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과 마주할 때, 던져야 할 질문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2월 10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임흥순 감독
진행 이승민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지난 12월 10일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의 상영 후, 이승민 평론가와 임흥순 감독이 참석한 인디토크가 진행됐다. 임흥순 감독의 이전 작업과 이어지는 결을 가진 이 작품은 이념적 갈등이 극심했던 한국 현대사 속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빨치산이었던 정정화, 김동일, 고계연 세 인물을 소환하여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제목의 ‘우리’와 ‘갈라놓는 것들’이 품고 있는 의미에서부터 시작하여 임흥순 감독의 작품 속 여성 인물들과 공간의 이미지, 그리고 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독의 작업의 흐름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눈 시간이었다.
이승민 평론가(이하 이승민): 지금부터 감독님과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무엇이 갈라지고 무엇이 갈라지지 않았는지, 심도 있게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날씨도 춥고, 미세먼지도 엄청난데도 이 자리에 와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2017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먼저 소개했던 작품이에요. 어찌 보면 미술관에서는 되게 영화 같은 작품일 수 있고, 극장에서는 되게 미술 같은 작품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극장의 관객으로서도, 미술관의 관람객으로서도 이 영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난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양쪽을 넘나들되, 양쪽 모두의 특성을 받아내는 방식보다는 각각의 공간에서 반대의 지점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어서 더욱 궁금하고 흥미롭습니다.이 작품을 어떻게 영화로 만들게 됐는지, 또 영화로 만드실 때 미술 전시와는 어떤 부분에서 차이를 두고 만드셨는지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임흥순 감독(이하 임흥순): 이번 영화가 저의 4번째 장편 개봉작인데요. 항상 장편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미술관에서 펼쳐놓고 보여드릴 기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7년도에 국립현대미술관의 ‘현대차 시리즈’ 개인전이 있었어요. 저는 이 전시를 기획할 때부터 이 영상물을 전시로 보여준 이후에 장편으로 만들겠다는 기획안을 냈어요. 제가 미술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작품뿐만 아니라 현장이나 일상 공간 등으로 들어가서 일반 시민과 함께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을 해왔거든요. 그래서 미술관을 좀 더 다양한 공간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미술관을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공간, 연극을 할 수 있는 공간이나 세트장, 소품실, 의상실 이런 컨셉으로 만들겠다는 기획안을 냈고요.
그렇지만 보신 이 영화를 어떤 방향으로 할지에 대해 확정적인 건 없었어요. 미술작품 안에서는 전시를 준비할 때는 출연한 배우님들이 자기 얘기를 하지는 않았거든요. 전시의 관람객들은 이분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배우로만 알고 있었어요. 저도 거기까지만 말씀드렸고요. 이분들의 출신 등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런 맥락이 숨겨져 있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전시를 한 이후 배우들의 배경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들의 과거 이야기 또는 분단의 상황을 현재로 끌어오려면 배우들의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여겼고 다시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서 지금과 같은 영화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전시 같은 경우는 영화 보다는 파편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미지나 사운드 등을 더 중심에 두었어요. 또 전시에서는 영상물을 3채널로 보여줬고 뒤편에는 이분들의 삶이 나열된 그래프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앞에서 영상들을 보면서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어떤 느낌은 전달이 된다면, 반대편으로 나와서 삶의 그래프를 보면서 보시는 분들이 다시 한 번 편집을 하실 수 있는 거죠. 그렇게 관객이 보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미술관의 장점들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극장은 아무래도 움직임의 한계도 있고 일정 시간 관객들을 가둬놓는 면도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서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려고 했습니다.
이승민: 이 영화와 미술 작품을 같이 보다 보면, 제목은 ‘갈라놓는 것들’인데 사실은 갈라놓기보다는 분화한 것을 분리하지 않고 계속해서 엮어 나오는 느낌이 들어요. 영화 속에 미술의 영상이 들어있고 미술의 영상 속에 다시 영화가 들어가 있고 또 전시장 속에 영화의 촬영장이 거의 다 담겨 있잖아요. 그리고 전시를 정식 오픈하기 전에 먼저 전시를 설치하는 과정을 보여주셨잖아요. 그 과정을 보면서 전시라는 것은 언제나 완결성 있는 완성품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 과정 역시 보여줄 수 있는 것이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전시 공간에 가서 거대한 영상을 만났는데 영상 안에 등장하는 물품들이 또 그 공간의 설치물로 존재하는 거예요. ‘이것이 다 세트장인가’라고 생각하고 보니 김동일 할머니의 옷들이 쫙 펼쳐져서 마치 의상실처럼 있었고요. ‘어떤 게 진짜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경계가 계속 무화되는 상황이 재밌고 놀랍다는 생각을 했어요. 감독님 말씀대로 영상을 보고 가면 뒤에는 그분들의 삶의 그래프가 있는데, 오늘 보니 영화에는 그 그래프를 보고 있는 재연배우들이 있어요.
마지막 장면들도 정말 인상적인데요. 세 명의 배우들이 각각의 다른 표정을 지으면서 갈라져 있지만 그 배우들을 보여주고 실물의 할머니들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가 선명하게 갈라져 있는 것 같고 우리는 계속해서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누구의 이야기인지 가르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잘 갈라지지 않게끔 감독님께서 안과 뒤를 잘 엮으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까 시작하면서 ‘무엇이 갈라지고, 무엇이 갈라지지 않았는지’라고 농담처럼 던져보았는데 감독님께도 제목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 ‘우리’가 무엇인지, ‘갈라놓는 것들’이 또 무엇인지, 각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임흥순: 작품 기획을 2017년도 1월부터 시작했거든요. 그 전해 2016년 10월부터 촛불집회가 있었습니다. 광화문, 서울역 등지에서 두 달 동안 계속 이어졌죠. 저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그곳에 열심히 참여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저의 집이 부암동이라 그곳을 거쳐 갈 수밖에 없었고 걸어가면서 종종 그 풍경을 보게 됐습니다. 그런 상황을 계속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목을 떠올리게 됐어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무엇일까?’ 굉장히 단순한 생각이었죠. 당연히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국가나 분열된 지점들이 있지만, 한국은 극단적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심한 것 같아요. 한국은 유독 이념적인 문제나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이전 작업들을 하면서도 느껴서 그 지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거든요. 〈비념〉(2013), 〈위로공단〉(2015), 〈려행〉(2019) 등의 작업을 하면서 그 바탕에는 이념적인 문제가 굉장히 크게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 하고 싶었는데, 그 시기가 그때였죠.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재를 보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것은 역사이기도 하니 한반도가 분단되기 전을 생각했어요. 일제강점기, 해방, 미소 통치기, 미소 군정 통치기, 남북으로 갈라진 상황들을 생각하다가 정정화 선생님과 김동일 선생님 두 분을 떠올렸죠. 기획을 하던 시기에 독일에서 그룹전이 하나 있었는데, 북한을 주제로 한 작업을 상영했고 설명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때 함께 참여했던 작가 중 한 분이 어머님이 빨치산 출신인데 혹시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고계연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 분의 이야기가 그려졌습니다. 세 분의 이야기를 연결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무엇인지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 무엇인지 한 번쯤 고민해볼 수 있는 작업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승민: 세 분이 현 시대, 오늘을 돌아보는, 일종의 키워드로 감독님께 오셨잖아요. 그래서 이 세 분을 엮어서 한국 현대사를 보게 만들어 주셨는데요. 기존의 작품 〈비념〉, 〈위로공단〉에서는 여성을 소환해서 이야기되어지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그 분들의 삶을 역사에 기입하게끔 해주셨는데 이번 작품의 세 분은 감독님의 작품에 나오기 이전부터 이야기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잖아요. 책으로도 기록된 이야기들인데, 기존에 감독님께서 여성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들은 어찌 말하면 이름 없는 분들은 아니신데요. 이분들을 소환하신 이유가 개인적으로 궁금했습니다.
임흥순: 지금 이야기하신 대로 제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이분들이 저에게 오신 것 같아요. 그래서 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승민: 그렇죠. 때로는 선택하기도 하고 선택받기도 하는 것이 저희의 삶이겠죠.
임흥순: 세 분은 자서전이나 구술서가 나오긴 했지만 그렇게 얘기된 분이 많지는 않습니다. 4.3 무장대에 생존자가 거의 없는데 김동일 선생님께서는 생존자 몇 분 중 한 분, 또 여성인 한 분이시거든요. 또 빨치산, 독립운동 경험이 있다 해도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또 일종의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여성들의 활동은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남성들이 해온 것에 비해서 이분들의 활동을 낮게 보아지는 지점들이 있는데 저는 그 지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예를 들어 정정화 선생님은 총을 들고 싸우시지는 않으셨지만 그 활동들을 할 수 있게 여러 가지 일을 하신 분입니다. 사실 일상이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활동의 가치를 다시 보게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분들의 삶이 이야기가 되었어도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거든요. 여성으로서 대표적으로 이야기된 인물들이지만, 남성들과 비교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이기 때문에 완전히 무명의 인물들은 아니겠지만 그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승민: 실제로 거대 역사에서 누군가를 호명하면, 거의 남성들이고 여성들의 존재는 없을 리가 없는데도 잘 보이지 않죠. 그들이 과거에 호명되었다 하더라도 실제로 호명된 것은 아닐 수 있고요. 또 궁금해지는 것은, 감독님께서 이전 작품에서는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당사자의 주변인들, 자식, 동료들의 목소리가 많이 등장합니다. 세 분 중 이야기를 하실 수 있는 김동일 선생님 같은 경우는 그 언어를 저희가 명확히 받아들일 수 없고 어느 순간 사라지시고요. 그리고 인터뷰를 할 때 당사자에게 집중하면 그들이 주인공이 되고 저희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파고들게 되는데요. 이 작품의 경우 주요 인물들의 목소리가 아닌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고, 또 명확한 목적이 있는 방식의 인터뷰가 아니어서 인터뷰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저분들은 왜 만난 건지 관객으로서 궁금한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구상하면서, 이분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할 때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셨을까 궁금했습니다.
임흥순: 이야기하셨듯이 과거에는 당사자의 목소리, 표정을 이전에는 많이 보여드렸다면 이번에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상황이 형식을 만든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주변분들, 가족이나 친척들, 그분들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죠. 저는 이전에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그렇고 이런 영화 작업 과정에서는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위로공단〉을 할 때도 금천구 지역 주민분들, 주부님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했거든요. 그러면서 이분들 스스로가 공간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중요했고 이 과정을 보는 제가 느끼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배우들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들이 스스로 이야기할 때의 느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것들이 작업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분들 스스로가 세 인물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때 관객분들도 이들의 표정, 제스쳐를 통해 그것을 전달받는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만들기 전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부터, 영화로 끝이 아니라 영화의 재현 장면들이 이어질 때 관객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전달되지 않을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승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당사자의 이야기보다는 주변의 여러 사료와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게 되고, 이를 기념하는 공간에서 그것들이 모여서 또 다른 역사가 되잖아요. 그래서 영화에서 복원사였던 따님이 어느 순간에 의미가 굉장히 커지는 거예요. 그분이 ‘50년이 지나고 나서 나의 흔적을 없애고 난 다음에 진짜로 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복원사의 역할’이라고 하셨을 때, ‘이것이 어쩌면 다큐멘터리 기록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오늘날 무언가를 기록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진짜 역사라는 것을 만날 때 어떤 것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 기가 막히게 그분이 어머님의 역사를 가지고 책을 복원하시는 것을 보면서 감독님께서 그런 대상을 만나신 운과 영화가 그렇게 이어진다는 사실이 소름이 돋더라고요.(웃음)
관객: 영화를 보며 지금은 잊히고 돌아가신 여성을 알게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또 돌아가신 여성 또는 이전 세대를 살아간 여성과 현재의 여성들이 갈라져 있던 부분을 이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이전 작품들에서부터 궁금했던 점이 있는데요. 숨겨져 있고 잊혀있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남성으로서 조심스럽거나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임흥순: 관객분들의 이런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됩니다. 이 이야기가 대답하기가 제일 어렵더라고요. 매번 비슷한 얘기를 하게 되지만 하면 할수록 너무 뻔한 대답이지 않을까 싶어 더 고민을 많이 하는 질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되잖아요. 저도 스스로를 찾아가면서 대학에 들어간 후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삶을 봤던 것 같아요. 그 때 아버지의 삶을 봤는데 재미가 없기도 하고 무미건조하고 이런 부분이 슬프기도 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버지 세대가 20, 30대에 했던 일을 찾아봤고,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 중동 건설 진출, 파독 광부와 같은 분들이 아버지 세대, 계급에 맞는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베트남 참전 군인에 대한 작업을 꽤 오래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후 다른 여러 가지 작업들을 진행했어요.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참여해주셨던 분들이 주부님들이셨어요. 주부님들과 함께 하면서 이분들의 생각, 시선 속에서 지혜로운 부분들을 많이 느꼈어요. 이전 작업들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무언가를 드러내는 작업을 하다 보니 ‘그럼 대안이 뭐야’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하게 되었는데 주부님들을 통해 그 대안적인 부분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성의 시선과 생각이 남성들의 시선과는 다른 면이 있고, 또 넓은 스펙트럼이 있고 다른 감각이 있다고 느꼈어요. 이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지 혹은 이들이 중심에서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 와중에 〈비념〉이라는 첫 장편을 준비하게 되었죠. 그 때 만났던 분들이 할머니들이셨거든요. 중년의 여성들, ‘아줌마’라 불리는 분들과 프로젝트 진행을 하고 할머니들과 작업을 하면서, 제가 궁금했던 부분에서부터 시작을 했던 것 같아요. 그 후 이를 좀 더 현실세계로 끌어오면 어떨까 싶어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을 하면서 〈위로공단〉을 하게 됐는데, 되돌아보니 노동자였던 부모님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님은 공단에서 일하시진 않았지만 지역에서 ‘시다’ 생활, 미싱사의 보조 역할을 40년 동안 하셨어요. 살아온 삶의 감수성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제가 옮겨왔던 부분이 있고요. 10대를 되돌아보면 어머님과 형수님, 여동생이 제가 하고자 했던 것을 지지해주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 지원이 고마운 동시에 미안함도 느꼈고요. 이런 여러 가지 감정을 가족에서 사회로 공유하면 어떨까 해서 다양한 작업을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승민: 감독님과 여러 번 이야기해봤는데 오늘만큼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신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편안하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 같아요. 한편 다음 작품 〈교환일기〉(2019)에서는 감독님의 가족사 이야기가 다뤄지는데요. 물론 여러 결이 있는 작품이지만 그 작품 안에서 이 질문의 답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로 표상되는 가정은 실은 어머니가 꾸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순간 감독님의 작품이 여성을 다룬다고 해서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거나 여성을 다루기 때문에 여성주의적인 시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감독님이 ‘남성으로서 여성을 다루기 때문에 여성의 이야기를 제대로 잘 다루고 있는 것인가’라고 질문을 하게 되면 언제나 미끄러지게 되는 것이죠. 한편 여성의 이야기를 남성감독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어떤 지점에서 맞지 않다고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여성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여성의 삶은 분명 감각할 수 없는 어떤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바라봤을 때 감각할 수 있는 지점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지점들이 모자이크처럼 엮일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저는 또 갈라놓는 질문을 해보고 싶은데요.(웃음) 〈위로공단〉에서 당사자인 중년 여성들의 삶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20대 즈음의 연령대의 여성들이 소환이 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 분들의 삶에서 여러 층위가 있었을 텐데 재연배우들을 20대 여성들로 소환했습니다. 중년 여성 또는 할머니들이 재현을 통해서는 일정 연령대의 여성으로, 신비화된 숲의 공간에서 소환이 되는 거죠. 세팅되는 공간, 세팅되는 배우들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임흥순: 세 분들이 1920년대쯤엔 배우들의 나이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10대 후반, 20대가 현실세계에서 비현실의 상황을 맞닥뜨리는 시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 연령층의 배우들을 선택했던 것 같고 나이를 크게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빨치산의 실제 연령을 생각하다보니 그랬던 부분도 있고요. 산에 대해 말하자면, 현재의 산은 여가의 장소이지만, 생존의 공간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무명의, 죽어간 많은 사람들에게 산이라는 공간은 피신의 장소였고 이 공간 안에서 투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산이 시공간을 연결해준다는 생각도 했어요. ‘디졸브’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과거엔 피신을 하기 위해서는 산으로 갔는데, 현대사회에서는 피신의 장소조차 없는 것 같아요. 현대 사회에서 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 재연 배우 중 두 분의 여성은 탈북의 경험을 가지신 여성분들이셨는데, 섭외할 때 이런 경험을 가지신 것을 알고 계셨는지, 이에 대한 의도가 있으셨는지요.
임흥순: 의도가 있었습니다. 일반 시민들과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을 했는데요. 저는 전문 배우들과의 작업이 아직 익숙지 않고, 일반 시민들과 했을 때 더 의미를 느껴요. 아마츄어리즘에서 오는 감동이 크더라고요. 그래서 세 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분들을 찾기 위해 이분들의 삶의 특징을 봤을 때 북쪽 출신 배우, 남쪽 출신 배우, 재일교포 여성들과 함께 하면 어떨까 구상하게 됐습니다. 분단의 지점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배우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일조선인 분들은 출연이 어렵게 됐고 북쪽이 고향인 두 분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세 선생님의 이동을 보면 김동일 선생님은 제주도에서부터 북쪽으로 이동하셨고 고계연 선생님도 경남 삼천포에서 지리산을 통해 광주로 가셨고 정정화 선생님은 북쪽으로 가면서 서쪽으로 이동합니다. 이들이 계속 어디론가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북한 이주여성들은 남쪽으로 이동을 하잖아요. 시간은 다르지만 만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과거의 분단으로 인해 세 분의 이야기를 시작했듯이, 현재의 분단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분들이라고 생각을 해서 배우를 섭외를 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또 재일조선인 섭외가 어려웠던 하나의 이유로는 이념적인 차원도 있었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지점이 있었죠. 다 담지는 못했지만 그런 의도와 이야기들이 많이 있죠.
이승민: 전반부에서는 세 배우 이미지가 너무 같아서 누가 누구인지 헷갈렸어요. 후반부에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가 되어서야 명확하게 갈라져서 보였는데요. 말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이 모여서 역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탈북 이주여성인 이 분들이 이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가 또 하나의 역사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닮은 세 명의 재연배우가 아니라 각자 이야기들을 하면서 자기가 재현하고 있는 역사처럼 현실에서 만나고 있는 관계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인터뷰하는 것이니 말이에요.
임흥순: 아까 20대 배우들을 왜 소환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답을 뒤늦게 해보자면, 〈위로공단〉 이후에 시사회 같은 자리가 있었는데, 기륭전자 분들과 영화를 함께 보고 20대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과거의 여성들과 현재의 여성 노동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면서 이 영화가 20대를 위한 영화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위로공단〉에 참여해주셨던 많은 인터뷰이들도 자신들이 험난한 길을 건너왔기 때문에 힘들었는데, 20대 관객들을 봤을 때는 가슴이 뭉클하고 이들이 어떻게 또 험난한 강을 건널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제가 10, 20대와 계속 호흡하고 얘기 나눌 수 있는 작품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또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니 20대 여성을 계속해서 소환했던 것 같습니다.
이승민: 저는 〈위로공단〉에서 20대 여성들이 가면을 쓰고, 뒷모습을 보이고, 숲에서 언어를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일 때, 이를 대상화하는 그 시선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을 지나 다른 방식의 고민으로 넘어가셨다고 느꼈는데요. 이번 작품처럼 그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고 이 말들이 언어가 되고 독립적인 개체가 된 것을 보며 작품마다 어떤 고민을 떠올리고 다시 풀어가는 여정이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재연배우들을 제외한 분들의 복장은 재현 당시의 복장인 듯했는데 재연배우들의 복장은 현대식으로 표현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임흥순: 과거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은 저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재현은 전문 배우들이 다른 영화들에서 많이 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2개의 상황을 겹치게 하고 싶었어요. 세 분의 선생님들을 재현하는 동시에 현재의 탈북하는 상황을 재현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복장을 현대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관객들이 보기에 불편하긴 하지만, 재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질문하는 방식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탈북을 하는 과정도 생각하면서 만들어갔습니다.
관객: 감독님께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인터뷰를 하실 때 당사자 분들에게 어떤 의도로 질문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승민: 관객 분 질문에 덧대어서 함께 질문을 드리자면, 카메라를 한 번이라도 잡아본 사람이라면 어떤 질문을 해야 저런 답이 나올 수 있을까, 혹은 어떤 관계를 쌓아야 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오랫동안 인터뷰를 해 오신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카메라를 드시고 상대방이 말을 할 수 있게 만드시는지, 어떤 노하우가 있으신지 같이 여쭤보고 싶습니다.
임흥순: 인터뷰를 할 때는 세대도 중요하고 시기도 중요한 것 같아요. 베트남 참전 분들을 인터뷰할 때 그 분들은 60대셨는데요. 99년부터 민간인 학살 등의 문제가 거론되면서 베트남 참전 군인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좋지 않아지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안 한 부분도 있었어요. 또 공적인 역사, 국가가 말했던 것들을 반복해서 이야기하셨어요. 개인으로 만났을 때는 덜했지만, 사무실 등에서는 자기 얘기를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일단 작품을 할 때 어떤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은 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지는 않아요. 어떤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편하게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상대방의 태도도 중요한 것 같아요. 어르신들은 특히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꿰뚫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가능하면 다 무장해제를 하고, 듣고 싶고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많이 보여드려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우선의 목적이긴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표정에 따라서 인터뷰이도 이야기하는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인터뷰어도 상대방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장점이자 단점인데 제가 좀 부족해보이고 느릿느릿한 것도 좋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저도 사실 인터뷰이가 되면 상대방이 상황에 따라서 좀 기다려주고 배려할 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좀 부족하기 때문에 얻는 지점들이 있기도 하고요. 참전 이야기를 할 때는 동질감을 갖게끔 군대 이야기를 하고 그랬어요. 그러면 또 하나를 내려놓으시고 편하게 말씀해주실 때가 있었고... 그 때 군대 갔다오기를 잘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웃음) 〈위로공단〉 같은 경우는 필요할 때 저의 어머니 이야기를 말씀드리면 더욱 편하게 말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승민: 이전 질문과 비슷한 맥락에서 남성 감독님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질문할 때, 여성들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어떻게 질문을 할 것인지 물을 수도 있을 텐데요. 다른 것을 떠나서 잘 들을 준비가 돼있는 사람에게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태도가 감독님의 표정, 제스쳐 안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임흥순: 저는 기본적으로 여성들을 어려워하는 면이 있는데 이런 감정은 동시에 존경심으로 표현되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이 존경심, 존중하는 마음으로 표현되면서 인터뷰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관객: 저는 제목이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더라고요. 큰 차이는 없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의미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의도가 궁금합니다.
임흥순: 깊게 생각해주신 것 같습니다.(웃음) 사실은 제목을 떠올릴 때, ‘갈라놓는 것들’이 현재 진행형처럼 느껴졌습니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갈라놓는 것들’이 무엇인지 질문하기 위해서 그렇게 제목을 정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전에도 비슷한 질문이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어요. 오늘 더 생각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이승민: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서는 제목이 갈라져서 등장하는데 엔딩에서는 제목의 이미지들이 모두 붙어있습니다. 이런 이미지를 보면 감독님께서는 갈라놓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갈라졌다는 것은 결국 이전에는 함께 있었다는 것이고 갈라놓은 것은 결국 이어져야 한다는 함의를 표현하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갈라놓는다는 말 안에 담긴, 과거에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이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숙제처럼 고민하게 됐는데요. 엔딩 크레딧에서 제목이 모두 붙어서 올라갈 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재밌게 이야기 나눠주신 관객 분들도 멋진 관객분들이십니다. 또 오늘 재미나게 이야기 해주신 감독님께 박수 드리면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임흥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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