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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기획]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Review : 홈 스윗 홈

by indiespace_한솔 2020. 5. 5.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리뷰홈 스윗 홈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보라 님의 글입니다.



 


집에 대한 생각을 자주하게 되는 요즘이다. 대학생활을 비롯해 많은 추억을 쌓은 도시를 떠나 최근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이사를 준비하며 새 집에 어떤 가구를 들일지와 같은 소소한 고민들부터, 계약이나 전입신고 등의 행정적인 문제들까지 다루느라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 오니 거리와 역사(驛舍)를 집으로 삼는 분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여기저기서 거리두기와 '집콕'을 채근하는 시대에 정작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 재난을 모면해야 하는지 아득해진다.

 

덩달아 가족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다. 5월은 가정의 달인데, 코로나 시대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마저 쉽지 않게 됐다. 식구가 병원에 입원중이거나 타지나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더더욱 그럴 것이다. 콧물이 나오거나 목이 조금만 잠겨도 예민하게 스스로를 점검하다 보니, 오히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들과 만나는 시간을 부러 줄이게 되기도 한다.




 

집과 가족. 어쩌면 같은 말일지도 모를 두 단어를 겹쳐놓고 볼 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지소에게는 집이 없다. 대신 트렁크를 열면 빨래 건조대가 세워지는 작은 승합차에서 지낸다. 하지만 지소는 그게 부끄럽다. 그래서 하굣길, 단짝친구 채랑이네 차를 얻어 타고 가다가도 채랑의 엄마가 교통순경에게 걸리자 이때다 싶어 황급히 내린다. 마트 시식코너에서 만두를 먹는 남동생 지석이를 데리고 지소는 승합차로 간다. 소박한 세간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이 자동차 앞에서 지소는 동생과 이불을 턴다. 시식코너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동생이 못마땅했던 지소는 말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해봤어? 불쌍한 표정으로 뭐 하나 얻어먹으면 그때야 좋겠지. 세상이 만만한 줄 알아? 한번 무시당하면 끝이야, !”


 

야무지게 동생에게 핀잔을 주다가도, 몰래 뒤따라온 채랑이와 맞닥뜨린 지소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우물쭈물 해명한다. 아빠 피자가게가 너무 잘 되어서 큰 집으로 이사 가기 전에 일주일 동안만 여기서 산다며. 그 뒤에서 지석이가 엄마가 오늘 저녁은 이거(컵라면) 먹으래. 저 밑에 편의점에 뜨거운 물 있대라고 명랑하게 말한다. 채랑이의 표정을 살피던 지소는 일순간 울음을 터뜨린다.

 

지소가 펑펑 우는 이 장면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 가장 솔직하고도 따스한 순간처럼 느껴졌다. 지소는 창피했을 것이다. 그런 지소에게 영화는 흐느낄 시간을 벌어준다. 지소가 오랫동안 느끼고는 있었지만 표현할 수 없었던 어떤 정서적 공백을 그 잠깐의 시간으로 마련해주는 것만 같다. 돌발적인 행동인 데다 서사적으로도 무용하지만, 지소가 꽁꽁 싸매고 있던 빗장을 풀어주는 시간으로써 영화는 우는 지소의 모습을 담는다. 그 작은 선택이 문득 고마웠다.

 




냅다 울어버리는 지소를 보며 공연히 나의 어릴 적이 떠오른 것 같기도 하다. 여섯 살쯤이었나. 그때는 IMF 시기였던지라 어디에도 괜찮은 집이 잘 없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타지에서 일을 하셨고, 엄마는 나와 동생이 잠든 와중에 조용히 새벽기도를 다녀오셨다. 문제는 그 새벽에 내가 깨버릴 때였다. 일어났는데 엄마는 온데간데없고 동생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을 때, 나는 사라진 엄마를 부르며 엉엉거리고는 했다.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집은 엄마가 있는 곳,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곳이라는 사실.

 

당시 나의 마음을 지소도 알아주지 않을까. 지소는 철부지 엄마와 어리숙한 남동생 사이에서 혼자만 온갖 걱정에 매달리는 줄 알았지만, 사실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함께 어려움을 마주하고 돌파해나가는 것의 소중함을 부둥켜안는다. 집이 없어도 마음만은 충만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지소는 훔친 개 월리를 주인인 레스토랑 회장(김혜자)에게 돌려주려 결심한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지소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데서 유야무야하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잘못을 언어로 명확히 짚어준다. 레스토랑 회장은 차분하면서도 냉철하게 반성을 종용한다. “힘든 시간들을 겪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쁜 짓도 하게 되는 법이지. 그렇다고 해도, 네가 한 짓은 정말 나쁜 거야. 지소야. 그건 변하지 않아.” 이때 영화는 우리가 그저 귀엽게만 여겼던 어린이들의 행동이, 실은 반성이 필요한 잘못이었음을 회장의 입을 빌려 일깨운다. 반려견이자 식구인 월리를 잠시 잃어야 했던 회장님이야말로 아무런 잘못이 없기 때문에 그 말은 유효하다. 다만 회장은 공정한 거래를 약속한다. 앞으로 지소가 월리를 산책시켜주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주기로.

 

지소가 회장과 대화를 나눈 후 눈물범벅이 된 채 밖으로 나올 때, 거기에는 그간의 곡절에 함께해준 채랑이와 지석이가 서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 앞에서 그들은 손을 잡는다. 이 장면은 꼭 초반부에서 지소가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뜨리고 난 뒤 채랑이가 부어주는 물로 세수를 하던 장면을 어슴푸레 떠올리게 만든다. 눈물은 씻긴다. 더 단단해진 지소의 옆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랑과 함께, 지소가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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