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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혐오와 검열 그리고 사상의 자유 〈애국자 게임 2 – 지록위마〉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20. 1. 9.




혐오와 검열 그리고 사상의 자유  〈애국자 게임 2 - 지록위마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2월 28일(토) 오후 4시 30분 상영 후

참석 경순 감독 |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진행 장영엽 씨네21 편집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해산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애국자게임2지록위마(이하 지록위마)19년 만에 애국자게임〉(2001)의 속편의 이름으로 찾아왔다. 2014년 당시 제2야당이었던 통진당 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지나온 지금, 우리는 무엇을 놓쳤고, 또 놓치고 있을까? 경순 감독은 그 사건에 모두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연원을 찾아 사건을 깊이 파고들어간다. 혐오와 검열의 시대에서 사상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헛된 이상일까? 검열을 통해 우리는 과연 이득을 얻고 있을까? 혹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일까? 장영엽 씨네21 편집장과 경순 감독, 그리고 전 통합진보당 대표 이정희 의원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영엽 씨네21 편집장(이하 장영엽): 두 분 관객 여러분께 인사 말씀 먼저 부탁드릴게요.

 

경순 감독(이하 경순): 안녕하세요. 저는 지록위마 영화 만든 감독 경순입니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이하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 이정희 의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장영엽: 두 분 다 공식석상에는 굉장히 오랜만에 나오시는 것 같아요. 특히 극장에는 굉장히 오랜만에 나오셨을 텐데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그리고 이 자리에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는지 제일 궁금합니다.

 

이정희: 영화는 지난 12월 초에 영화제에 가서 봤고요. 저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매우 많은 분들이 등장해서 말씀을 하시잖아요. 그 질문들이 나에게 유리한 질문인가, 유리하지 않은 질문인가를 떠나 우리가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이런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 질문들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눌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자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나왔습니다. 과거에 제가 이만큼 힘들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요. 영화에 나온 분들, 혹은 구속되셨던 분들의 가족들, 또 그 밖의 많은 분들께서 엄청난 고통을 보여주셨고 그 분들의 고통이 저의 것보다 훨씬 컸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하고,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장영엽: 통진당 해산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이정희 대표님 목소리도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통진당이라는 당을 생각했을 때 대표님이 상징적인 아이콘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이정희 의원이나 이석기 의원은 등장하지 않잖아요. 캐스팅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감독님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는지요?

 

경순: 캐스팅의 비화가 많습니다. 이정희 대표님도 영화를 만들며 한 번 뵀고, 이정희 대표님이 이야기의 한 장면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만약 영화에 그 두 분이 나왔다면 그 두 명의 이야기로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영화가 대박이 났을 수는 있겠으나(웃음) 일단 환경이 안 받쳐줬잖아요. 이석기 의원도 석방되지 않았고, 이정희 대표님도 건강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힘드셨고요. 아마 이정희 대표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단지 한 사람의 문제라기 보단 10만 당원이 있는 당의 대표로서의 책임감, 이런 진보 정치가 필요하다고 믿어주었던 시민들에 대한 책임감이 더 크셨을 거라고 봐요. 그걸 소모하는 방식으로 영화가 가는 것보다는 그 사건에 대해서 왜 많은 사람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내용을 쫓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에 굉장히 비싼 배우들을 놓치게 됐죠.

 




장영엽: 그럼 그때 이정희 대표님은 감독님을 만나 통진당 해산에 관련된 다큐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이정희: 어떤 영화가 될지는 그 당시에 예상하기는 어려웠어요. 영화를 보고 나니 인터뷰를 담아내신 것에 목적하신 바가 있다고 느꼈어요. 드라마를 택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회상을 통해 사실관계를 재구성할 수도 있고, 많은 영화적인 기법들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관객들이 힘들 수도 있는 방식으로, 계속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인터뷰로 거의 2시간을 채우잖아요.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가 있다고 느꼈어요. 이 사건을 둘러싸고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나씩은 하게 되었을 테고, 그 당시에 자기 나름대로 어떤 행동들을 했지만 내 생각은 이랬어, 내 행동은 이랬어, 거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었어,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달리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사건이 그냥 끝나버렸잖아요. 그래서 저는 인터뷰가 관객들에게는 결코 편안하지 않은 선택일 수 있으나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고 다시 생각해야 될까, 토론해야 될까 제시하는 꽤 좋은 기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장영엽: 저도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보통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저변의 이야기들이 담긴 다큐 같은 경우에는 관련자들의 인터뷰나 기록 영상 등 정보들이 굉장히 치밀하게 많이 들어가는데, 이 작품 같은 경우에는 개인의 목소리들을 담아내신 거잖아요. 그리고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있어 굉장히 다양한 테이블을 만드셨어요. 색다른 관점에서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는데요. 감독님이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다룬 문영심 작가님의 이카로스의 감옥이라는 책을 읽은 뒤에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 책의 어떤 점이 특히 마음을 끌었는지 궁금합니다.

 

경순: 제가 통진당 해산 이야기를 아무도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계속 투덜거리고 다녔었어요. 그러다 저희 집에 레드마리아〉(2011) 애니메이션을 작업해줬던 친구가 놀러왔는데, 이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가 2014년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한 거예요. 20144월에 저희 어머님이 돌아가셨어요. 저는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씨가 진행한 위안부 문제, 3의 목소리라는 포럼을 촬영하고 있었어요. 촬영하던 중에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듣게 됐고, 그 직전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죠. 4.16이 있고, 저희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제가 찍고 있던 영화의 주인공은 고소를 당하고, 국정원 댓글은 계속 시끄럽고, 그런데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사건까지. 그 해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는데, 1219일 통진당 해산이 완전히 방점을 찍어버린 거죠. 그 해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알던 친구들 두 명이 죽었어요. 사회적인 이슈의 슬픔이 너무 크면 개인의 슬픔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알 수 없게 되더라고요. 이런 일들을 많은 사람들이 같이 겪을 것 같은데, 그런 큰 사건들이 터져 나올 때 저의 개인적인 비애들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굉장히 복잡했던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밖에 나가서는 우리 엄마가 돌아가셔서 내가 너무 슬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월호나 통진당 해산 이야기를 더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뒤풀이든 술자리든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요. 그냥 저 혼자 투덜거리고 마는 거예요. 그러던 차에 누군가 제가 알고 있던 문영심 선배의 책이라며 이카로스의 감옥에 대해 말해줬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 반갑더라고요. 그 책은 주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다루지만 사실상 그 사건으로 인해 통진당이 해산됐기 때문에 기록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는 너무 좋았어요. 저는 당원도 아니었고 통진당에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었던 사람도 아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그 사건을 주목했다는 사실이 크게 반가웠어요. 문영심 선배와 2년간 서로 바빠서 만나지 못했는데 제가 먼저 연락해서 선배를 찾아갔어요. 저도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들을 문 선배의 북콘서트를 다니면서 더 자세히 알게 되고 공부하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이 이야기를 꼭 찍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안 해도 누군가가 기억하고 말하고, 또 그걸 기록으로 표시해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장영엽: 이 영화를 보면 다섯 개의 테이블이 나와요. 언론인, 인권활동가, 전 통진당 의원, 변호사, 구속자들. 이렇게 테이블을 나눌 때 어떤 기준으로 출연진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해요. 이정희 대표님께서도 이 영화가 새롭게 구성한 테이블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부분이 있었는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경순: 여기도 많은 관객 분들이 계시잖아요. 제가 관객이라고 호명하지만 각자가 속한 집단이 있겠죠. 학교나 회사나 다 각기일 텐데, 각자가 속한 그룹이 가진 문화가 있고 대화의 경향이 있잖아요. 우리 사회 속에서 그런 그룹들이 점점 더 노골화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룹마다 목소리가 편향되고 서로 소통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통진당 해산이 터졌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그게 전체적으로 이야기되는 게 아니라 끼리끼리 이야기 되는 느낌. 제가 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 실제로 많은 관련자 분들, 그러니까 여기서 인터뷰했던 다섯 그룹의 사람들이 처음엔 별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했어요. 그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굳이 사회가 낙인을 찍은 혐오의 대상에 대해 또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사실은 그 혐오에 동참했기 때문에 또 말하지 않게 되고. 가족들도 별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저희는 영화로 잠시 보는 거지만 실제 당하신 분들은... 상상해보세요. 국정원에서 몇 십 명이 찾아와 업무가 마비되고, 며칠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해야 하고, 갑자기 집에 쳐들어오고. 다시 상기하는 게 너무 힘드신 거예요. 그래서 그때 생각했죠. 기존 방식의 인터뷰로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구나. 그래서 함께 상황을 겪었던 분들을 모아서 이야기하게끔 했는데, 의외로 이야기가 많이 나온 거예요. 사실은 사전 취재라고 생각하고 그룹 별로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방식이 되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사람을 무작위로 섞는 것이 아니라 같이 친밀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룹으로 묶어서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원래 일곱 그룹이 있었는데, 편집하면서 다섯 그룹만 나가게 됐습니다.

 

이정희: 당시 한겨레에 있었던 허재현 기자가 2013년에야 통진당 비례경선 사태라고 불리는 사건의 사실관계가 완전히 거꾸로 알려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건 저도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정당해산결정 이후에 언론사도 해산될 수 있겠다 싶어 서로 불안해하셨다는 이야기도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들었죠. 확실히 그 시기가 위태로운 순간이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고요. 그 상황을 국민들이 어떻게든 극복하고 계속 민주주의를 향해 진전해나가고 있으니 참 대단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큰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 나오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가깝게 알고 있다 보니 새롭게 듣게 된 이야기에 주목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는데요. 홍세화 선생님의 말씀, 그리고 이태호 선생님의 고민을 들으면서 저는 그 질문에 제가 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께서 우리 사회에서 두 분의 말씀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아주 깊게 파고 들어가고, 그게 굉장히 의미 있는 탐구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주 솔직히 말하면 그 사태의 중심에 있었던 저로서는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저는 단순한 사건의 당사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정치인이었고, 국민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고 이해시키고 어떤 행동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저는 홍세화 선생님의 말씀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상황이 워낙 심각했고, 어떻게 이 상황을 마주할 수 있을지 저나 제 주변이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나 감정의 앙금을 가지신 분들과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구나 싶더라고요. 오랜 세월을 거치고 가까이 있다 보면 정도 쌓이지만 앙금도 쌓이잖아요. 그 앙금에서 생긴 차이들이 이렇게 심각한 일이 벌어질 때는 큰 절벽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과 어떻게 같이 행동할 수 있을지 접근하고 행동하려는 노력을 참 못했다는 점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이라도 홍세화 선생님이나 이태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문제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다시는 그런 상황(통진당 해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다른 생각도 가지고 있고 다른 감정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들을 이해해가면서 심각한 혐오나 차별, 민주주의 파괴로 나아가지 않도록 어떻게 함께 행동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견을 모아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먼저 생각을 해보고 먼저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경순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저는 너무 좋아요. 홍세화 선생님의 그 말씀은 두세 시간의 인터뷰를 하던 중 나온 거거든요. 물론 제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지점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홍세화라는 한 사람도 과거에 어마어마한 사건을 겪고 망명생활을 하다가 돌아와서 거의 20년 정도 생활을 하신 거고요. 그 동안 겪으신 일 중에 이 진보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또 빠질 수가 없어요. 그 과정에서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으신 거예요. 좀 더 나은 세상,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끼리 왜 서로에 대한 세심함이 없는가, 라는 부분 때문에 몇 년을 너무 힘들어 하셨던 거죠. 이 영화에서는 통진당 해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그 대화를 실었지만 이정희 대표가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이 말을 공격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 부분을 불편하게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말씀해주셔서 저는 지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런 부분들을 관객들이 같이 읽고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는 한 사람과 문제가 생기거나 입장이 달라지면 같은 자리에 모이지 않으려고 하고 굉장히 좋은 취지의 자리가 있어도 나가지 않는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어요. 그 일상화의 최고치를 보여준 것이 통진당 해산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 문화에서 그런 침묵이 나온 것이고, 그런 일탈이나 빌미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나온 것이죠.

 

이정희: 누군가는 벽을 낮추고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나아가야 하잖아요. 그 누군가가 나였으면, 우리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장영엽지금 두 분이 정말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저는 이정희 대표님 말씀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건을 겪은 모든 사람들이 어쨌든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이게 그냥 과거의 사건으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이 과거의 사건이 이들에게 어떤 생각과 고민거리를 남겼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다들 깊으실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정희 대표님께서 집필하신 저서가 그 고민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요.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라는 책을 출간하셨어요. 혐오표현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 혐오표현이 어떻게 확산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이 책에서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저는 이것이 통진당 해산이라는 사건을 겪었던 이정희 대표님의 현재적인, 그리고 미래적인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 책에 대해 소개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정희: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라는 책을 내게 된 이유는 사건의 과정에서 구속되신 분들, 가족들, 통진당과 함께 일하셨던 분들이 '종북', '빨갱이'라는 공격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저 역시 그런 공격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죠. 그것에 대해 소송을 냈고 계속 이기고 있었어요. 현실에서 종북 공격은 사라지지 않지만 적어도 법정에서는 계속 이기고 있었는데 201810월에 이를 뒤집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어요. 너네 정치인이잖아. 잘 알려진 유명인이잖아. 너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종북이나 빨갱이라고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라고 인정하고 참아야 해.”라는 내용의 판결이 나온 거예요. 물론 종북, 주사파, 이런 용어들은 정치인으로 하여금 토론의 공간에 함께 있지 못하도록 하는, 배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소수 의견이 있긴 했습니다만, 그 이후에 실제로 많은 소송 사건들이 이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이어가는 식으로 판결이 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사건에서 판결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 판결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혐오표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조금 더 많은 분들께서 이런 주장을 접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내게 된 것인데요

제가 책에서 정의한 혐오표현은 이렇습니다. 그냥 불쾌한 이야기, 또는 매우 거친 이야기를 모두 혐오표현으로 지칭한 게 아니라, 정확히 한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소수 집단이나 그 구성원들 우리 사회에서 이주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진보정당의 당원, 노동조합원, 이전에는 호남 지역 출신 분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는데요. 이렇게 역사적, 구조적으로 형성된 소수 집단에 대해서 다수 집단이 너는 이 사회에 함께 있으면 안 돼. 너는 이 사회에서 축출되어야 할 존재야.라는 내용으로 차별하거나 배제하거나 표시를 하는 것을 혐오표현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제가 사건에서 시정을 구했던 것은 이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혐오표현만 다뤘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쌓이고 쌓이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우리는 알죠. 저와 통진당을 구성했던 사람들에게 그런 혐오표현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은 20123월부터였고요. 20124월에 통진당이 국회에 다수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던 때에 당시 이명박 정부, 여당, 국정원, 극우 언론들로부터 쏟아지던 공격이었는데 29개월 만에 정당 해산까지 이어져서 정치적 축출이라는 현실로, 합법적 절차를 동원한 현실의 폭력으로 나타났으니까요. 혐오표현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현실에서 본 것이죠

이런 취지로 혐오표현에 대해 글을 썼는데, 이 책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종북이라는, 사상과 의견을 이유로 한 혐오표현을 혐오표현 논의에서 빼는 것은 또 하나의 배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혐오표현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사상이나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한국전쟁을 전후로 학살되었는지, 그 역사를 잊고 있습니다. 빨갱이,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이 어떻게 조작과 고문과 배제의 대상이 되었는지 역사는 말하지 않죠. 그래서 혐오표현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한국 사회에서 사상과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혐오표현 - 종북, 빨갱이라는 표현을 그 범위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 책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입니다. 또 하나는 혐오표현을 받는 피해자들은 모든 혐오표현의 피해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북이라는 혐오표현의 피해를 받고 있는 자들이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표현을 한다거나 하지 않고요. 혐오표현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서 혐오표현으로 이익을 보는 극우정치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두 가지 지점입니다.

 

장영엽: 대표님은 대중적으로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이 분이 법률가라는 것이 많이 느껴져요. 법률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혐오표현에 대해 잘 해석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덧붙여서 질문을 좀 드리자면 제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혐오표현을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이정희: 저는 법률가이기도 하면서 정치를 했기 때문에 제가 그리는 법적 이상이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까지는 혐오표현을 말하는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처벌하라는 형사처벌 조항만이 법적 대안으로 제시된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 정말 많은 말들이 쏟아지잖아요. 그걸 다 형사처벌로 규제하기도 너무 힘들고요. 제가 아까 모든 혐오표현의 피해자들이 이 혐오표현을 주도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혐오표현을 주도하는 세력은 결국 극우정치세력입니다. 극우정치세력이 일제강점기 이후 종북, 빨갱이 몰이를 시작했던 데에 연원이 있고요. 거기서 많은 혐오표현들이 극우 종교 세력, 사회 세력으로 쭉 이어져 왔던 것이죠저는 그래서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처벌을 집중할 것을 제안합니다. 정치인, 정당의 책임 있는 간부, 책임 있는 등록된 언론사의 언론인, 사실 이 정도만 정확히 규제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건 혐오표현이니까 하면 안 되겠구나하는 사회적 기준이 생길 것이거든요. 그런데 책임자에 집중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을 다 처벌되어야 할 범죄자로 돌리고 일을 풀어가려고 하면 굉장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좀 더 현실적인 해법으로 이 일을 풀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또 하나, 차별금지법 제정 굉장히 필요합니다. 형사처벌은 사유를 한정해서 정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형사처벌의 사유는 최소한으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달리 차별금지법은 말하자면 국가인권위원회나 대학교의 차별 시정 기구, 대학의 인권 기구 같은 곳에서 문제 발언을 한 학생, 혹은 사회 구성원에게 시정을 권고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고 그런 일들은 굉장히 폭넓고 활발하게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정확히 처벌하고,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혐오표현인지 아닌지를 가려주고 기준을 정해주는 일은 폭넓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장영엽지금 이렇게 아이디어가 굉장히 많으신데, 계속 변호사로 활동만 하시기에는 좀 아쉽기도 한데요. 혹시 다시 입법 활동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이정희: 입법을 할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죠.(웃음) 제가 입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물론 국회의원을 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건 또 많은 시민들의 권리이기도 하잖아요. 법을 만들 수 있는 권리, 그런 권리를 국회의원이 독점하는 것보다 일반 시민이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지금은 더 관심이 많습니다.

 




장영엽이제 2019년이 지나가는데, 다시 2000년대를 돌아보건대 애국자 게임1편이 나온 지 거의 20주년이 된단 말이죠. 그때는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레드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셨어요. 20주년이 다 된 시점에 속편이 나왔는데, 또 다른 방식의 콤플렉스들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감독님께서는 1편과 2편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으며 방향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것 같아요.

 

경순: 가장 큰 건 제가 너무 많이 늙었다는 거죠. 20년 전에는 아주 팔팔했고, 영화를 처음 시작했던 때의 열정과 치기도 있었고, 정치하는 사람들을 풍자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이젠 20년의 무게라는 것이 있어요. 그리고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아주 많이 변화했죠. 한국 사회는 태어날 때부터 계속 격난이었지만요. 97년 IMF가 터졌을 때, 그런 정성이 어디 있겠습니까. 집에 있는 돌반지, 결혼반지 다 해서 이 나라를 살리겠다는. 저는 나라 살리기 광풍이라고 생각하는데, 국민들이 갖고 있는 애국심이 어떤 식의 애국주의로 나가고 어떤 식의 민족주의로 나가는지, 그런 부분들을 찍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애국자게임1편은 유쾌한 영화이기도 하고, 애국가부터 시작해서 다 뒤집어서 한번 보자는 영화였는데 통진당 해산 사건과 문 작가님의 책을 보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애국자게임이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과거 한국 사회는 진보와 우익이 나뉘어서 굉장히 진보적인 토론이나 담론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IMF를 거치고 구조조정이 되고 한반도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20년 동안 한국사회가 조각났어요. 단지 노동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계, 문화계, 학술계, 모든 게 다 시장 논리에 던져져 버린 거죠. 영화에서 박래군 선생님도 그런 이야기를 하시지만, 진보 진영도, 운동권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게 된 거죠. 더 많이 당원들을 모으려고 하고. 진보 정당에서 진보 정치를 이야기하시는 분이 정책보다도 당원 확보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셨거든요. 시민 단체도 그렇고. 진보 진영도 쪽수 모으기에 우선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영화판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영화계도 완전히 초토화가 된 거죠. 서로 경쟁하고 제작비를 공모해서 누군가를 이겨서 받아내는 방식으로. 학교도 그렇게 됐고요. 그러면서 인권 감수성은 떨어지는데 엄청난 혐오표현의 자유는 커지고, 신자유주의 경쟁 문화가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죠. ‘내가 이런 발언을 했을 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거 아니야?’ 하는 식으로요. ‘내가 이런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면 이거 지원 못 받고 떨어지는 거 아니야?’ 모든 것들이 작동 방식이 비슷한데 우리가 이걸 감지 못하고 있어요. 저는 그런 문화 속에서 진보 진영도 굉장히 분열되고, 자기가 무언가를 발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커졌다고 봐요. 사실 서명은 쉬워요. 저 같은 일개 감독한테도 서명 요청이 오고, 저는 늘 제가 동의하는 문제인가 판단을 해보려고 하는데도 자세한 내용은 잘 알 수 없는 채 서명을 하게 돼요. 그 서명이 연대로 올라가고, 그 리스트가 블랙리스트가 되고. 이런 과정들이 사실은 너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그럴 만 해서 블랙리스트가 됐으면 자랑스럽기라도 할 것 같아요.(웃음) 근데 그것도 아니에요. 실제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단체, 사람들은 다 그냥 박근혜를 반대해서, 뭐를 반대해서, 이런 이유로 올라가 있는 거예요. 이건 정말 우리의 수준이 누추한 거죠. ‘이렇게까지 초라해질 수가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하나의 당을 해산시킨 사건 속에서 저는 봤던 것 같아요. 단지 법률적인 문제와 다르게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가능했던 이유, 이 사건을 용인하게 했던 부분들이 무엇인지 더 세심하게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우리 각자를 좀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관객 : 반성이 많이 되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용기 있는 주제를 다뤄주셔서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하시면서 원래 그룹을 나누실 때 일곱 그룹을 구성하셨다고 했는데 이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다른 두 그룹들은 무엇인지 궁금하고요. 또 검열이라는 주제가 중요하게 다뤄졌는데, 이 작품을 만들면서도 제작자로서 어디까지 검열해야 하는지 고민하신 부분은 없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경순: 이 사건이 2013512일에 있었던 이석기 의원의 정치 강연이 문제가 된 거잖아요. 그걸 몰래 녹취를 해서 3개월 뒤에 터트린 건데, 변호사님들도 말씀하시지만 그 사건이 만약 정말 문제가 되는 내란 음모 사건이었으면 그때 바로 처리해야지, 나라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3개월 동안 묵혀놨다가 터뜨릴 순 없어요. 그러니까 이미 시작부터가 불법이었고 잘못된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녹취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그 내용, 그것도 분반토론에서 나온, 그것도 이상호 씨 개인이 갖고 있었던 트라우마와 연관된 이야기를 가지고 부풀린 건데요. 정말 코미디인 거예요. 그래서 강연에 참석했던 분들을 모아서 실제로 강연회가 어땠는지 좀 들어보고 싶더라고요. 강연 내용이 파일로 나오기는 했지만 그때 참여했던 분들이 실제로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해서 그 분들을 네다섯 분 모아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강연회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사실 굉장히 좋았어요. 그 이야기를 처음에 너무 쓰고 싶었는데, 그러면 이 영화가 굉장히 사건 중심으로 가겠더라고요. 좋은 인터뷰였지만 결국은 마지막에 덜어내게 된 것이죠. 그게 하나의 그룹이었고, 또 다른 한 그룹은 가족들이었죠. 가족들이 당한 일들은 사실 말로 할 수가 없죠. 만약 가족이 없으면 그 수많은 사건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족을 팔아먹는 사회가 대한민국인데. 이 분들이 이 사건의 증인들이라고 생각해요. 사건은 통진당에 관련된 것이지만, 이 사건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목격한 사람들은 가족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에필로그에 그 분들을 배치하고 증인석에 앉아 있는 가족들의 증언을 듣듯이 찍은 거예요. 이 분들에게는 어느 한 사건도 북받치지 않는 사건이 없는 거죠. 그때 8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했는데 눈물바다였어요. 감정적인 호소가 될 수는 있겠지만 신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사건을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검열에 대해서 말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검열을 특별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검열 보다는 오히려 이 영화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조금 더 자제하고 덜어내는 과정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이 굉장히 말렸어요. 당사자도 아닌데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다들 우려했어요. 어쨌든 제가 특별하게 영향력이 있는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별로 그런 것들이 걱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이 될 수 있을지, 창작자들이 갖는 고민들을 했죠.





장영엽: 이제 시간 관계상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대표님, 감독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이정희: 이렇게 큰 극장일 줄 몰랐어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고,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지금을 살잖아요. 과거의 일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 이상으로 앞으로 내일을 살 것이고, 어떻게 더 좋은 모습으로 살아갈까, 어떻게 더 같이 살아갈까에 대한 숙제를 저 스스로 안고 있습니다. 제가 그 숙제를 잘 해결하고 있다고 스스로 점수를 매기기 어려우나 천천히 노력하고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경순오늘이 계획된 인디토크로는 마지막이지만 지록위마상영은 계속됩니다. 여러분들이 계속 관심을 갖고 많은 분들께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비록 상영 시간을 찾기 힘들긴 하지만, 인디스페이스나 저희 페이스북 페이지에 계속 일정이 업로드될 것 같으니 계속 지켜봐 주세요. 지록위마가 하나의 사건을 관통하면서 한국 사회가 고민하는 많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오늘 이정희 대표님이 같이 나와 주셔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잼 다큐 강정이라는 영화를 2011년에 만들었는데, 2촬영 때문에 제주도에 갔을 때 제주도청 앞에서 농민들과 어우러지고 연설하시는 이정희 대표님을 뵀거든요. 저는 그때 좀 놀랐어요. 그 전의 이정희 대표님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그때 그 모습을 보고 뭔가 진보 정치가 바뀐 느낌이 들었거든요. 신선함이 있었어요. 진보 정치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어떤 바람에 부합하는 인물이 나왔다는 반가움이었던 것 같아요. 말하는 것도 운동권 같지 않고...(웃음)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기에 말도 저렇게 잘하고, 거기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소통하고 서로 예뻐하는 건지. 불과 몇 년 사이에 굉장히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진보 정치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말도 안 되는 커다란 일들이 벌어졌는데, 저는 이런 분들이 좀 더 진보 정치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지금 정치를 하시라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작가여도 좋고, 변호사여도 좋고, 그런 경험들을 많이 나누면서 진보라는 진영의 개념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마지막 토크를 이정희 대표와 같이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고요. 여러분 오늘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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