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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여성 각자의 고유한 역사를 위하여 〈이태원〉 강유가람 감독 인터뷰

by indiespace_한솔 2019. 12. 16.



여성 각자의 고유한 역사를 위하여 

 〈이태원〉 강유가람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영화 〈이태원〉의 개봉을 앞두고 강유가람 감독을 만났다. 〈이태원〉은 그간 영화 작업을 통해 공간과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해 온 강유가람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이태원을 살아온 세 명의 여성 삼숙, 나키, 영화의 시선과 언어를 통해 한 공간의 역동적인 변화와 화려한 이면 속에 가려진 보편적이고도 특수한 여성의 삶과 역사를 담아낸다. 여성 각자의 고유한 역사를 위하여 카메라를 든 강유가람 감독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이태원〉의 개봉을 축하합니다. 〈이태원〉은 다양한 영화제, 기획전에서 상영되었는데요. 인디스페이스에서도 몇 차례 기획전을 통해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정식 개봉으로 관객들을 기다리는 마음은 조금 다를 것 같아요. 개봉에 대한 소감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이태원〉이 처음 공개가 되고, 여러 영화제에 가게 되었지만 그 이후에는 관객들을 만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인디스페이스에서 기획전을 할 때마다 꼭 〈이태원〉을 찾아 주셨고 상영을 할 때마다 많은 애정을 보여주셔서 감사하고 좋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나봐요.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젊은 층이 많이 놀러 다니는, 맛집이 많고 한 공간으로 인지되는데요. 막상 그렇게 이태원을 자주 찾는 사람들과 이 영화가 만날 기회가 마땅치 않았어요. 그래서 개봉을 하게 된 것이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로서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기회예요. 감사하게도 개봉 전 배급사에서 이태원 주민시사회를 특별히 기획해 주셨는데요. 이태원에 자주 놀러가시는 분들이나 실제로 살고 계시는 분들, 그리고 이태원에서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분들도 오셨어요. 다들 이태원을 잘 알고 계신, 혹은 살고 계신 분들이지만 이런 역사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는 말씀을 해 주시기도 하고, 인상 깊은 코멘트를 많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개봉을 하게 되어서 일단 기쁩니다.(웃음)

 

 

영화 〈이태원〉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다큐멘터리로 담게 된 계기도 듣고 싶습니다.

 

영화 〈이태원〉은 미군 기지촌이 융성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태원에서 살아온 세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제가 이태원이라는 공간 자체를 인지하고, 이 공간으로부터 독특한 느낌을 받았던 것은 꽤 오래 전이에요. 용산 참사와 남일당 사건 이후 1년 정도 흐른 뒤 이 공간을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하고자 기획된 워크샵에 참여했어요. 워크샵 팀원들과 남일당에서부터 후커힐까지 걸으면서 미군 기지가 얼마나 큰 지 몸소 느끼고, 그걸 영상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 시간이 저에게 되게 남달랐어요.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큰 기지가 있고, 군사 시설로 인해 융성했던 기지촌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요. 그렇다면 이 공간에 어떤 사람들이 살아 왔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제 친구가 이태원에서 일하는 여성 분들을 지원하는 여성 단체에 있으면서 나키님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며 신뢰가 있는 사이였어요. 친구의 소개를 통해 나키님을 만나면서 기획이 구체화 되었던 것 같아요. 이분의 삶과 이태원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변화를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반에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들썩거리는 이태원 경리단길도 촬영했지만, 아무래도 후커힐과 경리단길은 거리가 조금 있어요.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 후커힐의 여성 분들과 기지촌의 배후지라 할 수 있는 우사단로를 찍는 걸로 기획을 바꾸었습니다.

 




〈이태원〉에서는 독보적이고 매력적인 세 인물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앞서 말씀해주신 나키님과 삼숙님, 그리고 영화님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첫 만남부터 카메라를 허락하기까지의 과정도 듣고 싶습니다.

 

나키님을 소개해 주신 저의 지인이 영화님도 소개해주셨고, 나키님이 삼숙님을 소개해주셨어요. 삼숙님은 이태원 여장부’, ‘이태원 여자대통령이라는 말을 듣던 분인데 카리스마가 대단하셨어요. 처음부터 촬영에 대한 두려움도 전혀 없으셨고 카메라 앞에서 바로 말씀을 시작하셨어요. 나키님은 조금 조심스러우셨어요. 바로 촬영을 시작하긴 어려웠고, 계속 쫓아다니면서 집으로 가도 돼요?’, ‘카메라 들고 가도 돼요?’라는 식으로 제안을 드리는 긴 과정이 있었어요. 나키님을 제일 먼저 만나기는 했지만 이렇게 마음을 열기 까지는 제일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영화님은 잔정이 많으시고, 사람을 되게 좋아하세요. 처음 만났을 때는 경계도 하시고 카메라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 지점을 지나고 나니까 정말 편하게 대해 주셨어요.

 

 

과거 ‘I-독립영화여성감독전상영 후 인디토크에서 주인공 세 분이 완성된 영화에 대해 어떤 반응이셨는지 말씀해주셨습니다. 당시 영화님은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고도 전해주셨는데요. 정식 개봉에 대한 세 분의 반응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세 분이 각자 다른 반응을 보여주셨는데요. 삼숙님 같은 경우에는 그래, 네가 잘 돼야지.’라는 이야기를 하셨고요. 영화님은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하셨어요. 이번에 정식 포스터를 세 분이서 함께 찍었어요. 영화를 만들 때도 세 분이 함께 담기는 장면을 한 번 찍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이번 포스터 촬영을 통해 처음으로 다 같이 모이신 건데 사실 저는 긴장이 됐어요. 저는 세 분을 알고 있지만, 처음 보는 배급사 직원분들이나 포스터 촬영 담당자분들도 계시는데 어색해하시거나 당황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문제 없이 마무리했습니다.(웃음) 포스터가 나와서 전달해 드리러 갔더니 영화님이 왜 자신은 뒷모습만 나왔냐는 의외의 반응을 보이시더라고요. 포스터 촬영을 할 땐 옆모습이나 뒷모습만 찍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리고 저는 영화님의 뒷모습이 포스가 느껴져서 좋아요. 이번에도 그 이미지가 제일 강렬해서 쓰게 됐고요. 나키님은 머리에 신경을 많이 쓰시잖아요? 포스터를 보자마자 머리가 말이 아니구나하셨어요. 그래서 아니다, 멋있게 잘 나오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죠. ‘네가 나한테 정성을 많이 쏟아서 고맙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제가 특별히 해드린 것도 없는데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얼마전에 영어로 적힌 영화 홍보지를 삼숙님의 바 그랜드 올 아프리에 놓고 왔거든요. 그런데 삼숙 님이 PD님께 갑자기 전화를 하셔서 평택에 미군이 많으니까 평택에서 상영을 해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어요.(웃음) 그리고 영화님은 이번에 영화를 보시겠다고 하셨어요. 세 분이 함께 가기는 어렵겠지만, 개봉 차주에는 가까운 극장으로 모두 모시고 가려고요.

 

 

영화를 통해 세 인물의 일상의 공간을 보고 그들이 지나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비슷한 지점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가치관이나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다른 세 분의 삶을 하나의 영화로 담아내면서 어떤 고민이 있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 영화에는 미군과 관련된 일을 해왔다는 공통점을 가진 여성들이 나오고, 그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삶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어요. 그 중 삼숙님 같은 경우에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혼자 삶을 개척해 온 강한 캐릭터잖아요? 장사를 오래 해오셨기 때문에 이재에 밝으시고, 가게를 소유한 분이고요. 그런 점 때문에 경제적인 조건이 다른 두 분과 차이가 있기도 한데, 오히려 사회적 낙인에는 더 민감하셨어요. 삶에 대한 각자의 거리두기 방식이 달라서 밸런스를 조율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편집을 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이분들의 삶이 맥락화 될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각자의 태도는 달랐지만, 한국 사회라는 틀 안에서 여성이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고충이나 애환들이 이해될 수 있게끔 이야기가 배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중노년 여성이라는 점인데, 노년 여성에 삶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될 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주변화되고 소외되는 노년 여성의 경제적, 환경적 조건 같은 것들이요. 삼숙님은 경제적으로는 상황이 다를 수도 있지만 삼숙님도 혼자서 살아가며 외로움을 느끼시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오랜만에 찾아가면 말을 많이 하시기도 해요.

동시에 미군에 대한 각자의 의견차는 뚜렷하게 있었어요. 나키님은 미군을 상대로 일했지만 그들을 싫어하세요. 그런 의견은 본인의 경험 하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그런데 삼숙님은 미국인 남편이 있었기 때문인지 미군이랑 결혼하는 걸 긍정적으로 보세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에 따라서 미군을 대하는 태도나 입장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님 같은 경우에는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으로 매번 쿨하게 말씀하셨어요. 촬영할 때 특별히 그들에 대해 덧붙인 말은 없었어요. 그런 세밀한 부분들이 곡해되지 않고 그분들의 삶의 맥락에서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많이 고심했어요.




 

삼숙님, 나키님, 그리고 영화님의 얼굴이 아주 가까운 클로즈업샷으로 등장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런 촬영은 순간의 판단이었나요? 촬영 당시의 의도나 감정이 궁금합니다.

 

촬영감독님께서 촬영한 샷들도 많지만, 제가 이분들의 표정이나 얼굴에서 느껴지는 기운 같은 것들을 정말 좋아했어요. 말로 하지 않아도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느낌이 있거든요. 나키님 같은 경우는 길에 오랫동안 앉아 계실 때가 있어요.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주민이지만 공간을 관찰자처럼 계속 쳐다보시는 모습이 저에게는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 풍광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던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 마음에 오래 남았어요. 그리고 영화님 같은 경우에는 편견을 가지고 떠올리는 후커힐 종사자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멋있는 느낌을 풍기기도 해요. 그 멋진 느낌이 인상적이어서 클로즈업으로 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영화님이 선풍기 바람을 맞으면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때의 표정이나 눈빛, 바람과 빛이 아직도 생각이 나요.

 


카메라로 담아내는 과정에서 감독님께서 보시기에 안타까울 수도 있고, 말리고 싶은 선택을 하시는 순간들을 마주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 순간들에 대한 고민은 없으셨는지 궁금해요.

 

영화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데, 나키님께서 의료기기 체험 치료를 열심히 다니세요. 그게 처음에는 무료 체험이지만 다니다 보면 무언가를 사게 만들어요. 계속 비싼 걸 권하길래 저희가 사지 마시라고 말씀을 드린 적도 있어요. 그래도 뭔가 사시더라고요.(웃음) 이런 문제는 노년 여성들이 주변화 되면서 겪는 보편적인 현상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외롭고 몸도 좋지 않은데 그곳에 가면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웃음 치료 같은 프로그램도 있으니까요. 주변에 여쭤보면 다들 하나씩은 구매를 하셨더라고요. 그게 짠하면서도, 한국 사회가 노년 여성의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 것 같아요.



오프닝에서 삼숙님께서 직접 촬영하신 영상이 등장합니다그리고 그랜드 올 아프리의 간판에 불이 들어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인상 깊습니다삼숙 님의 영상으로 영화가 시작되고삼숙 님의 가게로 영화가 마무리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삼숙님은 자신의 서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물이에요그렇게 당신의 이야기를 독백처럼 하시는 모습이 영화의 결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삶에 대해서 여성들이 직접 말하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그 영상은 삼숙님이 유언 비디오라고 하시면서 건네주신 영상인데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정서를 전달하더라고요뒤쪽에 넣으려고도 해봤지만 그 영상을 맨 앞에 넣음으로써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그리고 삼숙 사장님은 365일 가게 문을 여는데 그게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큰일이 있거나 다치시는 일이 없는 한 기본적으로 휴무가 없어요그래서 인생이 계속 지속되는 느낌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계속 여기서 살아갈 것 같은 느낌으로불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켜지는 장면으로 영화를 마무리하고 싶었어요그런데 제가 좋아해서 그랬는지 삼숙님의 가게에 불이 꺼지거나 켜지는 장면을 정말 많이 찍었더라고요해질녘의 거리가 애잔하면서도 느낌이 좋거든요왜 이렇게 많이 찍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이 찍었던 것 같아요.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감독님의 신작 〈우리는 매일매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에선 내레이션을 통해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이태원〉은 이따금씩 질문을 던지는 감독님의 목소리가 작게 들릴 뿐 내레이션이나 영화 속 개입이 거의 없어요. 이렇게 영화를 구성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내레이션이라는 게 하나의 축처럼 영화를 이끌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 편집을 통해서 저의 시선은 이미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태원〉에서는 이분들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여지를 줄 수 있게끔 직접적인 방식으로 설명을 하지는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레이션을 쓰지 않았고요. 대신 〈우리는 매일매일〉 같은 경우는 제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다 보니까 내레이션을 쓰지 않으면 이야기가 잘 안 붙더라고요. 작품의 기획 의도에 따라서 결정하는 것 같아요.

 

 

더불어 〈이태원〉은 한 공간의 특징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오롯이 탐구한 반면, 〈우리는 매일매일〉은 전국 각지를 돌며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일상을 만나는 영화입니다. 특정 로케이션을 집중해서 다루는 영화와 여러 장소를 오가는 영화, 각각의 매력이나 고충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여러 곳을 돌아 다니면 제작비가 많이 들어요.(웃음) 그렇지만 풍광이 매번 달라지니까 다채롭게 찍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어요. 〈이태원〉을 제작하면서는 다른 힘듦이 있었는데, 한 공간을 찍다 보면 내내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아도 조금씩 변하잖아요? 이걸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저것 시도를 했어요. 한번은 기지촌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차에 고프로 카메라를 달고 기지촌 담벼락을 쭉 돌면서 풍광을 담았는데요. 기지가 워낙 크다 보니 촬영본이 거의 20분이 넘는 거예요. 실험 영화처럼 그 장면을 영화 초반에 넣어 보기도 했는데, ‘영희야 놀자제작팀 내에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냐고 피드백을 해주셨고요.(웃음) 드론으로 촬영을 하려고도 했는데 군사 시설이라서 허가가 안 나더라고요. 한 공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이태원〉을 제작할 당시 후커힐 근처에 작업실을 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꾸준히 이태원 아웃리치 활동에 참여 중이신데요. 감독님이 〈이태원〉을 본격적으로 기획하시던 2014년쯤엔 건물주들이 주민을 내쫓아 세를 올리고 새로운 가게들이 문을 열던 시기였을 것 같습니다. 최근 이태원 곳곳은 젠트리피케이션 광풍에 생겨난 가게들이 줄줄이 폐업하는 국면을 맞이했어요. 작업을 시작하던 시기와 2019년이 끝나가는 지금, 개인적으로도 체감되는 차이가 있나요?

 

개봉 전 버전에는 청년 분들의 인터뷰가 꽤 나왔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월세로 30-50만원을 냈는데 촬영을 마치기 6개월 전 즘엔 월세로 100-150만원을 요구 받았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영화를 완성해서 보여드릴 땐 다들 그곳에 남아있지 않으셨어요. 한국 사회의 부동산 개발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공생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그에 비해 한국 자본의 속도는 인내심과 자비심이 없어요. 이태원에 들어오면서 여기 5년 뒤면 나가야 되니까 그때까지만 장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분도 계셨어요. 한남3구역은 황금알을 낳는 땅이라 재개발 경쟁 과열로 인해 시공사 비리가 정말 심각해요. 너무 심해서 얼마 전 서울시에서 시정 명령을 내렸고요. 덕분에 개발이 조금은 지체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변하게 되려나 걱정되네요.

 

 



〈이태원〉을 보며, 한국에서 여성으로 50년을 살면 누구라도 투쟁과 생존의 역사, 말 그대로 이야기를 갖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단지 사적인이야기라는 이유로 축소될 수 없고요. 과거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선 여성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유독 사적인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잣대에 대해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으로 연결되는, 여성의 삶의 맥락을 축소시키는 방식의 시각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세 분의 일상을 바라보고 기록할 때 감독님의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50년이 아니라, 한국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가진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태어나는 자체가 투쟁이니까요. 남아를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여자 아이들이 태어나지도 못하거나 탄생을 환영 받지 못한 오랜 시기가 있었고요. 그런 이야기가 단지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것은 사회가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지는 것 같아요. 사실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페미니스트는 아니겠지만, 누구나 다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 만큼 여성으로서의 생존 경험은 모두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맥락을 잘 읽어내고 해석하는 기록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 기록을 소위 말하는 주류의 역사에 편입시켜서 같이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난 번 〈우리는 매일매일〉 상영 후에 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 어떤 젊은 관객 분이 전태일은 알아도 당시 어떤 여성 노동자가 활동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여성노동자들도 큰 규모로 투쟁했지만 우리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잖아요. 기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이야기를 전달했을 때 파생될 수 있는 영향력이 저에게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우선 제가 처음으로 작업했던 〈왕자가 된 소녀들〉(2013)이 큰 영향을 주었지 싶어요. 1950년대에 여성 국극이 큰 인기를 끌었고 여성 배우들이 왕성하게 활동을 했는데, 추후에 역사가들이 기록하는 과정에서 여성국극이 폄하되거든요. 국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사장되어가는 역사를 보면서 여성의 역사가 잊혀지고 왜곡되는 과정을 알게 되었고, 다른 영역도 모두 비슷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앞서 말씀하신 삼숙님의 말하고자 하는 욕망도 비슷한 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이 남성이었으면 뚝심 있는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알려졌을텐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왜곡되거나 가려지기도 하고요.

 

맞아요. 어제(3) 김하나 작가님과 GV를 했는데요. 작가님께서 권김현영 선생님 북토크에 가셔서 들은 말을 인용해 주셨어요. ‘실패했어도 쓰는 여자의 이야기는 남는다는 이야기였는데, 그게 영상에도 적용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 작업자들이 정말 소중해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사적인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묵인되어 버리는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사적이라는 것을 다시 해석하고 재맥락화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왜 사적이야?’라고 질문을 던져봐야 해요. 제가 존경하는 정희진 선생님께서 영화 〈송환〉(2003)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왜 장기수 분들은 선생님이고, ‘위안부운동을 하는 분들은 할머니냐는 질문을 던지신 적 있어요. 그런 맥락인 거죠. 여성들은 운동을 해도 가부장제 하에서 부여된 지위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안타까워요. 그렇지만 요즘 관객층은 여성 서사, 여성의 이야기에 갈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리고 서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세요. 관객들의 해석으로부터 많이 배우게 돼요.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상영 후에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가 정말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어요. 여성주의 영화를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발전하고 있음을 체감하는 순간이었어요.

 

정말 고무적인 순간들이 있어요. 최근에 만난 관객 분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숱하게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그 느낌을 〈이태원〉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임신중절 문제를 다룬 〈자, 이제 댄스타임〉(2013)을 여성감독들과 공동 제작한 후 함께 작업실을 공유하기도 하고 서로를 도우며 작업을 지속하고 계신데요. 감독님들과 이태원 제작 당시에는 어떤 교류나 협업이 있었나요?

 

저는 지금 박소현 감독님, 손경화 감독님과 같이 작업실을 쓰고 있고요. 〈이태원〉을 제작하면서도 고민이 있으면 같이 의견을 나누었어요. 촬영이 끝나고 편집할 때에도 박소현 감독, 손경화 감독과 열심히 편집하면서 밥도 해먹었죠. 서로의 삶을 돌보는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박소현 감독님은 사주와 타로를 보셔서 제 운세도 봐주시고요.(웃음) 두 분 다 모니터링도 도와 주셨어요. 각자의 영화가 만들어지면 서로 애써주고 있어요.

 

 

서로의 삶을 돌봐 주신다는 말씀이 너무 좋아요. 〈모래〉(2011)와 〈진주머리방〉(2015)이 비슷한 감상을 공유하고, 〈시국페미〉(2017)와 〈우리는 매일매일〉이 또 하나의 결을 만든다면 이 작품은 이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가교의 느낌입니다. 현재의 위치에서 감독님께 〈이태원〉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작품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이태원〉은 제 첫 장편이고, 앞으로 이런 방식과 관점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저의 의지를 실험해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욕심을 내서 만들었고, 고생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모래〉와 〈자, 이제 댄스타임〉, 〈진주머리방〉을 하고 나서 2016년까지 공백이 있었기에 우선 잘 만들고 싶었어요. 또 여성의 이야기를 계속 기록하고 싶고, 공간성을 탐구해보고 싶었고요. 〈모래〉와 〈진주머리방〉, 그리고 〈이태원〉까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제 친구 한 분은 결이 계속 비슷한 느낌으로 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어요. 그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야기도 궁금하다는 제안도 해주었고요. 저에게는 이후의 방향에 대한 지표 같은 느낌으로 작업했던 작품이었어요.

 

 

〈시국페미〉와 〈우리는 매일매일〉이 〈이태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요?

 

〈이태원〉을 진행하면서 나이 든 여성들의 삶에 지금 제 또래, 우리 세대의 이야기들이 같이 풀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시국페미〉와 〈우리는 매일매일〉은 한 세트라고 보시면 돼요. 처음에 〈우리는 매일매일〉 기획서를 쓸 땐 〈시국페미〉에 나오는 20대 페미니스트 분들이 함께 나오는 방향이었거든요. 두 영화를 자매품 같은 느낌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껏 함께 연대하며 살아온 여성들에 대한 애정과 응원이 〈우리는 매일매일〉에서도 드러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감독님의 영화와 말들을 통해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여성으로서 많은 힘을 얻었는데요. 어려운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감독님은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어떻게 말씀을 드릴지 많이 고민이 되네요.(웃음) 저는 다큐멘터리나 극영화 작업을 하면서 어떤 순간 저의 세계가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어떤 상황을 제 나름대로 직조해낼 수 있다는 데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모든 게 그렇지만 영화라는 예술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서 동료와의 작업, 완성 이후 배급, 그리고 영화를 사랑해주는 관객을 만나기까지 모든 과정이 기적 같아요. 상업영화가 아니기에 제작비가 모자라기도 하지만, 마음을 모아서 이렇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항상 감사한 일인 것 같고요. 사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늘 있거든요. 그렇지만 누군가가 지켜봐줘서 다시 할 수 있게 돼요. 그리고 제 카메라 앞에서 서주시는 분들도 너무 감사하죠. 다큐멘터리 하는 사람들은 출연자들이 자신에게 운명처럼 온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도 비슷하게 느껴요.

 

 

그런 순간들을 마주하면 다시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희열이 있긴 해요. 누군가를 만나고 , 이 분이다!’ 싶은 느낌이요.(웃음) 사실 〈이태원〉은 그런 순간을 곱씹으면서 만들었던 것 같아요. 나키님께서 2의 인생, 3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계단 있잖아요? 나키님이 그 계단에서 기도를 하시곤 하셨거든요. 우사단로에 사무실이 있을 때 집에 가던 중 우연히 나키님이 그 곳에 앉아 계시는 것을 봤어요. 그 순간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 때 내가 받은 느낌을 꼭 영화에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계속 만들었어요. 그런 순간을 만나는 게 작업자들에게는 참 좋은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순간들이 작업자로서 개인에게 주는 감정들이 중요한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이태원〉이 어떤 영화로 기억에 남기를 바라시나요?

 

새로운 환기가 되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 속 세 분이 자신의 렌즈를 저에게 주신 덕분에 저는 세 분의 시각으로 이태원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영화를 보시는 관객분들도 여성분들의 입장에서, 여성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태원이라는 곳을 새롭게 바라봐 주시고 기억해주시기를 바라요. 감사합니다.






(기획/진행 전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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