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정이 가는 정가영 감독의 발칙한 일기장 〈하트〉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0년 3월 21일(토) 오후 2시
참석 정가영 감독|배우 이석형
진행 배우 박종환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유진 님의 글입니다.
〈비치온더비치〉(2016), 〈밤치기〉(2017)에 이어 '비치 삼부작'을 완성하는 정가영 감독의 〈하트〉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영화 〈하트〉는 가영이 유부남인 성범에게 갑자기 찾아가 자신이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시작된다. 줄거리만큼이나 발칙한 대사와 장면들이 매력적인 영화다. 더불어 영화 작업을 지속하며 정가영 감독이 마주해온 공허한 느낌을 세심하게 녹여내고 있다. 3월 21일 진행된 〈하트〉 인디토크에는 박종환 배우, 이석형 배우, 정가영 감독이 함께했다.
박종환 배우(이하 박종환): 진행을 맡은 배우 박종환입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자리 참석해 주신 관객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게스트를 모시고 영화 〈하트〉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정가영 감독(이하 정가영): 안녕하세요. 〈하트〉 연출과 정가영 역을 맡은 정가영입니다.
이석형 배우(이하 이석형): 안녕하세요. 이석형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박종환: 영화 〈하트〉는 비치 삼부작을 종결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들이 기획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가영: 아니요.(웃음) 처음부터 기획된 건 아니었어요. 운이 정말 좋았고, 감사하게도 살면서 에피소드가 꾸준히 생겼어요. 영화로 안 남기면 손해일 것 같은 일들이요.
박종환: 최근에 인터뷰를 봤는데, 〈하트〉까지 하면서 영화 1막이 끝났다는 말을 하시면서 ‘20대에 나를 지배했던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즐겁게 했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어떤 부분이 즐거웠는지, 어떤 점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합니다.
정가영: 그냥 이렇게 영화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어요. 영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게 믿기지 않아요. 개봉하고, 한 곳에 모여서 영화를 본다는 거 자체도요. 연기하면서 즐겁기도 했고요. 그리고 운이 좋았다고 느꼈던 지점은, 최근에 제가 재능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감사하고, 운이 좋은 거죠.
박종환: 석형 배우에게도 궁금합니다. 비치 삼부작의 정가영의 남자 후발 주자로 나서는 게 부담되지는 않으셨나요.
이석형: 정가영 감독님은 얼굴만 알고 있었어요. 감독과 배우 일을 같이 하시는 걸 신기하게 봤고요. 저도 옛날에 연출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항상 대단해 보이고 흥미로웠어요. 영화 〈밤치기〉는 시사회에서 봤는데, 함께 작업하기로 했을 때 ‘〈밤치기〉 참 재밌는데.’ 정도의 느낌만 있었지 부담은 없었어요.
박종환: 지금 오픈채팅으로 질문을 받고 있는데요, 질문들이 많이 올라와서 이 중에 하나를 골라볼게요.
이석형: 그럼 종환 배우님이 질문 고르시는 동안 저도 감독님께 질문 하나만 할게요. 제가 최근에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시리즈’를 봤는데 비치 시리즈와 영화 톤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녀가 계속 얘기를 하면서 영화가 진행되는 지점이요. 비포 시리즈의 영향을 받으셨나요?
정가영: 제가 엄청 좋아해요. 영향을 당연히 받았겠죠? 남녀 둘이 대화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 용기를 얻기도 했어요.
박종환: 관객분 질문입니다. ‘영화 속 제섭이 가영에게 하는 말이 실제 감독님이 들으셨던 말인가요?’라고 질문 해주셨네요.
정가영: 누가 저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어요. 그냥 제가 저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작업들로 공허함이 채워질까 싶고, 그런데 아무도 저를 혼내주지 않으니까 나라도 나한테 이런 질문을 던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잘생기고 인기 있는 인물이 나를 따뜻하게 혼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봐요.
박종환: 제섭이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잖아요. 저는 정가영 감독님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런 질문은 안 해 본 것 같아요. 그냥 너무 재밌게 읽었죠. 이 감독이 궁금하다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 궁금증이 작품이 끝나도 해소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어요. 〈하트〉를 보고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고요.
정가영: 이번엔 제가 질문을 한 번 질문 골라볼게요. ‘삼부작 남자 배우들과는 어떻게 함께 작업하게 되셨나요?’ 일단 잘생긴 배우들에게 눈길이 가고요. 그 당시 꽂히는 배우들께 연락을 드려요.
이석형: 요즘 감독님께서는 어떤 관계에 관심이 있으신지도 여쭤보시네요.
정가영: 저는 요즘 심리 공부, 마음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제는 정말 저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요. 내가 먼저가 아니라 상대방이 먼저인 관계에 집중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그렇게 살면 손해 보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그런 게 재미있어요.
이석형: 저는 고용 관계에 관심이 있어요. 사람을 쓰는 마음은 뭘까. 고용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계속 고용을 당하는 입장으로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해요.
박종환: 다음 질문 골라볼게요. ‘가영과 성범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각각 빨강색, 파랑색 상의를 입고 있어요. 이 두 색이 섞일 듯, 섞이지 않을 듯한 이미지를 주는데 미리 생각해둔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여성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가영: 그냥 빨강과 파랑 조합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석형 배우가 입었던 빨간 티는 〈비치온더비치〉에도 나온 티예요. 그 색이 주는 이미지가 그냥 좋았던 것 같고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발랄하고 말 많이 하고 자기주장 잘 하면서도 건강한 여성상 보여주고 싶어요.
박종환: ‘대사를 쓰다가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대사를 바로바로 배치를 하시나요, 아니면 쓰고 싶었던 말들을 품어놨다가 필요한 장면들에 배치를 하시나요?’ 감독님의 시나리오 작법 방식에 대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정가영: 저는 시나리오 쓸 때가 제일 재밌어요.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느낌일 때 기분이 좋거든요. 제가 대사 많은 리처드 링클레이터, 홍상수,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외울 정도로 많이 봤어요. 일상에서도 대화가 주는 긴장을 좋아하고요. 그런 영향인 것 같아요.
박종환: ‘비치 시리즈에 나오는 극중 정가영이 나쁘다고 생각하나요?’라고 질문을 해주셨어요.
정가영: 죄를 짓는 인물이죠. 그런데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인지 없이 막 사는 거죠. 최근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죄를 짓고 나면 죄책감이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이라면. 대신 죄를 짓고 곧바로 사과를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곧바로 죄를 처리하지 않으면 계속 불어나 버리니까요.
박종환: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비치 삼부작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바뀐 것이 뭐냐는 질문을 해주셨어요.
정가영: 이 과정이 분명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심리 공부를 하면서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걸 알았어요. 자기 욕망에 대해 충실한 영화를 찍으니까 사람들은 내가 나를 잘 알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아니거든요. 나쁜 욕망들에 대해 저 역시 혼란스런 상태로 살고 있었고.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 작업이 저에게 일기장이 돼 준 것 같아요. 그리고 직접 출연까지 했잖아요. 제가 지은 죄들, 제 상처들을 다 기록하고 마주하니 도움이 됐어요.
박종환: 어떻게 보면 흔하고 유명한 음악들이 감독님 영화에서는 독창적으로 쓰이는 것 같은데, 평소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는지, 혹은 음악감독으로 함께 작업해 주신 분이 있는지 질문해 주셨어요.
정가영: 저는 사실 김동률의 엄청 오랜 팬이에요. 그 분이 영화 음악을 전공하기도 하셨고. 영화에서 꼭 김동률 씨 곡을 쓰고 싶어요. 언젠가 한 번 김동률 씨와 작업을 해 볼 수 있을까요.
이석형: 감독님, 오늘 영화 같이 보셨잖아요. 감독님이 원래 〈하트〉를 극장에서 잘 안 보시는데 어떠셨나요.
정가영: 〈하트〉가 관객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인 것 같아서, 첫 공개될 때부터 반응이 무서워서 극장에서 못 봤어요. 그러다 최근에 마음 공부를 하다보니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은 관객 입장에서 보자는 마음으로 관람했는데 힘들지 않고 괜찮았어요. 노출신 보니까 조금 힘들긴 했어요. 그래도 키스신이 되게 예쁘게 나온 것 같아요. 공포신도 재밌게 봤고, 좋았어요.
박종환: 어떤 분이 감독님 다음 작품에 대한 질문도 해주셨어요.
정가영: 요즘은 그런 고민을 해요. 제가 철들면 내 작품이 재미가 없어지려나. 발칙한 상상을 덜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써놓은 게 있어서 그 자체로는 많이 발칙해요. 형성하는 느낌도 좋고요.
박종환: 굿즈의 일환으로 시나리오집을 팔 생각이 없는지도 궁금해 하시네요.
정가영: 아, 안 그래도 비치 시리즈 세 편의 시나리오를 묶어서 내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어요.
박종환: 촬영하실 때 콘티도 그리시냐는 질문을 해주셨어요.
정가영: 〈비치온더비치〉랑 〈밤치기〉는 콘티가 없었고, 〈하트〉는 촬영감독님이랑 의논한 콘티와 레퍼런스가 있었어요. 또 ‘앞으로 다른 장르 영화도 기다려도 될까요?’라는 질문이 있는데, 저는 계속 멜로를 할 것 같고요. 근데 무서운 신도 찍으면서 재밌었어요. 이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공포 장르에 관심이 많아요.
‘마지막에 심장을 때리는 장면은 덕통사고 같은 건가요?’라고 질문을 해주셨는데요. 아까 제가 말했던 애교스럽게, 따뜻하게 혼내주는 행동인 것 같아요. ‘내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하지?’라고 생각을 했을 때 나온 장면이에요.
박종환: 이제 마칠 시간이 됐는데요. 정가영 감독님과 이석형 배우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정가영: 제 차기작은 〈서른〉이라는 제목의 로맨스코미디 상업영화고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찍게 될 것 같아요.
이석형: 저는 넷플릭스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찍었어요. 그리고 독립 액션 영화 〈액션 히어로〉를 찍었습니다. 현재 찍고 있는 건 없고, 알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박종환: 오늘 채팅창을 이용해 질문을 받고 답을 했는데요. 저희가 이렇게 답을 하면 또 질문을 달아주셔서 생생하고 재밌었던 것 같아요. 정가영 감독님과 이석형 배우님 대신해서 이 자리 함께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리고요. 귀한 시간 내주시고 끝까지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살펴 돌아가시고 당분간 건강 유의하세요. 감사합니다.
코로나19의 여파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찬 시간이었다. 관객간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이크를 사용하는 대신 부득이 오픈 채팅에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인디토크를 진행했으나 오히려 그 덕분에 원활하게 질문과 답이 오갈 수 있었다. 영화 속 가영처럼 정가영 감독은 발랄하고 솔직했다. 이석형 배우와 박종환 배우, 그리고 정가영 감독의 유쾌한 대화는 영화 속 케미를 그대로 재연했다. 앞으로 세 사람의 활동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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