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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국도극장〉: 우리가 만나는 영화관

by indiespace_한솔 2020. 6. 17.







 〈국도극장〉  리뷰: 우리가 만나는 영화관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유선 님의 글입니다.




서울의 시간과 서울 바깥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우리나라에서 대처라고 할 만한 도시 어디를 가도 서울 같은 곳은 없다. 언젠가 읽은 '서울이 만인의 타향'이라는 말이 마음을 예리하게 가르고 들어온 일이 있다. 아마 <국도극장>의 주인공 기태(이동휘)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서울은 왜이리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모든 것이 고되고, 이런 마음조차 어쩐지 나만 느끼는 것 같은지.


모든 것이 변하듯 사법고시라는 반듯한 시스템도 변했다. 03학번 법대 졸업생, 어느 하나 매끄럽게 들리는 단어가 없다. 13학번이 '화석' 소리를 듣는 것도 옛날 얘기가 된 지 오래이며, 로스쿨이 생긴 후 법대라는 단어의 의미는 분명 변했다. 기태가 처음 벌교를 떠나갔을 때와 돌아올 때 그는 아주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성공은 고사하고 성공을 노리는 자리에서조차 박탈당해 터덜터덜 돌아온 고향에서, 그의 자존심은 삐걱거리며 이리저리 밀리고 치인다. 대학은 못 갔지만 토박이로 살면서 자리 잡은 친구에게도, 객관적으로 현실을 보라며 그의 자기연민을 꾸짖는 형에게도.





곧 올라갈 거라고는 하지만 기약이 없다. 오래된 영화를 그림 간판 걸어가며 재개봉하는 상영관, 국도극장에서 그는 시간 떼우듯 일을 시작한다. 아무리 최신으로 쳐줘도 90년대 정도의 시간이 아련하게 배어있는 공간에서. 가끔 들락거리는 관광객에게 표를 팔고, 적당적당히 청소를 하고... 그러면서 그는 하루하루 주변 사람들과 가까워져 간다. 극장에서 함께 일하는 오씨(이한위),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동창 영은(이상희), 엄마(신신애)와 형(김서하)과도.

아니, 가까워져 간다는 단어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서울과 서울 아닌 곳의 시계가 다르게 흐르듯, 관계 맺는 방식도 다르다. 서로간의 적당한 거리를 찾고 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곳이 서울이라면, 서울 아닌 곳은 뭐라 규정하기 어렵게 적당히 얽힌 사이가 미지근하게 유지되어 간다. 서울에서는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고, 서울이 아닌 곳에서는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일이 더 많다. 이 영화 속 인물들처럼.





기대와 달리 영화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중간중간 갈아끼우는 그림 간판이 이야기를 쏙쏙 담아주지만, <영웅본색> "그 뭐냐, 주윤발이 나오는 중국 영화!"라 일컬으며 뭐더라 한참 생각하는 장면 정도다. 극장은 정말 오롯이 배경으로만 존재한다. 마을 입구 아름드리 나무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영화뿐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공간, 그곳에서 끌어내는 이야기인지 모른다.


계절이 바뀌고, 극장에 내건 영화 간판도 바뀌고, 기태도 조금씩 변해간다. 대단한 성장의 계기 같은 건 없다. 극장이 배경이지만 영화에서 힘을 얻는 그런 전환도 없다. 그저 담배 태우듯 조금씩 더 알아갈 뿐이다. 자기뿐 아니라 남들의 삶에도 무거운 것들이 많이 얹혀 있었다는 걸. 힐링 에세이 속 다정한 위로의 말이 없어도,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꽃 한 송이 피울 힘이 충분히 된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피어난 꽃 한 송이 들여다볼 시간도.





이 영화는 잔잔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비집고 파고드는 힘이 있다. 어떤 시집 제목처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하며 시간을 갈라내 들여다보고 싶은 영화다. 극장의 의미와 역할을 새삼 크게 느끼는 지금 같은 때에 조용한 극장에 앉아 보고 싶은 영화이며, “우리를 만나는 영화관이라는 인디스페이스의 소개말을 새록새록 다시 보게 하는 영화다. 지난 세기를 떠올리게 하는 색감과 느낌이지만, 그 시절 그 곳의 우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가 만나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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