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바람  한줄 관람평 


송은지 부조리하고, 다정하고, 평범한 가정에 대하여

송유진 단지 우리 서로 함께라는 사실만으로도

정성혜 봄을 준비하는 영화 속 인물들은 영하의 바람에 매섭게 흔들린다






 〈영하의 바람  리뷰: 부조리하고, 다정하고, 평범한 가정에 대하여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은지 님의 글입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은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과 같이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음을 이야기하며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우리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에서 피자를 좋아하고 할머니와 배드민턴을 치는, 여드름 난 남자 중학생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성폭행범이라는 것과 멀끔한 말투와 옷차림으로 아들이 잘 되길 바라는 아버지들이 성폭행 피해자의 목숨을 돈과 맞바꿔 무마시키려는 가해자들의 부()라는 것에서 끔찍함을 느낀다. 한나 아렌트의 말과 〈시〉를 포함해 최근의 여러 사건들이 말하듯 악은 평범함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악행 또한 평범한 얼굴을 하고 평범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난다. 그리고 악행과 부조리는 사적 공간인 가정 안에서 더욱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가 된다. 〈영하의 바람〉은 모두가 처음으로 부조리를 겪고, 부조리가 묵인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평범한 얼굴을 한 가정을 보여준다.

 




12살 영하는 엄마 은숙이 영진과 재혼을 하며 친아빠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될 예정이었으나, 이사 당일 친아빠는 연락이 두절된다. 어쩔 수 없이 이삿짐과 함께 은숙에게 돌아오게 된 영하는 영진과 함께 살게 된다. 영하는 경제적으로 빠듯하게 살아가면서도 든든한 가장 은숙, 다정한 아빠 영진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룬다. 그렇게 영화는 12살의 영하부터 15살의 영하, 19살의 영하로 성장하기까지의 시간을 담으며 서늘한 공기처럼 인물들 간의 관계를 쌓아간다. 은숙이 목사가 될 수 있을지, 절친한 친구 미진이 취직을 할 수 있을지, 영하가 대학에 갈 수 있을지 등의 결론을 향해 달려가던 영화는 영하가 19살이 된 해에 영진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사건을 국면으로 흐름이 바뀐다. 뚜렷한 수입은 없지만 딸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고 손수 딸의 운동화를 빨아주는 등딸바보의 모습을 보이던 다정한 아빠 영진은 술에 취해 영하를 성추행을 한 후 영하의 주변을 맴돌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지 않은 채 한 집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차라리 영하는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집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는 성추행 사건이 있기 전까지 똑똑하고 책임감 있는 가장인 은숙이 전조를 감지했을 것임을 보여준다. 은숙은 여유롭지 않은 사정에도 친척이자 영하의 동급생인 미진을 챙긴다. 몸이 아픈 할머니와 둘이 살며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할까 반찬을 보내고, 미진의 친부모도 찾아가지 않는 학교를 대신 찾아가기도 한다.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도 하며 가장의 역할도 충실히 한다. 반면 영진과 영하가 한 집에서 살게 된 후 둘의 물리적 거리가 지나치게 좁다고 느껴지는 장면마다 같은 공간에서 카메라에 함께 걸리던 것 또한 은숙이었다. 영진의 성추행이 있기 전까지 둘을 바라보던 은숙은 어떠한 위험이나 불안을 감지했을 것이나 묵인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진의 성추행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후 은숙은 자신의 딸에 대한 가해 사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자신이 원하던 가정의 평화가 깨졌기 때문에 영진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영하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고 영진에게왜 그랬어. 조금만 참지, 이제 곧 가는데라는 원망의 말을 하는 은숙에게 실망감을 느끼지만 계속해서 은숙을 찾고 그리워한다. 이처럼 영화는 은숙, 영진 뿐만 아니라 피해자인 영하와 영하의 친구 미진까지도 완전한 악인 또는 선인으로 그리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담아낸다.

 




악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진부해서 도처에 만연하고, 너무도 많은 피해가 묵인되고 있어 이야기하는 것조차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같은 때일수록 〈영하의 바람〉과 같이 악은 평범함의 얼굴을 하고 우리의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끊임없이 돌아보게 하고, 그 안에서 관계를 통해 치유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법처럼 흘리는 것이 대중예술로서의 영화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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