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운 나날〉 한줄평
김윤정 | 이 여행의 끝은 결국 ‘영화로운 나날’
김정은 | 영화로운 우연과 기적 같은 만남이 이끄는 사랑스러운 나날들
송은지 | 둘이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풍경
김현준 | 미처 잊고 지낸 일상의 소소한 달콤함, 그리고 사랑스러움
〈영화로운 나날〉 리뷰: 미처 잊고 지낸 일상의 소소한 달콤함, 그리고 사랑스러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현준 님의 글입니다.
일상의 극적인 순간을 목도했을 때, 우리 입에선 저절로 “영화 같다”란 말이 나온다. 우리네 일상 속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을 영화에 빗대는 표현은 암암리에 일상을 권태로이 받아들이는 우리의 무의식을 방증한다. 쳇바퀴 마냥 반복되는 패턴으로 인한 일상의 무감각은 현실을 영위하는 데 불필요한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영화 〈영화로운 나날〉은 작금의 우리처럼, 일상의 가치를 미처 자각 못한 한 인물에게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순간들을 통해서 잊고 지낸 일상의 사랑스러움을 일깨워준다.
마음만은 '천만 배우'지만, 현실은 오디션 보기 급급한 ‘영화’는 과학교사로 근무 중인 ‘아현’과 나름대로 괜찮은 동거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둘 사이에 발생한 오해와 함께 영화는 집에서 쫓겨나며 이곳 저곳을 배회하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가뜩이나 심란한 와중에 기대했던 오디션 마저 낙방했다는 메시지는 영화의 속을 제대로 뒤집어놓는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자신에게 온 것만 같던 영화는 학과 선배 ‘석호’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이름 그대로 “영화로운 나날”을 보내기 시작한다.
〈영화로운 나날〉은 지극히 사사로운 우리네 일상이 한 편의 영화로 다가올 수 있다는 순진한 속내를 주저 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영화는 배우라는 직업인으로서 마주하는 일상의 순간들을 시작과 동시에 소개한다. 자신이 출연한 독립영화 상영회 GV에 게스트로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집에 도착하자 마자 오디션에서 선보일 연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집약된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에게 있어 지극히 사사로운 일상의 일면을 보여준다. 아현과 저녁식사를 하며 그 날 있었던 일을 가볍게 회고하는 장면을 통해 영화는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엇나갈 수 밖에 없는 성격차이를 자연스럽게 묘사한다. 과학교사라는 이유로 아현이 지나치게 이성적이라 지적하는 영화와 그런 영화를 보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아현의 모습은 그 후 벌어질 둘 사이의 갈등을 암시하는 복선인 셈이다. 그렇게 영화는 피치 못할 갈등을 통해 주인공이 맞이할 영화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린다.
주인공의 여정은 흡사 어느 무명 배우의 일상을 각각의 에피소드로 나눈 하나의 단편영화 모음집을 연상시킨다.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학교 선배 석호와의 만남은 무명 배우라는 현실과 맞닿은 '웃픈' 상황들을 나열한 듯하다. 여기서 ‘제논의 역설’을 상기시키는 근거 없는 논리(이름하여 ‘안주의 맥주화’!)와 후배에게 부탁하기 낯부끄러운 개인사를 일말의 주저 없이 영화에게 부탁하는 석호의 존재는 영화의 분위기를 적재적소로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여정, 누나 ‘혜옥’과의 일화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영화의 연기력을 십분 활용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극한다. 이와 동시에 그간 잊고 지냈던 고모할머니의 존재를 떠올리며 무심코 지나쳐온 일상이 지닌 값어치를 드러내기도 한다. 영화로운 영화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 세 번째 에피소드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영화를 배우로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준다. 숱한 좌절을 안겨준 배우의 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걸어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를 감동적으로 제시한다. 영화는 그렇게 무명배우라는 설정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소소한 순간들을 곳곳에 포진시킴으로써 무심코 지나친 일상을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통해 부각시킨다.
흥미로운 건 주인공을 둘러싼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흡사 그가 꾸는 꿈마냥 어딘가 현실에 동떨어진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이다. 석호의 여자친구는 놀랍게도 영화를 석호로 인식하고, 영화는 여자친구 앞에서 설파한 자신의 배우론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뜻하지 않게 마주한다. 누나와 함께 고모할머니의 장례식을 찾아간 영화 앞엔 돌아가신 고모할머니가 나타나 다 괜찮다는 말과 함께 자신과 춤을 춰달라는 소원을 말한다.(보기만 해도 폭소가 나오는 조현철 배우의 막춤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잊고 있던 과거를 반성할 기회를 마주한다. 마지막으로 말 그대로 자신을 천만 배우처럼 인식하는 독립영화 감독과 배우가 등장하며 영화가 그토록 바라는 환상이 현실로 이뤄진다. 이렇듯 현실과 동떨어진 에피소드들을 통해 팍팍한 현실로 인해 미처 실감 못했던 일상의 가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미처 포용하지 못했던 지난 일상들을 가슴에 품기 시작한 영화는 아현과의 갈등을 봉합하며 종종 마주하는 인위적인 로맨스 영화들에선 쉽게 발견하기 힘든 포근한 감성을 전달한다.
영화는 주변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소품들을 통해 일상의 보물 같은 순간들을 소소하게 말한다. 영화와 아현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석호의 가지튀김 일화나 고모할머니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된 근원인 로봇 장난감, 그리고 사인을 요청하는 배우 태경과 휠체어를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 등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감성과 진심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매개체다. 더불어 자칫 거창할 법한 이야기를 인물의 특성에 알맞게 각색한 점, 조현철 배우를 비롯한 여러 주조연의 연기는 미소를 절로 짓게 만드는 귀여움을 유발한다. 보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게 만드는 영화는 추위로 인해 얼어붙은 관객의 감성을 포근하게 감싸주며 일상의 사랑스러움을 체감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로운 나날〉은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맞이할 수 있는 놀라운 변화를 아무렇지 않게 일궈낸 한 편의 마법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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