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전야>  한줄 관람평


송은지 | 처음부터 과격했던 운동은 없었다

이성현 | 제작, 상영, 관객 모두가 용감했던 투쟁의 영화

김윤정 |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노동의 굴레

최승현 | 노동영화의 전설, 투박하지만 정직하다

김정은 | 어두운 시대를 비추는 빛으로서의 영화라는 예술






 <파업전야>  리뷰: 노동영화의 전설, 투박하지만 정직하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승현 님의 글입니다. 





제129주년 노동절을 맞이해 <파업전야>가 개봉했다. 30년 만의 정식 개봉이다. 이 영화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1990년 정부는 <파업전야> 제작진에 대한 전국 수배령을 내렸고 필름을 압수하기 위해 헬기와 전경을 동원했다. 무엇이 정부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맞서서 노조의 결성 과정을 그려내는 이 영화로부터 88올림픽 이후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뤄내던 노태우 정부는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씨네21'의 이화정 기자의 말처럼 노동자의 참상을 너무 잘 그렸다는 이유가 크나큰 죄명이 됐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있어서 <파업전야>는 독립영화의 전설로 불린다. 명작이라고 불리기엔 덜 세련된 작품이지만 전설이라고 불리기엔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다.

 




87년 가을 허름한 건물의 금속 공장. 이곳에서 일하는 동성 금속의 단조반. 이들은 기름때가 묻는 얼굴로 기름밥을 먹는다. 잔업은 많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형편없다. 작업반장은 생산량에 혈안이다.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욕설은 기본이고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철야 작업이 끝나면 시간은 새벽 1시가 된다. 그렇게 일해서 받는 월급은 20만원을 겨우 넘는다점심시간엔 족구, 쉬는 시간엔 담배, 퇴근 후엔 소주다. 족구로 몸을 북돋고 담배로 몸을 태우고 소주로 몸을 녹인다. 노동자들의 일상이다. 몸을 쓰는 노동자들에겐 몸을 위로하는 일이 최선이다. 퇴근 후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작업반장 뒷담화를 나누는 것이 이들의 삶의 낙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괴롭다. 작업량은 늘지만 월급은 늘지 않는다. 비인간적인 노동과 대우를 받는 이들은 결국 노조를 결성하기로 다짐한다. 회사가 어용노조로 맞대응하면서 노동자들의 내부 갈등과 혼란은 가속된다.

 




<파업전야>가 영화로서 지닌 힘은 미학적인 성취에 있지 않다. 오히려 영화의 미학은 투박하다. 여러 대학 동아리 출신 사람들이 모여 동료, 후배, 선배들의 후원금으로 제작했던 영화인 만큼 편집, 촬영, 음향, 조명의 측면에서 기술적인 완성도를 기대하긴 어렵다. 미숙한 연기와 후시 녹음은 눈과 귀를 거슬리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영화의 힘은 노동자의 실상을 정공법으로 그려내는 우직함과 정직함에 있다. 삶의 보편성을 담아내고자 하는 순수한 힘으로 영화는 줄곧 밀고 나간다. 삶의 보편성을 담아내는 영화에서 미학은 사실상 무력하다. 켄 로치의 영화가 그렇듯이 삶의 보편성은 투박하고 담백한 형식에서 빛을 발할 때가 많다. 예술이 진실을 성취하려 할 때 그 방식이 화려하고 미학적이라면 오히려 진실은 퇴색된다. 우리가 예술로부터 진정성을 절감하는 이유는 그것이 세공되고 꾸며진 형태여서가 아니라 정교하지 않고 생생한 형태여서 그렇다. 정직한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다. 정직한 아름다움은 모든 인간의 내면을 가로지르며 우리의 마음을 휘젓는다. 영화가 회사 경영진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앙각(low angle)으로 비추는 것은 투박하지만 정직해서 아름다운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주인공 한수의 내면적 각성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등록금이 없어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가난한 청년 한수는 별 탈 없이 열심히 사는 것이 꿈이다. 자신 대신 대학을 가려는 동생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적금을 붓는다. 그래서 그는 노조원이 되기를 거부했다. 노조원이 된다는 것은 해고를 감당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고뇌한다. 회사의 억압에 의해 자신과 친한 동료들이 해고를 당하고 폭행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수는 스패너를 움켜잡는다. 회사가 부른 용역 업체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는 노조원들을 구하기 위해서다. 안정적인 삶이 아닌 인간답게 사는 삶을 택한다는 점에서 한수는 <1987>(2017) 연희의 원형격처럼 보인다. 노동자로서 자신의 품위를 지키고 자신의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일은 숭고하고 존엄한 삶이다. 한수는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택한다.

 

1990년 노동영화가 오늘날에 정식 개봉한 것은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달라진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1990년 <파업전야>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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