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청춘들의 올곧은 온기를 기억하며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5월 4일(토) 오후 3시 상영 후
참석 김소영 감독
진행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개봉 이틀을 맞이한 토요일,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인디토크가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되었다. 김소영 감독의 망명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1952년 한국 전쟁 당시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로 유학을 떠난 8명의 북한 청년들과 주변인들을 담아 낸 영화이다. 조국을 떠나 치열하게 고민하며 다양한 지역과 분야를 막론하고 행동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기록하였다. 조금은 생경한 이름들과 발자취에서 그들의 신념과 우정을 통해 올곧은 온기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소영 감독이 참석하고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의 진행으로 인디토크가 시작되었다.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이하 김일권):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인디토크 진행을 맡은 시네마달 대표 김일권입니다. 이렇게 날씨 좋은 토요일날 와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연출하신 김소영 감독님도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소영 감독(이하 김소영): 황금 같은 연휴에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과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일권: 일단 제가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드리고 마이크를 객석으로 넘겨 드리겠습니다. 영화 보신 소감도 좋고 궁금하셨던 것들을 편하게 직접 여쭤보시면 됩니다. 이 작품이 감독님의 망명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3부작이면 굉장히 기나긴 시간 동안 작업을 하신 거잖아요? 5-6년 정도 될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나 이유와 함께 3부작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김소영: 2014년에 제가 중앙아시아로 2번 여행을 했어요. 한 번은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로 갔었고 또 한 번은 카자흐스탄으로 갔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을 먼저 갔는데 고려인들이 당신의 죽음을 예비하는 방식, 특히 고려인 할머니들이 커다란 수의를 걸어 놓고 자신의 조국과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는 풍습이 저를 그곳으로 이끌었어요. 그리고 한국영화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분들이 감독으로서 중앙아시아에서 활약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어요. 그때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에 나오는 최국인 감독님하고 김종훈 감독님, 그리고 이 분들을 둘러싼 모스크바 8진, 10진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2번의 여행 중 키르기스스탄에서 수의를 본 부분이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2014)에 나타났고,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에서도 자신의 죽음에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 모습이 고려인 할머니의 수의처럼 죽음에 대한 중요한 제스쳐라고 생각했어요. 두 여행을 통해 3부작을 시작한 것 같아요.
김일권: 사실 저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처음 듣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희한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는데요. 모스크바 8진이 어떤 분들인지 소개를 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소영: 제가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와 인연이 조금 있어요. 제가 <거류>(2000)를 찍을 때 촬영감독이셨던 박기훈 감독님이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출신이세요. 그때 제가 전주국제영화제 1회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었는데요. 저희가 알레산드르 소쿠로프 감독을 좋아해서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쿠로프 특별전을 했어요. 소쿠로프를 만나러 러시아를 갔고, 그러면서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도 방문하고 필름아카이브도 갔어요. 그러던 차에 모스크바 8진이 국립영화학교를 한국전쟁 바로 직후에 다녔다는 사실이 굉장히 놀라웠고요. 이분들이 만들어 낸 영화가 어떤 것이었을지, 그리고 이분들이 그 당시 정치적 결단을 하기까지 얼마나 불타오르는 고뇌의 장이 있었을 지 영화를 하는 사람, 연구자로서는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탐색을 그칠 수 없는 이야기였어요. 또 다른 하나로는 북한의 남로당과 연안파가 숙청된 8월 종파사건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박헌영과 주세죽에 관심이 있었어요. 이런 북한사와 영화사, 그리고 러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이 다 어우러진 거죠.
김일권: 모스크바 8진은 한국전쟁의 영웅들인데요. 전쟁 중에 공덕을 많이 이루어서 영웅 대접을 받았던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히 선별하여 국가에서 모스크바로 유학을 보낸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김일성 체제에 반대를 하게 되는 건데요. 국가에서 영웅이었고 그에 걸맞게 대접을 받아 유학까지 왔는데 국가에 반대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자신들의 과거를 배반하는 것이고 앞으로의 출세길들을 다 막게 되는 것이죠.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들을 했던 건가요?
김소영: 우선은 영화에서는 충분히 담을 시간이 없었는데요. 김종훈 감독님의 긴 증언을 들어보면, 이 분들이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면서 굉장히 큰 감흥을 받은 거예요. 그 시대의 수혜자이기도 하고요. 김종훈 감독 같은 경우는 황해도에서 4년간 무상교육도 받고 선진적인 기술책도 보면서 사회주의를 마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한국전쟁 중에 포로로 잡혀 있던 국군의 도움을 받아서 생명을 건지기도 했는데, 오히려 자기 고향 출신인 인민군으로부터 배신을 당해서 거의 죽을 뻔했어요. 한국전쟁 때 이런 경험들을 통해 사회주의자이지만 이념을 가로지르는 어떤 국면들을 체험했던 것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김종훈 감독은 김일성 체제를 본인이 목도했고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는 걸 허웅배 선생님과 다른 분들, 그리고 이분들의 스승이자 소련의 대사로 와 계셨던 정상진 선생님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된 거죠. 이 사회는 자신들이 그리던 사회가 아니라 김일성 체제라는 걸요. 그리고 이분들이 연안파와 가까웠기 때문에 돌아가면 김종훈 선생님이나 한진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어려울 수 있었어요. 숙청이 될 수도 있었고요. 김종훈 감독이나 양원식 촬영감독 같은 분들은 이념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자기 친구들과 선배들을 너무 사랑하고 믿은 거죠. 이 사람들이 못 돌아간다면 함께 연대해서 궐기를 하기 위해 우정으로 뭉친 거예요. 이념을 알지만 이념을 넘어서는, 북한을 알지만 북한을 넘어서는 사회주의. 흐루쇼프 서기장 시대의 소련을 보면서도 절절하게 느꼈을 것 같아요. 굉장히 젊은 청춘이지만 격동의 틈 속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거죠.
김일권: 영화를 보면 많은 예술 작품과 소설들이 등장하는데요. 제가 전혀 몰랐던 예술 세계와 문학 세계를 중앙아시아에서 포착하셨는데, 감독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예술 작품이나 그분들의 활약을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소영: 2년 전 한겨레에 모스크바 8진에 관한 기사가 상세하게 실렸어요. 그 기자 분과도 GV 자리를 한 번 가질 예정인데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하신 분들은 한진 선생님하고 허웅배 선생님이에요. 허웅배 선생님은 고려인이자 북한인으로서 통일을 위해서 노력을 하셨고, 독립군인 허위 선생님의 손자이기도 하고요. 활동가로도 많이 알려지셨죠. 예술가로서의 성취가 많이 알려지신 분은 한진 선생님예요. 『나무를 흔들지 마라』와 같은 희곡 작품들을 국립극장에서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다큐에 나오는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하는데 죽는 곳은 무엇이라고 하느냐. 고향만큼 정다운 이름이 있어야 될 거야.’라는 글이 한진 선생님의 글귀예요. 제가 보기에는 한진 선생님의 『38선』이나 『나무를 흔들지 마라』가 최인훈 작가의 『광장』의 지평을 열어주지 않았나 싶고요. 누군가가 한진 선생님의 작품을 영화화하고 연극화해주기를 바랐어요.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출신의 감독들을 각 지역에서 배치해서 소련 연방의 영화를 만드는데, 최국인 감독은 거기서 소련 프로파간다 블록버스터를 만들었어요. <용의 해>(1981), <쇼칸 우할리아노프>(1987)로 상당히 알려진 감독이셨고요. 김종훈 감독은 시베리아 쪽 무르만스크에서 고생하시다가 알마티에 끌려서 고려인들 집단으로 오셨고, 고려극장과 고려신문에 큰 기여를 하시게 되죠.
관객: 안녕하세요, 좋은 작품 너무 잘 봤고요. 감사드립니다. 후반부에 화가 분께서 8진 분들 초상화를 그리셨는데 그분은 어떻게 8진 분들과 인연이 닿았는 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서 그리신 건지, 아니면 고려인 사회에서 그분들을 기념하고 추모해서 그리신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김소영: 그림을 그리신 작가분 성함은 문 빅토르고요. 알마티에 가면 굉장히 좋은 게 무엇이냐 하면, 일종의 예술가 꼬뮨이 있다는 점이에요. 저의 영화에도 나오신 고려인 2세 송 라브렌치 감독님도 국립영화학교 출신이고, 한야곱 작곡가님도 예술가 그룹에 있으세요. 여기 분들이 고려극장도 하시고 고려신문도 하시지만 러시아어가 더 모국어 같은데, 이럴 때 북한 출신의 망명객들이 고려인 커뮤니티와 일종의 예술 꼬뮨을 만드신 거예요. 영화도 만드시고 연극도 하시고 어떤 대작을 하면 최국인 감독님도 배우로 참가를 하시기도 했고요. 문 빅토르 선생님 같은 경우도 연결되어 있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시면서 8진 분들이 존경스러우니까 젊은 시절부터 초상화를 그리신 거예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2016)에서도 아래로부터의 예술을 하던 고려극장의 여성 디바들이 나오는데 이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커다란 고려인 예술 꼬뮨이죠.
김일권: 재작년에 개봉했던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를 온라인에서 다운받아 보실 수 있는데요. 한 번 보시면 여기서 궁금했던 부분이 많이 해소될 거라고 믿습니다.
김소영: 1500원입니다. (웃음)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제목이 상당히 인상 깊은데요. 제목을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혹시 다른 제목 후보가 있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소영: 제목이 좋으셨나요?(웃음) 이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이야기할 때 시대가 조금 엄한 시절이었어요. 배급사 시네마달 같은 경우는 영화 <다이빙벨>로 고생하고 있을 때고요. 이분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 군데 기획서를 내야 했는데요. ‘북한 청년들의 이야기’라고 하면 절대 안 줄 것 같았고요.(웃음) 레이먼드 첸들러 소설 중 『Farewell My Love』라는 작품이 있는데, 한국에 번역이 되어 나올 『굿바이 마이 러브』라고 나왔어요. 그 제목을 참고했는데 ‘Farewell My Love’는 한국에는 낯선 감각이니까 ‘굿바이 마이 러브’에 NK를 붙인 거예요. 화장품 이름 같기도 한데요.(웃음) 지원사업에서 많이 떨어졌어요. 예선도 못 간 경우도 허다했고요. 그래서 북한의 이야기지만 조금 발라드 같기도 한 느낌으로 진행을 한 거예요. 개봉할 때는 그런 부분을 조금 덜어내고 ‘붉은 청춘’으로 가고 싶기도 했는데요. 배급사 대표님도 ‘굿바이 마이 러브NK’를 가져가는 게 괜찮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하셨고, 저도 ‘붉은 청춘’하고 두 개를 합치면 발음은 어려워도 하나의 세상이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다른 제목으로 생각한 거는 ‘붉은 태양’, ‘태양 청춘’ 이런 것도 있었어요. 몇몇 후보가 있었는데 별로 호응을 못 받았어요.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일권: 감독님이 사실 제목을 굉장히 매력적으로 잘 지으세요. 저도 되게 마음에 드는 제목입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저도 작품 너무 감명 깊게 잘 봤고요. 최국인 선생님께서 러시아의 지시로 중국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드셨고 그 영화가 위구르 민족에 대해서 다룬 영화였는데요. 최국인 선생님이 카자흐스탄에 오래 계시면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지니셨고 어떤 입장이셨는지 궁금하더라고요.
김소영: 굉장히 좋은 질문이에요. 고려인마다 어느 곳에 계시는 지에 따라 조금씩 달라요. 우즈벡,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각각 지역적으로 다른 데요. 최국인 선생님 같은 경우는 카자흐스탄을 굉장히 좋아하세요. 그들에게는 환대 전통이 있고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땅도 넓은데 들어와서 같이 살면 되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요. 우리나라의 예멘 난민 사태와 같은 정서와는 달리 굉장히 호방하고요. 탈북 고려인들도 그런 정서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이분들이 한편으로는 소련에서 교육받은 북한 출신의 엘리트들이셔서 그런지 엘리트 의식도 있으신 것 같은데요. 소련 연방에서 보면 카자흐스탄은 변방이거든요. 재일조선인, 자이니치 분들은 일본에서 죽는 걸 객사라고 하면서 그에 대해서 고통스럽게 생각하는데 카자흐스탄 분들은 다른 생각인 것 같아요. 한진 선생님의 그 문구가 고려인들, 그리고 고려인들과 함께 살았던 북한 청년들의 심정을 잘 드러내 준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분들은 자기가 죽을 곳에 고향처럼 다정한 이름을 붙이고 싶은 거예요. 요 세대까지는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환대에 대한 어떤 채무의식 같은 게 있어요. 세계주의, 인터내셔널리즘 같은 것인데 저는 상당히 감동받았어요.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영화의 처음과 끝이 어떤 숲에 유리판 조형이 여럿 서있는 장면이었는데요. 그게 실제 조형물인가요?
김소영: 어제도 GV가 있었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주목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역사와 이야기를 접하고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이런 역사를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영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어떤 개념 이미지처럼 저를 이끄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프리즘적인 파편이에요. 역사들의 파편이고 이야기들의 파편인데 그것이 서로를 비추고, 그 파편이 프리즘처럼 어떤 것들을 조망하고 조명하는 거예요. 그런 개념 이미지를 가지고 글도 썼는데요. 제가 천산을 굉장히 좋아해서 촬영을 하러 가면 밥도 먹고 그곳에 있는 흰 눈표범을 기다리기도 했어요. 작업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천산에 가서 석양을 촬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밑으로 내려가보고 싶은 거예요. 무언가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천산에는 숲도 있고 들풀만 있는 평원 같은 곳도 있거든요. 그래서 중앙아시아의 석양에 빠져 있는 저희 촬영감독을 간신히 설득해서 내려간 거예요. 내려가니까 이 조형물이 쫙 펼쳐져 있었어요.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 CIS의 젊은 예술가들이 오픈스튜디오를 하면서 이런 걸 구상한 거예요. 그전에 저는 이런 개념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프리즘적인 파편, 파편을 비추는 프리즘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가 딱 이걸 본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촬영을 하고 영화에도 배치하여 이미지 작업을 했어요. 우리 다큐 전체의 맥을 만들어주는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관객: 같은 질문인데요. 유리 조형물이 나오는 장면을 봤을 때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에서 묘지가 나오던 장면이 연상이 됐는데, 그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고 잔상이 남아 있거든요. 제가 사전에 정보를 찾아보지 않아서 지금 GV를 통해서 두 작품이 같은 감독님의 작품이란 걸 알고 깜짝 놀랐고요. 모든 예술은 함축적일 수밖에 없지만 영화 작업을 하실 때 그런 키 이미지들을 사용하시는 편인지, 여정 속에서 우연히 발견된 건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도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지 구성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었던 영화였어요. 이미지를 통해 방향성을 가지고 일종의 변곡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 조각들이 저에게 온 것은 우연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마주친 거예요. 어저께 변영주 감독님과 GV를 했는데 변영주 감독님께서 다른 다큐들이 시작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이미지들로 시작을 하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이미지로 영화를 들여다보면 어떤 열쇠를 가지고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실제로 그래요. 고맙습니다.(웃음)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도 그 장면이 없으면 다큐를 못 만들었을 것이고, 이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김일권: 김소영 감독님의 작품은 한국의 다른 다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 방식과 이미지 재현 방식들이 있고 스타일도 굉장히 독특해요. 그래서 소중하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보통 다큐를 보면 인물들을 쫓아가면서 그들의 생생한 모습들을 전달한다면, 감독님의 인물들은 영화에 나오는 배우처럼 인터뷰를 하거나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점에 저도 매료되었습니다.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한진 선생님 아내분(지나이다 이바노브바)이 궁금한데요. 한진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는데 그 분이 한진 선생님의 기억을 그대로 읊으시더라고요. 그리고 한진 선생님과 서로 만나기 전의 상황도 다 아시는 걸 보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을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분이 거의 고려인이 되신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감독님은 인터뷰하면서 어떤 느낌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에 방 타마라라는 고려극장의 디바 분이 나오시는데요. 제가 방 타마라 선생님을 만나면서 느꼈던 게 사회주의권의 공부를 한 여성, 혹은 예술가인 여성이 가지고 있는 어떤 방백의 방식이 있어요. 훈련된, 자신을 기억하고 전하는 것에 있어서 흠이 없게 하는 수사와 스피치의 세계가 있어요. 어떤 기억을 딱 잡아서 그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식이었어요. 지나이다 이바노브바님은 러시아문학 선생님인데 한진 선생님을 같이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사랑한 거예요. 저는 제일 감동적일 때가 지나이다 여사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를 때예요. 그분이 고려인들이나 북한인들의 이름을 부를 때가 참 좋아요. 방금 보신 극장 버전과 저희가 영화제를 다닐 때의 버전이 조금 다른 데요. 영화제 버전에서는 한진 선생님의 둘째 아들이 잠깐 나오는데, 그분이 다운증후군도 있어서 생활이 어려워요. 지나이다 여사도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데 아들도 돌봐야 하고 손자도 일을 하지 않고 방에서 거의 자요. 그런 고단한 삶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문학 여성으로 생각을 해요. 그래서 고려인으로 많이 간 듯한 느낌이라기보단, 러시아 여성인데 고려인 예술가 한진 선생을 사랑하는 분이죠.
김일권: 여기에 나오시는 분들의 젊은 시절들을 전해 들으면 현대 사회의 우리가 초라해지거나 질투가 날 정도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위대한 청춘을 보냈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빨리 사회를 정상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관객: 참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담담하게 볼 수 있어서 되게 좋았고요. 저는 아까 말씀해주신 한진 선생님의 자손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그분들을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지가 궁금합니다. 자신들이 러시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지, 아니면 러시아 사람이면서 한반도에도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지가 궁금했고요. 그리고 고려인들이 백인들과 결혼해서 낳은 자녀들의 이야기도 한 번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 지에 대한 생각도 한 번 해봤습니다.
김소영: 한진 선생님의 자손 분들의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워요. 우선 손녀인 한 율리아는 나중에 문 빅토르 선생 전시회에 가서 지나이다 여사와 함께 사진을 찍어요. 한국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을 해요. 사실은 굉장히 길게 인터뷰도 했고 저희 영화 자막을 도와 주기도 했는데요. 본인이 서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카자흐스탄의 혼혈아들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어요. 저희가 아드님도 인터뷰를 했는데 그분은 문학가였어요. 글 쓰는 사람이 되어서 실험적인 소설도 쓰다가 지금은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어요. 저희가 묘소에 같이 가서 인터뷰를 했는데 사업을 하면서 한국과도 약간 관계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최국인 선생의 아드님과도 길게 인터뷰를 했는데요. 최국인 선생이 굉장히 흥미로운 게 무엇인가 하면 사진에 나오는 그 부인 분이 고려인인데 국립영화학교에 배우로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고려인이지만 최국인 선생을 따라서 중앙아시아로 망명하셨어요. 지금은 유치원 교사를 하시고 아들은 사업을 하세요. 그분도 고려인들, 한국과 무역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본인들이 고려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유산이 있는 거예요. 정부로부터 받은 아파트에서 살고 계세요. 그런 가계도가 있습니다.
김일권: 음악도 굉장히 인상적이죠. 음악을 선곡 혹은 선정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김소영: 이 영화를 만들 때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저희 어머니가 말러를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말러의 곡 중에서 선택을 했는데요. 노래의 가사가 우리들은 잊혀진다는 내용이거든요. 지나이다 여사가 나올 때도 말러 음악을 사용했고요. 제일 중요했던 건 빅토르 최의 음악인데요. 제가 <레토>(2018)라는 영화를 보고 정말 기뻤어요. 이 영화 맨 처음에 사람들이 모스크바로 건너갈 때 ‘나무’라는 곡을 썼는데요. <레토>가 나오기 전에 써둔 것인데 <레토>에서 ‘나무’를 맨 마지막 곡으로 써서 정말 마음이 통한 것 같았어요. 빅토르 최의 음악을 들을 때엔 ‘나무’라는 곡이 정말 중요하기도 하고요. 또 이 영화가 끝날 때 쓴 ‘전설’이라는 곡은 가사 내용이 비극에 관한 시예요. 제 생각에는 아마 ‘왕좌의 게임’ 시리즈가 알았다면 이 곡을 썼을 것 같아요.(웃음) 전쟁과 비극을 보는 대단한 시가 있는 음악인 것 같아서 두 개의 음악이 중요했어요. 나머지는 ‘숨’이나 ‘잔비나리’처럼 새로운 국악 연주자들의 음악을 사용했어요. 3부작 중 2부인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에는 고려극장에서 나온 음악들을 썼고, 1부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에는 빅토르 최의 ‘슬픔’이라는 곡을 사용했어요. 빅토르 최하고 3부작을 거의 같이 한 것 같아요.
관객: 극장에 오면서 빅토르 최의 음악을 검색해봤는데, 죽음에 대한 몇 개의 설들이 있는 것 같은데요. 감독님께서는 어떤 걸 지지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저는 설이 많은지는 몰랐고요.(웃음) 빅토르 최의 삶에서 중요한 게 어머니가 백인계 러시아인이고 아버지가 고려인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빅토르 최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해서 고려인들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카자흐스탄에 공연도 많이 했는데 교통사고로 죽었죠.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빅토르 최에 관한 <레토>라는 영화 꼭 보세요. 정말 오랜만에 무정부주의적인 영화였어요.
김일권: 빅토르 최 음악 참 좋습니다. 검색해서 들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관객: 오늘 감독님께서 오시는 줄도 모르고 매표하고 들어왔는데요. 이런 자리를 가지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영화에 감독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그분들이 연출하신 영화는 어떤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소련 영화나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영화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제가 최국인 감독님과 송 라브렌치 감독님의 영화를 아카이빙해서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북부미술관, 일민미술관, 부산국제영화제, 제가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여러 차례 상영을 했어요. 작년에 고려시네마에서 최국인 감독님의 <용의 해>를 상영을 하기도 했고요. 굉장히 전형적인 소련식 몽타주인데 중앙아시아의 독특한 웨스턴이 가미되어 있어요. 중앙아시아가 평원이니까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다니고요. 중앙아시아식 서부극이라 해야 할까요?(웃음) 최국인 감독님의 <용의 해>는 프로파간다적 영화이고 대작 영화인데 사이사이에 있는 노력들이 참 좋아요. 당신이 소련 당국에서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라고 지시를 받았는데, 원작으로 실제 위구르족의 각본을 쓰셨어요. 소수민족들의 글쓰기를 존중하면서 만드셔서 굉장히 주옥 같은 대사가 많아요. 이 영화에서도 사용을 했는데요. ‘우리들은 영원한 방랑자들이다. 우리는 국가들 사이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청의 지배를 받는 위구르족 사람들이 하는 말인데요. 위구르족의 조상 중에서 수학자나 천문학자들의 이름들을 열거를 해요.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만드셨어요. 주인공도 위구르족 여자고요. 제일 감동적인 거는 결국 위구르족이 청 군대에 완전히 짓밟혀서 다시 퇴로에 있는데 영화의 맨 마지막에 엔딩크레딧에 위구르족이 청에 대항한 연도들이 쫙 올라가요. 그게 ‘용의 해’인 거예요. 최국인 감독님이 위구르족이 소수민족으로서 영토를 빼앗기는 아픔을 자신이 북한인으로서, 분단된 한반도를 두고 온 사람으로서 복화술처럼 표현하셨다는 걸 느꼈어요. 영화가 정말 좋아요.
관객: 3부작을 다 함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김소영: 청원 부탁드립니다. (웃음)
김일권: 저희가 한 번 자리를 마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생각은 하고 있거든요. 하게 된다면 꼭 와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독님은 디아스포라, 이주를 주제로 계속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요. 그런 이유가 있을까요?
김소영: 제 성장기에 있어서 저희 할머니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저희 할머니가 함안 분이거든요. 지금은 난민이나 이주와 같은 이동을 이야기하는 상황인데, <거류>에서는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나는 이동을 이야기했어요. 할머니의 삶이 이야기의 계기가 되었어요. 경남 고성에 살고 있는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출신의 화교 여성 이야기도 있고, 경남 진해에 있다가 독일로 이주한 여성의 이야기도 있어요. 내부에 있던 여성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에서 <거류>가 시작한 거예요. 저는 이주보다는 이동, 여성들의 문제에서 시작을 해서 소수민족이나 이주노동자의 문제로 온 거예요.
김일권: 마지막 인사말로 자리 마무리 짓는 걸로 하겠습니다.
김소영: 오늘 황금 같은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SNS에 영화 이야기 좀 많이 올려주세요.(웃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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