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한줄평


김정은 | 세 여성의 시선과 언어를 담은 내밀한 일상으로 지워지고 감춰졌던 이태원의 맥락과 역사를 복원하다

송은지 | 주변의 자리로 밀려난 역사적 여성들

정성혜 |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공간을 기록한다는 것

김윤정 | 이태원의 살아있는 역사를 오롯이 기억하고 기록해내는 방법







 〈이태원  리뷰: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공간을 기록한다는 것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강유가람 감독이 연출한 다섯 작품 중 <이태원>은 그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첫 작품인 다큐멘터리 <모래>(2011)와 두 번째 작업인 단편 극영화 <진주머리방>(2015)은 각각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등 공간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 담긴 작품이었다. <이태원> 이후로는 촛불집회의 페미니스트를 담은 <시국페미>(2017)90년대 영페미의 이야기 <우리는 매일매일>(2019)까지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기록해오고 있다. 연출 시기상 한가운데 위치한 <이태원>은 전후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강유가람 감독 작품의 대 주제, 공간과 여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담은 작품으로 보였다. 감독의 모든 작품에서 공간과 여성은 빼놓을 수 없지만, <이태원>은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공간을,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적절한 해답을 보여주고자 한 의도가 특히 두드러진 작품이다.





한국 현대사의 공간은 너무나 쉽게 붕괴되고, 붕괴된 공간의 기억은 성급하게 기록된다. 계속해서 새로워지는 재개발의 도시 서울에서 여성,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그렇게 지워져 왔다. 이태원 역시 한남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이 결정된 공간이다. 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로 재개발의 진행이 더뎌지고, 낙후되어가는 이태원의 골목길에 청년이 들어와 상권이 형성된다. 이렇게 급격히 변화하는 이태원의 흐름 속에서 영화는 오랜 시간 이태원에 살아온 세 인물, ‘삼숙’, ‘나키’, ‘영화의 시선에 주목한다.


지금의 청년들에게 젊음의 거리’, ‘힙플레이스로 인식되는 이태원의 골목길 사이에는 70년대 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던 이태원의 기지촌, ‘후커힐이 있다. 세 인물은 70년대 후커힐에서 미군을 상대로 일하기 시작하여 이태원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이들의 현재의 일상, 하물며 성격까지, 언뜻 보기에 세 인물은 닮은 부분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세 인물의 현재로는 다 드러나지 않는 삶의 맥락이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난다. 각자의 구술에서 이태원의 기지촌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어땠는지 들을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서로 간의 입장 차이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 주도하에 형성된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의 삶이든 가부장제 사회 속 여성의 삶이든, 결국 여성들의 삶은 제도적, 사회적으로 통제되어 왔음이 세 인물이 추억하는 당시 여성들의 삶으로 증언된다.





감독과 세 인물이 오랜 시간 쌓아온 관계 덕분에 이들 모두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삼숙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기다려왔다는 듯, 그는 자신의 역사와 생각을 풀어놓는다. 영화의 시작도 삼숙이 자신을 찍은 푸티지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화질이 좋지 않은 그 영상이 어떤 것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삼숙은 오래도록 자신을 기록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를 다시 보니 그 장면이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삼숙의 또 다른 영상은 영화의 힘이 가장 응축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또 한 번 등장한다. 삼숙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겨놓아야겠다고 생각하기까지, 그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이 순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영화 내내 강했던 삼숙은 말로 채 전하지 못할 그의 역사를 자신이 직접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느낀 건 아니었을까? 그 깊은 불안감이 와 닿았다.





하지만 영화는 과거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 인물은 이태원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동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재의 이태원을 바라보고 카메라는 그 시선을 공유한다. 재개발로 인해 삼숙의 클럽 앞 건물이 비싼 값에 팔리고 온 동네가 떠들썩해지지만, 결국 다시 일상이다. 앞으로의 삶을 위해, 각자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세 인물이 일을 마치거나 시작하는 현재의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태원의 역사를 세 여성의 목소리로 기록함과 동시에, 이태원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역사는 계속될 것임을 영화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2019년을 돌아보면,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등장했던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제야 우리에게 도착하고 있다. 올 한 해 이어져 온 여성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이토록 강렬한 다큐멘터리. 2014년과 2015년 즈음을 담고 있는, 강유가람 감독의 시선으로 세 여성의 역사를 담아낸 이 영화는 201912월에도 전혀 뒤늦다는 감각이 없다. 어쩌면 이 다큐멘터리는 지금을 기다려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 여성의 삶을 전하는 감독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관객을.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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