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전쟁〉 리뷰: 향 연기가 자욱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현재에 주목함으로써 재현 불가능한 것의 재현을 대신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은지 님의 글입니다.
이길보라 감독은 영화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첫 작품 〈로드스쿨러〉(2008)는 감독 자신을 포함한 탈학교 청소년들이 제도권 교육 바깥에서 길을 찾고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차기작인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에서는 CODA(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의 자녀)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주목하여 청인의 사회와 농인의 사회를 모두 경험한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앞선 두 영화를 통해 감독은 '정상성'의 범주에 벗어난 사람들에 주목하며 우리가 그들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붙들고 너무 많은 설명을 바라오지 않았나 묻는다. 반면 〈기억의 전쟁〉에서는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외면해 오진 않았는가 질문한다.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전에 참전 용사이자 고엽제 후유증으로 암 투병을 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생존자의 간극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세 작품 모두 감독의 정체성과 자전적 경험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앞선 두 작품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서 감독이 일인칭 화자인 나레이터 또는 인터뷰어로서 개입하거나 화면 안에 직접 등장했다면, 〈기억의 전쟁〉에선 제작자가 영화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가족을 잃은 희생자이자, 각자 여성,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응우옌 티 탄, 응우옌 럽, 딘 껌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자의 언어로 증언하며 개별화된 기억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있었던 2018년 4월의 한국과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베트남의 마을을 오가는데, 이 때 일견 목가적으로 보이는 베트남 마을 풍경을 자주 비춘다. 응우옌 티 탄, 응우옌 럽, 딘 껌 세 사람의 증언을 거치고 나면 이러한 장면들은 지층처럼 켜켜이 쌓여있을 전장의 시간들을 환기시키며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인다. 또한 전쟁으로 수난 당한 과거의 어린 몸에 주목하는 대신 전쟁의 흔적을 몸에 새기고 매년 위령제를 지내며 향 연기가 자욱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현재를 주목함으로써 재현 불가능한 것의 재현을 대신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길보라 감독의 고엽제 피해자 3세라는 정체성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듯, 한국에서 베트남 전쟁의 피해란 베트남의 민간인 학살 피해보단 국내참전 용사의 고엽제 피해 서사로 더욱 쉽게 떠올려질 것이다. 한국 사회 내에서 고엽제 피해자를 포함한 베트남 전쟁의 국내 피해자에 대한 논의 또한 경제의 고도성장과 군사력 증강이라는 국가의 이념적 정당성 앞에서 밀려나 집단적 치유의 과정이 부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의 전쟁〉은 영화가 끝난 이후 더욱 많은 논의가 오가게 될 영화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점은, 베트남 내부에서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문제들을 고려하더라도, 이 영화는 지금껏 더욱 외면 받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당시의 한국의 피해자성을 강조하며 베트남 전쟁의 민간인 학살 문제 또한 '전쟁 범죄'의 일부로 쉽게 치환하고 보편사의 프레임 안에서 다룰 때 발생하는 선과 악의 단순한 구조화에서 벗어나 개별화된 기억을 공적 영역으로 끌고 와 가해자의 자리에서 피해자의 시간을 마주하도록 하는 영화다.
영화는 베트남 전쟁의 기억에 대한 두 가지 축, 한국의 참전군인들과 베트남의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을 모두 비추되 그들이 충돌하는 지점에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모의법정인 시민평화법정의 증언대에 서서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응우옌 티 탄의 말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가해자성이 지금까지의 한국의 태도였음을 보여줌으로써 사유와 성찰의 필요성을 알린다. 눈물 없이 “내 삶은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의 제사를 챙기기 위한 거였던 것 같아.”라고 말하게 되기까지 응우옌 티 탄의 안에서 얼마나 많은 무너짐이 있었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지만, ‘가해자됨을 마주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영화를 보고 난 우리에게 남겨진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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