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실이는 복도 많지〉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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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오늘을 애써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보라 예술이자 노동으로서의 영화, 그 안에서 사람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가 든든하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리뷰: 마음을 담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엄청난 복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왠지 낯 간지러워서 영화를 꽤 오래 좋아하고도 그에 대해 자신감 있게 내뱉은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문득 옛 기억을 헤집어 보면 역시, 영화를 좋아하긴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도 영화 좋아하는 게 다 뭐라고, 남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 영화에 대한 일방통행이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했다. 영화란 건 언제나 특별했지만 동시에 또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를 다루는 영화를 보면 항상 마음이 괜히 더 동했다. 영화에 대한 영화는 그 자체로 감독이 영화에 보내는 편지 같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전해지는 작품들이 좋았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말하자면 아주 직설적인, 영화에 대한 영화다. 영화와 감독을 너무 깊이 연관 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어찌 됐건 이 영화는 김초희 감독과 오래도록 함께해온, 혹은 그를 괴롭혀 온 영화에 대해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주인공 ‘찬실이’를 빌어 쏟아내 버린 이야기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서 받은 인상은 ―좋은 의미로― ‘뻔뻔하다’는 것이었다. ‘영화를 사랑해온 나’에 대해 담은 영화라니, 이보다 더 감독의 자의식이 투영되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영화와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망설임 없이 자신 있게 그 사랑을 이야기하는 조금은 뻔뻔한 영화의 톤은 속 시원하기도 신선하기도 했다. 그간 보아온, 감독인 ‘나’를 내세운 영화들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자기연민 혹은 ‘찌질함’과는 다른 결의 뻔뻔함은 대안적 방식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본 적 없는 새로운 시선에 가까웠다.
영화는 찬실의 삶이 갑자기 멈추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 일을 해온 그가 PD로써 줄곧 함께 작업해온 감독이 회식 자리에서 돌연사하고, 이 사건은 찬실에게 생각보다 큰 타격을 준다. 영화 PD로서의 일이 한순간에 사라진 찬실의 삶은 기약 없이 멈추는 듯했다. 영화를 좋아해서, 그 영화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찬실은 일이 사라지자 직업이 사라졌고, 직업이 사라지자 자신의 인생에서 영화가 다 무슨 의미인가 하는 지경까지 다다른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은 이의 치명적인 함정이라고 해야 할까. 좋아서 하는 영화만을 열심히 하며 산 찬실의 삶에서 영화가 존재하던 자리는 순식간에 허공에 붕 떠버리게 된다.
찬실의 친구 ‘소피’는 백수가 된 찬실을 보며 차라리 연애라도 하라고 말한다. 찬실에게 영화라는, 오랜 짝사랑의 상대가 갑자기 의미가 없어진 시점에 때마침 ‘영’이라는 인물이 타이밍 좋게 찬실의 눈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영화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찬실은 미련 없이 그동안 쌓아둔 영화에 대한 사랑을 분리수거해버리려고 하는데, 의문의 인물 ‘장국영’이 그를 걱정스레 바라본다.
‘영화를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찬실의 의문에 누구도 찬실이를 대신하여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살아온 삶 자체로 시가 되는 주인집 할머니, 그리고 나를 위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 내 곁에 있다는 새삼스레 꿈결 같은 순간까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찬실의 시선이 또다시 그를 영화로 향하게끔 만든다. 찬실은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만의 시선으로 영화를 다시 한번 사랑하게 될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다가 어떻게 나이가 들지 가끔 궁금했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좋아하고 있을까? 지금 좋아하는 영화를 그때도 좋아할 수 있을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세계는 점점 좁아져만 간다. 그럼에도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낭만 어린 마음을 대변해주는 이 영화를 보며 조금은 안심이 됐다. 이 영화를 핑계로 영화를 오래도록 좋아하고 싶은 마음을 새삼스레 고백해본다. 뻔뻔하게 이런 지면을 빌려서 말이다.
운이 좋게도 이 영화를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봤다.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그 순간이 영화 후반부의 찬실이가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순간과 겹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잘, 온전히, 마음을 담아 사랑할 수 있는 ‘복’을 누리며, 이 이야기를 뛰어넘어 해줄 김초희 감독의 새로운 영화를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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