄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숙경: 시나리오에서 옥주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빛도 자연광을 쓰셨고 배우들도 자연스럽게 쓰셨어요. 길게 우는 장면은 고민스러운 지점이 있잖아요. 연기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기보다는 어떤 상황을 만드는 것에 고심하지 않으셨을까 싶은데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윤단비: 영화를 순서대로 촬영했기 때문에 실제 엔딩 장면을 영화의 마지막에 촬영했거든요. 낮에 촬영하는 게 어려워져서 저녁으로 시간을 바꿨어요. 사실은 저도 견디기 힘든 순간이었어요. 옥주가 겪는 감정이 너무 크기 때문에 동화되어서 마음이 저도 너무 안 좋은 거예요. 옥주가 우는 걸 영화에서 얼마만큼 보여줘야 할까? 울면서 영화가 끝났을 때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지면 어떡하나? 그런 고민을 했고요. 그런데 옥주의 관점에서 이 여름방학동안 얼마나 큰 성장을 했을까 돌아봤을 때, 여태까지 내비치지 않았던 감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자기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그 장면을 연출한 것 같아요.
이숙경: 이게 구체적인 연도로 어느 시기를 생각하고 만드신 거예요?
윤단비: 구체적인 연도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현재 시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완성하고 보니 꿈 장면이나 환기되는 장면들이 있어서 과거의 기억으로 보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이숙경: 아주 옛날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데, <벌새> 같은 경우에는 무너진 성수대교 장면을 넣거나 <비정성시> 같은 경우는 개인의 일상을 가지고 시대를 이야기하는 코드들을 삽입하거든요. 감독님도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런 생각을 한번쯤은 하지 않았을까 했어요.
윤단비: 전혀요.(웃음) 어떤 역사적인 순간이 미치는 영향도 분명 크지만, 저는 시대적인 외부의 사건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게 이 가족에게 가장 큰 사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숙경: 정운 배우님. 남자친구와의 장면을 찍으며 어땠어요? 제가 볼 때는 배우님 세대 이야기가 아니니까 낯설거나 실제로는 이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최정운: 사실 그때 같이 찍은 친구랑 단편영화도 찍었다가 일 년 만에 다시 만나는 거여서 그냥 웃겼어요. 내용을 떠나서. 예전에도 제가 좋아해서 쫓아다니는 역할이었는데 이번에도 초반에는 제가 더 좋아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신발을 뺏고 드디어 내가 갚아주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웃음)
이숙경: 이런 표현 너무 재밌었던 것 같아요. 고모가 소금 뿌리거나. 이런 양념 같은 장면들이요.
윤단비: 제가 어떤 삶의 아이러니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남편을 요괴라고 부르는 장면처럼. 저희 엄마가 아빠를 이야기할 때 그런 식으로...(웃음) 그런 순간들. 웃을 수도 없고 공감은 하지만 웃기는 순간들도 많은데, 삶은 그런 면들이 섞여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코드들을 많이 넣으려고 했어요.
이숙경: 저는 옥주 배우님의 얼굴이 너무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나이 때 친구 같고, 꾸민 듯 안 꾸민 듯한데 강하면서 선명한 느낌이 있어요. 감독님은 첫 느낌이 어떠셨는지.
윤단비: 첫 미팅을 했을 때는 생각했던 것보다 부드러운 이미지라고 생각했는데 촬영하면서 되게 힘이 강한 친구구나, 어떤 순간을 포착해도 화면에서 장악력이 세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숙경: 동주 배우는 오즈 야스지로 영화 중 <안녕하세요>에 나오는 아이들 같아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영화에서 봤던 남자 소년 연기 중에 역대급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과 그 자체의 이미지가 되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윤단비: 저희가 연기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너무 잘한다고. 승준 선생님.
박승준: 연기는 그냥,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좌중 웃음)
이숙경: 요새는 어린 배우들이 천연덕스럽고 촌철살인의 대사를 치는 식이어야 존재감이 있는데, 그렇지 않아서 좋았어요. 작업하실 때 시나리오 원안이 있지만 배우들의 캐릭터도 잘 가져 쓰신다고 생각했는데, 캐스팅하고 나서 많이 수정하시죠?
윤단비: 저도 아이의 입을 빌어서 제가 얘기하려는 걸 지양하려고 하거든요. 너무 아이가 어른스럽게 얘기한다거나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서 디렉팅을 할 때 ‘밥을 이렇게 먹어야 해’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큰 상황만 얘기하려 한 것 같아요. “밥을 맛있게 먹어줘”, “나무기둥을 세게 잡아줬으면 좋겠어” 이런 큰 틀만 동주와 얘기하고 나머지는 믿고 의지를 많이 하고 갔어요.
이숙경: <남매의 여름밤> 촬영하기 전에 다른 영화들에 출연해보신 적 있나요? 그럼 그 현장에서의 경험들과 윤단비 감독님과 함께한 현장의 차이가 혹시 있을까요?
박승준: 그 전 영화는 되게 정신 사나웠는데(좌중 웃음) 이번은 평화로웠어요.
이숙경: 그리고 ‘사계절 중에 배경으로 여름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라는 질문도 올라왔습니다.
윤단비: 나무주택이라서 공기라든가 바닥이 끈적끈적한 이런 질감들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여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여름의 느낌을 어떤 식으로 담아낼까를 생각했어요.
이숙경: 할아버지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계셨고 동주와 옥주도 엄마가 부재한 상황이고 고모네 집도 흔들리고 있잖아요. 흔들리는 구성원들이 다시 여름 한 시절을 함께 보낸다는 설정인데, 조금의 결핍과 갈등 속에 있는 이들을 가족으로 구성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전형적인 가족의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윤단비: 제가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동화 내용 중엔 엄마가 없는 이야기가 많잖아요. 아이들한테 가장 무서운 게 엄마가 없다는 결핍으로 그려지고 엄마가 없는 존재들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가 어떤 큰 사건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의 결핍으로 인해 각자 연대하는 방향으로 가보고 싶었어요.
이숙경: 엄마, 아빠의 갈등과 이혼을 겪은 남매, 사업에 실패한 아빠, 부인의 죽음을 마주한 할아버지. 각자 강렬한 고통스러운 경험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시간이 켜켜이 쌓인 따뜻한 공간에 모여서 같이 끼니를 먹는 걸 보면서 마당에 가득한 초록빛마저 좋았어요. 우리에게도 가족과 관련한 스크래치가 다 있잖아요. 지금도 다 현재진행형이고 저도 그런데요.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현실적인 질감 속에서 그런 이야기가 펼쳐지니까 나를 돌아보게 되고 한편으론 쓰다듬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너무 좋았고요. 영화를 만들어주신 분께 감사하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어요.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요. 승준 배우님이 이 영화와 관련해서 촬영하고 나서 갖고 있는 감정이랄까, 이 영화는 이런 영화인 것 같습니다, 라고 한 마디 해주시면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승준: 이 영화는 약간 평범한 가족생활 같은데, 힘들어하는 가족 같았어요. 할아버지가 아파서 요양원에 보낼까 안 보낼까 고민하는 모습이 되게 힘들어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영화는... 감사합니다. (좌중 웃음, 박수)
이숙경: 감독님. 영화가 개봉 예정이죠?
윤단비: 8월에 개봉할 것 같아요.
이숙경: 오늘 영화 함께 봐주신 관객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리고요. 함께 자리해주신 두 배우님, 감독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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