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여성의 목소리로 담아낸 광주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5월 18일(토) 오후 5시 상영 후
참석 김경자 감독ㅣ주인공 윤청자
진행 김영희 연세대학교 교수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맞아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 독립영화 반짝반짝전을 통해 인디스페이스를 찾아왔다. 많은 역사에서 그러하듯 5·18민주화운동의 기록 역시 피해자가 아닌 항쟁 주체로서 여성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광주의 여성들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하고 국가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다른 이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시선과 감각으로 항쟁 주체로서 활동했던 광주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영화가 끝난 후에는 관객들의 공감과 응원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김영희 교수(이하 김영희): 저는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영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윤청자 출연(이하 윤청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윤청자입니다.
김경자 감독(이하 김경자): 안녕하세요. 광주에서 독립영화 만들고 있는 김경자입니다.
김영희: 오늘 이 자리가 진행하기에 난이도가 높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두 분께서 천천히 말씀해주시면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적극적으로 말씀을 하실 것 같지는 않아서요.(웃음) 여러분들께서 질문을 많이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이라는 뜻 깊은 날에 여러분들과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요. 윤청자 선생님은 이 영화 몇 번 보셨어요?
윤청자: 저는 오늘까지 두 번 봤습니다.
김영희: 혹시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윤청자: 제목이 말하는 대로 외롭고 쓸쓸하네요. 작품을 만들기까지 정말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옆에 계신 김경자 감독님이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영화의 주제처럼 너무 무겁게는 하시지 않으려고 했어요. 오늘 객석이 꽉 찼으면 좋았을 텐데 빈 자리를 보니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께 미안하네요.
김영희: 혹시 첫 번째로 보셨을 때와 오늘 두 번째로 보셨을 때 느낌이 다른 점이 있으셨나요?
윤청자: 박영숙 선생님이 오늘 5·18 행사장에 당시 방송을 하셨던 마음으로 가셨어요. 박영숙 선생님을 포함해서 영화에 나오셨던 선생님들을 많이 귀찮게 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해서라도 역사를 후대에 알려야 되는데 힘들다고 안 하면 살아있는 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 굉장한 열기로 많은 대중들 앞에 서게 되었어요. 우리의 트라우마를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 용기 있게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여기에 출연하신 모든 분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지지 않고 좋은 작품을 완성해주신 김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우리가 참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이런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이야기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요.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김 감독님 같은 경우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온갖 어려움을 쫓아다니셨어요. 다시 보니 너무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시간이 됐네요.
김영희: 저는 사실 영화를 관람하기 전에 윤청자 선생님의 말씀을 『광주, 여성』이라는 구술 자료집에서 보았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아, 그분이시구나’ 생각했어요. 자료집에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깊이 남아 있는 게 있는데요. “나는 여전히 성찰하고 있고 광주에 대해서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도청에서 ‘누나, 나가라’고 했던 어린 것들을 두고 나왔는데 내가 어떻게 광주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라고 이야기하셨던 게 마음에 되게 오래 남았어요. 여러분들도 관심 있으시면 선생님께서 영화에서 못 다 하셨던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듣기로는 오월민주여성회가 공식적인 행사에 초대받은 게 작년이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그렇죠?
윤청자: 초대는 계속 받았는데 우리가 갈 수 없었습니다. 내년이면 5·18 민주 항쟁 40주년이 되는데 여전히 역사는 왜곡되어 있고 광주는 여전히 빨갱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있고요. 대한민국 국민이 광주에 대해 성찰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듯이 광주는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참석을 하기 시작했죠. 마지막 밤을 함께 보냈던 동지들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기 때문에 행동하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후대들에게 자랑스럽고 위대한 광주 시민들의 민주주의 정신을 알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참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이 역사가 잊히지 않도록 어디서든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후대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소성리나 제주도 4·3사태와 같은 아픈 역사를 가진 이들과 함께 공동체정신을 발휘하는 게 큰 용기가 되었다고 감사를 받기도 해요. 그런데 오히려 우리가 더 위로를 받고 왔어요. 광주는 여전히 아름다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웃음)
김영희: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저는 이 영화를 세 번 봤는데요. 볼 때마다 조금씩 느낌이 다르기는 했지만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 중에 하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 그리고 편집을 하는 감독님이 가지고 계신 조심스러움이라고 생각했어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다양한 태도가 있을 수 있는데요. 김경자 감독님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영화를 찍고 편집하고 실제로 영화에 등장하시는 인터뷰이들이 이 영화를 보실 때 어떻게 보실 지를 항상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감독님께서 이 영화를 준비하시고 마지막으로 작품이 나오기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경자: 제가 카메라를 든 지 10년 정도 되가는데요. 다큐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억압에 순응하지 않는 저항하는 삶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광주에 살고 있는 저로서 광주의 오월을 찍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여성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오월의 여성들에 관심이 갔어요. 2012년에 영화를 시작할 즈음에 광주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느낌으로 출발을 했고요.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만 묶으면 어떤 느낌일지, 이런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들을 만나고 옆에서, 뒤에서 늘 함께 하면서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서 너무 좋으면서도 내가 오월을 담기에는 너무 작은 사람은 아닌지 싶은 갈등이 많이 들었고요. 중간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어서 도망도 갔어요. 그런데 결국은 내가 애정을 가진 선생님들을 내가 찍었으니까 부족하더라도 내가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2017년 초에 광주여성재단과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해에 완성했는데요. 〈오월愛〉(2016)라는 작품도 있지만 여성들의 목소리만, 여성들의 경험만 묶었을 때 어떤 느낌을 줄 수 있을지 보여주는 것이 이 다큐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관객: 안녕하세요. 다큐멘터리 너무 잘 봤고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많은 감정이 들었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교과서에서 5·18민주운동을 배운 이후 세대의 사람인데요. 광주에 있었던 여성들의 역사를 한 번도 접한 적이 없었고, 왜 이런 중요한 역사들이 조명 받지 못 했는지를 생각하게 되어서 분노했고요. 이런 이야기를 전달해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어요.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나 난관에 부딪혔던 순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김경자: 2012년에 선생님들을 만나기 시작했을 때는 모두 개별적인 존재들이었는데, 광주여성단체연합에서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을 했어요. 당시 그곳에서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촬영하면서 내가 그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게, 내가 카메라를 들 수 있다는 게 굉장히 감사했어요. 이 순간에 카메라를 들기를 너무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힘들었던 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다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선생님들이 아직도 마음속에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계시는데 저는 정말 막연히 시작을 했어요. 잘 마무리할 수 없을 것 같은 부담이 저를 늘 누르고 있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실은 잘 찍고 어떻게 편집할 지에 대해서 시간을 많이 보낸 게 아니라 너무 미안한 마음 속에 지냈어요. 그러다 중간에 도망갈 기회가 생겼는데, 선생님들이나 외부에서는 안타깝게 생각하셨지만 저는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도망을 갔는데도 편하지가 않은 거예요. 늘 선생님들이 마음에 걸리고 마음이 무거워서 어떻게 되든 간에 제가 마무리를 하고 짓눌림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으로 돌아와서 편집했죠.
김영희: 사실 5·18 광주는 많이 이야기된 것 같지만 아직 우리가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5.18과 관련해서 폭력의 피해자로서 여성 혹은 가족을 잃은 유가족으로서 여성의 이야기들은 들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 항쟁 주체로서 참여했던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다고 생각해요. 그 점에서 감독님이 만드신 영화가 저에게 크게 다가왔는데요. 사실 이런 작업을 할 때 이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소중하고 귀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단순히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정당화할 수 없는,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예요. 공감한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을 다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감각, 혹은 그냥 단순히 ‘이분들 참 외롭고 높고 쓸쓸하구나’라고 화면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과 우리가 연대하고 있다고 느끼고 동참하는 감각으로 함께한다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제가 사실 감독님하고 GV가 세 번째예요. 감독님은 항상 그 점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시고 조심스럽게 움직이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선생님은 감독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했어요.
윤청자: 우리들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하고 자식도 모르는 거예요. 5·18 민주 항쟁 운동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주홍글씨처럼 남아버렸어요. 저는 이야기할 때 5·18 민주 항쟁을 아직까지도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화를 내면서 따지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걸 카메라에 담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자기 자신에 대한 것들을 다 까발리게 되는 거예요. 박영순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기까지 아무도 몰랐어요. 차영숙 선생님은 아예 도피하려고 경상도에서 살았는데 안동에서 홍어 요리를 파시는 선생님도 자신을 표현할 수가 없는 거예요. 최근까지도 홍어에서 시체 썩은 냄새가 난다면서 우리를 조롱하고 능욕하는 개새끼만도 못한 것들도 있어요. 아무렇지 않게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감독님이 무슨 재주로 그런 것들을 막을 수 있나요. 촬영하면서 그런 시선들이 너무 힘드시니까 못 하겠다고 하셨겠죠. 저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아까 꽃집 문 닫고 가는 장면 보셨죠? 그런 사람들이 용서가 안 되니까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꽃 사러 오는 손님들도 ‘선생님이 또 시위하러 가셨구나’라고 해요. 어쩌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촛불까지 갔을 거예요. 당연히 국민으로서 나가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좋은 작품이니까 홍보 많이 하시고 많은 친구들과 함께 보러 오세요. 5·18 민주 항쟁과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여기 오신 분들 정말 대단하시고 멋지십니다. 감사드립니다.(웃음)
김영희: 대단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혹시 또 소감이나 질문 있으신 분 있을까요?
관객: 좋은 작품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제목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백석의 시 제목을 인용한 제목이고 마지막에는 시와 함께 노래가 흘러나왔는데요. 제목을 선정하고 시를 삽입하게 된 이유나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김경자: 2017년에 편집을 마무리하는 내내 제목 때문에 너무 고민이 많아서 머리를 쥐어 뜯었어요. 그러다가 오월 선생님들과 몇 분들과 같이 김현성 작곡가님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들으면서 여러 곡 중에서도 이 곡으로, 이 제목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딱 왔어요. 어렵게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요청을 했는데요. 선생님들을 만나 오랜 시간 옆에서, 뒤에서 따라다녔을 때나 함께 있을 때의 느낌은 외롭고 쓸쓸하셨어요. 이런 표현이 차명숙 선생님의 발언에서도 나오는데요. 그런데 이분들이 광주에만 머물러있는 게 아니라 다 보여드리지는 못 했지만 함께 혹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이들과 연대하는 삶을 살고 계세요. 저는 이런 부분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이 제목이라고 생각했죠.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너무 좋았어요. 감사하게도 작곡가분께서 허락해 주셨고요.
김영희: 저도 감독님하고 제목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요. 선생님들께서 본인들이 상처가 있지만 그것에 갇히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손잡고 나가시는 그 뜻이 정말 높은데요. 사실 5·18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 받는 속에서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외롭기도 하고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때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갖고 있는 여러가지의 아픔과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항상 마음에 두고 계신 게 있는 것 같아요. 제목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윤청자: 저도 정말 좋습니다.(웃음) 차명숙 선생님이 되게 외롭게 안동에서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오셔서 함께 하셨고요. 우리가 외롭고 쓸쓸한 가운데에서도 오늘 이 자리에 서울에 계신 우리 선생님들이 두 분께서 오셨어요. 광주가 얼마나 따뜻한 공동체였나 하면요, 아까 영화에서도 보셨을 거예요. 열흘 간의 항쟁 기간 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는 거예요. 항쟁 기간에 서울에서 계신 박순희 선생님과 함께 노동 운동을 하셨던 분들이 투쟁하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당시 돈으로 400만원이 넘는 돈을 모아서 보내주었어요. 가장 없고 힘든 사람이 그 사정을 알 듯이 그때 보태 준 힘은 혼자 사는 세상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줬어요. 40년 가까이 되는 이 여정에 위기도 있었지만 늘 함께 응원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합니다.
김영희: 가운데 앉아 계신가요? 박수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순희 선생님: 잠깐 말이 나왔으니 마이크를 달라고 했는데요. 후배가 독립다큐영화를 찍어서 상영을 한다고 하기에 처음엔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인가보다 했어요. 그리고 오늘은 5·18 광주 민주 항쟁 39주년인데요. 이런 좋은 자리였더라면 더 많이 홍보할 걸 그랬죠. 감독님 수고 많이 하셨고 내용도 좋지만 홍보도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웃음) 홍보를 더 많이 해서 서울에서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났어요. 그리고 요즘 아무리 여성상위시대라 불리고 여성의 목소리가 높다고 해도 여성들의 활동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아요. 특히 광주 항쟁에 대해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서 연대하고 그 시대의 현장에서 목표를 가지고 활동을 했던 것이 40여년 가까이 이어와서 지금 국가 폭력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고 분노하고 있는 소성리 같은 곳에도 가고요. 그렇게 대단한 작업을 하셨으니 조금 더 용기 있고 활발하게 외치면서 선전을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아직까지 여성들의 목소리가 많이 죽어 있다는 사실이 이번 ‘독립영화 반짝반짝전’을 통해 씩씩하게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당부 드립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박수)
김영희: 영화에 들어갔던 삽입곡 김현성 작곡가님도 자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잠깐 인사 부탁드려요.
김현성 작곡가: 오늘 영화를 큰 화면으로 몰입해서 보니까 좋네요.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 제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만, 윤청자 선생님이나 영화에 등장하시는 분들의 삶이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높게 솟아 있다는 걸 느꼈어요. 외롭고 높고 쓸쓸하지만 빛나는 것들도 있는 삶에 감명을 받았고요. 오늘 빈 자리들은 아마 영혼들이 와서 앉아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비롯해서 다른 자리에서도 더 큰 화면을 통해서 왜 외롭고 높고 쓸쓸한지 꼭 알려지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 노래를 2012년에 발표했고 여러분들이 알고 계신 ‘이등병의 편지’는 이미 대학교 1학년때 만든 노래라서 삼사십 년 가까이 됐네요. 오늘 이 영화를 참 의미 있고 뜻 깊은 날에 볼 수 있어서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박수)
김경자: 아까 제목 질문해주신 분께 못 다한 말씀드려요. 제가 찍었던 모든 장면에 애정을 가졌고 나오신 모든 분들께 애정을 가졌는데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장면은 마지막 부분에 나온 윤청자 선생님의 뒷모습이거든요. 한 번도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없는데요. 그날 청자 선생님께서는 앞에 나서셔서 특별한 발언을 하신 것도 아니지만 그 한 자리 차지해서 박영순 선생님의 힘이 되기 위해서 함께 하셨어요. 그런 게 굉장히 높은 지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장면을 사랑하지만 두리번거리는 청자 선생님의 뒷모습을 정말 사랑하거든요. 어제 광주 자연드림 친구들과 같이 영화를 보면서도 그 이야기를 했어요. 아까 너무 좋은 말씀 해 주셨는데 오늘 청자 선생님과 오면서도 이 말씀을 드렸어요. 앞으로는 제가 정말 적극적으로 영화를 알리겠다고요.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과 약속합니다. 제가 더 적극적으로 이 영화를 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박수)
김영희: 감독님이 작년 내내 고민하셨어요. 이 영화를 저희 학교에서도 봤는데요. 저희가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부르겠다고 했더니 조금 더 고민해 보신다고 하셨어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저희가 광주 영화를 다큐로 만들면 사용할 수 있는 자료화면이 굉장히 많아요. 기존에 나와있는 다큐도 되게 많기도 하고요. 그리고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었을 거예요. 아마 찍은 분량은 훨씬 더 많겠죠? 예를 들면 차명숙 선생님께서 갇혀서 여러가지 경험을 하셨던 장소에 찾아가서도 아마도 더 사람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할 만한 그런 장면을 찍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에게는 이 영화의 미덕이 그렇게 보여주지 않은 지점에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덜어내고 아까 말씀하신 대로 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꽃집 문을 닫고 가시는 모습, 소성리 주민들과 연대하시고 뙤약볕을 피하라고 우산을 나눠 주시는 모습을 넣으신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을 했어요. 어떤 분들에게는 ‘우리의 마음을 더 움직이게 하지, 왜 이럴까?’ 싶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되게 좋았어요. 이 감독님이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는 모습이 정말로 정성을 들여 들으려고 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김경자: 선생님들과 오래 만났기 때문에 촬영 분량이 많았어요. 그 많은 부분 중에 선생님들의 몸과 마음이 아프신 이야기도 굉장히 많아요. 그리고 5·18 당시를 다루는 잔혹한 장면도 얻기는 했지만 최대한 여성들의 목소리와 경험을 전체적으로 한 덩어리로 잘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관객들로 하여금 자극이나 감정의 동요를 불러 일으키게 하는 부분은 최대한 자제하면서 여성들의 경험을 여성들의 목소리로 잘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관객: 영화 정말 잘 봤고요. 저도 광주 출신이라서 제가 경험하지 못 했던 5·18이 더 궁금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희는 초등학생 때부터 다큐멘터리를 보고 5·18 민주묘지에 갔지만 누군가 직접 5·18이 어땠는지는 말씀을 잘 안 해 주시더라고요. 어른들께 여쭤봐도 얼버무리시는 경우가 많아서 늘 궁금했던 것 같은데요. 이렇게 말씀을 많이 해주시고, 그 당시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영화들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여성 분들의 이야기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담아 주셔서 너무 소중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감명 깊었던 건, 우산을 나눠주는 것처럼 조그만 부분에서도 연대를 하시는 모습이었어요. 그리고 소성리나 다랑쉬 마을 같은 곳에도 다니시면서 연대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있고 감동적이었어요. 그런데 광주 시민들도 어린 사람 중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오월민주여성회 같은 단체를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어서 놀랍기도 했고, 저에게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에서 선생님들이 도청 앞이나 거리에 서계시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연출하신 부분이 되게 인상 깊었어요. 그 장면을 어떤 생각으로 연출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김경자: 제가 만난 선생님들은 그때 당시 활동하셨던 여성 분들 중의 일부고요. 영화에서 보여줬던 것 또한 선생님들의 일부예요. 이 자리에 선생님이 계시지만 다른 선생님들도 있을 수 있고요. 선생님들이 지금, 여기에 서계시지만 시간이 지나면 풍경만 남겠죠. 그런 의미를 담아서 마지막 부분을 구성하였고요. 그리고 제일 마지막 부분에 현장 사진을 넣은 건 광주의 아픔은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진상규명이 되야 한다는 마음으로 넣었어요. 또 제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하였지만 이 또한 정말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수많은 여성 중에 일부의 목소리 중에 일부를 담았다는 그런 의미를 담아서 마지막을 구성하였습니다.
관객: 질문은 아니고 소감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초반에 어머님들께서 모여서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바느질로 작업하시는 모습을 잡아 주셔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했는데요. 80분 가량의 시간이 3분 안에 다 녹아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까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5·18에 관련된 영화나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요. 그것들이 과거의 기록이라고 한다면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어머님들께서 현재 소성리나 제주도 분들을 만나고 전달하는 것들을 통해서 위로와 격려, 연대가 진행형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오월민주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과 정체성을 잘 살려서 표현하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외롭고 높고 쓸쓸한’ 노래가 나오면서 참여하셨던 분들을 잡아 주신 점이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왔어요.
김영희: 윤청자 선생님 말씀도 잠깐 들어볼까 싶은데요. 영화에 보면 5·18 당시의 사진이 한 컷 나오는데 도청 앞 분수대 앞에 있는 여성들 사진이에요. 그 사진을 본 순간 ‘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유는 저희가 항쟁의 주역이라고 하면 주로 시민군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제가 조금 더 찾아보니까 당시 도청 앞 사진들을 보면 여성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이 영화와 이전 구술 작업에서도 느껴진 건데 여성분들이 발언하시는 모습을 보면 피해자라는 감각으로 나오지 않아요. 그리고 ‘과거에 내가 이런 일을 했던 사람이다.’라는 걸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제일 아프다, 나 너무 힘들다’가 아니라 그때 당시의 주역으로서 지금을 살아가면서 그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돌아보려고 하고 손 내밀고 연대하고요. 과거에 어떤 일을 했던 사람으로서 현재 자신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통해서 이야기하려고 하시는 느낌이 있었어요. 한 번 선생님의 이야기를 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윤청자: ‘오월 여성 평화를 품다’가 오월여성민주회의 주제입니다. 이제는 세상 어디든 평화만이 살 수 있는 길이고요. 그래서 작년에는 선생님들이 오키나와를 갔습니다. 소성리를 다니는 것처럼 오키나와에 계신 분들을 찾아 갔어요. 그분들께서는 너무 충격이었다고 하셨어요. 오키나와도 제주 강정마을처럼 늘 평화를 위해 싸우시더라고요. 나이가 70세가 넘으시는 분들이 매일 활동을 하셨어요. 시간이 나면 가셔서 구호 외치고 일도 하시고요. 세상의 평화를 향한 운동을 하고 계시는 그분들이 우리의 ‘평화를 품다’라는 주제가 너무 좋고 평화를 외친 보람이 있다고 하셨어요. 오월의 정신은 부모가 자식을 잉태해서 안고 있을 때처럼 온갖 사랑이 품 속에 다 있어요. 우리도 오키나와를 다녀온 이후에 광주를 외친 보람이 있다고 느꼈어요. 여성만이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정의의 사도라는 걸 느끼기도 했고요.(웃음) 그래서 너무 좋았고 이 연대를 세계의 여성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 보자고 이야기했어요. 오월의 중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반장을 하든 동장을 하든 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정말 위대한 사람들이었어요. 5·18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이 가만히 못 계시더라고요. 그분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여기 오신 분들도 오늘이 서로의 평화를 위한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김영희: 소성리에 왔던 진압 경찰 간부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요새는 여자들이 집에서 밥을 안 하고 밖에 나와서 데모를 한다.’ 소성리 가보면 정말 그런데요. 저도 오키나와 헤노코 기지에 갔더니 거기도 매일같이 배 타고 나와서 싸우시는 분들이 다 여성분들이시더라고요. 선생님께서 아마 평화를 위한 싸움에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해가고 있는지를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 감독님 말씀을 들어보고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김경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관람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더 적극적으로 이 영화를 잘 알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희: 한국에는 국가폭력의 경험들이 참 많은데요. 이상하게도 한국에서 폭력의 문제들이 언제나 맨 처음에는 보상의 문제로 얘기되는 것 같아요. 5·18도 그랬고요. 윤청자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왜 우리에게는 폭력의 문제가 생명이나 존엄의 문제가 아니고 보상의 문제로 이야기되는가? 이건 존엄의 문제다.’ 오늘 마침 5·18 39주년을 보내고 내년에는 40주년이 되는데요. 국가폭력의 문제는 이제 과거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계속해서 존엄의 문제와 평화의 문제에 대해서 싸우는 과정에서 함께하는 여정이 되었으면 하고요. 선생님께서도 잠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윤청자: 지금 국가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서 8개월동안 헌법 전문의 내용을 바꾸려고 했는데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안 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가 떴을 때 저와 다른 분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렵게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국가진상조사위원회가 뜨지 않아요. 거기에 이윤정 선생님이 비상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당사자라고 안된다고 하네요. 당사자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어요. ‘우리 위안부 어머님들 중에 투쟁의 선봉에 섰던 분들이 누구인가요? 여성이자 당사자입니다.’ 국가는 그저 대의명분을 위한 말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꼭 이윤정 선생님께서 들어가야한다고 요구를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새누리당하고 민주당이 어영부영하면서 당사자를 또 뺐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사투를 겪으면서 앞장서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 그들은 불리할 때만 가만히 놔두고 있어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응원해주십시오.(박수)
김영희: 오늘 어려운 걸음해주신 선생님과 감독님, 그리고 여기 와 주신 관객 여러분 감사드리고요.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영화관 측에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여러분들 편안히 돌아 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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