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 소소대담] 독립영화라 매력적이고, 독립영화라 걱정되고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알다시피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 달리 이윤 추구보다 창작자의 의도를 더 중시하는 영화다. 그래서 상업영화에서 절대로 찾을 수 없는 독립영화만의 고유한 특징과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독립영화가 매력적인 영화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작품을 계속해서 만나고 있다. 하지만 ‘독립영화’라는 단어 자체가 많은 관객에게 장벽처럼 느껴지고 있다는 게 현실이고 매달 개봉하는 작품들이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점차 독립영화만의 클리셰가 형성되면서 이와 같은 현실을 고착시키는 듯하다. 3월 말 진행된 인디즈 소소대담에선 임정환 감독의 <국경의 왕>, 최창환 감독의 <내가 사는 세상>, 김재환 감독의 <칠곡 가시나들>, 그리고 정희재 감독의 <히치하이크>에 대한 대화가 오고 갔으며 전반적으로 대화 속에 독립영화를 향한 언급된 시선이 깔려 있었다.
[인터뷰] <국경의 왕> 임정환 감독 인터뷰: 익숙함과 낯섦, 우연과 인연의 모호한 경계 속을 여행하다
[리뷰] <국경의 왕>: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당연하지 않게 될 때
[인디토크 기록] <국경의 왕>: 우연과 낯섦을 동력으로 여행하는 영화
<국경의 왕>은 관습적인 장르 문법을 깨는 영화일 뿐만 아니라 최근에 개봉한 독립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새로운 영화를 제작하려는 목적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독립영화의 취지를 살린 작품이라는 인디즈들의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낯선 풍경과 사람으로부터 일어나는 괴이한 느낌이 뜨거운 감정으로 발전해서 좋았다는 의견, 영화 제목에서 시작해 확장되는 이미지를 고민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의견,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의 이상하고 미묘한 정서와 날 것 그대로의 느낌 모두 살려서 좋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주제를 파악하기에는 불친절한 내러티브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난해함과 싸우느라 심적으로 지쳤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기존 문법을 따르지 않는 신선함에만 의존하기에는 공감할 만한 부분이 적어 이 영화의 다른 매력을 찾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공유되었다. 특히 인디즈들은 <국경의 왕>이 반(反) 내러티브의 영화에 속하므로 서사를 좇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인지적으로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을 거라는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이 관객이 느끼는 독립영화와의 거리감을 악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리뷰] <내가 사는 세상>: 시대의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인디토크 기록] <내가 사는 세상>: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노동 이야기
<내가 사는 세상>은 전태일 47주기 대구시민 노동문화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그리고 민예총 대구지회의 협업으로 제작된 영화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한 관객이라면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 명확히 존재하고, 억지스럽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노동영화’라는 기조를 뚝심 있게 유지했다는 점에서 <내가 사는 세상>이 좋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비록 이 영화가 지닌 일차원적이고 평범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지만, 절망적인 세상 속 어딘가에 그대로 멈춰있는 두 주인공의 관계 및 모습에 신경 쓴 부분이 <내가 사는 세상>이 추구한 현실성으로 이어진 게 아니겠냐는 의견이 덧붙여졌다.
그러나 이 영화가 과연 사실적으로 다가왔냐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이와 같은 반론은 답답한 현실을 그려내는 영화가 주로 활용하는 촬영 방식과 장면 구성을 지적하는 데에서 시작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과거와 다름없는 노동자의 현실을 그려내기 위해서 수미상관 혹은 흑백 장면을 선택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 몰라도, 오히려 이런 관습에 의존하는 게 영화를 사실적인 영역보다 인위적인 영역으로 밀어 넣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독립영화의 경우 상업영화와 달리 투자 금액과 제작 금액 규모가 적다보니 인물이 처한 불안정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핸드헬드 카메라에 더 의존하는데, 리얼리즘 영화의 발전을 위해 핸드헬드 숏 이외 다른 기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리뷰] <칠곡 가시나들>: 누구의 할머니도 아내도 아닌, "칠곡 가시나들"
김재환 감독의 전작들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처음에 다소 의아하게 다가왔을 <칠곡 가시나들>은 세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감정과 배움이 있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게 인디즈의 다수의견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할머니들께서 무대에 오르시는 모습을 보면서 긴장감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통해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고, 중간에 삽입되는 할머니들의 시와 인터뷰를 보면서 그 나이에도 삶에서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영화 제목에서 느낀 첫인상이 막상 봤을 때 크게 달라진 게 없어 그저 무난한 다큐멘터리였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김재환 감독이 쌓아온 필모그래피가 보여줬던 색깔이 이번 다큐멘터리와 상충하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는 감상도 있었다.
[인디토크 기록] <히치하이크>: 위태롭지만 단단한 눈빛과 걸음으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소개됐을 당시 충무로의 베테랑과 신예의 조합으로 주목을 받았던 <히치하이크>의 힘은 캐릭터에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극 중에서 주인공의 무표정한 얼굴이 많이 숏에 잡히는데, 힘든 상황임에도 슬픔을 계속 직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주인공이 보여주고 있는 직시의 힘이 곧장 영화의 힘으로 이어졌다는 의견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게다가 주인공이 자유 의지든 타의든 결론적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서 지적되었던 문제가 이 영화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되었다. 보호자가 없어서 주인공이 밖으로 내몰리는 상황, 그리고 어떤 소식을 듣고 나서 비관적인 선택을 하려는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핸드헬드 숏을 활용하는데, 주의 깊게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다소 뻔히 읽히는 의도이기에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창작자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소재에 지루함을 느끼고 싶지 않은 관객을 위해서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창의적인 작법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과 함께 이날 진행된 소소대담 자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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