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소녀〉 리뷰: 아주 단단하고 용기 있는 한 사람의 위력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주혜 님의 글입니다.
배우 이주영과 스포츠 영화라니, 이 키워드만으로도 <야구소녀>는 관객을 솔깃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이주영 배우는 프로 야구 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야구부원 주수인 역을 맡았다. 주수인을 따라다니는 타이틀은 이러하다.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부원, 주수인.”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타이틀이 지금 수인에겐 자랑만큼이나 장애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백송고 야구부원 주수인은 졸업을 앞두고 있다. 프로팀에 입단하여 계속 야구를 하는 것이 수인의 꿈이지만, 그게 마음처럼 안 된다. 온 우주가 나서서 수인이 야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만 같다. 수인을 여자애라서 후하게 봐주거나, 여자애니까 안 된다는 사람들이 많다. 야구 선수로 공정한 평가 기회를 받는 게 이렇게 어려울 수가! 그런 순간에도 수인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흔들리는 법이 없다. 그저 한 걸음 더 내딛기에 전념한다. 주수인 가라사대, 주수인 인생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일은 없다.
<야구소녀>는 당찬 수인의 행보를 줄곧 따라간다. 과거로 돌아가는 플래시백 장면을 배제하고, 현재에 집중하는 영화적 흐름은 오롯이 앞으로 나아가는 수인의 운동감과 닮았다. 수인의 단단한 내면은 분명 이 영화를 흐르게 만드는 원동력이지만, 영화가 수인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은 아니다. <야구소녀>는 수인만큼이나 수인의 관계망 속에 있는 사람들이 중요해 보인다. 이준혁, 염혜란, 송영규, 곽동연, 유재명 배우 등 내공 있는 연기를 선보이는 탄탄한 배우진을 영입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수인은 야구 선수이면서, 누군가의 제자, 누군가의 동료, 라이벌, 친구, 딸, 언니이기도 하다. 수인이 마주하는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마주하면서 영화는 ‘야구선수 주수인’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주수인의 얼굴을 목격한다. 여러 관계 속의 순간들은 죽어라 야구 연습을 하는 것만큼 수인의 꿈에 중요하다. 수인의 꿈을 이루기 위한 단계가 있다면 그 1단계에 ‘프로 선수가 되고 싶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받는 것’이 있는 셈이다. 수인은 코치님이나 엄마같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오역되지 않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수인이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는 과정이 보여진다. 그러면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수인의 바람이 잘 전달되지 않고 미끄러질 때, 그러니까 장면의 끄트머리에서 수인이 먼저 퇴장하고 다른 인물만 남겨질 때이다. 수인이 우직하게 그의 길을 닦아 나가기 위해 먼저 프레임을 벗어나는 순간, 남겨진 최진태 코치, 엄마, 정우, 구단장의 얼굴은 미묘하다. 수인이 유효타를 만들어낸 것이다. 카메라가 이렇게 수인 대신 다른 인물에게 남아 있음으로 우리는 주수인이 남기고 간 자취의 위력을 실감한다. 아주 단단하고 용기 있는 한 사람의 위력 말이다.
그러니까 <야구소녀>는 세상의 방해에도 또렷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의 자취가 결국은 세상을 바꿀지도 모르지 않냐고 반문하는 영화이다. 또 보고 나서는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다. 주수인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마음이 많이 모였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이 세계의 또 다른 주수인들에게 힘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국도극장: 감독판〉 인디토크 기록 : 오늘, 극장을 만나러 갑니다 (0) | 2020.06.26 |
---|---|
[인디즈]〈야구소녀〉 인디토크 기록: 이 시대 고정관념을 향한 다정한 직구 (0) | 2020.06.24 |
[인디즈] 함께 걷는 맑은 세상 〈나는보리〉 인디토크 기록 (0) | 2020.06.18 |
[인디즈 Review] 〈국도극장〉: 우리가 만나는 영화관 (0) | 2020.06.17 |
[인디즈 Review] 〈안녕, 미누〉: 무엇이 한국을 만드는가 (0) | 2020.06.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