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독립영화의 맛을 느끼고 싶으신가요? <라오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4월 13일(토) 오후 5시 상영 후
참석 임정환 감독ㅣ임철 배우
진행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무언가의 본질이나 가치를 철저히 준수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복잡하게 흐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변수가 어느 순간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예측하는 게 불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마저 수용함으로써 본인이 찍고 싶은 영화를 제작하고, 더 나아가 상업적 관행으로부터 벗어나 작가 정신에 충실한 작품을 추구한다는 독립영화의 정신까지 몸소 실천하는 감독이 바로 임정환 감독이다. 4월 13일 인디스페이스에서는 <국경의 왕>을 연출한 임정환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라오스> 상영 후 관객과의 인디토크 시간을 가지며 다 함께 독립영화의 맛을 느끼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이하 김보년): 안녕하세요, 영화 재미있게 보셨나요?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보년입니다. 오늘 인디토크에 <라오스>를 연출한 임정환 감독님과 출연하신 임철 배우님을 모셨습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임정환 감독(이하 임정환): 안녕하세요. <라오스>의 감독이자 이 영화에 출연한 임정환입니다.
임철 배우(이하 임철): 안녕하세요. 임철입니다.
김보년: 인디스페이스에서 <국경의 왕> 단독개봉을 했고, 이 기회에 감독님 전작인 <라오스>를 특별상영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보셔서 아시겠지만 영화가 굉장히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잖아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도 딱딱하게 진행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만들고자 합니다. 영화가 2014년에 제작되었지만 오늘 이 자리를 통해 하나둘씩 회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은 제가 먼저 감독님께 질문을 드릴 텐데, 이 영화의 기획의도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찍다가 라오스로 이동해서 찍은 큰 규모의 영화 같은데, 엔딩 크레딧을 보면 스태프 이름이 반복되더라고요. 이 영화의 제작 규모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3주 동안 촬영했고요, 준비했던 걸 촬영했지만 3주 내내 촬영했던 건 아니고, 말씀해주셨다시피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으면서 촬영을 했죠. 그리고 배우를 할 거라고 생각 못하고 현장 스태프로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가 연기를 하게 된 경우도 있었어요.
김보년: 임철 배우님에게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임철 배우님의 경우 음향 담당 스태프와 배우로 이 영화 작업에 참여하셨는데, 사운드 스태프로 먼저 참여하셨는지 아니면 배우로서 먼저 참여했다가 사운드 스태프 일까지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두 분이서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철: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우선 같은 학교 동기라서 이미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저는 우선 스태프로 이 영화에 참여한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근데 라오스에 도착해서 갑작스럽게 연기까지 하는 걸로 계획이 변경되었어요.
김보년: 제가 영화 제작 과정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런 일이 드문 일이죠? 감독님은 시나리오 작업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라오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보다 라오스 이야기와 이어질 부분을 먼저 촬영하면 좋을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한강 수상 법당이 보여서 거기서 10분 정도를 촬영했습니다. 조현철 배우와 주변 친구들이 그때그때 했던 말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고, 보면 아시다시피 배우들의 애드리브도 많았어요. 현장에서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때에 따라 수정 작업을 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했습니다.
김보년: 이어지지 않는 사건들이 신기하게, 절묘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더라고요. 범죄, 마약, 영화과 동기들의 갈등 등 다양한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었잖아요. 어떤 이야기나 아이디어를 먼저 구상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임정환: 영화학도인 원식(정혁기)이 졸업영화를 엎어버리기로 결정한 설정은 제 경험과 상당히 유사한데, '수업을 들으면서 배웠던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좋은 감독님께서 이미 만든 작품들을 따라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죠. 욕심이죠. 따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김보년: 임철 배우님에게도 이 작업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어요.
임철: 우선 한국에서 일부 분량을 촬영하고 라오스로 넘어가서 관광을 하면서 동시에 다음 씬의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한다고 들었어요.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기획한 게 아니라 앞의 상황을 보면서 뒤에 이어질 내용을 연결하다 보니까 다른 캐릭터가 들어가도 재미있을 거 같다고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북한사람’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게 되었어요. 물론 처음부터 즉흥적으로 한 게 아니라 임정환 감독이 정해놓은 기본적인 상황 속에서 조현철 배우, 정혁기 배우 등이 주고받았던 이야기나 아이디어를 필요에 따라 수용하면서 작업을 했어요.
김보년: 혹시 영화 작업 이전에 라오스를 가보셨거나, 아니면 촬영 전에 사전 답사 같은 걸 다녀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이전에 같이 배낭여행을 다녀왔어요.
김보년: <국경의 왕>에서도 외국의 일상적인 풍경을 잘 담아내셨고 <라오스>에서도 일차원적인 풍경을 잘 담아내신 것 같아요. 라오스에 대한 어떤 인상을 평소에 갖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태국과 라오스 중에 라오스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임정환: <국경의 왕>에서도 그랬듯이 저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국가를 찾다 보니 이 영화를 찍을 때 라오스를 선택했어요. 사실 저는 평소에 익숙한 사람과 익숙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지만, 낯선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과 함께 한다면 그리고 작업을 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어요. 근데 지금 돌아본다면 라오스를 선택한 게 다소 아쉬울 때가 있어요. 제 작품과는 무관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찍은 뒤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을 라오스에서 촬영했거든요. 제가 영화를 통해 보여드리려고 했던 낯선 기시감은 계획과 다르게 실패했지만, 그래도 낯선 땅에서 촬영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김보년: 물론 본인이 참여한 작품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힘들긴 한데요, 임철 배우님께서 현장에서 친구이자 연출자인 임정환 감독님을 보면서 어떤 것들을 느꼈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임철: 기본적 상황만 정해놓고 때에 따라 유동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연출자라면 절대 이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임정환 감독이 대단해 보였어요.
김보년: 감독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영화에 참여한 총 스태프 수가 적긴 햇지만 친구이자 사운드 스태프로 참여한 임철 배우님에게 ‘북한사람’ 캐릭터를 맡기셨을 때는 어떤 이미지와 연결이 돼서 맡기셨을 텐데, 임철 배우와 그 캐릭터 사이에서 어떤 이미지를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만약 제가 시나리오를 다 써둔 다음에 본격적인 촬영 전에 다시 읽었다면 영화 작업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을 텐데, 친구나 주변 지인들이 순간적으로 보인 반응의 힘입어 영화를 찍게 된 거 같아요.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순간적인 느낌에 충실했어요. 임철 배우에게 북한사람 캐릭터를 맡긴 이유도 특정 이미지가 떠올랐기보다 순간적인 느낌에 이끌렸던 게 아닐까 싶어요.
김보년: 임철 배우님이 <국경의 왕>에서는 유령처럼 나오셔서 이상한 연기를 하셨잖아요.(관객 웃음) 임철 배우님이 그런 이상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연기를 잘하신다고 생각해요. 임철 배우님에게 또 다른 질문을 드리자면 북한 사투리는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철: 특별하게 무언가를 참고하지는 않았고, 그저 현장에서 연기를 해야 하니까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봤던 거 혹은 들었던 것들을 떠올리면서 연기했어요.
김보년: 제가 유독 집중하게 된 부분이 영화감독과 배우 간의 충돌 장면이었어요. 대사를 코믹하게 주고받기는 하지만,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대사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감독님의 경험을 토대로 영화로 재구성을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오프닝에서 원식과 현철(조현철)이 갈등을 일으키는 장면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둘 중에 누구 손을 들어주기 어려워요. 어떤 대사를 간접적으로나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방식도 좋고, 어느 순간에는 정반대로 하는 방식이 더 좋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개인적인 고민을 영화로 담아냈어요. 그리고 지금 이 영화를 돌아봤을 때 조금 더 확고해진 부분이 있다면, 둘 중에 어느 방식이 더 좋다고 고민하는 일 자체가 전혀 쓸데없다는 생각에 가까워졌어요.
김보년: 감독님 영화의 매력은 어떤 일상적인 생각이 어느 순간 이상적인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국경의 왕>에서도 그랬듯이 순식간에 현실적인 장면에서 상상만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장면으로 넘어가는 게 매력적이에요. 감독님께서 영화를 만드실 때 혹은 이야기를 발전시킬 때 어떤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말도 안 되는 판타지가 실현되는 공간이나 낯선 공간에서 작업할 때 흥미를 느껴요.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고 맥주 한 잔을 하는 상황을 말도 안 되는 공간에서 구현할 때 흥미를 느껴요. 그와 유사한, 유사하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그런 경험을 영화 속에 끌어내보자는 마음이 있고 친구들이 그런 마음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줘서 고마워요.
김보년: <국경의 왕>과 <라오스>를 보고 나니까 만약 감독님이 이전 두 작품과 달리 외국에 나가지 않고 한국에서만 머무르면서 영화를 찍으신다면 또 다른 이상하면서 매력적인 영화가 완성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KBS 독립영화관에서 <라오스>를 봤는데, 오늘 상영본이랑 다른 거 같아요. 방송 심의 때문에 상영본 일부를 편집한 다음 방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네. 모방 위험이 있는 장면이 있어서 특정 장면을 삭제하고 방영했었습니다. 제가 편집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KBS 독립영화관으로 제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관객: 영어 제목은 ‘Laos: In the Warmest Country’라고 되어있는데, 다르게 지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임정환: 되게 어려운 질문인데, 사실 ‘In the Warmest Country’를 한국어로 적절하게 번역하고 싶었는데 그때 당시 적절한 번역을 떠올리지 못했고, 초반에 말씀드렸다시피 다른 TV 프로그램과 촬영 장소가 겹치면서 제가 의도했던 기시감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게 어려워졌어요. 미지의 느낌을 살리고 싶지만 한국어로 마땅한 부제를 생각하지 못해서 한국어 제목을 그냥 ‘라오스’로 결정했습니다.
관객: 공황에 도착했을 때 택시기사와 주인공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택시기사가 주인공한테 North Korea인지 South Korea에서 왔는지 물어보잖아요. 저도 그런 비슷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거든요. 배낭여행도 다녀오셨다고 하니까 혹시 경험을 바탕으로 그러한 장면을 찍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거의 대부분 상황은 제 경험에서 출발했어요. 영화에서 등장하는 기타 인물들도 제가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했던 사람을 토대로 영화에 반영했어요.
김보년: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혹시 <국경의 왕> 제작 규모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국경의 왕>도 3주 촬영이었고 조현철 배우를 포함해 총 8명이서 영화 작업을 했었습니다.
관객: 미리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을 시작한 게 아니라 즉흥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작업을 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말하고 싶은 주제가 미리 정해져 있었는지, 또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주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주제, 주제가... 무언가를 찍고 싶어서 촬영을 시작했지만 찍으면서 계속 바뀌었어요. 때로는 그냥 찍고 싶어서 찍을 때도 있고, 찍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제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채 찍는 경우도 있어요.
관객: 혹시 현장에서 많은 장면을 찍은 다음 편집하는 스타일인가요?
임정환: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많은 장면을 찍을 수 없는 이유는 제가 영화를 찍다보면 ‘컷’ 소리를 많이 내지 않아요. 나중에 편집실에서 몇 안 되는 촬영 장면을 보면 왜 이 장면을 찍었는지 스스로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현장에서 많은 장면을 찍지 않다보니 편집할 때 어려움이 있어요.
김보년: 이제 오늘 이 자리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끝으로 임정환 감독님과 임철 배우님의 근황이나 끝인사를 듣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임철: 저는 계획한 작품이 있고 제작지원을 받으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습니다.
임정환: 차기작 제목을 몇 개 구상하기는 했는데, 올해 안으로 촬영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김보년: 오늘 자리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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